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S2 : 7화
* * *
집권 여당 이순신 당 사무소
“하여간 말이 안 된다니까! 대통령 나이제한이 여러분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당대표 이미려 의원의 호통이 이어졌다.
“여러분 중 몇 명이, 아니 이 안건 미는 사람들 다수가 김규형 국회의원... 아니 재보궐 후보자와 연관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여성이지만 어지간한 남자는 눈빛만으로 기가 질리게 만드는 그녀인 만큼 누구하나 반박하지 못 하고 시선을 피했다.
“대체 그 자식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야 모르겠지만 다 큰 어른들이 새파란 어린애한테 휘둘리기나 하고. 뭡니까? 벌써부터 고개 뻣뻣이 들고 여기저기 간보며 장난치고 다니는 애새끼 포섭 해 봐야 우리 입맛에 맞게 움직이기나 할까요?”
정계에서, 정확히는 정치에 관심 있는 민중들 사이에서 김규형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 이었다.
정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정치관련 티브이 프로그램에선 ‘차기 대통령후보 아니냐?’ ‘나이 때문에 안 된다’ 하며 농을 치는 상황이었다.
아직 무소속인 만큼 정치인들이 자기들 쪽으로 먼저 포섭하려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이었다.
“그 전에 국회의원이나 될 수나 있고?”
하지만 정당이 무슨 아이돌 기획사도 아니고, 그를 위해 법 개정까지 밀어붙이면서 의원, 그것도 의원도 아닌 후보자 나부랭이를 포섭한다?
이미려 의원의 생각엔 말이 안 되는 행동이다.
아무리 봐도 각이 이상하다.
“하여간 우리 입장변동은 없습니다. 정신들 차리세요!”
탕.
“뭔가가 찝찝하단 말야.”
대표실로 들어온 이미려 의원이 외투를 챙기며 중얼거리다 이내 무언가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동작을 멈춘다.
공기?
마치 새벽에 숲속 안개와도 같은 공기가 대표실에 가득 차 있다.
동작을 멈췄던 이미려 의원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눈앞의 남자 뒤, 열려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역광 덕에 백색의 아우라가 비추는 듯했다.
캐주얼한 복장의 회색 머리의 남자. 김규형이다.
“당신...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어?”
마치 귀신같이 나타난 김규형을 보고 이미려 의원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린다.
“의원님.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김규형이 맥락 없이 말문을 연다.
“사람 불러서 끌어내기 전에 당장...!”
이미려 의원이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가셔 야죠 의원님.”
이미려 의원이 사람을 호출하려 대표실 문을 열려는 순간. 김규형의 눈에서부터 번쩍인 붉은 빛의 마나가 이미려 의원을 감싸 안는다.
“저랑요.”
이미려 의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김규형을 돌아본다. 김규형이 싱긋 웃어보인다.
* * *
헌특부 로비,
“그럼 레이드는 계속 참가 하시는 건가요?”
밖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칠성 옆에 한솜이가 붙어서 말을 묻고 있었다.
“하기는 하는데, 일단 장관 스케줄 쪽이 먼저니까. 팀 안 가리고 갈 수 있는 레이드는 갈 생각이거든요.”
김칠성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아 그렇죠...”
한솜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여간 3팀도 나 없이 레이드 가야 할 상황들이 나올 테니까, 보충 인력 충원신청 해 놔.”
칠성이 한솜이를 슬쩍 돌아보며 말한다.
눈이 마주친 한솜이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예의상의 미소를 살짝 띈다.
“그리고 이 자식 좀 어디 트레이닝을 시키든가 어쩌든가 좀 하고!”
“컥!”
칠성이 자신의 발목에 매달려 칠성이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바닥에 질질 끌려오고 있는 김태홍을 발길질로 떼어내며 말했다.
“저에... 의지는...”
김태홍이 맞아서 아픈 명치를 쥐어 잡고 꿍얼거린다.
“아 그럼 장관님”
한솜이가 다시 말을 걸려는 순간, 칠성이 전방을 향해 반가운 기색으로 돌아선다.
“어. 주희씨!”
헌특부 앞에 정차하고 있는 반질반질한 베이지 색상의 고급 외제차.
그 앞에는 파티 복장 차림의 김주희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내가 알아서 간다니까.”
“장관님 워낙 유명해서 혼자 가시면 사람들 사이에 쌓여서 내가 가까이 가기도 힘들걸요?”
주희가 생긋 웃는다.
화기애애해 보이는 두 사람.
“아, 한솜이씨. 바쁜 사항 있으면 김비서한테 남겨놓고. 알았지?”
“아. 네. 예. 다녀오십쇼.”
칠성의 던지는 듯한 인사에 한솜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꾸벅 해 보인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김태홍이 소리친다.
칠성이 주희를 위해 뒷좌석 문을 열어준다. 이내 두 사람이 뒷좌석으로 들어가고 두 사람을 태운 차가 출발해서 멀어진다.
부앙-.
차가 떠난 뒤.
멍하니 차가 떠난 뒷모습을 보는 한솜이.
김태홍이 아픈 가슴팍을 문지르며 그 뒤편에 서 있다가 한솜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중얼거린다.
“이상하네.”
“누나 칠성형 좋아해?”
김태홍이 한솜이의 얼굴을 살피며 묻는다.
“헛소리 하지 말고. 그리고 회사에선 팀장님.”
그 말에 김태홍을 휙 흘겨본 한솜이가 훽 돌아서더니 사옥 안으로 향한다.
“예에~ 팀장님.”
“그리고 너 오늘부터 러닝 30km 추가다. 장관님을 얼마나 괴롭힌 거야 대체.”
입맛을 다시는 김태홍에게 끔찍한 미션이 떨어진다.
“뭐어?! 아니 그건 아니지!!”
김태홍이 절규하듯 반항한다.
“아 누나!”
* * *
커다란 호텔 연회장.
모 기업 회장이 주최하는 자선파티가 한창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힘은 권력 못지않게 인맥.
그 인맥을 엮어주기 위해 주희가 일부러 칠성을 파트너로 참석시킨 것 이었다.
주희와 칠성이 연회장에 들어서자 부산스러운 분위기였던 연회장의 시선이 칠성과 주희에게로 집중된다.
다들 차분히 원래 대화로 다시 집중하고 있지만 마음 같아선 체면이고 뭐고 이 둘에게로 당장이라도 덤벼들고 싶은 분위기다.
“아이고, 주희씨 왔어요!”
그중에 금테 안경이 인상적인 중년의 신사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접근한다.
“네 안녕하셨어요? 따님 유학은 어떻게 됐나요?”
주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응대한다.
“아유, 우리 김대표가 신경 써 준 덕분에 이태리 패션스쿨 편입이 됐다는 거 아니야. 이제 좀 있으면 가방 싸요.”“에이, 신경은요 무슨! 포트폴리오 한번 봐 준 건데.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죠.”
주희가 방긋 웃었다.
사실 얼마든지는 아니다. 세계적 패션 브랜드의 대표가 일개 학생 포트폴리오를 점검 해 주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
다만 이 중년의 신사라면 그렇게 해 줄 가치가 있다는 소리다.
“여기는 삼각물산 정대표님 이세요. 잘 아시죠? 김칠성 장관님이세요.”
말이 삼각물산이지 모기업 삼각 물산을 베이스로 사회 곳곳에 손 안 뻗히는 곳이 없는 대기업 삼각의 머리였다.
주희가 적당한 타이밍에 칠성과 정대표를 인사시켰다.
“하이고! 잘 알다마다요. 껄껄껄. 요즘 정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 아닙니까!”
“아 예, 반갑습니다.”
두 사람의 의례적인 악수가 오갔다.
그 뒤에도 몇 명이나 이런 식의 인사와 소개가 이어졌다.
“동아 아트 김이사님.”
“철웅 심전무님.”
“황제 텔레콤 정이사님.”
칠성이 이런 인사치례와 소개에 살짝 피로함을 느낄 무렵, 주희가 유난히 반갑게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양쪽 뺨에 살짝 뽀뽀를 하는데 유럽도 아니 것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주희씨 오늘따라 예쁘네요. 파트너 분을 의식 한 건가?”
“아! 헤헤헤. 뭐 쪼끔?”
남자의 농담에 주희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남자에 눈짓에 주희가 알겠다는 듯 소개를 이어갔다.
“이 쪽은 요즘 세간에서 핫 한 김규형 후보님. 이쪽은 당연히 아시죠? 헌특부 김칠성 장관님이세요.”
“반갑습니다. 김규형 입니다.”
“아 예.”
얼결에 받은 인사.
두 사람의 악수.
역사적 순간이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용인, 대형 놀이동산의 사파리.
동물들이 뛰어놀고 행복한 관람객들의 환호가 울려 퍼져야 할 평원의 중심부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기묘한 기운을 뿜어대는 거대한 검은색의 구체, 그리고 그 앞의 문.
4에서 5미터 정도 되는 높이, 회색빛의 문에커다란 구리빛의 톱니바퀴들이 아주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문의 무늬 틈틈이 청백색의 빛이 마치 충전중인 LED 램프처럼 숨을 쉬듯 서서히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문명의 문, 기계의 문 등으로 불리는 그레이 도어.
주변에는 사파리의 맹수들이 접근하지 못 하도록 전기가 흐르는 검은색 철창이 세워져 있었고,
수도권의 그레이 도어를 커버하는 대한민국 헌특부 레이드 제 2팀 백호팀은 비상이 걸려있었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 이래요??”
자신의 키만 한 헤머를 든 남자가 꿍얼거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들의 주요 업무이자 존재 의의 인 레이드 업무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들의 최종 보스인 헌특부 장관이 참여한단 것 이다.
“낸들 아나! 헌터 출신이라고 그러는 거 같은데.”
커다란 투핸드 소드를 든 커다란 키에 근육질 몸의 기사. 김팀장 역시 불만을 터뜨렸다.“헌터 출신 이라길래 이해를 해줄 줄 알았더니 시어머니질 하려나 보네.”
마법사 인 듯 수정구를 든 남자도 거들었다.
“하여간 트집잡힐 일 하지 말고. 우리 실력 보여주자고.”
헌터들이 장비를 정비하며 만전을 기하는 때, 사파리의 평원을 가르고 먼지를 일으키며 검은색의 리무진이 등장했다.
리무진이 그들 앞에 멈춰 서자 재빠른 동작으로 먼저 내린 경호원이 뒷좌석의 문을 열어준다.
“아~! 미안합니다! 생각보다 좀 늦었네?”
청바지에 바람막이. 번쩍 빛이 나는 미러 선글라스를 쓴 칠성이 인사를 던지며 내렸다.
지극히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경호원들과 뒤따르는 성진을 이끌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김팀장 앞에 선 칠성.
‘소풍이라도 오셨나?’
김팀장 입장에선 고까울 수밖에 없었다.
일각을 다퉈야 할 레이드 업무에 자기 멋대로 끼어들더니 예정 시간보다 늦기까지 했다.
“그건 뭔가요?”
인사를 한 김팀장이 칠성에게 물었다.
칠성의 한쪽 손에 들린 유명 브랜드 도너츠 쇼핑백.
“아 이거? 좀 출출 해서요.”
칠성의 답변에 팀원 중 누군가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장비는요?”
지나치게 캐주얼한 복장, 김팀장의 물음에
칠성은 그저 어깨를 으쓱 해 보인다.
“늦었는데 그냥 들어가죠.”
마치 뒷산에 등산이라도 간다는 투다.
“아니 그게 말이 안 되죠 안전 규정 이란게...”
“그만.”
안 그래도 칠성이 참여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 팀원들 이었다. 따지는 듯한 목소리로 칠성에게 덤벼들 듯 걸음을 떼는 마법사를 김팀장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아니 그래도...!”
“나중에 얘기해.”
김팀장도 이런 것을 문제 삼아 칠성을 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칠성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오히려 다른 생각이 든다.
‘어지간히 만만히 보나본데.’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산책 가듯 레이드에 참여하겠다고?
헌터 출신이라고 간판만 달았지 이정도로 현장을 우습게 보는 것 보니 제대로 된 레이드엔 참여해 본 일이 없는 게 틀림없다.
헌특부에 근무한 것도 일 년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
“헌터출신 이시라니 본인이 잘 판단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가시죠. 출발 해.”
칠성이 손짓하며 지시하자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과 성진이 리무진을 타고 출발한다.
리무진마저 멀어지자 김팀장이 문 앞에 선다.
“전열 유지, 진입과 동시에 가이드스톤 활용해 최대한 빠르게 모입니다. 장관님은... 뭐 알아서 하시구요.”
팀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김팀장의 마나가 가득 담긴 발뒤꿈치가 문을 강타함과 동시에 문이 뿜어낸 백색의 빛의 폭풍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