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S2 : 13화
* * *
경찰청장과의 대면.
청장실.
청장의 책상을 기점으로 안쪽, 청장의 뒤편엔 대여섯의 경찰이. 그 반대편엔 칠성, 칠성의 뒤쪽엔 성진이 자리하고 서 있다.
칠성이 청장에게 건네준 것은 여태까지 판충봉이 수집한 김규형 관련 된 정보들이었다.
칠성은 정식으로 경찰과 공조할 생각 이었다.
이정도 정황증거라면 김규형을 대한민국 전체를 위협하는 테러조직의 수장으로 점찍어도 문제없을 지경이었다.
“일반 경찰만으로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헌특부와 힘을 합치시죠.”
하지만.
“장관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돋보기안경으로 칠성이 건네준 김규형 관련 파일을 살펴보던 청장이 금빛 안경테를 벗으며 고개를 들었다.
“김규형은 경찰에게 맡기시고... 이만 손 떼시죠 장관님.”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칠성이 인상을 구겼다.
“말이 헌특부와 공조지. 결국 장관님이 잡으시겠다 이거 아닙니까?”
경찰청장이 뚱한 눈을 들어 칠성을 바라봤다.
“뭐라고요?”
“장관님은 경찰이... 아니지 않습니까?”
청장이 말 하자, 청장 뒤편의 경찰들의 시선이 칠성을 향하는 것 이 느껴진다.
뭐 하자는 거지?
“장관님 히어로 놀이 더 이상 관망하지 않겠다 이겁니다.”
놀이?
탕!
칠성이 청장의 책상을 양 손으로 내리쳤다.
“지금 제가 놀자는 겁니까? 나쁜 놈들 잡자는 데 뭐가 이리 복잡해요?”
그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던 청장.
탕!
“나쁜 놈들 이라고 아무나 다 때려잡고 다니면! 이 나라에 경찰 조직이 왜 있습니까?”
칠성을 따라 역시 양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일어난다.
후우.
“아 글쎄, 그 경찰 조직이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니까?!”
칠성이 갑갑한 마음에 가슴을 쥐어뜯는다.
왜 이러는 거야 이 자식들이.
사실 이들의 협조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여긴 법치국가고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또 힘을 합치면 그렇지 않은 것 보다 수월 할 테니까.
더군다나 무슨 칠성을 준 범죄자 취급 해 올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 했다.
잠깐.
그러다가 문 듯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겁니까?”
지금 청장의 반응은 틀림없이 준비된 답변이다.
증거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이건...
“대통령님께서 미리 지시가 있으셨습니다.”
역시나 구나. 후우...
“그것도 있지만... 장관님 이러시는 거 명백한 월권입니다. 헌특부가 언제부터 경찰 조직 이였습니까?”
이제는 월권 운운이다.
시비야 걸자면 얼마든지 걸 수 있었다.
“그간에 공로를 인정하여 따로 문제 삼은 적은 없지만, 장관님의 활동으로 시민들이 피해를 입은 규모도 상당합니다.”
너그러이 봐 주실 테니 조용히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치란 거다.
“외람되지만 수사권도 없는 장관님께서 범죄자 색출 목적으로 도심을 휘젓고 다니시는 게 또 보인다면....”
“보인다면?”
칠성의 눈매가 날카로워 진다.
“어쩔 수 없이 저희가 장관님을 연행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치 무언으로 청장의 말을 지지하듯 한걸음 씩 칠성 쪽으로 걸어 나오며 진형을 갖추는 경찰들.
“후우우우...”
압박하겠다는 거다.
말을 들어먹을 생각이 없고만.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엎어버리고 싶지만 간신히 가라앉힌다.
“이봐 당신들. 잘 들어.”
번쩍.
칠성의 눈빛이 빛난다.
눈에 들어 온 것은 청장의 주변을 호위하듯 서성이고 있는 경찰 무리 중 한명의 허리춤이다.
경찰의 옷깃 사이로 검은색의 쇳덩이, 권총이 보인다.
파팟.
“뭐야!”
“막아!”
“김칠성!!”
순식간에 김칠성이 방심한 형사에게 덤벼들어 그가 가지고 있던 권총을 낚아챘다.
경찰들이 고함을 치며 칠성을 향해 총구를 뽑아 든다.
험악해진 분위기가 공기를 데운다.
반면, 총을 손가락에 건채 양손을 들어 보이며 여유롭게 별 일 아니라는 듯 원래의 자리, 청장의 책상 앞으로 돌아오는 칠성.
탈각, 다르르르륵-.
리볼버 권총의 총알이 들어있는 약실을 마치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듯 손으로 쳐 굴린다.
탈각.
그리고는 장전. 청장의 손에 들려준다.
“지금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장관...”
턱.
다음순간 청장이 할 말을 잃는다.
청장의 손에 들려진 권총의 총구를 칠성이 자신의 미간 사이에 대었기 때문이다.
“쏴.”
칠성이 명령조로 청장에게 말을 뱉는다.
꿀꺽.
칠성을 조준하던 형사들의 각이 흐트러진다.
누군가가 침을 삼킨 소리가 동굴 속 날갯짓처럼 울린다.
“당기라고. 이렇게.”
“아닛!”
빼 내려는 청장의 손을 부여잡은 칠성의 손이 청장의 검지 위에 포개진다.
타앙!
청장실에 소름 돋는 리볼버의 격발음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강렬한 격발음과 잠깐의 빛 뿐, 칠성의 머리통이 터져나가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칠성이 자신의 이마를 쓸어내린다.
“휴우....”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던 청장 밑 최후의 순간 고개를 돌려버린 경찰들. 그리고 성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가슴을 쓰러 내렸다.
“공포탄...”
경찰 중 한명이 중얼거린다.
다행히도 경찰의 총에 필수적으로 넣어두는 공포탄이 나갔음이 틀림없다.
장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로 천운이다. 난데없이 시체를 치울 뻔 했으니 말 이다.
“당신들이 도와 줄 생각이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겠어.”
압도된 청중의 분위기, 칠성이 말을 이어간다.
“당신들은 당신들대로, 나는 나대로 할 거니까 최소한 걸리적거리지나 마.”
칠성이 청장의 손을 붙잡더니 무언가를 쥐어준다.
“나 같은 괴물들 상대 할 자신 없으면.”
공격적인 눈빛으로 한참이나 청장을 노려보던 칠성이 몸을 돌려 청장실 밖으로 향한다.
아직까지 경직되어 있던 성진이 칠성의 움직임에 현실로 돌아오며 얼른 칠성의 뒤를 따랐다.
달칵.
“휴우,,,”
칠성과 성진이 청장실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한 없이 경직되어 있던 경찰들의 긴장이 풀어지며 여기저기서 한숨 비슷한 것을 내 쉬었다.
“완전 미친놈 아닙니까 그거?!”
“햐... 장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더니...”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드는 경찰들.
“청장님 괜찮으세요? 하... 진짜 실탄이었으면 어쩔 뻔 했어.”
하지만 그런 형사들의 뒤풀이 같은 대화에 청장은 전혀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식은땀이 그의 얼마 없는 머리를 적시었고, 몸은 마치 북극의 얼음산에 있는 것처럼 오금이 저렸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며 펼쳐보는 청장의 떨리는 손.
“제기랄....”
그 안에는 칠성이 청장에게 건네준 물건, 찌그러진 실탄이 조용히 누워 있는 것 이다.
* * *
“엇차!”
한 임대사무실.
상당히 널따란, 백색으로 페인팅 된 공간.
커다란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인부들이 자신들의 몸 보다 큰 포장된 짐들을 손발을 맞춰 들여온다.
“이건 저쪽으로 해 주시고 얘들은 줄 맞춰서 저쪽 벽에 쭈르륵 놔 주세요.”
“예”
손짓을 하며 지시를 하는 칠성의 양 편으로 짐을 옮기는 십 여 명의 인부들.
칠성의 손에는 도면이 들려있다.
인부들의 손에 펼쳐진 짐 들은 각종 컴퓨터 관련 장비들과 부품이다.
“와... 이걸 어디에 쓰시려고?”
함께 온 설치 기사들이 칠성이 들고 있는 도면을 함께 들여다보며 중얼거린다.
“그건 알 필요 없고, 앞으로도 모르시는 겁니다.”
칠성이 기사들을 둘러보며 주의를 준다.
입막음을 하기 위한 비용도 이미 지불한 상태다.
“예.”
기사들이 대답하고 각종 전자장비의 설치를 시작한다.
“흐음....”
칠성이 그 관경을 둘러본다.
‘그래서, 어느 세월에 찾아낼지 모른다 이 말이야?’
‘그래서 경찰들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고 생각 한 건데....’
얼마 전 판춘봉과 칠성사이 오간 대화내용이었다.
판춘봉의 추리에 따르면 김규형에겐 일종의 아지트가 있었다.
칠성과의 조우 이후 지금 종적을 감추고 있는 김규형은 분명히 무언가 커다란 한방을 준비 하고 있을 터였고,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춘봉이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개발했다는 방법.
다만 이것을 실행하는 건 보통의 컴퓨터로는 불가능 했다.
그래서 그의 상상을 현실로 옮긴 것이 바로 지금 칠성의 눈앞에 펼쳐진 관경.
하이엔드 it 기기들의 병렬연결로 만들어 낸 슈퍼컴퓨터. 오로지 이것의 구성에만 2억이 들었다.
* * *
같은 시각 서울 중심의 한 건물 지하.
수 미터 높이 천장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방 안, 아니, 건물의 방 이라기 보단 종유석 동굴같은 벽면이 인상적인 공간.
예의 제복을 갖춰 입은 무허가 헌터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
십 수 명의 엔지니어가 물건 하나를 둘러싸고 작업 중이다.
그 가운데에 크레인에 연결된 거대한 구가 보인다.
투명한 광물의 표면 속으로 각종 기계장치들이 조명에 반사되어 빛을 내는 붉은빛을 내는 수정구.
이따금씩 번쩍이는 마나가 수정구를 관통하는 것이 보인다. 그럴 때 마다 슬쩍 드러났다가 종적을 감추기를 반복하는 수 백 개의 마법진들이 보인다.
“이제 거의 완성이군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거대한 칼을 찬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 그리고 김규형.
김규형이 거대한 붉은빛 수정구의 표면을 만져 보며 경이로운 시선을 보낸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 * *
시간이 조금 흘러 어두워진 임대 사무실의 칠성.
그 옆의 무딘 면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삐쩍 마른 원형 안경테의 남자 판충봉.
두 사람을 내리비추는 커다란 모니터 화면.
“이걸로 김규형을 잡을 수 있다는 거야?”
“잡는 것뿐만 아니라 충분한 증거 수집도 얼마든지.”
그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화면 안에는 금색 디자인의 프로그램화면 속 수많은 cctv 화면과 경과를 보고하는 콘솔화면이 끝도 없이 갱신되고 있을 뿐 이었다.
“이게 뭐 하는 건데?”
“그러니까 좀 복잡한데 이게...”
판춘봉이 선뜻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뒷목을 긁적였다.
“빨랑 말해라. 나 돈 많이 썼으니까.”
정보화 시대, 이 세상엔 전산화 된 증거물이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이 세상에 아무리 증거가 많아도 그것에 관해 일일이 검토하고 인과관계를 따져 실체를 밝혀내는 데는 인간의 사고가 필요하다.
이 증거들을 수집하는데 필요한 보안 관련 절차는 둘째 치고, 모든 증거가 눈앞에 있다고 해도 이것들을 검토해 하나의 맥락을 찾아내고, 관련된 것들을 정리하고. 범인을 잡아내는 데는 수도 없는 인력 혹은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에 이런 과정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가능하다면?
그것이 가능 한 사람은 그야말로 전지 한 신이 되는 것이다.
각종 보안 장벽을 마음대로 뛰어 넘으며 관련된 증거를 수집하고 자동으로 인관관계를 밝히며 수사를 진행 시키는, 전격의 속도로 생각하는 수백기의 인공지능.
즉 수백기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탐정의 집합체. 이것이 바로 판춘봉이 오랜 시간 설계해 온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효과도 달라져. 어느 정도로 할까?”
“수준?”
“그냥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정보들로만 수사하는 단계가 있고... 경찰 레벨이 되어야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 그리고 마지막 레벨로는 전화 도청, 경찰조차 알 수 없는. 해킹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들.”
조금의 개인정보만 유출 되어도 난리가 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그런 세상에 말 그대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하는 프로그램이 존재하게 된 것 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정보란, 정말로 모든 정보.
사람들이 산소 꾸러미라도 되는 양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이 프로그램의 눈과 귀가된다.
정보라는 것이 힘 이라면 이것은 위력적이지만 금기시 되는 힘.
“...최고 레벨로.”
칠성이 중얼거렸다.
앞 뒤 사정 봐줄 시간이 없다.
춘봉이 침을 꿀꺽 삼키곤 고개를 끄덕 하더니 프로그램을 최고레벨로 설정한다.
이내 인공지능 형사들이 대한민국 전체의 전산서버를, 개개인의 컴퓨터와 휴대폰을 뛰어넘으며 목표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이거 이름이 뭐라고?”
“...익명의 사자들.”
마치 과거, 그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는 프로그램.
“근데 쟤들 이름은 뭐야?”
칠성이 모니터 한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프로그램 한 편에 줄서있는 인공지능AI 들의 이름은 대부분 `E07530` 같은 코드네임 이었지만, 그 중 제일 위에 있는 세 개의 이름은 특별했다.
‘SS7979’ ‘내가미래다’ ‘앤서리스노드’
“...친구들.”
춘봉이 아련한 눈빛으로 그 이름들을 쓸어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