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S2 : 17화
* * *
커다란 공간, 컴퓨터 부품으로 가득 들어찬 곳, 쉴세없이 돌아가는 컴퓨터 덕분에 공기가 탁하다.
언듯 공장 같은 인상이지만 일 하고 있는 직원이라곤 커다란 트리플 모니터 앞의 판춘봉 뿐이다.
[그 새끼 빨리 못 잡으면 큰일 나는 거 알지?]
헤드셋 너머에서 칠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 기다리라고!"
불기둥에 자신의 아바타를 버리고 자취를 감춘 김규형을 추적하기 시작한 지도 열 시간이 넘었다.
[이거 뭐 잔뜩 폼 잡더니 그 프로그램도 별 거 아닌 거 아니야?]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판충봉은 억울했다. 자신의 프로그램 설계는 완벽하다.
티끌만한 단서로도 용의자의 위치를 파악 해 낸다. 그 증거로 김규형을 돕던 무허가 헌터들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제압팀에게 보내주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익명의 사자들’ 이라고 이름붙인 추적 프로그램은 김규형의 이름, 사진, 출신, 행적, 그가 연관된 회사들 등 각종 키워드로 그를 추적하고 있었지만 단서를 추격하는 각종 콘솔창이 모니터 위로 떠서 메시지를 뱉어내다 검색 기록을 남기고 이내 사라질 뿐 특별한 소득이 없는 상황이었다.
[말이 안 되고 뭐고 거기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
“자, 잠깐.”
툴툴거리는 칠성의 말을 춘봉이 잘라먹었다.
갑작스럽게 뜬 콘솔창 하나가 CCTV 에 찍힌 남자의 모습을 클로즈 업 했다.
날씨에 맞지 않는 기다란 트랜치 코트, 썬글라스 까지 챙겨 쓴 도저히 누군지 알아 볼 수 없는 복장의 남자였지만, 프로그램은 그 모습위에 청록빛의 가이드 라인 들을 만들어가며 무언가를 추격해 매칭시키고 있었다.
[찾았어?]
화면의 다른 쪽에 뜬 화면은 김규형이 한강 공원에서 연설을 할 때의 모습이 담긴 라이브 캠의 녹화 화면.
그 화면에서 노란빛의 가이드라인이 김규형의 모습을 덮었다.
분석이 끝난 두 화면의 가이드라인이 화면 중앙에 마련된 시뮬레이션에서 합치된다.
65%... 85%... 띠딕!
김규형의 걸음걸이의 모습과 흑백 CCTV 화면 속 남자의 걸음걸이가 일치하는 것 이다.
“찾, 찾은 거 같아!”
흥분한 판춘봉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야? 어딘데!]
칠성 역시 덩달아 흥분한 목소리다.
“자, 잠깐...”
CCTV화면의 촬영 시각은 20여분 전, 판춘봉이 커멘드를 입력하자 ‘익명의 사자들’ 의 모든 자원이 CCTV화면 속의 남자의 동선을 쫓기 시작한다.
“위치가... 위치가....”
남자가 등장한 서로 다른 CCTV 화면이 연이어서 이어진다. 약 2~3 분 사이의 촬영 시간 간격이 있는 영상들. 판춘봉은 한편에 지도를 띄워 남자의 이동 동선을 표기한다.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움직이는 김규형.
[어딘데! 빨리 말해!]
칠성의 독촉이 이어지는 순간, 하지만 오히려 춘봉은 열심히 놀리던 손가락도 멈추고 멍 해 진다.
화면에 김규형으로 추정되는 사내를 비추고 있는 CCTV 화면, 그런데 어쩐지 화면 속 건물 로비가 눈에 익다. 촬영 시각은 3분 전.
[김규형 그 새끼 어디 있냐고!]
멍 때리는 춘봉의 귓가에 칠성이 소리 지른다.
한참이나 얼이 빠진 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고민하던 춘봉이 칠성의 목소리에 대답한다.
말로 꺼낸다고 해서 상황이 변할 것은 없것만,
목구멍을 통해 나가는 말이 면도날이라도 되는 양 긴장이 스친다.
“...여기?”
끼이이-철크덩.
춘봉의 뒤에서 사무실의 철문이 열린다.
문 앞에 선남자가 만들어 낸 그림자가 춘봉에게 까지 닿는다.
* * *
헌특부 장관실.
“뭐? 뭐라고 했어! 여보세요?”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뭐지? 뭐라고 한 거지?
마지막 말마디를 제대로 듣지 못 했지만 심상치가 않다. 무슨 일이 터진 거 같은데.
판춘봉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 봐도 받지를 않는다. 그때였다.
삐비빅! 삐비빅!
귀가 아플 정도의 소음.
헌터폰이 울렸다.
출동 메시지였다.
그것도 일반적인 출동 메시지가 아닌, 헌특부의 모든 인력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몬스터 실체화’ 상황이었다.
삐이이이~~~ 띵띵띵띵!
붉은 경고등이 돌아갔다.
“말이 되요 이게?”
“빨리 챙겨서 나가! 아가리 닥치고!”
헌특부 내부에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실체화 메시지를 받은 헌터들은 상황을 의심하면서도 다급하게 장비를 챙기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김민수 팀장도 팀원들을 재촉하며 헬멧을 쓴다.
“어이! 뭐해!”
바쁘게 뛰던 김민수 팀장의 눈에 칼을 빼어 든 채 서 있는 김철수 팀장이 보인다.
“내일 모래 예린이 생일인데 씨불.”
꼭 이렇게 되더라.
“참 나, 죽으러 가?”
김철수 팀장이 유난 떨지 말라는 듯 타박한다.
동갑내기에 입사 동기인 두 사람이 티격 거린다.
“넌 영화도 안 봤냐? 꼭 뭐 중요한 거 있고 이러는 사람이 죽는 거여.”
“생 쑈를 해라 생 쑈를!”
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투핸드 소드의 날을 둘러보던 김철수 팀장이 김민수 팀장의 재촉에 검집에 칼을 꼽는다.
“가자.”
결심이 섰다. 도망칠 순 없다.
헌터로서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실체화 몬스터를 향해 출동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예린이 뭐 좋아해?”
“리턴 메카드”
“아, 그럼 내가 이번 일만 끝나면 예린이 생일선물로 리턴 메카드 사줘야겠네.”
“아 약속 같은 거 하지 마 꼭 그런 놈들이 뒈지니께.”
몬스터는 문 안의 공간에서 퇴지 되지 않고 일정 이상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알을 깨듯 문을 부숴서 흡수하며 이 세상으로 나온다. 그것이 헌특부에서 ‘몬스터 실체화’ 라고 부르는 상황.
실체화된 몬스터는 지극히 위험하다.
종에 따라서 거대화가 되는 경우도 있고, 간혹 아닌 경우도 있으나 확실한 건 그 전투력이 대폭 상승 한다는 것 이다.
몬스터가 등장할 때 보다 더욱 더 위험해 지는 상황은 두 가지.
하나, ‘레벨업’ 헌터나 인간을 죽이고 잡아먹은 몬스터는 강해진다.
이것 때문에 ‘문’ 안에 진입하는 인원은 어떤 방식으로 던 능력이 증명된 헌터로 제한한다.
자칫 잘못하면 헌터 하나의 죽음이 팀 전체의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실체화’ 이 때문에 등장한 ‘문’ 은 최대한 빠르게 처리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상황 모두 헌터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고, ‘실체화’ 는 헌터뿐 아니라 민간인들이 위험해진다는 측면에서 헌특부의 존립을 걸 정도의 비상 중 비상 상황이었다.
즉 ‘실체화’ 메시지 란 것은 헌특부 ‘총력전’ 메시지다. 레이드에 참여중이 아닌 ‘모든’ 헌특부 소속 헌터들이 최대한 빨리 집결한다.
그런데 이 메시지가 가리키는 출동 장소는 헌특부 사옥 앞.
“무슨 개소리야?”
칠성이 중얼거렸다.
헌특부 사옥 앞은 장관실 창문으로도 보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봤지만 몬스터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출동 대기 중 이었던 헌터들 십 수명이 벌써 무장을 챙겨 집결 하는 게 보였다.
그때 칠성의 헌터폰이 다시금 울렸다. 이번엔 경고나 출동메시지가 아니다. 판춘봉이다.
“야! 뭔 일이야?”
칠성이 거칠게 전화를 받는다.
“그래서 김규형 그 새끼가 어디 있다고?”
[...아, 여기 있습니다만 김칠성씨.]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김규형...!”
칠성이 눈을 가늘게 뜬다.
[쓰읍... 그런데, 지금 저 같은 거 쫓을 때가 아니지 않으신가요? 출동 안 하세요?]
그 말을 들은 칠성의 눈이 커졌다.
“너... 이 새끼...”
꿀꺽, 다시금 창에 이마를 대고 밑을 바라본다.
이미 많은 헌터에, 서포터 지원부 등의 헌특부 인원들이 잔뜩 모여 있다.
갑작스러운 헌터들의 집결에 호기심이 동한 일반 시민들 까지.
“너 무슨 짓 했냐 이 새끼야.”
으드득. 칠성의 이가 갈린다.
* * *
같은 시각,
칠성이 마련해 준, 춘봉이 있는 임대 사무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칠성씨를 위해서 이벤트를 하나 준비 중 인데요, 시간이 좀 걸려서요.”
파슥-.
김규형이 예의 판춘봉이 늘 달고 살던 헤드셋을 비스듬히 어깨에 걸치고, 손으론 춘봉이 사다 쟁여둔 탄산음료를 한 캔 뜯는다.
“그런데 제가 안 보이니까 기다리기 지루하신 거 같아서요. 우리 대원들 잡으라고 개들도 푸시고.”
[개소리 집어치우고 똑바로 말 안 해?!]
칠성의 대로한 목소리가 헤드셋 너머에서 쩌렁 울린다.
김규형의 뒤편에서 끄응 하는 판춘봉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뭐 별로 큰 건 아니고요. 그 날 지하에서 보셨던 물건 기억하십니까?”
[...미친 새끼.]
“그거랑 동일한 물건이 지금 헌특부에서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아, 물론 칠성씨야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아 나오시겠죠. 칠성씨는요.”
같은 시각.
헌특부 장관실.
칠성은 수화기 너머의 김규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미친 듯이 눈을 굴리며 김규형이 보냈을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칠성의 시선이 머리 위쪽을 향한다.
쐐애애애액!
보통 사람의 눈 이라면 힘들었겠지만 칠성의 눈은 잡아냈다.
대체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게, 초고층 건물들이 만들어낸 스카이라인 위로 총알처럼 쏘아져 헌특부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붉은 색의 배구공 정도 크기의 유리구슬이 보인다.
거리를 좁혀올수록 점차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유리구슬.
“미친.”
[아, 찾으셨군요? 그럼 즐겨주세요. 에피타이저 입니다.]
칠성이 헌터폰을 내팽겨 친다.
꾸욱.
콰창!
마나를 실은 칠성의 주먹이 장관실의 통 유리창을 박살낸다. 산산 조각난 유리창이 눈꽃처럼 흩날린다.
칠성이 왼쪽 검지와 중지를 펴 목젖에 댄다.
“다들 도망쳐!!”
“응?”
“무슨 일 이지?”
건물 아래에 모여 있던 헌터들이 칠성의 마나로 강화된, 쩌렁쩌렁 울리는 경고의 목소리를 듣고 건물 위를 올려다본다.
“젠장, *다크 미사일*”
콰치치치치칙-!
칠성이 바로 오른손을 들며 시동어를 외치자 길이 약 2미터의 어둠의 미사일이 붉은 스파크를 튀기며 허공에서 나타난다.
아직 김규형의 아티펙트는 100% 시동이 마쳐지지 않은 상태다. 다행히도 위치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 잽싸게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리는 게 최선이다.
윙-.
칠성의 팔목 속에 숨어있던 마법의 황금빛의 고리가 진동하듯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쓔웅!
칠성이 들고 있던 오른손을 휘저어 헌특부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붉은 구슬을 향해 손짓하자 대기하던 미사일이 공기의 파문을 일으키며 구슬을 향해 날아간다.
콰카카카카카카캉!!!
허공에서 폭발한 어둠의 미사일,
천지가 흔들린다.
주변부는 물론, 헌특부 건물도 마치 대 지진을 만나 춤추듯 들썩인다.
쒸-웅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특부를 향해 날아오는 아티펙트는 멀쩡할 뿐 만 아니라 그 속도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간섭 코팅!”
칠성이 혀를 찼다.
방법이 없다.
칠성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다.
창문들로 이어진 건물의 벽면에 발을 딛자 발밑의 그림자가 접착제라도 된 마냥 벽면에 떡 붙은 채로 미끌어 진다. 건물의 벽을 타고 스케이트라도 타는 모습이다.
“다들 안 도망치고 뭐해!!”
칠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지만 헌터들의 반응보다 아티펙트가 날아오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아득.
“*보이드*”
칠성이 고압축 마석을 하나 베어 물며 주문했다.
<너무 위험하다.>
계약을 통해 칠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보이드가 칠성을 말린다.
“닥치고 해!!”
<네 뜻이 그렇다면...>
순간, 20층 높이의 헌특부 신사옥의 뒤편에 머물던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꿈틀 움직여 헌특부 앞쪽의 헌터들 밑으로 깔린다.
“이...이게 뭐”
콰아아아악!
헌터들이 채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그들의 발밑에 깔렸던 그림자가 마치 물기를 털어내는 빨래 이불이라도 된 양 움쑥 치솟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헌특부 앞에 그림자의 산이 솟아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콰차차차차차창!
헌특부의 각 층, 남아있던 각 층의 직원들, 그리고 사무실, 내부의 모든 집기들과, 연구실의 실험장비들, 연구원들, 이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림자의 파도에 휩쓸려 창문을 깨고 튀어나온다.
“니 뜻대론 안 된다 씨불럼아!”
칠성이 이를 악물며 욕지기를 뱉는다.
가지고 있던 고압축 마석들을 아낌없이 보이드의 손아귀로 던져 넣는다.
순식간에 백여명의 사람들, 컴퓨터, 책상, 의자, 각종 무기, 온갖 집기들과 가구들을 실은 그림자의 거대한 파도가 헌특부 앞쪽을 향해 나아간다.
찌---이이잉!
헌특부를 향해 날아오는 아티펙트 역시 마치 작은 태양같이 달아오른다. 그리고 충돌의 순간.
파아아아아앗-!
허공에서 폭발한 아티펙트가 마치 수소폭탄 같은 것이라도 된 듯 하얗게 눈이 아픈 빛과 함께 마나의 폭풍우를 쏟아냈다.
그 빛은 마나적 표현이 아닌, 실제로 육안으로 보이는 너무나도 밝은 빛 이라 마치 거대한 섬광탄 이라도 터진 듯한 느낌 이었다.
다음 순간.
칠성이 만들어 낸 그림자의 파도에 휩쓸린 헌특부의 모든 인원은 헌특부 사옥 앞대로 너머의 건물 앞 광장에 널부러져 있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최대한 사람들을 보호하려 했으나, 그럼에도 곳곳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같이 쓸려나온 집기들은 여기저기 땅에 널부러져 있었고, 재빠르게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일반인 직원들을 챙기고 있었다.
여기저기 신음하는 사람들 사이로, 칠성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칠성의 손목에서 빛나던 황금의 고리가 서서히 그 형체를 감췄다.
“후우... 씨발, 뭐야?”
속았나?
불기둥이나, 비슷한 형태의 마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헌특부에서 폭발한 김규형의 아티펙트는 그러나,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장을 남기긴 했으나 딱히 무언가 커다란 피해를 입히지는 않은 것 이다.
칠성은 몸을 일으켜 헌특부의 직원들을 살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헉. 저, 저기!!”
헌터 하나가 기겁을 하며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그것은 이변이었다.
“다, 다들 침착해! 대열정비!”
헌터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특부 헌터들이 부지런히 진을 짜고 적을 순식간에 제압할 준비를 했다.
그들이 빼어든 무기와 K-이그저스트 총의 총신이 빛났다.
수 십 명의 헌터가 일순간에 단결된 모습으로 적을 순식간에 둘러싸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칠성도 이런 모습을 보고 기뻐했을 지도 모른다.
“니들...”
얼이 빠진 칠성이 중얼거렸다.
그 헌터들의 진형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