# 41
S2 : 20화
* * *
난장판 이었다.
사방에서 로비로 몰려드는 구울의 무리,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신성 수류탄이 폭발 할 때 마다, 그리고 성마법이 부여된 아티펙트가 불을 뿜을 때 마다 구울이 무더기로 해체되어 뼛조각이 섞인 젤리 같이 바닥에 흩뿌려졌고, 그 흩뿌려진 시체들을 밟고 금세 또 다른 구울들이 밀고 들어왔다.
그 어떤 전쟁터라 해도 이다지도 끔찍한 관경은 아닐 것 이다.
“저기 있다!!”
마치 장식품처럼 보이는 화려한 난간 장식의 널찍한 계단 위에서 누군가가 칠성을 보고 소리 질렀다.
“저놈이 보스야!”
뭐야?“이야아앗!”
칠성이 눈길을 던지기가 무섭게 계단 위에서부터 푸른 제복을 입고 진 초록색 검을 빼어든 2,30여명의 무리들이 폭포수처럼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저 녀석을 죽이면 포상이다!”
그중에 한 놈이 칠성을 자신의 검 끝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흐아앗!”
가장 선두에 있던 녀석이 망설임 없이 칼을 높게 치켜들어 칠성에게 덤벼든다.
후.
칠성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허리춤의 롱소드를 뽑았다.
칠성이 참여한 실험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개량한 새로운 버전의 일렉트라자 였다.
스깡!
칠성이 후두른 검의 검로가 반짝 빛났고, 칠성에게 덤벼들던 검술부대원은 두 눈을 붕어처럼 동그랗게 뜨고 끔벅거렸다.
자신의 검이 칠성의 검과 부딪힘과 동시에 가볍게 잘려진 윗부분이 체조선수의 곤봉이라도 된 양 부러져 핑그르르르 허공을 갈랐기 때문이다.
“말도...”
쿵!
자신의 부러진, 아니 잘려진 검 끝에서 눈을 떼지 못 하며 중얼거리는 녀석의 머리채를 잡아 슬쩍 구부린 자신의 무릎에 처박는 칠성.
그 뒤에는 순식간이었다.
“칫..!”
순식간에 쓰러진 동료를 보며 멈칫한 검술부대원들을 향해 역으로 칠성이 뛰어올랐다.
도약한 기세 그대로 제일 앞의 녀석의 얼굴을 밟아 뒤통수를 계단에 짓이겨 주고, 그 위 계단의 놈의 발목을 잡아 당겨 넘어뜨렸다. 머리위로 덤벼드는 칼날들을 일렉트라자로 쳐내며 멱살을 잡아 다른 녀석에게 던져버렸다.
파치치칙!
일렉트라자가 간간히 불을 뿜었다.
쏘아져 나간 전격에 맞은 녀석이 몸을 떨며 계단의 난간 밑으로 떨어져 실내 장식으로 끝없이 물이 순환되며 돌아가고 있는 분수대에 빠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계량된 일렉트라자는 총 3단계의 레벨 조정이 가능 해 졌다. 출력량의 조절이 없었던 지난 버전의 경우 칠성의 과도한 마나주입을 견디지 못 하고 한 번의 사용 이후 회로가 완전히 타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칠성의 등 뒤를 노리고 있는 중년의 사내, 검술 부대 부장이었다.
“아무리 네 녀석이라도...”
그가 조용히 읊조리며 검을 바로 잡았다.
그는 쾌검의 달인이었다.
회복력이 비상식적으로 좋다는 칠성에 대한 정보가 있었지만. 순식간에 달려들어 목을 자르고, 머리를 수 십 조각으로 나누어 버린다면 제 아무리 녀석이라도 별 수가 있겠는가.
그가 발꿈치를 들었다.
“흐았!!!” 일갈의 기합!
타타탕! 퓨슈숭!
“응?”털썩.
칠성이 주저앉은 채 뒷걸음치며 칠성이 맨손으로 잡아 찢어 놓은 검을 공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던 검술 부대원에게서 눈을 떼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의 끝머리쯤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중년의 남자.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피어나고 있는 네다섯 줄기의 연기.
칠성의 등 뒤를 노리는 적을 제압해 준 이의 정체는-.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세요!”
완전무장을 한 채 K-이그저스트를 들고 있는 한솜이였다.
그녀의 뒤로 지우혁 등, 무장한 헌터들이 보인다.
한솜이를 필두로 제압팀 헌터들이 칠성을 지원하기 위해 온 것 이다.
호텔의 로비는 살아있는 시체들과, 김규형의 잔당, 거기다 헌특부의 헌터들이 얽혀있는 전장이 된다.
끄덕.
칠성은 고개를 한번 주억거려 보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띵.
엘리베이터가 섰다.
“실례합니다.”
엘리베이터엔 칠성보다 먼저 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광관지에서 볼 법한 전형적인 복장, 노란빛 하와이언 셔츠와 미러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남자.
레드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챙의 밀짚모자와 알이 커다란 명품 선글라스를 쓴 여자.
지팡이를 짚은 회색 정장의 노신사.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까지.
엘리베이터의 네 코너에 각자 캐리어 가방을 하나씩 쥐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단란한 가족이라고 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칠성을 웃는 얼굴로 맞아줬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층수 버튼을 누르기 위해 패널을 보자, 맨 윗층 20층을 제외한 버튼에는 모조리 청테이프로 커다랗게 X 표식이 되어있다.
고민 없이 20층을 누른 칠성.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연기 그만두고 시작하지?”
이런 소란을 정말 하나도 모른 호텔 투숙객들이 있다고 쳐도, 구울의 시체더미를 넘느라 정강이 부근까지 피가 튀어있는 칠성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맞아 주는 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엘리베이터가 4층을 지남과 동시에 웃는 낯이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표정하게 딱딱히 굳는다.
치지지직-.
두 눈이 청록색의 빛으로 넘실대는 여자가 김칠성을 노려보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쿠드드드득-.
중학생 정도로 보이던 남자아이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며 키가 2미터 가까운 근육질의 괴한으로 탈변한다.
하와이언 셔츠의 남자의 양 주먹이 보라색 기운이 넘실대며 빛을 낸다.
페도라의 노신사가 자신의 커리어 에서 미니 머신건을 꺼내든다.
기이이이이잉-! 머신건을 달구는 소리가 울린다.
* * *
같은 시각, 김규형은 20층에서 호텔 내부의 CCTV들을 틀어놓고 상황을 모니터링 중 이다.
20층 스카이 라운지 바의 한편을 컴퓨터와 모니터 더미가 장악했다.
“멍청한 자식...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김규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재밌어 죽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김규형이 그리는 그림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김칠성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전국 생방송 중 이었다.
번쩍!
김칠성이 탔을 엘리베이터에서 번쩍 번쩍 하는 빛이 20층의 엘리베이터 문으로 새어나온다.
“크크크... 시간이 된 거 같군요.”
그걸 본 김규형이 혼잣말 하듯 말 한다.
“그럼 전 올라가 있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옙.”
김규형을 수족처럼 따라다니는 투핸드 소드의 검사가 김규형의 말에 답하며 고개를 주억인다.
“주희씨! 그럼 안녕히!”
만면에 미소를 띄운 김규형이 라운지의 한쪽 끝 유리창에 묶여있는 김주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김주희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하간 계집애들은 멍청해. 조금만 잘 해 주면 다 믿으니 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김규형.
띵-
엘리베이터 등의 빛과 함께 20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 * *
김규형의 군대와 김칠성의 언데드 군단, 그리고 헌터들이 격돌하고 있는 서울 시내 특급호텔의 20층 라운지바.
그 엘리베이터 문.
투콰카캉! 카카캉!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번쩍이는 빛들과 함께 굉장한 굉음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알림음과 함께 열리는 문.
취시이이익-.
엘리베이터의 열린 문 사이로 뿜어지듯 빠져 나오는 뜨거운 연기의 무리.
저벅. 저벅.
그리고 그 사이를 걸어 나오는 칠성.
한 손 에는 일렉트라자, 다른 손에는 노란색 하와이언 셔츠의 남자의 멱살을 쥐고 질질 끌고 나오고 있다.
칠성 등 뒤로 보이는 엘리베이터의 안쪽 풍경은 가관이다.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 있는 것 이 보인다.
휘고 구부러지고 구멍이 나 있는 엘리베이터. 정상적으로 작동 해 올라온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쿠당탕!
하와이언 셔츠의 남자를 던져버리는 칠성.
“주희씨!”
저 먼 곳에 묶여있는 주희가 보인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투핸드 소드의 검사가 보인다.
“늦지 않게 왔구나 김칠성. 하지만 나를 쓰러뜨려야-.”
번쩍! 쿠르릉!
육중한 검을 빼들며 말을 뱉는 검사의 말을 칠성은 들어 줄 생각이 없다.
가볍게 투핸드 소드 검사를 향해 휘두른 일렉트라자가 천둥소리와 함께 빛을 뿜는다.
결과도 보지 않고 주희를 향해 바쁜 걸음을 떼려는데.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검사가 칠성의 어깨를 잡는다.
몸을 덮고 있던 진청색 판초우의가 방금 일렉트라자의 일격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려 안에 착용하고 있던 누런 구리 빛깔의 갑옷이 드러나 있다.
마치 사자의 형상을 본 뜬 듯한 갑옷의 디자인.
가운데 가슴팍엔 갈기가 구불구불 한 수사자 한 마리가 양각되어 빛나는 수정구 같은 것을 물고 있고, 손에 착용된 건틀릿까지.
일체의 세트로 보이는 갑옷의 건틀릿 부위는 사자의 앞발을 닮았다.
툭!
“*보이드*”
칠성이 자신의 어깨 위에 놓인 손을 툭 쳐내며 걸음을 옮긴다. 칠성의 등 뒤 그림자에서 솟아난 어둠의 가시가 검사를 노리고 찔러 들어간다.
<칠성!>
콰아앙!
다음순간 검사가 내지른 주먹을 보이드의 경고를 듣고서 간신히 피했다.
주먹이 박혀 들어간 라운지의 바닥이 굉음과 함께 분화구 같은 자국이 만들어지며 바닥재의 파편이 튀어 올랐다.
검사가 바닥에서부터 솟아 올라있는 보이드를 향해 손을 뻗자 마치 청소기로 빨아들인 것처럼 보이드가 건틀릿 부분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와 동시에 갑옷 가슴팍의 사자가 물고 있는 수정구가 빛으로 번뜩인다.
“이 갑옷의 이름은 주문 포식자- 김규형님이 하사 해 주신 역작 중 역작이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웃는 검사.
“그래?”
퍼퍼퍽! 번쩍!
칠성의 되물음과 동시에 순식간에 사방에서 검사를 노리고 날아든 어둠의 창들. 그리고 일렉트라자의 전격이 검사 사내를 강타한다.
하지만 폭발하는 마법 사이에서도 너무나도 당연 하다는 듯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낸 검사.
당연하게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칠성을 비웃는 표정이 만면에 퍼져있다.
“다른 세상에서의 별명은 ‘대륙 통일의 갑옷’. 이 앞에 목이 달아난 마녀와 마법사만 수백이다!”
부웅! 부웅!
그러곤 마구잡이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이즈의 검으로 펼쳐지는 검격들.
콰창!
칠성이 간신히 피하면 바닥에 격중한 검의 끝 부분부터 4-5m 의 길이로 쩍쩍 바닥에 직선의 금이 생길 정도의 위력이다.
칠성은 피하기 바쁘다.
“이 갑옷은 그 어떠한 마법이라도 흡수한다! 흡수한 마나는 그대로 내 힘이 된다! 네 녀석은 결국 모든 마나를 내게 상납하게 될 거다!”
비정상적으로 강한 검사의 힘의 원천은 결국 방금 흡수한 칠성의 마나.
“그래?”그 말을 들은 칠성이 갑자기 날아드는 검을 피하기를 멈춘다. 그 대신에 검사에게 최대한 가까이 들러붙는다.
“이게 뭐 하는....”
검사 갑옷의 수정구에 한 손을 얹은 칠성.
칠성의 행동에 의아함을 비추는 검사.
“너 말이 진짜 존나 많은 타입 이구나?”
칠성이 그대로 수정구에 자신의 마나를 밀어 넣기 시작한다. 암흑의 마나가 수정구를 물들여 보랏빛으로 변색되기 시작하는 빛나는 수정구.
“아니...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검사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칠성의 태도.
하지만 그 와중에 느껴지는 눈이 번쩍 떠지는 듯한 끝도 없는 힘.
생전 처음 느끼는 에너지에 대한 성취의 기쁨과 더불어 끝도 없는 에너지에 대한 공포감이 피어오를 즈음의 순간.
“네 말대로 내 마나 다 상납 해 주려고.”
씨익 칠성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가져 가 봐. 감당 할 자신 있으면.”
지이이이이잉------
번쩍!
거대한 발전기가 돌아가는 듯 한 굉음.
어둠의 마나가 회오리치듯 수정구에 넘실거린다. 태풍의 핵처럼 소용돌이치는 마나의 물결이 검사의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엑스터시 같이 밀려오는 힘의 물결에 검사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한다.
“으어어어어아아아!!!”
마치 신의 손 위에 얹어져 자비를 받은 듯 밀려오는 에너지에 고양된다.
칠성의 마나를 흡수하느라 과열되는 수정구에서 서서히 더 크게 피어오른 빛이 온 방을 뒤 덮을 정도로 눈부시게 환 해 진다.
빠칙!
극도의 상승감에 검사가 몸을 맡긴 순간.
갑옷의 사자가 물고 있던 수정구에 일련의 얇은 금이 생긴다.
“제기...랄.”
칠성의 의도를 눈치 채고도, 대륙을 통일한 검사의 모종의 자신감에 의해 내버려 두었던 검사가 아차 싶은 표정이 된다.
멍하니 자신의 갑옷 중앙 사자머리를 바라보는 검사.
슈파아앙!!
이내 빛 무리와 함께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며 빛을 내던 수정구가 폭발 해 버린다.
산산 조각나서 흩어지는 수정구.
너무나도 밝은 빛에 점멸 되었던 시야가 돌아오는 순간.
취시이이익-
털썩. 꿈틀.
마치 과충전 되어 폭발한 노트북 베터리 처럼 연기를 뿜으며 무릎을 꿇은 검사.
검사가 입고 있는 갑옷, 주문 포식자의 코어를 담당하는. 사자 형상이 물고 있던 수정구가 있던 자리는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텅 비어있다.
철그덕. 퉁.
검사의 몸에서 갑옷이 하나하나 파트별로 분해되어 떨어져 내린다.
쿵-!
가볍게 만신창이가 된 검사가 무릎을 꿇고 있던 상태에서 오래된 고목처럼 옆으로 바닥에 쓰러진다.
“휘유~ 이젠 진짜 끝이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숨을 몰아쉰 칠성.
툭.
괜히 쓰러진 검사의 머리통을 한 번 차본다.
“징글징글 하다 진짜...”
캬악- 퉤!
검사의 머리에 침을 뱉는 칠성.
그리고 고개를 든다.
“주희씨!”
마침내 김주희에게 달려가 묶여있는 김주희를 풀어주는 칠성.
묶여있던 것을 풀어주자 힘이 빠진 듯 무너져 내리는 주희.
마치 동화속 기사처럼, 주희를 받아 내준다.
“아... 칠성씨?”
눈을 덮고 있던 안대를 벗겨주자 마치 오래된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은 표정으로 칠성을 바라본다.
“괜찮아?”
“네...네. 괜찮아요.”
떨리는 눈동자로 칠성을 보는 주희.
“다친 덴 없고?”
칠성의 물음에 고개를 반복해서 끄덕인다.
“김규형이... 옥상으로 갔어요!”
주희가 손가락으로 라운지 뒤편 한쪽에 있는 검은 페인트칠 된 계단을 가리킨다.
“뭘 하려는 진 모르지만... 무언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요!”
“응.”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는 주희와 대조적으로 너무나도 담담하게 주희의 말을 받는 칠성.
“잠깐만 여기 있어. 다녀올게.”
칠성의 눈이 번뜩인다.
최후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