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S2 : 5화
김규형의 광화문 광장 이벤트가 시작되고 있을 무렵, 그러니까 10피트가 자신들의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했을 때 즈음.
청와대 충무관.
붉은색의 관복을 입은 대신들이 행을 맞추어 나란히 서 있고, 그 위로는 행을 맞춘 푸른빛의 대신들이 줄지어 있다.
조선시대 배경의 그림인 듯한데 외보계 위엔 태극기 같은 게 걸려있거나, 한구석엔 신식 군복을 입은 군졸들이 있는 등 시대적으로 교묘한 모습.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주인공인 신축진연도병풍.
높이만 해도 2미터가 넘는 압도적 크기와 위용의 작품 앞에 대통령과 김칠성이 악수를 하고 있었다.
김칠성의 한 손에 들려있는 것은 장관 임명장 이었다.
“웃으세요.”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김칠성의 귓가에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플래시 라이트들이 눈부시게 번쩍였다.
김칠성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장관 임명석이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대통령은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일정을 강행했고 청문회 이후 20일이 되자마자 마치 국회로부터 장관자리를 뺐어내기라도 하듯 김칠성을 임명해 장관에 앉힌 것 이다.
“이제 시작 이십니다.”
임명식이 거행된 뒤엔 백악실로 이동해 대통령과의 환담을 가졌다.
환담이라는 단어 자체는 친목 성격이 강한 화기 애애한 자리 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타이틀 이야 그럴싸하게 대통령과 김칠성의 환담 이지만, 그건 그야말로 기사를 위한 타이틀 일 뿐.
대통령과 1:1 의 만남은커녕 청와대 인사들이 잔뜩 참석 한 대다가 옆에선 기자들이 사진까지 찍어대고 있었다.
환담이라기보다는 쇼 그 자체였다.
어쨌건 간에
일정이 끝나고 귀가하는 차량 안.
예의 진한 선탠이 되어있는 리무진.
젊잖게 탑승한 칠성과 성진, 경호원과 보좌관들.
“가지.”
칠성이 젊잖게 명령하자 차가 출발한다.
아무도 별 말이 없다. 담담하다.
할 일을 했을 뿐 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청와대 출입구를 지나고, 청와대, 그리고 기자들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졌다 싶을 무렵.
“시작 할까요?”
성진이 한손엔 샴페인 병을 들고 칠성에게 슬쩍 물었다.
“샴페인 빳다지!”
펑!
성진이 흔들어 댄 샴페인뚜껑이 증기로 솟아오르며 하얀 거품을 쏟아냈다.
“꺄악!”
“아하하하!”
“와하하하!”
순식간에 리무진 안이 파티장으로 변모했다.
될 거라고 생각이야 했지만 정말로 되다니.
아스라한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칠성과 보좌 팀에게 안도의 순간이자 기쁨의 순간이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음악이 리무진의 다채널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장관님!”
“축하 하네 정책 보좌관.”
자기들끼리 축하를 주고받으며 음흉하게 웃는 칠성과 성진.
뻥 뚫린 도로를 리무진이 시원하게 내 달린다.
* * *
서울의 한 고급 중식집.
붉은 톤의 목조건물을 흉내 낸 인테리어, 곳곳에 걸린 중국 예술품 까지. 한 눈에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요릿집.
“야 뭐 이렇게 좋은 데를 잡아놨냐?”
한구석의 커다란 룸 문 앞에서 칠성이 성진과 대화중이었다.
“아 이제 진짜로 장관님이시잖아요. 그리고 이제 좋은 것도 문제긴 하지만, 어지간한데서 다니시고 하면 또 언론에 괜히 뜨고 그래요. 차라리 이런 데가 낫죠. 뭐 장관님이 죄 짓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안 나오는 게 최고에요 언론에는.”
성진이 조곤조곤 조언하듯 말한다.
“그래 뭐, 수고했고. 이제 가 봐. 갈 때는 알아서 갈게. 여기 막 요리도 포장되고 도시락도 있고 하던데 몇 개 싸 가 법인카드로.”
“어우, 그래도 되나요?”
“에이 괜찮아 뭐. 업무잖아 업무. 그리고 너도 기분 좀 내야지. 가족들도 먹이고.”
칠성이 성진의 어깨를 두드린다.
“넵 월요일 날 뵙겠습니다.”
성진이 꾸벅 인사를 해 보이곤 저 쪽으로 걸어간다.
드르르륵-!
미닫이로 된 창호문을 열자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룸이 나온다. 커다란 원형의 식탁에 둘러앉은 것은 칠성의 부모님과 누나다.
“다들 보냈냐?”
“네.”
아버지의 물음에 칠성이 대답한다.
“히유~!”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던 식구들이 그제야 분위기가 풀어진다.
“와~ 대박.”
칠선이 행여 촌스럽다는 소리라도 들을까봐 참고 있던 리액션을 터뜨렸다.
“여기 너무 비싸지 않겠어?”
“아유 엄마. 칠성이 장관님이잖아 이제.”
누나가 능청스럽게 답한다.
“그래~ 아들이 벌잖아”
칠성도 고개를 주억인다.
식구들 먹이는 데 돈이 문제랴.
더 비싼 곳도 상관없다.
“그러게 이런 데를 다 와보고!”
“너 진짜 출세했다!”
아닌 게 아니었다.
칠선은 놀리듯이 말 했지만 내심 칠성이 자랑스러운 구석이 없는 것 도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백수였던 남동생이 덜컥 공무원이 되더니 이제는 장관이라니. 꿈에나 볼 법한 황당한 관경이었다.
누나인 칠선에게도 그런데 부모님에겐 말 할 것도 없었다.
친척들에게 은근히 무시당하고, 앞날을 걱정 했던 게 어제 같은데 이제는 어느 면모로 봐도 김씨 집안의 내노라 할 자랑거리였다.
“아이고, 장관님 한잔 받으시죠!”
“하하하.”
아버지가 능청스럽게 존대까지 하며 칠성의 잔을 채워주신다.
모처럼 모인 가족들의 화기애애한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 * *
가족들과의 식사는 즐거웠다.
물론 고급 음식으로 입이 즐겁기도 했으나 그것 보다는 마음이 훨씬 즐거웠다.
칠성이야 뭘 하던 간에 몸뚱이가 자산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야 없었지만, 자신이 생각 했듯 이 사회에서 마력보다도 더 위대한 권력까지 꿰차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게다가 가족들이 이리도 기뻐 해 주니 말이다.
자신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도 없는 세상, 권력까지 쥐었으니 앞으로 사랑하는 이 들과 함께 호사롭게 살 일 만 남았다.
그런 칠성의 눈에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가 보였다.
“어라.”
식당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가 오는데, 밖으로 향했던 아버지가 그세 식당 내부 정원 한편에 마련된 재떨이 휴지통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시는 게 보인 거다.
“아버지 담배 태우세요?”
“어? 아. 왜 나왔어.”
어라. 안태우신지 좀 됐던 거 같은데.
“저도 한 대 주세요.”
“담배도 태우냐?”
“가끔요.”
딱히 니코틴이 당기는 건 아니고 그냥 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어서다.
“예전에 굉장히 힘들게 끊지 않으셨어요? 왜 다시... 크크크.”
“아니...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라.
담배를 끊어본 적이 있거나, 근처에 끊었‘던’ 사람이 있어본 사람은 아는 사실인데.
담배를 꽤나 오래 끊었던 흡연자가 다시 담배를 잡게 되는 건 제법 뚜렷한 사건이 일어나서다.
물론 반쯤 핑계지만.
그리고 대게 담배를 다시 잡게 만든 일화는 하나의 훈장이 된다.
예를 들면 ‘아 꼴데 놈들이 그 때 병살만 안 맞았어도 내가 금연하는데’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끝이 어쩐지 가히 없이 씁쓸하다.
무언가 있긴 한데 숨긴다는 느낌이다.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아니! 그런 거 없다.”
흠. 무슨 일이 있으시긴 한 거 같은데.
칠성의 걱정을 실은 담배 연기가 밤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 * *
“김차장님. 중국이랑 일본이 왜 코딱지 만한 섬 하나로 저렇게 싸우는지 알아요?”
칠성의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
그리고 그런 칠성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니었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된 30대 중후반의 부장. 남부장이 자신이 보던 신문을 접어 칠성의 아버지의 데스크에 탁! 소리가 나게 놓으며 말했다.
“예? 글쎄요... 잘.”
신문 일면지 메인 헤드라인엔 다워우다오, 즉 센가쿠 열도 관련 기사가 나 있었다.
[일본, 센가쿠 열도 분쟁 국제회의에 넘기겠다. 강경책 밝혀]
무척이나 오래되고 고루한 이 지역분쟁은 요즘 들어서 양국의 군사적 견제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일각에선 이러다 전쟁이 나는 게 아니냐 하는 말 도 나오고 있었다.
“다 눈치가 없어서야 눈치가.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적당히 물러날 때를 모르고 꼭 한 발 더하겠다고 하다가 일을 키우잖아.”
아예 칠성의 아버지 책상에 한쪽 엉덩이를 걸쳐 앉아서 자신의 지론을 펼친다.
“아...예.”
“사람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해요. 그죠? 눈치가 딱~ 있게. 그죠?”
거창하게 콘셉트를 잡아서 말을 시작한 것 치고는 메시지가 매우 노골적이다.
남부장.
삼십대 중후반의 부장이란 직책은 그가 딱히 능력자라는 방증이 아니었다.
그 것 보다는 차라리 그가 사장아들이라는 것에 대한 방증이었다.
“차장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55살입니다.”
“야~ 오래 하셨네. 그거 퇴직금 많이 나와요. 아시죠?”
매우 뻔하고, 너무나도 뻔해서 웃기기까지 한 사회 모델 실험 중에 ‘불공정 브루마블’ 이란 게임이 있다.
게임의 목적은 별 다른 게 아니다.
그야말로 불공정한 게임을 할 때 사람의 심리변화가 어떠냐를 파악 해 보는 게 주 된 목적이다.
규칙도 굉장히 간단하다.
굉장히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사위를 굴리고 건물을 구입하는 형식의 브루마블 보드게임을 하는데 한명에겐 주사위를 한 개, 다른 한 명에겐 주사위를 두 개 씩 굴리게 해 준다.
당연히 게임의 특성상, 두 개의 주사위를 굴리는 플레이어가 대부분의 경우 압도적으로 이기게 된다.
재미있는 건 게임이 끝난 뒤 참여자들의 인터뷰이다. 패배자들의 인터뷰는 가지각색인데, 승리자들의 인터뷰는 대부분 비슷하다.
게임에서 이긴 이유가 ‘자신이 상대방 보다 훨씬 게임을 전략적으로 잘 해서’ 라는 것.
자신의 짜릿한 승리의 순간이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 또 자신이 그 순간을 위해 어떠한 전략을 짰으며 어떻게 상대방의 술수에 대처했는지 서로 자랑하기 바쁘단 것 이다.
너무나도 당연히 그들이 이긴 이유는 주사위를 한 개 굴리는 사람을 상대로 두 개씩 굴려서 이것만, 대다수의 실험자들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양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 게임에서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부장이 바로 전형적인 그런 케이스였다.
그가 부장이 된 것은 누가 보아도 그가 사장 아들이란 이유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집에 있는 돈이나 퍼 쓰고 다니는 한량 첫째 형의 영향 때문 일까.
아니면 마약 복용으로 감옥에 가 있는 둘째 누이 덕분일까. 사장 집안의 셋째인 남부장은 자기가 퍽이나 잘나서 젊은 나이에 부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렇게 출중한 능력(?)을 가졌다 보니, 그에 대한 자부심이 결국 나이 먹고도 승진 못 하는 부하 직원들을 무능력자로 치부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남부장이 딱히 칠성의 아버지에게 굉장한 악감정이 있는 것 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도록 승진도 못 하는 무능력한 직원은 빨리 잘라야 조직에 이득이라는 굉장히 전략적이고 현명한, 조직 전체를 위한 판단 하에 칠성의 아버지인 김차장을 압박하고 있는 것 이다.
물론 나름의 계기적 사건도 있었다.
얼마 전.
“아, 그건 김차장님이랑 이미 검토가 끝난....”
“뭐? 차장? 그래서?”
새파란 나이에 별다른 능력도 없이 아버지 덕에 부장을 꿰 찬 남부장 보다야 부하직원들은 차라리 칠성의 아버지인 김차장을 더 따랐다.
물론 부장이 명령을 하는 데 차장이 괜찮다고 했다고 답변한 저 직원도 문제가 있지만.
어찌되었던 이 사건이 남부장의 심경을 거슬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후유....”
회사 밖, 칠성의 아버지의 담배가 타들어간다.
이제 칠성, 칠선이 돈도 벌어오겠다, 때려 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도 아니었으나 누구에게 말 할 사정도 아니니 타들어가는 심정처럼 칠성의 아버지의 담배도 타들어 갔던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