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S2 : 18화
* * *
헌터들에게는 물론, 인류에게 재앙과도 같은 이름의 ‘실체화 몬스터’.
몬스터가 나타난 초창기에, 관련된 지식의 부재로 전 세계에선 몬스터의 레벨업 현상, 그리고 실체화 현상이 만연했다.
헌터들의 존재도 부각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거대화 된 몬스터에게 무작정 현대 화기들을 무작정 들이 부었고,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이었다.
그 상태대로라면 인류가 망하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대한민국 헌특부는 물론, 지구의 각 국가들에 있는 모든 헌터 기관, 단체들은 최우선적으로 실체화 몬스터를 애당초 만들어내지 않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구축 해 왔다. 단체들의 설립 목적 자체가 실체화 몬스터를 예방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하는 게 옳다.
덕분에 ‘문’과 몬스터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초반 3년 무렵을 제외하고 이후에는 실체화 몬스터가 나타나는 일이 매우 희귀한 경우가 되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보존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특부에 속해있는 헌터들, 비상 대비 조 까지 통틀어 약 100여명이 안 되는 현역 헌터들 중, 실체화 몬스터를 실제로 대면해본 이는 지극히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김철수 팀장이 바로 그 극소수 중 한명이었다.
그가 막 헌특부의 헌터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신규종인 몬스터에 대해 공략법이 없던 한 레이드 팀이 전투를 너무 길게 끌었다.
몬스터의 실체화 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헌특부는 급하게 대기 중이던 헌터들을 전투를 길게 끌고 있는 그곳으로 마구잡이로 투입했다.
그럼에도 몬스터가 실체화 되는 것은 막아내지 못 했고, 실체화 된 몬스터는 하늘로 날아올라 서울로 향했다.
갑각류 형태의, 언뜻 보면 전갈이 생각나는 모습의 몬스터는 실체화와 동시에 거대화 되었다.
작은 자동차 만 하던 몬스터는 실체화 되면서 단층 주택 같은 크기로 변모했다.
서울의 상공으로 향한 녀석은 허공에서 자신과 똑 닮은 모습의 새끼들을 흩뿌렸다.
흩뿌려진 새끼들. 새끼라고는 하지만 작은 멧돼지 만 한, 독을 가진 새끼들은 민간인들을 덮쳐 십 수 명의 사망자와 수 백 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그리고 헌특부에 남아있던 정규 인력, 막 레이드에서 복귀한 김철수의 팀 역시 서울로 날아온 실체화 몬스터를 막아내는 데 투입됐다.
“철수야 튀어!!”
당시 김철수가 속해있던 팀의 팀장, 정찬욱은 전갈 몬스터의 거대한 양 집게발을 자신의 양손으로 부여잡고 그렇게 외쳤다.
촤악!
정찬욱 팀장의 피가 튀었다.
20대 초반의 김철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물론 몬스터를 향해 검을 들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건 자신의 천성을 부정하는 일 이었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의 긴장감으로 늘 칼을 들어왔던 것 이다.
그리고 실체화 몬스터와 마주했을 때, 그는 그야 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두 발이 얼어붙어 꼼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더러 도망치라는 찬욱을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었던 김철수는 투핸드 소드를 더욱 꽉 그러쥐며 몬스터의 빈틈을 노리려 했으나, 바로 다음순간 몬스터의 양 집게발이 정찬욱 팀장의 사지를 양쪽으로 뜯어놓았다.
마치 어린애의 장난감을 양편으로 찢어버리는 듯 한 가벼움이었다. 찬욱의 몸이 산산 조각나고 피가 튀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하고 횡사한 찬욱을 보며 김철수는 검을 내팽겨 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2팀 백호팀! 내 뒤로 선다!”
김철수는 검을 더 꽉 그러쥐며 날을 세웠다.
헌특부의 그 누구보다도 앞에 서서, 악몽과도 같은 실체화 몬스터와 가장 가까운 최전방에 섰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런 그의 결의 덕 일까,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사람같이 두 발로 서 있는 곤충 형태의 실체화 몬스터와 30미터정도의 간격을 두고 60여명의 헌터가 일순간에 진형을 짜고 둘러쌌다.
* * *
“이게 무슨 경우래?”
칠성이 중얼거렸다.
지금 뭐 빠지게 열심히 굴러서 이놈들을 살려놨더니, 칠성을 향해 칼을 빼어드는 게 아닌가.
“니들...”
철거걱.
칠성이 자신을 향해 진형을 짠 헌터들을 향해 한 발을 내딛자 진형 전체가 물결처럼 파도치며 한걸음씩 물러난다.
“모두들 신호할 때 까지 움직이지 마!”
그리고 각 팀의 팀장들이 마치 눈앞에 몬스터라도 있는 것처럼 팀원들을 지휘한다.
“하이 나...”
우선 기분 더럽다, 무슨 왕따라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자신을 무슨 혐오스러운 무언가라도 되는 양 취급이라니. 방금 열심히 구해줬던 거 취소하고 싶다.
하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알겠다. 뭘 한 건지,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규형이 헌특부를 향해 쏜 아티펙트 폭탄은 이런 것 이었던 거다.
무언가 물리적 피해를 입히는 것 이 아닌, 칠성을 엿 먹이는 것.
아마도, 지금 저들의 눈에 칠성이 몬스터로 보인다.
그 증거로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헌터들의 뒷목 부근에 허여멀건 마법진 같은 것이 보인다.
아마 김규형의 아티펙트가 폭발하면서 생긴 것 이리라.
칠성이 몬스터로 보이게끔 하는 마법에 걸려 있는 것 이다.
애당초 헌특부 직원들에게 실체화 몬스터 대응 긴급출동 메시지를 보낸 것 도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그 실체화 몬스터라는 것 이 바로 칠성이란 것 이다.
“재수 없는 새끼 진짜.”
칠성은 이 자리에 있지도 않는 김규형에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김규형이 친 장난의 맥락을 칠성은 눈치 챘다.
아마도 헌터들의 눈에 자신은 지금 바퀴벌레 같은 것으로 보이고 있으리라.
하여간 저게 어떤 종류의 마법인지도 정확히는 모르겠고, 모르는 마법이라도 해제 하는 것이야 불가능 한 건 아니지만 이거보단 가까이 가야한다.
“가만히 있어 얘들아.”
탁.
철거거걱.
하지만 칠성이 한발 떼면 더욱더 긴장해서 진형이 팽팽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에 칠성은 지금 최악의 몬스터니까.
“탱커 앞으로! 격수 대기!”
김철수 팀장이 앞에서 칼을 휘두르며 무리를 지휘한다. 계속되는 몬스터 취급.
“후우우우....”
칠성이 한숨을 탁 내뱉는다.
아 별로 내키진 않는데, 저 새끼들이 말을 들어먹을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진짜 착한 사람인데 선택권이 없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이마에 혈관이 불끈,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얼굴 가득히 띠며 주먹의 관절을 뚜두둑 꺾는다.
“덤벼 이 새끼들아.”
* * *
그것은 놀랍고도 경악스러운 관경이었다.
적어도 김철수 팀장의 시야에선 말이다.
헌터들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실체화 몬스터에 맞서서 기세 좋게 진형을 짜고 선봉에 선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물러나! 진을 몬스터 방향으로 재정비한다!!”
두 발로 서 있는, 언 듯 바퀴벌레 같은 인간 정도 크기의 실체화 몬스터.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김철수가 처음 짜둔 진형을 유린해 들어왔다.
앞선 김철수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우측으로 크게 돌아간 몬스터.
탱커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진을 치고 있는 전선까지 뛰어오더니 일말의 고민도 없이 비명을 삼키는 헌터들의 방패를 발판삼아 도약했다.
그리곤 그대로 허공을 가르고 후방에서 대 헌터 제압 소총, K-이그저스트를 들고 대기하던 조에게로 넘어갔다.
풀썩!
6명의 헌터가 매가리 없이 바닥에 눕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중제비를 돈 몬스터가 바닥에 착지함과 거의 동시에 K-이그저스트를 든 헌터 6명이 비틀거리더니 풀썩 쓰러졌다.
김철수 팀장은 다시금 진을 재정비 해 몬스터에 맞서려고 했으나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완전히 읽히고 있다!
마치 김철수의 의도가 읽히는 것 같았다.
몬스터가 능수능란하게 진을 파훼한다.
진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도 달라질 것 같지가 않았다.
‘고 지능의 몬스터?’
의아할 따름이다.
몬스터는 단순히 공격성으로 가득 찼을 뿐 이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그리해 아무리 단순한 공략법이나 진형이라도, 일단 한번 효과가 검증되기만 하면 몇 번이나 써 먹어도 ok란 것 인데.
진형을 읽고 파훼하는 몬스터라니?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 이다.
이 와중에도 바퀴벌레 형태의 몬스터는 또 다른 헌터의 뒷목에 이빨을 번뜩였다.
놈에게 당한 헌터는 마치 방전된 배터리 마냥 털썩 힘없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안 된다.
이번만큼은 저 악몽 같은 실체화 몬스터에게 또 다시 힘없이 동료들을 잃진 않겠다.
“모두들 흩어져! 진형을 깬다!”
김철수 팀장이 자신의 애검을 휘두르자 검신이 햇빛의 조각을 반사하며 번뜩였다.
지유웅-.
김철수 팀장의 검에 마나가 주입된다.
이내 강철조차 순식간에 베어버리는 샤프니스의 마법이 검신을 감싼다.
“네 상대는 여기다!!”
까딱?
자신이 코앞까지 들이닥치자 겁을 먹고 주저앉은 또 다른 헌터를 덮치려 하던 바퀴벌레 몬스터의 동작이 멈춘다.
그리곤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더듬이를 한번 까딱 해 보인다. 마치 자신을 불렀냐고 묻기라도 하는 느낌의 동작이다.
씨익.
김철수 팀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몬스터가 자신을 향해 웃었다...?
온 몸에 오한이 스쳐지나간다.
그 이후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번개같이 김철수 팀장에게 달려든 몬스터.
김철수 팀장은 짧은 횡 베기를 여러 번 날렸다.
이리저리 피하던 몬스터의 발치에서 솟아난 어둠의 가시.
땡그렁!
순식간에 김철수 팀장의 애검이 절반으로 동강난다.
“크읏!”
김철수 팀장이 이를 악물며 부러진 검을 휘둘렀다.
카득.
하지만 거기까지였을 뿐.
어느새 형편없는 반동짜리 검격을 여유롭게 피해 김철수의 등 뒤를 잡은 바퀴벌레 몬스터가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온 몸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털썩.
앞선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바닥과 마주한 김철수 팀장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캬~ 기백 하나는 제법이네.”
눈이 감기어 가는 김철수 팀장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더라...?’
그런 의문과 함께 김철수 팀장의 희미한 의식이 어둠속으로 멀어져 갔다.
* * *
탁. 탁.
칠성이 양손을 맞부딪쳐 털어냈다.
“휘-유.”
한 숨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잘 정돈 된, 모양을 낸 화강암 벽돌로 장식된 커다란 인도 위, 도합 60여명 정도 되는 헌터가 여기저기 정신을 잃은 채로 널브러져 있다.
“저게 뭐야?”
“세상에....”
“헌특부 장관 아니야?”
“저거 다 헌터들인가?”
지하철역에서 올라온 일반 시민들, 건물 안에 있던 시민들 등이 상황이 진정되자 하나 둘 호기심에 몰려들어 널찍이 거리를 벌리고 주변에서 웅성대고 있었다.
평소에 하나, 둘 보기도 어려운 헌특부의 헌터. 그야말로 5천만 명 인구 중 약 100명. 따지자면 연예인보다도 훨씬 희귀한 그들이 수십 명 씩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관경이라니, 신기할 만 도 했다.
“아, 구경났어?! 팍 씨!”
헌터들이 기절 한 이유는 칠성이 그들을 일시적으로 마나가 빈 깡통 상태로 만들어서다.
김규형이 건 마법은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기생형 마법이다.
걸려있는 상대의 마나를 빨아 자신의 효과를 유지하는 형태의 마법.
그러니까 일순간에 그녀석이 빨아들일 먹이를 완전히 제거 해 버리면 걸린 마법은 자연스레 사라져 버린다.
물론 이게 말이 쉽지, 실제 상황에서 마나가 순식간에 고갈 될 일 같은 건, 마나를 보유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던가 하는 경우가 아니면 쉽게 잃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나를 고갈시키긴 시켜야하는데, 어떻게 했냐고?
그냥 이빨로 마법진이 있는 부분부터 잡고 죽 뜯어냈다.
칠성이야 마나를 음식처럼 먹을 수 있는 반 마족의 저주받은 신체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김규형의 마법이라니 찝찝해서 먹진 않고 뜯어내기만 했지만.
하여간 일반인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회복력이 좋은 녀석들이니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금방 일어날 거다.
그 뒤로 수시간, 칠성이 가장 처음 한 것은 헌특부 연구실의 재개와 작동이었다.
김규형이 남긴 마법을 기반으로 김규형이 쓰는 정신계 마법을 시뮬레이터로 분석했다.
원래는 수개월이 걸림이 당연한 작업.
“아니아니, 이게 이해가 안 돼? 여기선 이렇게 S자 패턴이 나와야 한다니까?”
“어...어라?”
칠성의 다그침에 장영실 연구소장이 미처 몰랐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헌특부 연구실, 그들의 눈앞엔 김규형의 아티펙트가 폭발하면서 걸린 인식 장애 마법의 희생자 중 한명이 작은 무대같이 솟아올라 있는 원통형의 분석기 검사판 위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딱,딱,딱.
초조한 모습으로 손톱을 뜯고 있는 그는 헌터임에도 불구, 실체화 몬스터 메시지를 보고서 도망을 갔었다고 한다.
호기심과 죄책감에 잠시 돌아왔다가 김규형의 공격에 휘말렸고, 그 뒤에도 다시 되돌아 도망 쳤던 걸 누군가 잡아왔다.
따그닥?
“히..히익!”
분석기 맞은편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칠성과 눈이 마주치자 식겁을 했다.
그에게 만큼은 칠성이 아직도 몬스터로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청마법사들 한 텐 효과가 없었단 거지?”
“네, 어리둥절했다니까요. 김철수 팀장님은 갑자기 형님을 공격하려고 하지. 다른 헌터들한테 말 해 봐야 말이 안 통하지.”
김태홍이 답했다.
“그럼 마나에 색깔이 있어도 효과가 없고, 마나 보유 수치가 너무 낮아도 효과 없고. 은근히 허접 하네 김규형.”
“여기, 여기는 이렇게 가면 될 까요 그럼?”
“옳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구만?”
“헤헤....”
칠성의 도움으로 개발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
분명 모르는 마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모르는 마법조차 더듬더듬 순식간에 그림을 만들어가는 칠성의 마법 감각에 영실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칠성 입장에선 그것이 당연 한 것 이었다. 오히려 영실의 학습속도에 감탄하는 중 이었다.
그렇게 마법의 무력화를 목표로 하는, 헌특부의 발명품 매직 디스펠러에 ‘대 김규형 술식’ 이 적용되었다.
프로토타입으로 생산해 둔 개수가 몇 개 되지 않아서, 팀별로 하나씩만 배분했다.
김규형의 공격으로 부터도 수 시간이 지난 무렵.
쉬이이잉-.
아직 유리창을 갈지 않은, 헌특부 장관실.
의자는 버려둔 채 창밖을 향해 책상 위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비스듬히 세운 롱소드의 손잡이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고 있던 칠성이 번뜩, 눈을 떴다.
“왔다.”
메인 디쉬 배달이다.
이런 방식일 줄이야 몰랐지만.
헌특부 장관실에서 보이는 건물들의 숲, 그 사이사이 외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화면들.
길 가던 시민들의 스마트폰 화면 속, 각종 티브이, 방송, 인터넷, PC화면, LED 광고판 기타 등등 빛을 내는 전자 기기 라면 가리지 않고 모두 하나의 검은 화면을 송출하기 시작한다.
“뭐야?”
“어~이게 왜 이러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눈썹을 찌푸린다.
순식간에 각종 서비스 회사의 고객 상담센터에 불붙듯 항의 전화들이 빗발친다.
“이야... 끔찍 하구만.”
칠성이 중얼거렸다.
눈에 가득 들어오는 풍경 여기저기에 있는 화면은 물론, 장관실에 비치해 둔 티비와 칠성의 헌터폰에 조차 동일한 인물의 얼굴이 떴다.
마치 수백, 수천, 수만 명의 동일인물이 존재하는 듯 어마어마한 위압감.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 영화의 클리셰 같은 상황.
파급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것은 일상을 비 일상으로 탈변 시켜 놓았다.
사람들의 시간은 모두 동시에 멈추었고, 마치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의 UFO를 보기라도 하는듯한 감각으로 모두 숨을 멈추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 아, 김칠성씨. 들리십니까?”
이상하게 황홀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얼굴.
김규형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