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S2 : 9화
* * *
칠성과 장영실 소장의 만남이 있은 뒤.
“바쁘실 테니 바로 본론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청와대. 대통령과 독대를 요청한 칠성이 입을 땠다.
“그러시죠.”
“단도직입적으로, 헌터 범죄 대응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범죄 대응팀. 이라는 말에 커피잔을 기울이던 대통령의 손길이 멈칫 한다.
“아니, 이 헌터 범죄 대응팀 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죠?”
대통령이 묻는 말에 칠성이 한숨을 푹 쉰다.
“아마 무슨 소린지 모르시진 않을 텐데요.”
비슷한 시각의 어느 파출소.
“식사 하셔야죠?”
순찰을 마치고 온 순경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며 인사를 한다.
“어.”
“뭐 보십니까?”
인사를 받은 늙은 경찰의 시선을 따라가자 티브이 속 뉴스화면이 보인다.
“또다시 의문의 능력자가 등장했다는 소식입니다.”
“저 시끼들 또 또 지랄이네 저거.”
“하하하.”
경찰들의 수다가 이어지는 도중, 뉴스 속 여성 앵커의 멘트가 울려퍼진다.
“지난 목요일 저녁....”
뉴스가 비춰주는 자료화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두운 저녁. 따문 따문 불이 들어온 가로등을 제외하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이 내린 한 외진 골목길.
“왜, 왜 이러세요!”
“아유~ 우리 나쁜 사람 아니예요?”
직장 여성으로 보이는 여자를 세명의 남자가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말만 잘 들어봐 우리 굉장히 신사적인...”
“꺄아아악!”
타이르는 듯한 협박조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여자가 재빠르게 비명을 내지른다.
“어우씨!”
여자의 입을 틀어막는 남자들. 뜻대로 되지 않자 폭행이 이어진다.
“그래! 질러라 질러! 누가 오나 봐라!”
게중 하나가 여자의 목을 조르며 윽박지른다.
“흐끅...읍...”
“아~ 거 참 일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일행 중 하나가 덕테이프를 뜯으며 말한다.
그리고 그 때.
“그만해.”
등 뒤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가 얼음장 같은 침묵을 찍어낸다.
돌아보면 서 있는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 불량배 중 한명이 인상을 구긴다.
“...뭐 하는 새끼야 이건 또?”
검은색 후드의 남자의 손에 끼워진 털장갑. 그 중심에 박힌 보석에서 차가운 서리가 흘러내린다.
“인신매매 조직으로 추정되는 이 괴한들은 모두 동사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뉴스 속 자료화면.
검은 후드의 남자와 대치했던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던 모습 그대로 동상과도 같이 굳어있는 모습, 그 주변을 의아하게 관찰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폴리스 라인 너머로 보인다.
또 다른 곳,
은행 앞 차도 옆의 인도.
“꺄아악! 도둑이야!”
은행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 하는 중년 여성의 핸드백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치던 남자가 휙 낚아채 달아난다.
마침 은행에서 뒤 따라 나오던 남자. 그 관경을 보고 주변을 살피더니 몸을 숙여 자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 옆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에 손을 짚는다.
이내 남자의 손을 따라 흘러들어간 마나가 운동화 전체로 퍼지며 빛난다.
파아앙!
남자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간다.
기이잉-
핸드백을 탈취해 달아나던 오토바이 주인이 백 미러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커진다.
콰앙!
순식간에, 오토바이를 두 발로 따라잡은 남자의 발차기가 날치기범의 등판에 꽂힌다.
날치기범은 차에 치이기라도 한 듯 오토바이 위에서 부터 앞 쪽으로 날아가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승용차와 충돌한다.
끼이익!
“꺄아악!”
주행하던 주변의 차들이 다급하게 멈춰서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여기요.”
날치기범을 처리 한 남자가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중년 여성에게 핸드백을 돌려준다.
“고맙... 고맙습니다.”
중년 여성이 얼떨떨하게 인사한다.
한 화재 현장.
“어떡합니까! 안에 사람이 있다는데요?”
“안 돼! 너무 위험해!”
혼란스러운 상황. 소방관들이 불타는 건물을 앞에 두고 실랑이 중 이다.
“저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젊어 보이는 소방관이 내뱉듯이 말을 남기고 화재 현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야 안 돼! 저 새끼 잡아!”
게 중 높아 보이는 상관의 말에 주변 소방관들이 젊은 소방관을 말리려 뒤 좇는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뛰듯이 걷던 젊은 소방관의 걸음걸이가 점차 느려진다.
젊은 소방관을 붙잡은 또 다른 소방관이 멈춰 서서 멍때리며 전방을 주시하는 젊은 소방관의 시선을 따라간다.
직장인일까? 그저 흰색 셔츠가 인상적인 남자.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지옥과도 같은 불구덩이를 뚫고 걸어 나오고 있는 것 이 보인다.
얼굴에 그을음 하나 묻지 않은 그의 품엔 기절한 듯한 초등생 여자아이가 잠들어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고 있는 젊은 소방관에게 아이를 넘겨주더니 서서히 걸어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남자.
다시 뉴스 화면, 보도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괴한으로부터 피해자를 구하거나, 불타는 집에서 사람을 구하거나, 번개같이 빠른 발로 날치기 범을 잡기도 합니다.”
기자의 나레이션과 함께 오토바이 날치기를 잡는 CCTV 화면 등의 자료화면들이 이어진다.
“이런 마법같은 일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계장치들을 ‘아티펙트’ 라고 하는데요. 공인된 아티펙트는 모두 헌특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무허가 헌터들이 쓰는 도구를 ‘사제 아티펙트’ 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나레이션에 이어 관련 전문가의 인터뷰도 이어진다.
“이번 달에만 벌써 세 차례. 마법과도 같은 능력으로 각종 사건 사고를 해결한 일명 ‘무허가 헌터’들에 대해 여론은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녹화된 듯한 시민들의 반응화면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막 죽이거나 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이 그럴 권리가 있나요?”
뿔테 안경을 쓴 후덕한 인상의 직장인 남성이 이야기 한다.
“히어로잖아요! 김칠성같이!”
중고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학생이 기자의 질문에 환호하듯 웃으며 대답한다.
다시 대통령, 그리고 독대중인 김칠성.
방안의 조명에 무슨 문재라도 있는 지 조명 중 하나가 빠르게 반복적으로 껌벅거린다.
“만든다 치고, 인력 문제는 어쩔 겁니까? 지금 헌특부 헌터들은 레이드 업무에 배치하기도 빠듯하다고 들었는데요.”
대통령이 껌벅거리는 조명을 올려다보느라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바로 그, 방법이 생겼다는 겁니다.”
테이블을 두 번 딱딱. 두드린 칠성이 자신 있게 말한다.
시간을 되돌려 헌특부 지하 연구실, 김칠성이 연구실 시찰을 하던 그 때.
“뭐 엄밀히 말하면 일반인이라면 과장이고, 헌터가 되지 못한 마나 이용 가능자 정도라고 할까요?”
‘일반인이 헌터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을 김칠성에게 보여준 장영실 영구 소장이 설명을 이어간다.
‘마나이용 가능자’ 애매한 표현이다.
“뭐, 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지망생 정도를 말하는 건가?”
칠성이 계속해서 총기같이 생긴 물건을 둘러보며 반문한다.
“네. 딱 그 정도죠. 헌터 라이센스 1차 시험 통과자 정도? 혹은 실력 미달로 채용은 되지 못 한 헌터 라이센스 보유자도 좋고요.”
장영실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웃는다.
말이 통해서 좋다는 느낌이다.
“마나 주입석에 마나를 주입하면 특별 제작된 헌터 제압용 탄환이 활성화 되요.”
매직 디스펠러와 비슷한 형태의 구조다. 손잡이의 엄지 부근에 초록빛 마석 같은 게 부착되어 있다.
“충전된 탄환을 방아쇠를 당겨 발사하면 기계장치로 격발 되구요. 대상에 명중하면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면서 증발하죠.”
“흐음....”
칠성이 총신을 쓸어본다.
“실제 살상력은 외국에서 시위 진압용으로 많이 쓰는 고무탄 수준이라. 허가 문제도 어렵진 않을 거고요.”
“신경 많이 썼네.”
칠성이 물건에서 눈을 떼고 장소장을 바라본다.
“뭐 법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 이상 위력을 높이기가 힘든 것도 있어요. 탄환이 워낙 특수하다 보니.”
장소장이 어깨를 으쓱 해 보인다.
“그래서 헌터에 대한 위력은?”
“솔직히 헌터라는 존재가 변수가 워낙에 많아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는 없지만요. 헌특부 A랭크 헌터정도 기준으로 5-10발정도 적중하면 순간적으로 일반인 수준까지 마나가 내려갈 겁니다.”
마나는 생체 에너지이자 신비의 에너지.
하지만 확실한 것 은 마치 몸의 일부분처럼 활동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를 활용하는 헌터는 경우에 따라 몸의 내구도도 올라간다.
전쟁용 병기라면 모를까, 마나가 실린 공격이 아닌 일반적인 화기로 해치지 못 할 수준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일반인 수준까지 마나가 내려간다면, 말 그대로 일반인이 헌터를 잡을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다.
“연발이 가능 한 건가?”
“탄환 마나 충전에 거의 20초정도 걸리기 때문에, 일반적으론 분당 두 세 발 정도가 한계에요.”
영실이 마치 그것이 자신의 한계라는 듯 입맛을 쩝 다시며 안경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넌지시 이런 말을 던진다.
“하지만 이걸 부대로 조직한다면 충분히....”
“흠.”
칠성이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쉰다.
“기술은 기술일 뿐입니다. 어떻게 쓰실 지는 장관님 판단이죠.”
그리고 이미 그 순간, 이 물건을 어떻게 쓸 지는 칠성의 마음속에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현재, 대통령과의 독대.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칠성이 연구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자 대통령이 작은 한숨을 쉰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요.”
말하기 곤란 하다는 듯 이마를 긁적이며 말을 고르는 대통령.
“이게 결국... 장관님 말씀이요. 경찰권을 넘겨 달라 이거 아닙니까?”
약간의 침묵. 김칠성이 하나하나 말을 쳐낸다.
“경찰과 공조하는 형태도 가능 하고요. 다만 지금의 경찰은 헌터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도 없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안희운 사건 때 보셨지 않습니까.”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아니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그 덕분에 김칠성이 영웅으로 불릴 수 있게 됐지만 그게 썩 칠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었다.
자신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으면 나라꼴도 유지 되지 않을 나라를 원하는 게 아니니까.
기왕 장관 자리를 잡았고, 자신이 아는 사람들 역시 범죄의 희생자 였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전문적으로 헌터 관련 지식을 축척하고, 헌터 관련 범죄를 수사하고. 필요한 경우 범죄에 연루된 헌터를 진압도 할 수 있는 일종의 새로운 경찰.
“사제 아티펙트를 쓰는 헌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히어로라고 불리는 모양이지만 언제 범죄자로 돌아설지 알 수 없어요.”
최근, 분명하게 헌특부에서 제작된 게 아닌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었다.
진상이 확인되진 않았지만 범죄자 손에 들어가지 말란 법이 없었다.
“이게... 문제가 많아요. 칠성씨.”
대통령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듯 말 했다.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뭐야. 그런 소리였나.
절차상의 복잡성이나, 관할을 어느 곳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려도 상관이 없으니...”
“칠성씨. 아니 장관님. 큰 문제 만들지 말자 이겁니다. 차라리 칠성씨 말대로 나라가 한번 뒤집어 지면 모를까. 과잉통제니 뭐니 하는 소리 안 나오겠습니까?”
“아니, 국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단 말입니까?”
칠성이 말한 건 그냥 일반론 이었다. 그런데....
“국민의 안전... 은, 우리나라 정치에선 큰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들이 많거든요?”
칠성이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그 발언은 기억 해 두겠습니다.”
날이 선 분위기가 흘렀다.
대통령 또한 긴장했다. 완벽하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허수아비라고 생각했던 칠성이 그저 바지장관이 아니란 소리다.
“가 보겠습니다.”
칠성이 문을 닫고 퇴장한다.
“후우... 골치 아픈 인사구만.”
대통령이 미간을 문지르며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