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S1 : 16화
* * *
다음 날.
“흠.”
헌특부에 출근하는 출근길의 칠성에게 길거리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무언가 전단지를 나누어 주던 아줌마가 지나치는 칠성의 손에 무언가 들려준다.
“이게 뭐야.”
실종자 포스터 인 것 같다.
사람을 찾습니다.
라는 문구 아래에 실종되었다는 몇 명의 사람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박정민?”
그중 한명은 정민이었다.
우람한 근육질. 어쩔 수 없는 노안.
사람 좋은 미소까지.
헌터 자격증 시험장에서 만났던 박정민이 분명했다.
* * *
“우리 정민이를 알아요?”
전단지를 나눠주던 아주머니는 하필 박정민의 어머니였다.
“아니 뭐... 친구 까진 아니고요.”
늘 건장한 청년이었던 박정민은 언제나 같이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에 갔다가 오는 길 돌연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그게 언제 쯤 이죠?”
날짜를 비교 해 보니...
‘헌터 자격증 시험이 있고 나서 3일 뒤...?’
“뭔가가 있구만....”
칠성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전단지에 있는 네 명 모두 실종 될 만한 어린애나 노인같은 노약자가 아니라 하나같이 건장한 청년들.
“어머니. 아드님이 헌터 자격증 시험 본 건 알 고 계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 아들이 자격증을 딴다구요?”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네 명의 청년은 서로 비슷한 시기에 실종됐다.
졸지에 딸 아들을 잃은 부모들은 각자 속을 썩이다 인터넷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아이들을 찾기 위해 모였고, 전단지도 그 일환이었다.
박정민이 평소에 헌터에 관련된 타령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박정민이 자격증을 따려 했다는 것은 부모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아마 잘 되고 나서 말 하려고 했겠지.’
그리고 이 서로 큰 연관 없어 보이는 네 명의 청년을 잇는 최후의 퍼즐 조각이 바로 헌터 자격증 일지도 모른다.
칠성의 눈빛이 번뜩였다.
* * *
월요일 근무에 이어진 출동과 레이드.
여의도 한강 공원에 출현한 그린 도어의 안에는 비늘로 덮인 거대한 전차 크기의 시궁쥐, 라틴 바이터가 앞니를 번뜩이고 있었다.
쿵-.
초원에 거대한 시궁쥐가 쓰러졌다.
팀원들은 합심해서 몬스터의 사채를 처리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솜이는 전과 같이 침착하게 임무에 임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우울한 눈빛 이었다.
아무래도 폭발사건이 충격적 이었을 것 이다.
수 십 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고 다음순간 그 괴한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일단 한솜이는 빼자.’
이 일은 그냥 혼자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칠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일단 가슴속에 묻었다.
그리고 퇴근 뒤.
“맞아요. 우리 명진이도 헌터 자격증 시험 본다고 난리였어요.”
“세상에나...”
“이게 무슨 소리 인 거죠? 이게.”
“뭐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아직.”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칠성의 말에 한 커피숍에 모인 실종 청년들의 부모들.
한줄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칠성의 입 끝에 시선을 모은다.
해줄 말 이 없다. 아직은.
“무슨 이유에 선진 모르겠지만 놈들은 마나 보유자들을 쫓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세한 건....”
칠성이 실종자 부모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대충 늘어놓고 있는데....
삐비빅-!
날카로운 알림음이 울렸다.
[긴급 임무]
[특별 인센티브 5,000만원]
“다녀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헌터폰의 긴급 호출 이었다.
* * *
헌특부 건물 앞.
해가 진 저녁.
칠성이 헌특부로 향하는 교차로를 건넌다.
긴급 임무 라는 것 은 사고가 났다는 소리다.
기본적으로 시간대를 방어 하고 있는 팀이 출동 불가능 한 상태가 되었고, 24시간 중인 백업조도 출동할 수 없는 사태란 소리다.
‘그래도 세네.’
차 한 대 값이 오갈 줄은 몰랐다.
이런 식이면 이번 월말에 받을 돈만 얼추 6천이 넘어간다.
“김칠성 씨 맞습니까?”
“예.”
푸른 방호복을 입은 남자의 물음에 칠성이 대답하며 사원증을 내 밀어 보인다.
로비에서부터 서포트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던전 진입 이외에 모든 것을 도와주는 서포트 팀. 정말 긴급 상황인지 로비에 열 댓 명의 인원이 나와서 대기 중 이었고.
“이리로 오시죠.”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따라 탄 네명의 서포트팀이 칠성의 장비 착용을 도왔다.
마치 레이싱 카의 정비팀처럼 재빠른 그들의 도움으로 옥상에 도착한 칠성은 이미 중무장을 마쳤다.
헬기 착륙장으로 향하는 진입로 옆에 칠성의 방패를 실은 운반 대차를 세 명의 서포트팀이 밀고 다가오더니 칠성에게 착용을 도와주려 다가온다.
“됐어요. 이리 주세요.”
“워어!”
마력을 부여한 칠성이 거뜬하게 방패를 들고 헬기로 향하자 놀라운 눈빛들로 바라본다.
“봐도봐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뭘 놀라, 쟤들이 진짜 괴물들 이야.”
“씁. 들을라.”
젊은 요원들의 잡담에 책임자로 보이는 서포터가 다그친다.
자신들이 힘을 합쳐 애써 옮긴 수백 킬로그램의 방패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손으로 번쩍 들어차는 헌터의 모습은 마나의 존재를 아는 서포트 팀에게도 이질적인 모습이었기에.
멀어지는 칠성의 등 뒤로 수근 거린다.
“다른 팀원들은요?”
“현장에 이미 나가 계십니다.”
칠성을 태운 헌특부의 헬기가 허공을 향해 치솟는다.
헬기가 향한 곳 은 서울시 금천구의 외곽지역.
커다란 콘테이너 건물이 목적지다.
마치 돔 구장처럼 콘테이너 건물의 지붕이 열려있다.
“바로 하강 하시면 됩니다.”
서포트팀의 도움으로 자동으로 레펠 하강을 도와주는 기계장치인 오토 레펠러를 케이블에 건다.
그리고 하강.
쉭 쉬이이익-.
칠성의 몸이 허공을 가르고 콘테이너 지붕사이를 통해 건물 안 으로 하강한다.
바람을 가르고 떨어지는 감각을 몇 초 느끼지도 않았는데 발이 땅에 닿는다.
틱!
오토 레펠러가 케이블로부터 분리된다.
둑두구두구두구-.
헬기가 저 멀리 날아 시야로부터 사라진다.
기이이잉- 터엉.
동시에 콘테이너 건물의 지붕이 닫힌다.
지붕이 닫힘과 동시에 칠성은 어둠속에 잠긴다.
“흠?”
슬쩍 이상했다.
여기까지 와도 문 같은건 보이지도 않는다.
팀원들도 오리무중이다.
혹시나 해서 헌터폰을 켜 봤지만 뜬금없이 휴대폰 화면엔 [비행기 모드] 가 설정되어 있었다.
해제 해 보려고 해도 그대로이다.
모든게 가리키는 정답은 한가지다.
칠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큭큭큭큭큭... 니들 이번에는 씨발 존나 자신있나보다?”
두두두두둥!
칠성의 읊조림이 경기를 알리는 공 소리라도 된 것처럼 칠성의 양팔과 양다리, 사지와 온 몸에 악성 마법을 담은 법진이 펼쳐졌다.
짝- 짝- 짝-
느린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티-잉
조명들이 불을 뿜는다.
강렬한 불빛에 칠성이 눈을 찌푸린다.
환해진 실내에 보이는 것 은 콘테이너 안 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의 내부였다.
마치 연구실처럼 대리석으로 온 벽과 바닥, 천장을 깔아놨고 수백평 규모 실내의 벽면엔 푸르른 용액을 가득 채운 수조들이 들어있다.
계단으로 통하게 만들어 둔 2층과 3층, 그곳에도 마찬가지. 가운데는 층 수 구분 없이 트여있었다.
그리고 그 수백기의 수조들 안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는 청년들의 육체가 선 채 잠들어 있었다.
“아 뭐, 이번에는 정말 확실하게 준비를 했거든.”
박수를 친 것은 2층의 난간에 서 있는 멀대 같이 큰 키에 창백한 인상의 대머리, 정명석 이었다.
그리고 내부의 1층, 2층, 3층에 걸쳐 커다란 수정구들을 쥐고 있는 수백의 검은 옷 차림의 잔챙이들의 아티펙트가 빛을 내고 있었다.
수정구처럼 생긴 것 들은 저주를 담은 아티펙트.
몇몇 놈 은 마법이 부여된 듯 형광빛으로 빛이 나는 언월도나 건틀릿 같은 걸 착용하고 있었다.
언 듯 봐도 수준이 여태까지 습격했던 레벨의 능력자들이 아니다.
“그러게 왜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
“새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니들이 날 건드렸지 내가 먼저 쑤시고 다녔냐?”
‘가지가지 하는 구만.’
머릿속으로 자신을 향한 저주의 개수를 헤아려 보던 칠성이 혀를 찼다. 약 30여종의 각기 다른 저주마법이 수백 번 중복해 온몸에 떡칠되듯 들어와 있었다.
저주로 인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 육체로 칠성이 손을 뻗어 정명석을 가리키며 말한다.
“내가 살아 나가면 니들 다 좆 되는 건 알지?”
그 말을 들은 정명석이 경기를 일으키듯 놀란 척 하다가, 환영한다는 듯한 리액션으로 양 손을 펼친 채 고개를 숙여 보이며 웃는다.
“장례식은 치러 드리죠.”
“조져!”
현장을 떠나며 남긴 정명석의 명령에 조직원들이 칠성에게 덤벼든다.
* * *
식食마魔 일체의 경지.
마력 친화력을 올려준다는 마족 연금술사의 비약을 과다 복용한 결과 생긴 결과.
뭐 마나를 먹고 사는 마족의 특성을 엇비슷하게 얻게 된다는 점 때문에 이거에 또 열광하고 그러는 마법사 놈들도 있긴 하던데, 사실 그다지 쓸모는 없는 능력이다.
마나를 직접 씹어 먹고 배가 불러서 뭐 하나?
세상에 맛 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콰드드득-.
‘뭐, 이럴 때는 쓸모가 있지만.’
칠성은 오른팔에 족쇄처럼 잔뜩 붙어있는 반투명한 검보라 빛 마법진 들을 씹었다.
마치 팔에 붙은 솜사탕을 뜯어먹는 듯한 동작으로 자신을 향해 걸려있는 저주들을 씹어 먹는 칠성.
‘이거 양이 꽤 되네.’
한쪽 팔에 붙어있는 저주 주문이 담고 있는 마나만 해도 수박만한 마석 정도의 양 이었다. 전신의 것을 다 뜯어먹으면 어지간히도 포식 할 것 같았다.
‘밥 값 굳었고만.’
무력화, 기절, 수면, 디스인텔리전, 이그저스트, 슬로우, 속박, 석화, 피어, 패닉, 개미떼, 디스펠 매직....
칠성이 지향한 것과는 다른, 의식을 통한 발동 위주의 저주 마법들.
초급부터 중급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걸려 있었으나 칠성의 면역력을 뚫고 피해를 입힐 리도 만무했고, 칠성에겐 그저 일용할 양식 일 뿐 이었다.
“허잇!”
그 때 마법으로 빛나는 형광색의 건틀릿을 착용한 격수가 달려들어 칠성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부웅!
허공을 가르는 거대한 쇳덩이 건틀릿.
“?!”
그러나 모두의 기대를 깨고 칠성의 머리를 향해 내지른 주먹은 칠성의 머리를 짓이기는 커녕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크아악!”
칠성을 향해 내지른 크래커같이 부서진 건틀릿부터 그의 팔과 팔꿈치를 관통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검은색의 마법의 창.
“아참, 다크스피어.”
시동어 조차 없이 다크스피어를 생성해 적중시킨 뒤에야 잊었다는 듯 마법 이름을 붙이는 칠성.
‘하긴 이게 무슨 만화도 아닌데.’
굳이 안 붙여도 될 기술이름을 외쳐놓고 괜히 혼자 민망해하는 칠성과는 다르게 그 관경을 지켜보는 청중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충격에 휩싸여 입을 뻐끔 거릴 뿐 이었다.
“흣챠.”
투쾅!
마치 팩맨처럼 야금야금 몸의 저주를 알뜰살뜰히 먹어치운 덕에 칠성의 몸에 걸렸던 주문의 반절은 이미 사라진 뒤 였다.
그리고 자유로워진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이용한 날렵한 움직임으로 팔에 다크스피어가 박힌 건틀릿 무투가를 바닥에 눕히고 명치를 발뒤꿈치로 찍어 눌렀다.
“크어어억...”
“이거 뭐냐?”
무투가는 분하다는 듯 격분하며 나머지 팔을 휘둘렀지만,
칠성은 재밌는 장난감을 본 듯 그 주먹을 한손으로 낚아채 멈춘 뒤 건틀릿을 벗겨서 구경했다.
콰드득!
오른손에 낀 뒤 꽉 쥐자 자동으로 칠성의 마나가 흘러들어가며 건틀릿이 창연한 진초록으로 빛이 난다.
“와 이게 뭐야.”
던전 테크놀러지라고 하던가?
나노기술로 새겨진 듯한 수없는 마법들 덕에 도대체 결과적으로 어떤 물건을 만들어 둔 건지 칠성조차도 알 길이 없을 지경 이었다.
“한번 써 보면 알겠지.”
“키야앗!”
마침 칠성의 정면으로 빛나는 형광빛 언월도를 들고 덤벼드는 살수, 그의 창격을 가볍게 빗겨낸 칠성의 펀치가 살수의 갈비뼈 부근에 꽂힌다.
찌이잉- 콰콰아아앙!!
건틀릿이 울부짖는다.
뿜어낸 칼바람이 살수가 덕지덕지 입고 있던 보호구들을 찢어버린다.
일어난 충격파의 폭풍은 살수가 서 있던 바닥의 바닥재를 무참히 분쇄해 버리고, 살수를 넘어 뒤편까지 돌풍을 일으킨다.
바들바들바들...
간신히 언월도를 끌어당겨 자신의 머리로 향하는 충격파를 차단한 살수의 창에 금이 가더니 티딕, 티딕 힘없이 조각조각 분해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털썩.
이내 칠성에게 호기롭게 덤벼들었던 살수는 개 거품을 물고 무릎을 꿇는다.
“이야, 대~박!”
압도적인 전력, 칠성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거리를 좁혀 압박해오던 무리들은 그 기세에 온 몸이 굳어 버렸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칠성은 재미난 장난감을 득템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야! 또 덤벼! 빨리 빨리!”
그 뒤는 난장판이었다.
굳이 마법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칠성을 죽음으로 몰기위해 짜 놓았던 함정은 어느새 새로운 장난감들을 얻은 칠성의 실험장으로 변질 되어갔다.
나름 한가닥 한다고 했던 엘리트 등급의 무투가와 기사들에게 생에 최초이자 최악의 굴욕스러운 농락의 현장이었단 것 만 말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