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S2 : 3화
“아셨죠? 우리가 준비 안 된 질문엔 답변하면 안 돼요. 얼버무리세요. 어지간한 사항은 다 준비 해 놨으니까 더 나올 것 도 없어요.”
대한민국 헌터 특별부 장관 인사 청문회가 열릴 예정인 국회 회의실 근처의 대기실. 성진이 칠성에게 준비해 둔 사항들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다.
“아 알았다니까.”
“답변지 눈으로 훑어봐도 안 보이시면 조금만 기다리시면 되요. 제가 바로 뒤에서 답변지 번호 불러드릴 거니까요.”
정치 신인인 칠성, 하지만 반듯이 장관으로 올려야 하는 칠성을 이명준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그냥 방치 할 리 없었다.
이보좌관이 괜시리 호들갑을 떨며 공석이었던 칠성을 잽싸게 임시 장관으로 앉히고, 성진을 비롯한 에이스들을 김칠성의 백업으로 붙여준 게 아니다.
청문회는 반듯이 통과시킨다. 그리해 반듯이 김칠성을 장관자리에 앉힌다. 하는 결심에서 나온 움직임 이었던 것 이다.
칠성의 능력과 이미지는 출중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헌터로서의 능력과 이미지.
막상 장관의 자질이 있냐 없냐로 시비를 걸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일견 믿는 구석은 있었다.
정치는 이미지 싸움이다. 청문회는 어찌되었건 간에 생중계 된다. 정치판에 도무지 유례없을 정도의 대대적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 칠성을 쉽게 뻔하고 치졸한 수로 공격할 정치인은 잘 없을 것 이다.
여론은 자신들의 스타를 공격하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더군다나 칠성은 좌/우 의 이미지에 조차 물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원래 대통령의 지인이었던 사람도 아니고, 이 시국에 그가 장관을 잡는 것은 오히려 유일한 정답처럼 보였다. 오히려 자신의 정통적인 충신들 대신 김칠성을 기용한 대통령의 판단력을 칭찬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치인으로서 칠성은 이미 입문하기도 이전에 이중 삼중의 쉴드가 쳐져있는 셈 이었다.
“이제 가시죠.”
“그래.”
칠성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같은 시각.
무음모드의 스마트폰.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칠성의 누나, 칠선의 손끝이 상사 시야의 사각지대에 배치해 둔 폰을 만지작거린다.
꿀꺽.
‘신경 쓰여서 안 볼 수가 있어야지.’
칠선이 마른침을 삼킨다.
중계중인 DMB 화면에 칠성이 등장한다.
같은 시각 칠성의 아버지,
업무를 보는 틈틈이 한쪽에 신문기사가 업로드 되는 인터넷 창을 새로 고침 한다.
청문회가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후유...”
걱정되는 한숨을 탁 뱉는다.
그 시각 칠성네 집.
“잘해라 아들. 응?”
칠성의 어머니가 티브이를 향해 당부어린 말을, 격려를 건네고 있다.
티브이 화면에 선언을 하는 김칠성의 아래에 자막이 뜬다.
[김칠성 장관후보자 / 現 헌터특별부 임시 장관]
“···그리하여 헌터특별부는. 새로이 등장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변종맹수들의 퇴치로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여, 안정된 사회의 유지로 국익에 기여할 것입니다.”
평이한 내용의 칠성의 선언과 모두발언을 끝으로 질문공세를 퍼붓기 전 의원들이 잠시 숨을 골랐다.
칠성은 보좌관들이 작성 해 준 질문과 답변지를 살폈다.
보좌관들이 예상하기로, 칠성의 약점은 ‘장관으로서의 실무를 잘 해낼 수 있느냐’ 에 집중 될 것 이다.
물론 잘 해 낼 리가 없지만, 잘 해 낼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헌특부가 추진 중인 정책들, 그리고 현 상황의 분석과 미래 전략을 토대로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 상당히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예컨대, 상대편에서 현제 헌특부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답변지의 A-1을 보면 되는 식 이었다.
굉장히 뻔한 연극이지만, 틀림없이 먹힌다.
이번 청문회는 굉장히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청문회라는 것은 대게가 일반 국민들에겐 있는 듯 없는 듯 흘러가기 마련. 하지만 당장 지금만 해도 청문회 생중계가 20% 가 넘는 시청률을 내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인기스타, 주인공인 칠성이 출연하는 쇼다.
납득 시켜야 할 것은 국회의원이 아닌 시청자. 국민들이다.
게다가 국민적 영웅. 사람은 보고 싶은 것 만 보려 한다.
이 자리에서 칠성이 복잡한 정책관련 질문들에 청산유수로 자신감 있게 대답 해 내면 바로 그 순간 칠성의 이미지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 탈바꿈 한다.
그 부분에 대한 훈련도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 쇼타임 이다.
“후보자님께 묻겠습니다.”
드디어 첫 번째 질문.
장관 자리를 그냥 놓치기는 싫은 칠성도 살짝 긴장한다.
“장관님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예?”
뭐야 이게.
의외의 질문에 공허한 분위기가 회의장을 울렸다.
충격에 잠시 멍 했던 칠성은 찬찬히 보좌관이 마련해 준 답변지를 뒤져봤지만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들 합시다. 이게 사람이... 나이를 먹어야 보이는 게 있는 법인데 말이죠.”
밑도 끝도 없이 시비를 잡자는 질문 이었다.
뻔한 답변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나이지만 인생은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등.
하지만 각고의 고민 끝에 내린 칠성의 답변은 이러했다.
“아. 예.”
대꾸 해 주기가 싫다 그냥.
“...답변은 끝입니까?”
“제가 의원님 보다야 어린 거 맞는데 뭐라고 합니까 그럼?”
시비 걸지 말라 이거다.
하여간 우리나라 나이부심은 육갑이다.
이 시점에 600살 넘게 먹었다고 인증을 할 수도 없고, 칠성은 깝깝하고 속 터질 뿐 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야당 나름대로 괜히 나이로 갑질 하려는 게 아닌, 계산된 질문이었다.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수 없는 시비걸기.
여당과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야당이 김칠성을 여당의 인사로 인식한 따름이었다.
“장관을 하려면 헌특부 업무를 오래 본 사람이 하는 게 맞지 않나요?”
“후보자도 얼마 전에 대형 범죄를 저질렀던 안희운 씨처럼 흑마술사 인데 안희운 씨랑은 어떤 관계입니까? 동문 같은 건가요?”
“바티칸의 성기사들이 김칠성씨를 잡기위해 출동을 했었다는 정황을 제가 포착했습니다.”
“후보자 자산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뇌물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까요?”
그럴싸한 질문들 사이로 온갖 기상천외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후보자의 재산이 너무 적다니?
대한민국 인사청문회 사상 전무후무 한 질문 일 것 이다.
쫙. 쫙. 쫙.
칠성은 질문 답변지를 찢어버렸다.
“후우우우....”
답이 없었다.
질문이 이어질수록 궁지에 몰리는 기분 이었다.
“김칠성씨의 학력이...”
시비를 걸자고 마음먹은 이상 이 질문도 안 튀어나올 리가 없었다.
“중졸이 맞나요?”
“...예 그렇게 돼있을 겁니다.”
중졸.
이 사회는 중졸 장관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야당이 준비한 프레임의 설계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칠성은 무능함 그 자체인, 정말 우연한 계기로 영웅이 되었을 뿐인 철부지로 낙인찍혔다.
이것만으로 직접적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판은 짰다. 야당은 장관 실각을 일구어 낼 것 이다.
그렇게 인사청문회는 어두운 면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최의원이 입을 뗏다.
“...이상한데요? 제가 조사한 바와는 다릅니다. 김칠성씨 콜럼비아 헌터스쿨 출신 아니십니까?”
뭐?
콜럼비아 헌터스쿨, 헌터가 직업화 된 뒤에 생겨난 대학 중에서도 명문이었다. 주로 몬스터 정보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하며, 세계 각지의 헌터 관련 기관의 장관이나 수장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했다.
최의원의 발언에 장내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하지만 칠성도 모르는 대학을 칠성이 나왔다니?
의심가고 이상한 대목이다.
칠성은 뒤편에 자리하고 있던 성진에게 눈빛을 던졌다. 성진이 재빠르게 눈을 굴린다.
결정의 순간, 그것도 재빨라야 한다.
성진은 그 순간 칠성이 아닌 최의원쪽을 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몰라도.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칠성을 향해 OK 사인을 던진다.
냅다 물라는 신호다.
“예 맞습니다.”
콰앙.
하는 효과음이라도 들릴 듯한 분위기였다.
최의원이 불붙인 흐름의 도화선이 칠성의 인정하는 말에 폭발하듯 파문을 가져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회의장이 가득 찼다.
“이것 보십시오. 졸업 증명서입니다.”
최의원이 제시한 것은 틀림없는 콜롬비아 헌터스쿨의 졸업증서였다.
“아니, 왜 중졸이라고 답변하셨습니까?”
당황한 야당.
더욱더 당황한 점은 최의원이야 말로 가장 대표적인 야당 인사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이어진 질문에 칠성이 숨을 고르고 눈을 번쩍 뜨더니 대답한다.
“전 학력위주 사회가 지긋지긋한 사람입니다.”
운은 뗏다.
“제가 만약 중졸이라면, 흉악무도한 범죄자 안희운을 저지한 사실과 공로가 사라지는 것 입니까? 경찰도, 군인도 못 막은 희대의 중 범죄자를요?”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한다.
“그런데 너무나 우스웠습니다. 제가 중졸이라고 하니 순식간에 여러분 눈빛이 바뀌시더군요? 여러분 제가 정말로 실망한 점이 뭔지 압니까?”
정치는 모르는 칠성이었지만 타이밍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이곳이 승부처다!
그렇다면 일격을 던진다!
“전 임시장관으로서 역할수행을 위해, 또 오늘 청문회를 위해 정말로 열심히 헌특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 끝없이 소통하며 이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몽땅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청산유수다.
“그런데 여러분은 도대체 뭐였죠? 헌특부의, 나라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있었나요? 그저 저를 실각시키기 위해 시비걸기 바빳던 게 아니고요? 아니 대체 이 나라가!”
흥분한 칠성이 책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섰다.
이미 목소리는 마이크가 아닌, 칠성의 마나를 통해 강화된 목청으로 장내를 울리고 있었다.
“정당정치에 매몰 되 올바른 사람을 뽑기는커녕 뭐? 후보자의 재산이 없으니 의심이 가?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니까!”
“후보자님, 후보자님? 잠시 진정 해 주시고요....”
거의 쌍욕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청문회 진행자가 다급히 칠성의 발언을 중지시켰다.
하지만, 분위기는 완벽하게 기울었다.
승승장구하던 야당의 범선을 두 쪽으로 난파시켜 버리는 기세였다.
잠시 소강된 상태의 회의장.
의원들이 서류를 넘기며 사각대는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장내를 매운다.
“큭큭큭큭...수고하셨어요.”
급하게 물병을 가져다 준 성진이 귓가에 대고 소근 거렸다.
주사위는 구르기 시작했다.
칠성의 발언은 초 강수다.
최의원의 조금 전 발언이 덫 이었다면 칠성의 정치생명은 죽음이다.
하지만 잘 풀린다면 완승. 압승이다.
어떠한 반전이, 뒤통수가 기다릴지 알 수야 없지만 이제 막을 방법은 없다.
“바티칸 성기사들이 출동했던 건 안희운 때문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흑마술은 동호회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죠, 엄연히 고차원 학문입니다.”
역시나 야당인 김의원과 이의원이 거들었다.
이 둘도 최의원의 측근이다.
무슨 일 인진 몰라도,
칠성을 실각시키기로 작정한 야당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세명이 칠성의 편에 섰다.
그리하여 무난히, 청문회는 칠성의 마무리 발언으로 종료되었다.
압승, 압승. 압승!!
“큭큭큭큭큭. 시~~발!!”
“하하하하하!”
회의장을 나온 칠성과 성진은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까짓 게 이렇게나 기분 좋을 줄은 몰랐다.
“아까 그 새끼들 표정 봤냐??”
간만에 느끼는 통쾌함이었다.
뒷일이 걱정 안 되는 것이야 아니지만 일단은 기세를 휘어잡고 후려친 게 중요하다.
최소한 장관 임명까지는 이제 순탄대로다.
“근데 이게 대체 뭔 일이냐?”
“글쎄요, 저도 잘...”
야당인 최의원이 왜 갑자기 칠성의 편을 들어주었을까?
성진도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오셨군요?”
복도, 칠성과 성진의 앞에 처음 보는 남자가 하나 길을 막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