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S2 : 8화
문 안, 황량한 평원.
탁, 탁. 탁.
우직한 군화의 재빠른 걸음에 물웅덩이가 튄다.
철제 장비의 관절들이 걸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레이드 제2팀 백호팀, 다섯명의 중무장한 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텔레파시 무전을 주고받으며 작전을 짜고 있었다.
이번 그들의 적은 찾을 필요도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뻥 뚫린 평원 위에 한 마리의 거대한 기계 팬더가 그르렁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기계로 만들어 둔 몸체 위에 팬더의 거죽을 입혀둔 듯한 모습.
반 생물체 반 기계장치의 키메라였다.
물론 백호팀의 지식으론 그저 퉁 쳐서 몬스터 였지만.
-이게 무슨 몬스터죠?
-처음 보는 거야. 신규종이다.
몬스터가 진열을 갖춘 백호팀을 살피며 그르렁거린다. 천천히 걸음을 움직이자 관광버스 두 대 정도를 이어둔 듯한 거대한 몸체가 꿈틀거린다.
꼴깍.
그들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긴장감으로 대열을 준비할 때.
“음~ 뭐 맛은 있네.”
한편에선 평원위의 바위를 의자삼아 여유롭게 그런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칠성이 있었다.
먹을 거 좀 사두랬더니 무슨 도너츠를 사둔 성진에게 면박을 줬지만, 먹다보니 그럭저럭 괜찮다.
“근데 너무 달다.”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보다도 칠성의 마음에 걸리는 것 은 따로 있었다.
‘김규형이라고 했던가.’
어제 만났던 남자.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무언가가 있다.
마나 같은 것은 정상이었다. 오히려 정상인의 표본이다. 주변의 평판도 좋은 것 같다.
“규형씨요? 멋진 분이죠!”
어떤 사람이냔 물음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던 주희, 심지어 주희에게도 말이다.
인기도 많은 것 같다. 이시대의 정치를 바꿀 인물이란 평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꺼림직 한 것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괴물의 느낌.
덜컥 헌특부 장관이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을 붙잡아다 사찰이라도 할 수야 없지만, 몰래 알아보는 정도야 괜찮겠지. 성진에게 지시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이변이 일어났다.
“크와아오오오!!!”
“크흣!”
“저게 대체 뭐야!”
백호팀과 대치중이던 거대한 팬더 형상의 기계병기가 몸을 일으켰다.
네발로 걷던 녀석이 괴성과 함께 두 앞다리를 들더니 이내 골격이 재조합 되며 이족보행의 형태가 되었다.
백호팀은 텔레파시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수칙도 잊고 패닉상태에 빠졌다.
“팀장님!!”
“닥치고 전열 유지해!!”
몬스터가 이제는 손이라고 불러야 할 듯한 앞다리중 하나를 백호팀 방향으로 뻗었다.
콰콰앙!
그러자 손을 뻗은 방향에서 커다란 폭음과 함께 먼지구덩이가 일어났다.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괜찮아! 일어서!”
거대한 방패를 든 대머리 남자가 공격을 막아낸 듯 씩씩거리며 자신이 보호한 마법사를 일으켜 세웠다.
“에잇!”
치잉!
김팀장의 일갈을 담은 검격이 몬스터의 다리를 스친다.
몬스터가 움찔 하며 비틀거리지만 큰 타격은 없는 듯.
이내 팔을 마구잡이로 난동을 부리는 몬스터에 진형이 무너져간다.
“크와옹!”
팡!
몬스터의 눈에 백호팀의 마법사가 시전한 파이어스피어가 박혀 안면을 날려버렸지만 몬스터의 공격은 조금도 멈추지 않는다.
휘두르는 발톱에 방패를 놓친 탱커에게, 방금 전 폭격을 쏟아낼 때처럼 몬스터의 팔이 쭉 뻗어진다.
“제...젠장!”
절체절명의 순간.
쉬이익-.
...
갑자기 평원에 일대 고요가 찾아든다.
방금 전까지 마구잡이로 날뛰던 몬스터가 쥐죽은 듯 조용해 졌기 때문이다.
“*보이드*”
나직히 울려 퍼지는 칠성의 목소리.
몬스터의 미간을 뚫고나온 어둠의 군주 보이드의 손날.
“끼...끼이이익....”
쿵! 쿠궁!
그리고 그제 서야 기계덩이 몬스터가 칠판 긁는듯한 비명을 남기며 정확히 세로로 두 쪽으로 나뉘어 무너져 내린다.
콰르르르륵-!
마치 붕괴되는 건물처럼 잔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땅을 흔든다.
“이...이게 도대체...?”
팀장을 비롯한 팀원 전원이 아연실색 하여, 점차 자그맣게 축소되어 검은빛의 뱀처럼 어딘가로 기어가는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 칠성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넛을 씹고 있다.
“아. 괜찮죠? 위험할거 같아서 제가 손썼는데.”
마치 그들의 공로를 가로챈 걸 이해해달라는 듯 어깨를 으쓱 해 보이며 사과하는 칠성.
“그...저. 어떻....”
마치 자기들의 혈투가 어린애들 장난과 같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느낌.
백호팀 전원은 말을 잇지 못 하고 여전히 소풍 나온 분위기의 칠성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 볼 뿐 이었다.
* * *
안희운 전에 폭발한 다크 미사일의 여파로 큰 데미지를 입은 헌특부 옛 건물을 대신해 헌특부가 이사 온 헌특부 신사옥 건물.
지상 1층. 헌특부 로비.
지하 1층과 2층. 헌특부 지하 주차장.
그리고 지하 3층.
띵.
칠성과 성진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이번 건 뭐야?”
양 옆으로 갈라지는 엘리베이터 문 틈 사이로 창연한 백색의 인공조명이 쏟아졌다.
“연구소 단순 시찰입니다. 이 사람들 뭐 하고 있는지 구경하시고 격려 좀 해주시죠.”
“쉽네.”
탁.
칠성의 구두 발이 매끈한 연구실 바닥의 타일을 딛었다.
“그렇죠 뭐.”
성진이 앞서서 나아가자 이미 그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듯 엘리베이터방향을 주시하고 있던 남녀 여러 명 중 뿔테안경을 쓴, 전체적으로 네모난 얼굴의 인상의 남자가 다가와 칠성에게 굽신 인사를 건넨다.
“새로 발령받은 장영실 소장입니다.”
“저도 새로 온 김칠성 장관입니다.”
칠성이 악수를 건네며 농을 붙인다.
“하하하. 그러셨죠 참.”
“이쪽은...?”
칠성이 유난히 장영실 소장 옆에 붙어 덤으로 따라와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보듯 칠성을 살피고 있는 갈색 장발을 올려 묶은 얇은 빛나는 자주빛 메탈 안경테가 인상적인 여자에게 묻자 인사가 이어진다.
“김정은 부소장입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간 뒤 남자가 본격적으로 연구소 안내를 시작한다.
“이쪽으로 오시죠.”
“원래 장관시찰 이라고 하면 언론을 붙이는데, 오늘은 소장님 요청으로 비공식 시찰로 진행됩니다.”
성진이 걸음을 따라붙으며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장관님께 보여드릴 것 이 있거든요.”
장영실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오, 그래요?”
“네. 이 물건이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사용처는 장관님께서 정하시게 되겠죠.”
이 자식, 쫌 맘에 드는데?
칠성과 장영실 사이에 묘한 눈웃음이 오간다.
대체 언론에 숨기면서까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커져가는 와중에, 투명한 방탄유리로 쌓여있는, 마치 원형 투기장 같은 형태의 장소가 나타난다.
장영실 소장이 자신의 보안키로 잠금장치를 해제하자 문이라고 생각하지 못 한 유리벽이 옆으로 스르륵 열린다.
“실험을 도와주실 레이드 3팀 화랑팀 소속 마법사. 김태홍 님 이십니다.”
실험장 한편에 서 있던 김태홍이 고개를 꾸벅 한다.
어휴 저 징글징글 한 놈. 대체 저건 뭐 하는 놈 이 길래 가는데 마다 있는 거냐.
“이게 지금 저희가 전력을 다 해 개발 하고 있는 물건입니다.”
장영실 소장이 마치 커다란 물총같이 생긴 물건을 건넨다. 다만 물통이 있어야 할 부분에 초록빛의 마석이 붙어있는 느낌이다.
“호오. 이건....”
정확한 구성은 모르겠지만 칠성은 한눈에 이것이 일종의 아티펙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손잡이의 엄지부분엔 위에 얹혀있는 것과 동일한 느낌의 마석이 붙어있었고, 전체적으론 정말 총과 같은 인상이어서 방아쇠와 개머리판도 붙어있었다.
다만 딱히 총구가 없다는 게 기묘한 생김새였다.
“매직 디스펠 이라는 기술로 만든, 가칭 매직 디스펠러 인데요. 상당한 복잡한 기술입니다만 ... 안희운 씨한테 큰 빚을 졌죠.”
빚?
칠성이 소장을 바라보자 설명이 이어진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안희운 전 장관은 뒤편에선 헌터들을 무력화 시킬 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했었던 거 같아요. 우리가 한 작업은 그쪽에서 이미 연구해왔던 것을 구체화 시킨 정도죠.”
흠. 설득력 있는 소리였다.
헌터를 꼼짝 못 하게 만들 수 있는 구속구도 그렇고, 안희운은 결국 헌터들을 가장 두려워했음이 틀림없다.
뭐, 너무 결과론적인 소리지만 결국 그의 걱정대로, 그가 몰락 한 건 헌터인 칠성 때문이기도 하니까.
“한번 보시죠.”
장영실 소장이 싸인을 보내자 저 멀리 서 있던 김태홍이 수정구를 들고 주문을 외운다.
“*파이어 스피어*”
한참동안 장문의 캐스팅을 이어가던 김태홍이 이내 시동어를 뱉었고, 거의 동시에 함께 김태홍 머리 위 허공에 김태홍 키만 한 불의 창이 나타난다.
이글거리는 불의창.
그것을 보고 장소장이 칠성에게 개발 중인 물건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장관님께선 마나 사용 가능자 시니 직접 해 보시죠. 이 부분 엄지 부분이 마력 주입구입니다.”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을 손잡이에 달려있는 녹색의 코팅 처리 된 마석위에 얹는다.
“그 곳으로 마력을 집중 해 주입 하시고, 충분히 충전되면 타겟을 향해 디스펠러를 조준하시고 방아쇠를 당기시면 됩니다.”
“흠.”
칠성이 어느새 천천히 칠성과 태홍 사이의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파이어 스피어를 향해 매직 디스펠러를 조준한다.
기-잉.
서서히 주입구로 마력을 밀어 넣자 디스펠러의 마석이 녹빛의 형광색으로 빛이 나기 시작한다.
파이어 스피어를 향해 조준한 디스펠러의 방아쇠를 당긴다.
투웅!!
그러자 매우 묵직한 진공음과 함께 마치 초음파 같은 형태의 마나가 파이어 스피어를 향해 발사된다.
키리링-!
발사된 원형의 파장이 허공에 떠 있던 파이어스피어에게 닿자 파이어 스피어가 마치 어설프게 조립 되었던 레고 블록들처럼 수십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완전히 부서져버린 파이어스피어는 이내 힘을 잃고 허공으로 산화 해 버린다.
쉬이이익~
불타는 창이 있었던 곳엔 한줌의 증기 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원소마법은 아티펙트로 만들어 내기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요. 아주 간단한 마법이라도 아티펙트화 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
“호오~!”
칠성이 감탄했다. 설명이 더 이어지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만들어둔 걸 망치는 건 훨씬 쉽다는 거죠.”
원리는 칠성이 적의 아티펙트를 스파크 마법으로 고장 낼 때와 같은 원리라고 보면 될 듯 했다.
다만 아티펙트도 아니고, 이미 시전 된 마법을 무로 돌린다? 이건 마법이 만연한 이세계에서도 못 본 개념이었다.
뜬소문 같이, 위대한 영웅들이 사용했다는 몇몇 영혼병기를 제외하고는.
‘뭐, 기특하긴 하네.’
하지만 칠성은 한눈에 이건 실전에선 도저히 못 써먹을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시전 하는 마법을 확인하고 그에 대응하는 디스펠을? 실전이라면 상대방의 마법을 확인하는 순간 이미 옆구리에 상대방의 마법이 꽂혀있다.
“이건 파이어 스피어 전용이죠?”
이런 문제도 있다. 이건 만능 주문도 아니다.
“네. 그렇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안희운 측이 연구하고 있던 게 파이어 스피어 거든요.”
그렇겠지. 헌특부 소속의 마법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주력기니까.
‘하지만...’
만약 정말로 고집스럽게 특정 마법만 쓰는 상대가 있다면 써먹어 봄 직 하다.
그런 경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이걸 사용 하는 데는 구지 칠성 수준의 마법사가 아니어도 되지 않은가. 헌특부 레이드 팀 그 누구에게나 들려줘도 사용할 수 있을 만 한 물건이다.
“흠. 흥미롭네요. 뭐 더 보여주실 건 없습니까?”
칠성이 던지듯이 물었는데, 장소장이 비장하게 안경테를 쓸어 올리며 씨익 웃는다.
“오시죠.”
그를 따라 간 곳은 마치 군의 무기 격납고 같은 느낌의 장소였다.
장소장이 그 중 가운데, 유리 케이스에 잠들어 있는 물건을 보여준다.
언 듯 봐서는 군용 소총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이게 오늘 정말로 보여드리고 싶었던 물건입니다.”
“이게 뭔데요?”
칠성이 갸우뚱하게 물건을 살피자 장영실 소장의 눈빛이 빛난다.
“일반인이 헌터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