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S2 : 6화
* * *
“그니까 네가 좀 알아봐.”
“예쓰 써.”
칠성의 명령에 성진이 장난으로 작은 경례를 붙이며 대답했다.
리무진에서 내린 칠성이 붉은 카페트 위를 걸어간다. 여기저기서 간간히 플래시 라이트가 터진다.
국가 보훈처의 6.25 기념행사가 열리는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
애도와 평화를 표하는 흰색의 모자를 쓴 수천여명의 참전 유공자 가족, 시민, 학생, 장병 등이 보인다.
칠성은 경호를 받으며 서서히 참전 용사와 외교사절, 정부 주요인사와 각계대표가 있는 단상 근처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 * *
6.25 행사에 참여하고 며칠 뒤.
통.
칠성이 둥글게 말아 던진 보고서 쪼가리가 넓디 넓은 장관실을 저 멀리 가로질러 쓰레기통 속으로 쏘옥 빨려 들어갔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피유~”
“심심하세요?”
그러고 있는 칠성에게 장관실로 들어온 성진이 말을 걸었다.
“어 왔냐?”
심심했다.
이거 뭐 말이 장관이지 대부분의 업무는 대통령 팀이 내정한 정관보 차관이 전부 처리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회의에도 장관 대리로 참석하고, 어지간한 일은 정차관이 전문가들과 상의 해 안전한 방향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칠성은 그야말로 올라오는 결재서류에 도장이나 찍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의 장관이 이런다는 것 은 아니다.
대부분의 장관들은 오히려 자기 일에 지나치게 열성적이다. 장관이라 함은 정치적 커리어에 굉장히 굵직한 업적이기도 하니까 말 이다.
하지만 칠성은 그딴 것 어찌되던 정말로 관심이 없었으니, 심지어 헌특부의 미래에도 딱히 큰 관심은 없었으니 어떤 의미에서 보면 최악의 장관인 것이다.
“나 이거 다 했어. 칭찬 해 줘.”
칠성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서류를 성진 쪽 으로 밀며 말했다.
“아이고... 잘 하셨습니다.”
성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칠성의 어리광을 받았다.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어지간히 심심하긴 한가보다. 라고 생각하는 성진 이었다.
“문 밖에 저 친구는 뭡니까?”
성진이 넌지시 닫힌 장관실의 문 너머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쟤? 신경 쓰지 마. 그냥 헌특부 월급 도둑이야. 저 새끼 저거 할 일이 없으니까 저러지. 저런 놈 보면 헌특부 직원들 월급 깎아야 돼 진짜.”
장관실 문 밖,
성진이 보았던 것 은 장관실 문 방향을 향해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무릎 꿇고 석고대죄 하는 포즈로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장관실 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김태홍 이었다.
흰 옷 차림에 염색물이 다 빠진 주황색으로 염색한 장발이 냉난방기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무협지 속에 스승을 청하려 찾아 온 무대뽀 제자 지망생이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안 만나주실 거 같은데 오늘은 이만 하고 가시죠?”
이곳이 매우 편안하고 안락한 실내라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칠성의 비서인 김비서가 태홍에게 넌지시 말 하자 김태홍이 쉰 듯 갈라진 허스키한 목소리로 마른기침을 해 가며 침을 튀었다.
“예로부터 참스승을 만나기 위해선 삼고초려를 불사하라 하였거늘 진정한 배움을 좇는 이 몸이 어찌해 일신의 불편함을 피하겠소!”
김태홍이 안락한 실내에 카페트 위에 돗자리 까지 깔고 앉은 사람치곤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휴....”
김비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야 그건 어떻게 됐어.”
“네?”
“우리 아버지 뭔 일 있는지 알아보라 했잖아.”
“아, 그거요?”
성진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서류철을 뒤지며 말을 이었다.
“아마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러신 게 아닌가 합니다.”
“회사에서?”
“네, 그... 장관님 아버님 다니시는 회사 삼익에서 같이 근무하는 이계장이란 사람이랑 대화를 해봤는데요. 아버님이랑 부장이란 사람이랑 트러블이 있는 거 같다고...”
“부장님이랑?”
이상하다.
부장님이랑 아버지는 사이가 좋았던 것 같은데.
“아, 예전에 계셨던 분 이 아니고 신임 부장인데, 은연중에 좀... 아버님 더러 퇴직 하시라고 압박을 주는 모양입니다.”
“그래애...?”
흥미롭고도 빡치는 일 이었다.
칠성이 앉은 의자를 한바퀴 핑글 돌리며 되물었다.
“뭐 하는 새끼야 그거?”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버님이 눈엣 가시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딱히 정말로 퇴직을 종용하는 것 도 아니고, 괜히 심심할 때 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식 인가 봅니다.”
“뭐 그런 놈이 다 있냐?? 그 새낀 회사 다니는 게 심심하데? 할 일이 그렇게 없어?!”
라고 헌특부에서 가장 심심할 듯한 칠성이 책상을 내려치며 분개했다.
“...사장 아들이거든요 그 부장이.”
“허?”
“일종의 갑질이죠 뭐. 참.”
서류철에서 무언가를 빼낸 성진이 서류뭉치 하나를 칠성에게 보여줬다.
“...나노공정 대행업체 공개 입찰?”
칠성이 받은 서류를 넘겨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재밌는 건데요. 삼익 말입니다.”
입찰업체 중 선발된 최상위 5개 업체 중 평가점수 두 번째 업체. 그 자리에 삼익의 이름이 가시방석에 앉은 죄인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우리 공개입찰에 지원했더라고요? 상위 5개 업체는 어차피 전략상으론 다 비슷하다고 평가된 애들이기 때문에, 누굴 뽑아도 상관없는데....”
“그래서 뭐?”
흐음, 칠성이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며 물었다.
“보통 이런 결정엔 장관의 영향이 크죠...?”
성진이 넌지시 던졌고, 그 말을 들은 칠성의 눈썹이 음흉하게 꿈틀거렸다.
“크크크크크크... 그럼. 그럼. 아주 크게 될 것이야...”
장난기 가득한 칠성의 입 꼬리, 송곳니가 반짝 하고 빛난다.
삼익.
칠성의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
회사에 있던 칠성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 의아 해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받는다.
“뭐...? 아니 그게, 말이 되지가 안잖아요?”
한숨을 푹푹 쉬며 주변 눈치를 살피던 칠성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한 손으로 가리고 부장실을 향해 주변 눈치를 살피며 고양이 걸음으로 간다.
“저, 저기 부장님....”
“뭡니까?”
갑작스레 방문한 차장이 맘에 안 든 듯 부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여기... 전화 좀 받아보세요.”
“...무슨 전환데요?”
분명히 본인 핸드폰 인 것 같은데. 무슨 경우지.
라고 생각한 부장이 넌지시 물었다.
“아, 그게 제 아들인데....”
“나 참, 내가 차장님 아들 전화를 왜 받습니까?”
부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아니 그게, 제 아들이 공무원 이거든요...?”
공무원은 또 뭐란 말 인가.
아들이 공무원이니 그걸로 협박이라도 해 보겠다는 건가?
자기가 여태껏 해온 전과가 있으니 무조건 아니꼬운 시선으로 봐 지는 부장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됐으니까, 바쁘니까 돌아가세요.”
차갑게 내뱉고 반쯤 돌아앉는다.
“아니, 그게... 제 아들이 장관이거든요.”
“네?”
남부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아들이 장관 이란다.
“하! 줘 보세요.”
기가 막혔다. 자기가 잘릴 것 같으니까 미친 짓 이라도 한번 하겠다는 건가?
뭐. 회사생활을 건 최후의 몰래카메라라면 한번 쯤 당해줘도 좋겠지.
라고 생각하며 김차장의 핸드폰을 뺏어들었다.
“네 여보세요. 장관이시라고?”
비웃는 톤이 가득담긴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남부장의 표정이 꿈틀 하고 굳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 이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헌터 특별부 장관 김칠성입니다.]
각종 티브이 프로나 뉴스등을 통해 들어왔던 익숙한 목소리.
일순간 남부장의 동공이 용이 승천하듯 콰르르륵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헌, 헌특부요...?”
* * *
“너는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남부장 같은 각진 턱, 하지만 더 빼쭉한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
옆머리만 길게 길러둔 완연한 대머리의 백발.
기계에 관심 좀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들어 봤음 직 한 기업 삼익의 머리, 남강중 회장 이었다.
“어떻게 자식새끼 중에 제대로 되먹은 새끼가 없어!!”
물론 남이문 부장의 친부이기도 했다.
칠성의 아버지가 장관의 친부가 맞다는 사실을 전한 회장 직속부하마저 남강중 회장의 노기에 떨고 있었다.
회장실 데스크 앞에 선 남부장은 남부장 대로 충격을 받았다. 34년 인생 내도록 자신을 향해 이토록 화를 내는 아버지를 본 일이 없다.
쓰레기 같은 나머지 형제들과 달리 명문대 출신의 유학파인 자신이 아닌가.
회사일도 자신처럼 잘 이끄는 사람이 없는데, 고작 헌특부 장관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해서 자신이 나머지 자식들과 도매급으로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는가?
“너는 대체 뭐 하는 새끼 길래 네 부하 직원 중에 장관 애비가 있는 것도 몰라?!”
“아 쫌 모를 수도 있죠!”
그래서 반발심이 튀어 올랐다.
“뭐? 뭐어? 모를 수도 있어?!”
남강중 회장의 화만 더 돋우었지만 말이다.
“너... 너 이 새끼 이리와!”
남회장은 이제 벌떡 일어나 골프채를 잡아들었다. 남부장이 반사적으로 잽싸게 수그리며 물러섰다.
“아이고, 참으세요 회장님!”
회장 근처에 있던 직원이 골프채를 번쩍 치켜들고 남부장을 향해 가려는 회장을 잡고 매달렸다.
“놔 이거! 내 오늘 저 새끼를 사단을 낼 거니까!”
“아 그럼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점쟁이야?! 장관 아버지가 회사나 다니는 경우가 어디 있어!”
말이야 맞는 말 이었다.
장관 아버지가 회사에, 그것도 차장으로 다닌다는 소리는 좀체 들어보기 힘든 일 이었다.
“아니 그런데 이 새끼가 끝까지 저 잘났다고 말대답까지 해? 너 이 새끼 일루 안 와?!”
“이크!”
직원에게 붙잡힌 채 재떨이며 골프채를 남부장에게 마구잡이로 던져대는 남회장을 피해 회장실 밖으로 도망치는 남부장 이었다.
* * *
서울시내 한 요리집.
조선시대가 연상되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칠기 가구들. 벽에는 수묵화, 와인셀러는 언밸런스 하게도 외국 술병들을 품고 그 위에 청자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아유~ 뭐 이런 데를 잡으셨어요?”
그리고 룸.
“자 이쪽으로 오시죠!”
남회장이 굽신 거리며 칠성과 칠성의 아버지를 룸 안쪽으로 안내했다.
“간단하게 식사나 한 끼 하자니까 뭐 이런 거창한 데를 잡으셨어요.”
칠성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간단하게 김밥천국에서 한 끼 하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고급 한식집이라. 뭐 나쁘지 않지.
그런데 좌식의자의 한 쪽 팔걸이가 없다.
한쪽팔걸이는 그대로 있어 앉으면 몸이 기우뚱하게 앉아진다.
아니 고급 식당에 의자는 이딴 식인가?칠성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짝!
자리에 앉은 남회장이 박수를 한 번 치자 미닫이문 사이로 식당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들이민다.
회장과 사장이 사인을 주고받더니 이내 다시 문이 닫힌다.
드르르르륵-!
꺄르륵 하는 여자 웃음소리.
다시 문이 열렸을 땐 화려한 빛깔의 한복에 머리를 올린, 언 듯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무렵의 기생이 생각나는 복장의 아가씨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각자 미리 짜두기라도 한 듯 좌식 의자의 팔걸이가 없는 쪽 에 놓여 진 방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다소곳한 여자들의 자기소개와 함께 역시 옛 차림의 종업원들이 음식과 술을 들여온다.
신경 쓴 듯 고급스러운 음식들과 양주, 어느새 방 안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기묘한 풍경이다.
“소연이 예요.”
아가씨들이 다소곳한 자기소개와 함께 술잔을 채워준다.
요정이었냐.
칠성은 의아했지만 남회장은 나름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 셈 이었다.
‘흐흐흐흐....’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아는 회원제 요정.
두당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접대의 명소로 유명 한 곳 이었다.
몰랐으면 모를까, 헌특부 장관 아버지가 자신의 회사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두 부자를 완전히 구워삶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어험, 어험...”
칠성의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이런 곳을 잘 안 와 보셔서 그런지, 아들 앞이라 그런 건지야 모르겠지만.
‘아버지도 즐겨야지.’
신경 껐다.
대충 자리가 무르익을 때 쯤 남회장이 입을 뗐다.
“삼익이 입찰하신 것 보셨죠?”
“예 뭐.”
“유력한 후보라도 있습니까?”
남회장의 초생달같이 아부하는 웃는 눈이 빛났다.
“일 잘하는 데 뽑겠죠 뭐.”
칠성이 건성으로 대답하자 남회장이 헛기침을 하더니 테이블 위로 검은색 함을 건넨다.
“이게 뭐죠?”
함을 열어보자 여섯 마리의 금두꺼비 들이 붉은 천위에 조용히 잠자고 있다.
“별 건 아니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또 장관님 빈손으로 보내드리면....”
“아~ 뇌물입니까?”
쾅.
“힉, 히익!”
“꺄아!”
순식간이다.
칠성이 내던진 함이 남회장 뒤쪽 벽에 부딪혀 산산 조각이 난다.
갈 곳 잃은 두꺼비들이 바닥을 굴러다닌다.
소심한 남부장과 아가씨들이 비명을 지른다.
“!!!”
남회장에겐 충격이었다.
잘 굴러가는 분위기 같더니 돌연 이건 무슨 반응이란 말 인가.
“공직자한테 뇌물 권하고 이러시면 안 되죠.”
칠성이 벌떡 일어선다.
“저...저저저! 잠시만! 잠시만!”
남회장이 안달이 나서 칠성을 부른다.
“제가 또 벌만큼 벌거든요. 갑시다! 김차창님.”
칠성이 재킷을 둘러 입으며 문쪽으로 발걸음을 향하려 하자 다급해진 남회장이 칠성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제가!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장관님!”
“뭐, 하실 것 없어요. 뭐 하세요 차장님. 가요.”
그 순간, 남회장의 눈이 번뜩 떠졌다.
‘이 놈, 집에서도 아버지를 차장이라고 부르지야 않겠지.’
“차장! 아. 차장이라니요!”
다급하게 외치는 남회장.
칠성이 그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회장을 쳐다본다.
“아버지...?”
남부장이 불안한 목소리로 남회장을 부르지만 이미 들리지 않는다.
남회장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 함박웃음이 된다.
“김부장! 김부장 뭐 하는가! 장관님 가신다는데!”
순식간에 부장으로 승격.
“김부장이요?”
“예, 부장 할 때 됐지요! 우리 김부장이 또 개국 공신인데! 헤헤헤헤.”
“아니 그게 아니고, 부장이요?”
웃던 표정의 회장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어쩌라는 거냐 진짜.
“김...이사. 김이사. 김이사... 그래 이사정돈 해야지.”
회장의 얼굴을 식은땀이 타고 흘러내린다.
“아부지!”
남부장이 부르지만 들리지도 않는다.
“흠~. 뭐. 갑시다 이사님.”
“예? 예!”
순식간에 이사 자리에 오른 칠성의 아버지가 어리둥절 얼이 빠져 있다가 대답하고 일어선다.
“아유, 지금 보니까 요놈 들 귀엽네.”
칠성은 또 그세 돌아다니며 방바닥에 떨어진 두꺼비들을 줍는다.
주변에 기녀들이 두꺼비 챙기는 걸 도와준다.
“소연아!”
“네?”
소연이에게 두꺼비 하나를 던져주고 자리를 뜬다.
“담에 뵙겠습니다~!”
유쾌하게 인사를 던지고 떠나는 칠성.
드르륵. 탁.
휘이잉~
칠성과 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의 룸은 마치 전쟁통이 휩쓸고 지나간 분위기였다.
“한 잔 하셔요.”
영혼이 빠진 듯 멍 때리고 있는 남회장에게 여종업원이 술을 권 했지만 남회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술잔을 손으로 내쳤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자식아!”
남회장이 냅다 남부장에게 덤벼들어 양말발로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김칠성이라는 놈 안 받을 것 도 아니고 받아 챙길 것 다 받아 챙기면서 사람 망신을 어찌나 주는지. 어쨌던 이 모든 분풀이의 대상은 남부장이었다.
“악! 악! 아버지 미쳤어?! 삼익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이사를 시켜줘!”
맞으면서도 입은 반항하는 남부장.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켜줘야한다.
그리고 따지자면 아무나 시켜놓은 것 의 대표 케이스가 남부장 아닌가.
“시끄러워 이 자식아!”
남회장이 날뛰고 있는 룸이 멀어진다.
“큭큭큭큭큭... 너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배웠냐?”
“아, 드라마 좀 봤죠~!”
“짜식이!”
칠성과 아버지는 어수선한 소음이 들려오는 요리집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