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S2 : 12화
* * *
덜컹, 끼익-.
저녁. 한 건물의 옥상 위 끼그덕 대는 철문이 열린다.
덜그덕!
열린 철문의 문턱을 1미터가 넘는 길이의 기다란 택배 상자를 실은 핸드카 카트의 바퀴가 넘는다.
카트를 밀며 차분한 걸음으로 따라 나오는 것 은 진파랑 과 흰색의 회사 사복을 깔끔하게 갖추어 입은 택배 회사 직원이다.
주변을 살피던 택배사 직원은 차분히 미리 점찍어 둔 옥상 한편의 구석으로 향했다.
직, 지익-.
박스의 테이프를 제거하고 개봉하자 안에서 가죽 재질의 스포츠백 같은 것 이 튀어나온다.
흡사 무언가 악기의 케이스 같은 그 것에서 내용물을 꺼내어 조립에 몰두하는 택배기사.
어느새 완성 되어 그의 손에 들린 것은 2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의 양궁. 활이다.
“음....”
저쪽 편 멀리의 건물을 살피며 눈을 가늘게 뜬 그가 빠르게 수인을 맺더니 검지와 중지를 모아 입가에 가져다 대곤 중얼거린다.
“*이글아이*”
치치치칙-.
순간 점화되듯 검지와 중지를 덮고 타오르는 백색의 마나.
검지와 중지를 펼치자 마나가 얇은 막이 되어 양 손가락 사이에 네트처럼 걸려있다.
그것이 맺힌 손가락을 가볍게 왼쪽 눈 위에 휘젓자 불타는 마나의 막이 눈가 위를 덮는다.
끼이기기기기이이이익-!
“뭐... 유감은 없습니다만.”
남자의 활시위가 당겨진다.
한 눈을 감은 택배기사가 조준을 한다.
지잉- 징-.
택배기사가 건 시위의 화살이 마나와 공명하며 공명음을 울린다.
순식간에 택배기사의 전신에 있던 마나가 한 대의 화살에 집중되어 빼곡히 들어찬다.
“갈 사람은 가야지.”
퍼퍼엉!
남자가 놓은 활시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머금고 있던 화살을 뱉어낸다.
피쓔우우우웅-!
백색의 마나를 뿜는 화살이 택배기사의 손을 떠나 매서운 기세로 바람을 가르며 건물들 위를 지나 목표물을 향해 날아간다.
* * *
같은 시각,
칠성이 입원중인 대학 병원 건물.
어둠이 내린 도시에서 창문마다 빛을 내고 있다.
쐐애애액!
퍼펑!
6층짜리 건물의 가장 위층 면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의 화살이 박혀 들어간다.
건물 전체의 유리창이 마치 평화로운 수면이라도 된 양.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는 화살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형의 파동이 일어나며 금이 가고 깨어져 나간다. 건물을 밝히던 불빛들이 대 정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모두 점멸되어 버린다.
파카캉!
특히나 화살을 직접 맞은 6층은 6층 전체의 창문이 무언가 엄청난 기류에 휩쓸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화살이 아니라 미사일이라도 되는 듯한 기세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칠성의 병실.
콰아아악-.
화살을 꽉 부러져라 쥐고 있는 칠성의 주먹이 보인다.
쉬이이잉-.
켈록.
먼지로 한치 앞도 보기 힘든 병실.
“미친, 이게 뭐야.”
치치치치치칙-.
아직도 무언가를 꿰뚫어 죽일 기세로 맹렬하게 칠성의 손아귀 안에서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화살덕에 손 안에 마찰로 인한 불꽃이 튀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을 막았으나 그 화살이 일으킨 후폭풍이 화살이라고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화살을 잡아내자마자 그것이 몰고 온 폭풍이 온 병실을 덮쳤다.
칠성과 칠성의 등 뒤 방향을 제외하고는 온 병실이 폭격에 휩쓸린 것처럼 엉망이 되었다.
“괜찮아 엄마?! 안 다쳤어?”
“어...응...어.”
칠성이 막아 선 등 뒤에서 어머니가 살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한사코 말리는데도 칠성의 병간호를 하겠다며 병실에 남아있던 어머니다.
어머니를 살피던 칠성이 돌연 매서운 기세로 창밖을 바라보며 한손에 들려져 있던 헌터특별부 지급 스마트 폰, 헌터폰을 귓가에 댄다.
“고맙다 네 말대로야. 막았어.”
[예쓰흐으!! 역시 당신이...]
핸드폰 너머에서 기쁨에 찬 리액션이 들려온다.
무언가 신나서 말하려는 목소리의 남자의 말을 칠성이 끊으며 묻는다.
“고맙긴 한데. 누구냐 넌?”
* * *
이 일이 있기 조금 전....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칠성의 병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헌터폰이 빛을 내며 울린다.
“뭐지?”
한 쪽에는 어머니 보시는 티브이 프로그램.
병실에서 어머니에게 사과를 깎아드리던 칠성이 헌터폰을 들여다본다.
헌터폰은 일반 핸드폰과 달리 그 존재 자체가 국가 기밀을 위해 만들어졌다.
통신사와의 협력으로 스팸 따위가 오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발신자 번호도 없다.
“누구...”
[김... 김칠성. 김칠성 장관?]
“응...? 그런데. 누구냐.”
[위험해!]
“뭐?”
칠성의 말을 끊어먹고 돌연 위험하다고 외친 목소리가 허둥지둥 한다.
“누구냐고.”
[그, 난 헌특부 직원은 아닌데.. 아니 지금 그게!]
“너 이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가 있을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누구야.”
[그럴 시간이 없다니까! 아마도 창문 쪽 방향에서 뭔가가 날아 올 거야.]
“창문...?”
[그. 그래! 어느 정돈 진 모르겠어. 너만 노리는 건지 건물이 날아갈지...!]
“...뭐? 무슨 소린지 정확히 말 해봐!”
건물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칠성의 눈이 크게 떠진다. 어느새 칠성의 한 손엔 병원 전화기의 수화기가 들려져 있다.
“무슨 일 있니?”
칠성의 이변을 눈치 챈 어머니가 묻는다.
칠성이 어머니로부터 눈을 거둔다.
“누가 날 공격한다는 거야 지금?”
[김규형... 김규형이라고!]
김규형이란 이름에 칠성의 얼굴 표정이 굳는다.
[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병원 내선전화가 연결되었다.
“나 헌특부 장관 김칠성인데.”
[예?]
“지금 당장 건물 내 인원 전원 대피시켜.”
칠성의 눈빛이 빛났다.
* * *
그리고 직후, 의문의 화살 저격이 이어진 것 이다. 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도 전의 일 이었다.
다시 현재.
“...고맙긴 한데, 누구냐 넌?”
[내...내가 누군 진 알 필요 없어. 일...일단 추격 때문에 끊을게 나중에 내가...]
“전화 끊지 마! 너 지금 전화 끊으면 내가 찾아내서 사지를 찢어버린다.”
[.......]
물론 빈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녀석을 써먹어야 한다. 게다가 하나 확실한 건 뭔 진 몰라도 이 녀석 역시 김규형을 잡고 싶어 한다.
“나 공격한 저 새끼부터 잡자. 어? 도우라고.”
[...이씨, 위험한데. 조.좋아. 나도 바라던 바야.]
수화기 너머, 긴장한 판춘봉이 안경을 쓸어 올린다.
타타탓. 파앙!
칠성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6층 건물의 창문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도시의 빛나는 야경이 온 시야 가득히 들어온다.
“*보이드*”
스르륵-.
어느새 건너편 건물에서 솟아난 어둠의 손길이 칠성의 손을 맞잡는다.
스륵.
칠성을 당겨준 보이드의 손길이 칠성의 발이 건물 옥상에 닿음과 동시에 조용히 사그라 든다.
칠성이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디야.”
춘봉의 복잡한 컴퓨터 화면. 여러 가지 콘솔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좀 전에 화살을 쏜 의문의 택시기사의 차량을 쫓고 있다.
모니터 한편엔 칠성의 헌터폰과 연결된 GPS가 빛나는 지도가 떠 있다.
칠성의 사살에 실패하자 다급하게 발길을 옮겨 활을 챙겨들고 택배 차량에 올라탄 기사가 마구 과속을 하며 저녁의 차량들 사이로 칼치기를 하며 도망간다.
[이...일단 앞쪽에 커다란 사거리 보이지.]
두 사람의 추격이 시작된다.
* * *
끼이익!
도심 속, 도로 위 평범한 차량들 사이에 택배 배달 차량 하나가 마치 레이싱 게임이라도 하듯 격한 몸짓으로 춤추며 질주하고 있었다.
‘저격 포인트 자체가 20km 이상 떨어진 거리였어. 무슨 수를 써도 안 잡힌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애초에 2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행한. 적어도 이 곳 에선 상식 밖 수준의 저격이었고, 상대방 입장에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그가 서둘러 빠져나가는 것 도 사실은 단순히 그의 직감에 근거 한 것 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쫓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 스나이퍼로서의 감각이었다.
부키이이잉-!
그의 발이 엑셀을 즈려 밟는다.
“좋아.”
저 터널. 터널 까지만 가면 된다.
터널에서 차를 버리자.
쉬이이잉 -.
택배 회사 차량이 터널을 향해서 달리던 그 때였다.
터엉!
콰카카카캌카카칵-!!!
별안간 차체가 지진이라도 만난 듯 극렬하게 흔들리며 차의 철제구조가 비명을 내질렀다.
“뭐...뭐야?!”
경악한 표정으로 소음의 출처를 향해 눈을 돌린 택배기사의 눈에 차량의 천장을 양편으로 찢어내고 있는 두 손이 보였다.
“캬캬캬캬캬캬!! 잡았다 이눔쉐키!”
찢어지는 차량의 틈 사이로 흰자위를 번뜩이는 김칠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충분히 도망 칠 수 있다는 택배 기사의 판단은 틀린 판단은 아니었던 것 이다.
상대가 김칠성이 아닐 경우엔 말 이다.
“젠장.”
동공이 떨리는 택배기사.
허나 여러 전쟁을 거쳐 온 그의 몸은 잽싸게 반응했다. 그가 순식간에 예의 양궁을 장전해 코앞의 김칠성의 미간을 향해 조준하고 시위를 당기
승겅!
려는데 차체가 별안간 기우뚱 했다.
어디에선가 솟아난 어둠의 칼날이 차체 자체를 절반으로 갈라버렸기 때문이다.
피유웅!
균형을 잃은 그의 화살이 김칠성 머리 옆의 허공을 가르며 하늘위로 뻗어 올라갔다.
콰치이이이익----!
각기 정확히 반쪽으로 잘라진 택배차량이 굉음과 함께 아스팔트 도로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치치치치칙-!
그리고 마운트 자세로 올라탄 칠성에게 멱살을 잡힌 채인 택배기사의 등 역시 스노우보드마냥 바닥을 긁었다.
“크으읏!”
택배기사의 활이 바닥에 긁혔다.
쿵!
“너 새끼 김규형 딱가리지?”
칠성이 멱살을 잡고 바닥에 다시금 처박았다.
“크으....”
택배기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항할 의지조차 없는 것 같았다.
삐이이이이--.
“너는 그분... 상대가 못 돼.”
택배기사는 부정하지 않았다.
“깨꼬닥.”
그리고는 기절하는 택배기사.
“야!”
칠성이 뺨을 때려 보지만 소용이 없다.
저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경찰차들이 도착하고 헌터용 구속구가 채워진 택배기사가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었다.
삐비빅!
헌터폰이 울렸다.
“어! 그 새끼 잡았다.”
[예쓰!]
수화기 너머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 *
“예쓰! 예쓰!! 예쓰....”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판춘봉이 기도하듯 양 손을 모으고 승리의 감각에 전율하고 있었다.
된다. 먹힌다. 이 사람이다.
신체능력이나 활약은 상상 이상이다.
20km 밖에서 차를 타고 도망치는 적을 위치 좀 불러줬다고 순식간에 잡아내다니.
헌터라는 건 죄다 이렇게 엄청난 건가?
하여간 오래도록 꿈꾸어 왔던 복수를 마침내...
[그런데... 넌 누구냐?]
판춘봉이 쓰고 있던 헤드셋의 스피커에서 칠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 거 없어. 그냥 김규형 좇는 사람.”
[뭐 반말은 그렇다 치고. 왜?]
“왜... 라.”
그 목소리에 기쁨에 전율하던 춘봉이 일순간에 석상처럼 굳어졌다.
판춘봉은. 최고의 해커였다.
춘봉의 대답이 이어진다.
익명의 해킹조직, 익명의 사자들.
‘정의를 위한 익명의 헌신’
이것이 그들의 모토였다.
언제서부터 였을까? 외진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락거리던 춘봉에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 실제론 얼굴한 번 본적이 없지만 그들은 진정한 동료였다.
어느새 부턴가 해킹을 배우고 그들 나름의 정의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범죄자 내지 준 범죄자들의 신상을 털어 인터넷에 뿌리는 수준이었다.
나중에는 그들의 정신 ‘모든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 에 위배되는 모든 것이 공격 대상이었다.
그들은 어둠속의 사자였고 군단이었다.
그런 그들을 ‘헥티비스트’ 라며 무슨 사회 운동가 취급을 하며 따르는 추종세력도 생겼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했다. 의심스러운 모든 것의 진실을 밝힌다.
그들은 승승장구했고 모든 일은 잘 풀리고 있었다. 위치가 발각되어 경찰에 잡혀간 동료도 한명 생겼지만 분위기는 아직도 유쾌했다.
그 날 이전에는.
“푸하하하하!”
[그러니까! 그님이 그렇게 멍청하다니까.]
[vpn을 썼다고?? 핵쉴드?]
인터넷 다중 화상 채팅 메신저, 스카이폴로 서로 얼굴이 보이는 채팅을 하는 중 이었다.
얼마 전에 경찰서로 끌려간 동료의 초보적 실수를 조롱하며 웃고 있었다.
물론 그 웃음의 배경엔 경찰이 딱히 어떤 무거운 처벌도 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증거를 인멸해 온 자신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근데 이 김규형이란 사람에 관한 자료 이거, 진짜예요?]
민소매티를 입은 근육질의 바짝 면도한 대머리. SS7979가 춘봉이 보내주었던 자료를 살펴보며 물었다.
“일단 자료상은 백프로?”
그건 춘봉이 찾아낸 김규형과 연관된 60여개의 기업에 관한 리스트였다.
언 듯 보기에 전혀 연관점이 없어 보이는 중소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던 김규형과 연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밀수입? 확실해요?]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대규모의 밀수입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게 진짜면 대박인데 이건....]
[허허허허... 확실한건 골로 가죠 우리가 지금 이것만 뿌려도.]
[이걸 증명할 수 있을 만큼만 물증을 찾으면 말이죠... 지금 이건 거의 가설이잖아. 우리가 허언증 취급받을걸.]
동료들이 춘봉이 건넨 자료를 들춰보며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뭔 진 모르지만 의심스럽다. 아주.
그렇다면 파헤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띵-동.
그때였다.
“뭐예요?”
[응? 집에 누가 왔나본데?]
채팅을 하고 있던 검은 뿔테안경, 다크서클의 칙칙한 인상의 검은 반팔 티셔츠의 남자가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만요...]
이어폰을 벗고선 문을 열어주기 위해 사라진 남자.
그리고 이어지는 고함소리.
[뭐야! 당신!]
“노드님? 노드님?”
[무슨일이야?!]
다급한 앤서리스 노드의 목소리.
[아악! 잠깐만! 이러지 끄아아악!!!]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소리.
꽈득. 까드득.
화면에는 노드가 떠난 컴퓨터 의자만 보이는 가운데, 마치 도축한 소를 정리하듯, 뼈가 꺾어지고 살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진다.
급하게 떠들던 채팅창의 인원들이 숙연하게 할 말을 잃고 침묵에 휩싸인다.
“...노드님?”
조심스럽게 묻는 판춘봉.
[아- 아. 여러분?]
칼로 살을 베는 긴장 속.
캠 화면 너머, 노드의 컴퓨터 책상으로 다가온 남자의 손이 이어폰을 잡는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긴장감과 흥분으로 춘봉의 심장이 너무나도 빠르게 뛴다.
마침내 정채를 드러낸 남자의 얼굴.
김규형이다.
[너무 걱정 하실 것 없어요. 여러분도 곧 이렇게 될 거니까...]
싱긋 웃으며 그런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는 김규형.
그의 뒤로 김규형을 따라온 어떤 남자가...
노드로 보이는 무언가를 들고 있다.
표정을 잃은 노드의 얼굴이 보인다.
까득. 까드드득.
마치. 설탕으로 된 사탕을 깨물어 먹듯 김규형을 따라온 남자가 노드의 시체를 조금씩 뜯어먹기 시작한다.
[아아아아아...]
그 관경을 지켜보던 동료 한명이 얼굴을 가리며 절규한다.
순식간에 의문의 남자가 게 눈 감추듯 시체를 그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먹어치운다.
덜컹!
[뭐, 뭐야.]
[젠장...]
판춘봉을 제외한 나머지 둘이 자신의 뒤쪽 방향을 돌아본다.
내가 미래다를 찍고 있던 카메라가 흔들리나 싶더니 검은색으로 점멸한다. 내가 미래다의 화면이 꺼진다.
SS7979가 무언가 무서운 것을 본 듯 비명을 지르며 자신이 앉고 있던 의자를 들어 저항하려한다.
[아악!]
SS7979의 몸이 비 맞은 소금더미 마냥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커...헉! 허억 헉....”
판춘봉이 재빠르게 컴퓨터를 껐다.
대걸레를 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핀다.
김규형이 그날 그의 집에 들이닥치지 않은 것은 판춘봉이 쓰던 보안 프로그램을 김규형의 수하가 해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판춘봉은 최고의 해커였고.
그래서 그 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현재.
[...그래서 여태까지 찾았어. 김규형을 때려 부술 수 있는 사람을.]
헌터폰 너머에서 판춘봉이 씁쓸한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
판춘봉의 이야기를 들으며 병원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칠성이 대답했다.
춘봉의 이야기를 듣던 칠성의 뇌리에, 지난시절 자신과 함께 수 백 년을 동고동락 하다 하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사천왕 동료들이 떠올랐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조져야지. 그 새끼.”
안 그래도 조질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칠성의 눈동자가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