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40화 (40/145)

# 40

S2 : 19화

* * *

“새끼, 유치하긴.”

칠성이 TV화면에 나타난 김규형을 보고 중얼거렸다.

“크크크크.... 좀 재밌는 걸 준비했어요.”

도심, 여기저기 산재되어있는 수백, 수천, 수 만 개의 전자기기. 그야말로 사람의 수만큼, 혹은 그 이상의 스테레오 채널로 김규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파도가 열섬처럼 도시를 덮었다.

짝! 김규형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자! 지금부터 집중해서 봐 주세요! 시청자 여러분!”

이내 김규형의 상반신만 비추던 화면이 어딘가로 전환된다.

회색의, 페인트칠이 되어있지 않은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커다란 방 안.

수많은 사람이 마치 천재지변 끝에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피난민들처럼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두리번거리는 게 보인다.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바쁜 아이 엄마, 함께 갇힌 젊은 남녀 커플이 건네 준 초콜릿 바 로 허기를 달래는 백발의 노인, 색색의 등산복을 맞춰 입은 중년 부부 무리.

핫팬츠가 너무 짧은 여자.

멀쑥하게 슈트를 빼어 입은 신사.

학생으로 보이는 무리 등.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이 있다.

그 중에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가 폰의 화면에 자신들의 모습이 나오자 당황하는 사람도 있다.

“한 쪽에는 제가 특별하게 모신 일반 시민 200여분!”

김규형의 목소리가 쩌렁 울린다.

그런 무리들 사이에 굳게 닫힌 커다란 철창이 두 개나 있다.

각각의 철창에는 곧 죽어 넘어 갈 듯한 십대정도로 보이는 남자애가 하나씩 갇혀있다.

검은색 청바지, 상반신은 탈의 된 채 땀을 온 몸에서 흘리며 가는 숨을 내뱉고 있는 십대 소년.

소년의 사지는 벽에 쇠로된 구속구로 묶여져 있고, 소년의 상반신에는 여기저기 피가 배겨 나오는 탈지면(소독솜)이 테이프 반찬고와 함께 붙어있다.

“성민아! 정신 차려!”

“으...응.”

철창 너머로 소년의 어머니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철창에 매달린 채 소리 질렀다.

당장이라도 아들을 품에 품고 싶으나, 두 개의 철창 모두 상당한 크기에, 가운데 덩그러니 소년 한명씩을 붙잡아 두고 있는 형태였기에 닿을 수 있는 것 은 목소리 뿐 이다.

소년은 비몽사몽간에도 그에 대답하려 축 처져있던 고개를 들었으나, 몸에 너무 힘이 없었기에 눈동자조차 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순간!

“크르르르륵!”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소년의 상반신 근육이 팽창된다. 눈빛이 희번뜩 거리고 순식간에 우람해진 근육 위로 선명해진 회색빛의 털이 스친다.

“쟤, 쟤가 왜 저래....”

“성민아! 성민아!”

콰릉!

“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공간을 수놓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소년이 일갈의 짐승소리와 함께 왼팔과 양 다리의 구속구를 뜯어냄과 동시에 자신이 걱정되어 철창 안으로 내민 누나의 팔을 할퀴었다.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나에게 덤벼들어 얼른 소년이 있는 철창으로부터 거리를 벌린다.

“헉 아...아아으윽!!”

선명한, 맹수에게 할퀸 자국이 수놓아 진 누나의 팔을 보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소년이 괴로워하며 스스로 벽에 머리를 찧는다.

“아, 아니야! 성민아 누나 괜찮아!”

자기 자신도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 했지만, 자학하며 자해하는 동생을 멈추기 위해 위로의 말을 건네려 한발 다가서는 누나.

“오, 오지마! 도망가!”

그런 누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피하는 동생.

이런 장면을 배경으로 김규형의 낭랑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 여러분 혹시 늑대인간 이라고 아시나요? 200여분 중에 단 두 분을 선발! 제가 바로 그 전설 속 늑대인간으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같은 시각, 김규형이 등장하는 화면을 보던 시민들이 웅성거린다.

“흐~음. 상식적으로 늑대인간이 되면 이성을 잃고 주변의 약한 생물체를 공격하죠. 아주 다행히! 이번 경우엔 튼튼한 철창이 있어서 가족을 잡아먹을 일은 없겠네요. 아직 까지는요. 누나가 보양식으로 팔을 넣어준다던가 하지만 않으면요. 크크크크큿!”

그렇게 말 하고선 자신이 크게 재밌는 농담이라도 했다는 듯 숨을 꺽꺽 넘겨대며 박장대소 하는 김규형.

그런 김규형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 작아지더니 ‘다시보기’ 라는 타이틀과 함께 나머지 화면에 반쯤 짐승이 되어 누나를 해치는 소년의 장면.

그 관경을 보고 경악하고 부르짖는 소년 가족들의 모습이 예능 화면처럼 아기자기하게 편집되어 뒤따른다. ‘성진아 누나 괜찮아’ 라는 자막이 분홍색의 아기자기한 폰트로 밑에 깔린다. 죄책감에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벽에 스스로 머리를 찧는 소년의 모습 위에 예능 프로에서 자주 쓰이는 해골 마크가 빵빵 박혀 들어간다.

“사이코 패스 새끼....”

건너편 건물의, 평소엔 광고란으로 쓰이던 거대한 LED화면에 떠 있는 김규형이 송출하는 화면을 보던 김칠성이 질렸다는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는다. 제정신이 아닌 줄이야 알았지만 이정도 사이코일 줄이야.

“아아, 이게 선택지 A! 그럼 이어서 B를 보셔야죠.”

낭랑한 김규형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이 전환된다.

“...씨팔.”

다음 화면이 전환되는 순간 김칠성은 자신도 모르게 화면을 향해 한두 발 내딛으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경악이었다.

“쟤는 왜 또 저기 있어!”

이어진 화면은 흡사 전형적인 인질극이었다.

커다란 양날 검을 든 기사가 옴짝달싹 못 하게 구속되어 있는 여성의 목에 칼을 드밀고 있었다.

어두운 가죽 계열의 구속구로 온몸이 칭칭 감기고, 눈도 안대로 가려져 있고, 입에도 재갈이 물려져 있지만 칠성은 한 눈에 그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김규형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분으로 말 씀 드릴 것 같으면! 이제는 한국, 아시아를 넘어 저 먼 유럽과 미대륙까지 진출하시는 말 그대로 세계적인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JH의 CEO 님 이십니다!”

주희였다.

“썅!”

분개하는 칠성. 그때였다.

“수 백 명의 시민과 한명의 여인!”

삼분할 된 화면의 가운데에 김칠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실시간으로 촬영되는 화면.

이어서 칠성을 비추는 화면 왼편엔 200명의 시민, 오른편엔 김주희의 모습이 잡힌다.

“과연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은 누구일까요? 주인공은 여러분의 히어로 김칠성! 시민쪽이 선택을 받지 못 하면 철창이 열리게 되죠!”

김규형의 말마디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에 비춰지던 늑대소년이 비명과 함께 온몸을 뒤틀더니 완연한 괴물의 형태로 변한다.

카메라가 철창 문 위에 ‘05:00’ 라고 세팅되어있는 선명한 붉은 색의 디지털 패널을 비춰준다.

“그리고 다른 쪽은 뭐... 따로 설명 안 드려도 되겠죠?”

카메라에 역시 똑같은 디지털 패널을 들고 있는, 주희의 목에 검을 들이댄 기사의 모습이 보인다.

칠성이 자신을 촬영 중인 드론을 마법으로 격추시킨다.

이내 화면이 김규형의 얼굴로 전환된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 구요? 당신이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잖아...?”

카메라를 노려보는 김규형.

주어를 붙이진 않았지만 칠성은 그가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어디 보자고, 사람들이 당신의 선택을 얼마나 좋아할지.”

“후우....”

고작 그런 이유였나.

띠링.

칠성의 헌터폰에 A와 B의 주소가 찍혀있는 문자가 도착한다.

“5분 남았습니다.”

손을 펼쳐 5를 만들며 웃어 보이는 김규형.

이내 김규형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양쪽 인질들의 모습만 양쪽으로 분할된 화면에 계속해서 비춰준다.

숫자 패널의 글씨가 ‘04:59’ 로 전환되어 숫자가 점차 줄어간다.

칠성은 냅다 문자로 받은 주소를 무전을 통해 헌특부 팀들에게 전달한다. 엄호하란 메시지와 함께.

그러곤 장관실의 창문을 넘어 뛰어내린다.

파창.

칠성의 등 뒤에서 검은색 날개가 펼쳐진다.

순식간에 지면을 향해 자유 활강 한 칠성.

“가자.”

칠성의 한 마디와 함께 그가 착지한 주변에 있던 군단이 함께 움직인다.

수 백, 수천의 숫자에 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울 들이다.

칠성이 지면을 차고 포장된 도로를 미끄러져 달린다. 발밑엔 스케이트 날 같은 그림자의 형상이 자라나 있다.

순식간에 도로를 점거하고 초인적인 속도로 내달리는 구울의 무리에 시민들이 경악하고 비명을 내지른다.

* * *

서울 시내의 한 특급 호텔.

내부, 1층 로비.

고급스러운 백색 바탕의 회색 사각형 무늬가 섞인 바닥재가 인상적이다.

할로겐 라이트와 LED를 비롯한 조명이 날카롭지 않은, 부드러운 밝은 빛으로 내부를 감싸고 있었고 배경음으론 은은하게 들릴 듯 말 듯 베토벤의 교향곡 따위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흰색 계열로 통일 되어 있는 내부.

곳곳에 목재 소재의 마감재들이 포스트 모던 아트 스러운 해체된 형태의 직사각형을 이루며 밸런스를 잡고 있었고, 수 미터마다 하나씩 이름 모를 명화나 예술품이 들어 찬 유리 장식장이 있었다.

체크인과 아웃을 담당하는 데스크 앞 쪽엔 신사 한명이 있었다.

강인한 인상, 얼굴 곳곳에 자리 잡은 옹골진 주름. 사십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는 앞머리가 허전하게 벗겨져 있었으나 누구도 그것을 농담 삼지 못 할 정도로 살벌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번들거릴 정도로 과도한 젤로 남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반듯하게 날이 선 푸른 제복을 챙겨 입은 그는 마치 세계 2차 대전의 장교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일본도 같은 칼을 털어내었다.

칼끝에 맺혀있던 핏방울이 유럽 어딘가에서 물 건너 왔을 바닥재를 물들인다.

풀썩.

그가 칼을 털어냄과 동시에 경비복을 입은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다.

모자를 비롯한 정복이 너덜너덜 누더기처럼 되었고, 몸 곳곳에 피가 배겨 나오는 만신창이가 된 경비원.

경비원을 쓰러뜨린 중년 남자의 군홧발이 경비원의 목을 밟는다.

“끄윽...”

경비원이 최후의 힘을 짜내 저항하듯 군홧발을 양 손으로 밀어내려 애쓰며 몸을 퍼덕인다.

“여러분을 해칠 생각은 없다.”

중년의 남자가 말을 하면서도 무표정하게 혀로 짭짤한 입술의 옆면을 핥았다.

의도적 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방심해 있던 그를 향해 전기 충격기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던 경비원을 순식간에 곤죽으로 만들어 쓰러뜨리는 그의 모습.

그 모습은 그의 앞에 줄줄이 굴비처럼 밧줄에 묶인 채 앉아있는 백 여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진한 공포를 각인시켰다.

“여러분은 인질조차 아니다. 우리는 그저 이 장소를 확보하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 이야.”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건 의도된 인질극이 아니었다.

김규형의 명령을 받은 남자와 수 십 명의 행동 조 들은 호텔을 점거하는데 동원 되었다.

부득불 경찰에 신고를 한다든가 해서 상황을 망칠 염려 때문에 호텔 직원들과 일부 손님들을 사로잡은 것 이었다.

“물론 우리 일을 망치고자 한다면....”

꾸욱

“끄으..으으윽!”

남자의 발끝에 힘이 실렸다.

발밑의 경비원이 입에 거품을 물고 물가로 건져 올려 진 물고기처럼 퍼덕대더니 이내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다.

툭.

남자가 널브러진 경비원의 몸통을 발로 찬다. 의식을 잃은 경비원의 몸통이 아무렇게나 바닥을 구른다.

“적절한 처분이 따를 것 이다.”

중년의 남자가 입을 삐딱하게 앙다문채 덧붙인다.

“부장님!”

그때였다.

질서 정연히 진형을 이루고 각자 칼을 찬 채 드문드문 인질들을 살피며 서 있는 검술부대,

그 사이로 그들과 같은 푸른색 제복을 입은 청년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무슨 일인가?”

중년의 남자가 굵직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뛰어 들어 온 청년을 향해 물었다.

“어...어떤 게 오고 있는데! 무...무언가 심상치가 않은 것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야 도대체?”

앞 뒤 맥락 없이 횡설수설 하는 청년을 나무라며 눈 사이 미간이 깊어지는 중년의 남자.

잘각 잘각 잘각, 달그닥 달그닥 달그닥....

아주 미묘한, 지진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 한 것 은 그때였다.

처음에는 유리진열장 속에 들어있는 가벼운 부속품이 잘그락 대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뒤이어서 로비 한 켠 카페에 놓여있는 커피 잔이 받침과 부딪치며 달각 거리는 소리가 추가되었다.

서로 경쟁하듯 미묘한 떨림과 함께 소음을 추가하는 물건들,

짱그랑!

그 기세를 타고 장식 되어있던 청자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난다.

“온다...”

무언가가 오고 있다.

그 날이 선 듯 분명한 감각에 중년의 남자가 깨진 청자에서 시선을 거두고, 그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듯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대결을 준비하기 위해 검의 손잡이를 그러잡는다.

그렇지만 뭐가 오기에 땅까지 흔들린단 말인가?

콰차차차창!

그리고 이내 그의 의문에 대한 정답이 순식간에 유리창을 뚫고 튀어나왔다.

인질로 잡혀있던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로비를 가득 메운다.

“크에에엑!”“흐어아악!!”

수박 한 통이 들어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좀비 같은 것이 깨진 유리창의 파편 덕에 피를 뚝뚝 흘리며 검술 부대 중 한명을 덮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패닉에 빠진 부대원이 혼비백산한다.

승-겅.

그때, 가벼운 동작으로 칼을 위로 치켜 올린 발검동작을 거두는 중년의 남자. 검술 부장.

이내 구울의 입이 찢어지더니 턱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느새 잘린 허리를 기점으로 구울의 사지가 절반으로 나뉘어 무너져 내린다.

“정신 똑 바로들 차려라! 실전이다!”

챙가가강!

마치 그의 목소리가 경기 시작을 알린 공이라도 된 듯 수십, 수백 끝도 모르는 구울의 때가 호텔 로비로 쳐 밀려들어온다.

로비의 나머지 유리창들이 깨어져 흩날린다.

수십의 김규형의 휘하 부대들과 김칠성의 구울 들이 난전을 벌인다.

* * *

구울 등을 마차 삼아 타고 있다.

마치 마차처럼 네 발로 질주하는 구울 너댓 마리가 호텔 입구의 레드카펫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고급스러운 로비의 전경이 펼쳐진다.

자신의 팔을 문 구울의 머리통을 건틀릿을 찬 주먹으로 박살내고 있는 사내, 누군가의 검격에 허공을 가르고 핏물 무지개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시체의 머리.

사방에선 자신들의 무기를 빼어든 푸른 제복의 남자들과 구울들의 사투가 이어지는 전장이다.

“히야앗!”

칼을 빼들고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를 마차같이 기어가던 구울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 막아낸다.

남자의 칼이 구울의 가슴팍을 관통한 게 보인다.

그 꼴이 보기가 싫어서 구울들의 마차에서 내린 뒤 잽싸게 구울을 남자에게서 떼어내고 남자의 턱에 주먹을 날린다.

주먹에 맞은 남자가 맥없이 칼을 놓치며 마치 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을 가르고 저편으로 날아가며 쓰러진다.

“까불고 있어.”

뻗었던 주먹을 거두며 손을 털고 자신의 머리 모양새를 습관적으로 매만지는 남자.

김칠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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