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S1 : 13화
휴우...
흑마법이 어느 정도 실력에 오른 뒤로 일개 몬스터를 상대로 이런 긴장감은 처음이었다.
바짝 달아올랐던 아드레날린이 물러간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이 몬스터들에게선 지구에선 도무지 보기 힘든 순도 높은 마나의 파장이 느껴졌다.
‘여기서 수급을 하면....’
아마 괜찮은 양질의 마석을 얻을 수 도 있었다.
다만 팀원들에게 정제하는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
정제술 자체가 마법임은 둘째 치고 칠성의 정제술의 결과로 나올게 흑마법사의 마기가 담긴 마석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그냥 내버리기엔 아쉽다.
흑마법사의 주 마력 수급방식이 마나를 가진 생명체로부터의 마석 수급인데, 지구에선 좀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건 불법도 아니니까.’
정확힌 준법을 하면서 모으긴 어렵단 말 이지만.
칠성은 서로 모이는 팀원들의 시선을 피해 붉은색 거대 사마귀의 시체로 접근했다.
“태홍씨 괜찮으세요?”
“네. 뭐...”
“방금 어떻게 된 거죠 팀장님?”
“잘 모르겠지만 칠성씨의 타운트가 성공한 거 같아요.”
“신형종인데요?”
칠성은 방패로 팀원들의 시선을 차단하며 그 사이로 마석을 추출했다.
추출하기 전에 주변에 흐르는 마나를 슬쩍 입으로 맛보자 뭐, 못 먹을 맛은 아니었다. 좀 니글니글 한 느낌?
그다지 생으로 먹기엔 입맛에 안 맞았다.
다음은 정제술이다.
칠성은 방패를 안든 손을 오무려 몬스터 시체 위 허공의 무언가를 갈무리하듯 계속해서 팔자를 그리며 돌렸다.
이내 시체로부터 안개 같은 마나의 구름이 일어나더니 서서히 칠성의 오므린 손바닥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오?’
이내 마나의 구름은 빠르게 뭉쳐져 반투명한 보랏빛의 수정 같은 마석이 되었다.
생각보다 더 상당한 양인 거 같다.
칠성은 두 번에 걸쳐 주먹만 한 크기의 마석을 방어구 속에 쑤셔 넣었다.
이렇게 빼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몬스터의 시체엔 2/3 정도 되는 마력이 잔존해 있었다.
‘이정도 양이면 당분간은 걱정 없겠어.’
칠성 기준에서야 풍족한 양은 아니지만 이정도 마석이면 초급 수준의 청마법사가 2주는 명상을 해야 모을 수 있는 양 이었다.
어차피 마법을 쓸 일도 크게 없으니 이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물론 칠성이야 어지간한 청마법사들과 클래스를 달리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흑마법사가 청마법사 보다 위대하다는 소리는 아니었고, 어디 까지나 콘셉트의 차이이다.
흑마법사는 적의 생기를 빼앗는다.
어둠과 파괴가 특기. 악마와의 계약도 가능하다.
청마법사는 대자연과의 호흡. 원소계열 마법을 주로 사용하며 천재지변을 일으킨다.
흔히 이론 마법사가 가장 많은 게 청마법사다.
적마법사는 물질계 보단 정신계에 간섭한다.
좋은 간섭은 버프가 되며 나쁜 간섭은 세뇌나 정신붕괴를 유발한다.
드루이드로도 불리는 녹마법사들은 정령 친화적.
성마법사, 홀리오더나 성기사들은 천계의 힘을 사용한다.
뭐, 이런 것 이야 차치하고 보통 마법을 쓴다면 그저 두렵고 경외의 대상으로 보기 마련이지만.
그때 팀원들이 칠성 쪽으로 몰려들었다.
“와... 이게 뭘까요, 사마귀?”
“뭐 그렇게 불리게 생겼네요. 우리 끼리는요.”
서로 주고받은 지우혁과 한솜이가 키득거렸다.
“태홍씨 마력은요?”
“음....”
다가온 김태홍이 붉은 사마귀 시체위로 손을 휘저었다.
‘호오, 쓸모는 있구만?’
김태홍이 시도하는 건 마석 정제술이었다.
청마법사들도 그 효율이 매우 별로긴 하지만 나름의 정제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정제술이 메인 수급수단인 흑마법사와 다르게, 명상이 주된 마나 수급수단이다 보니 정제술의 수준 자체가 좀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단 확실히 낫다.
팀원 중에 마법사가 거의 꼭 끼어 있는 것 엔 이런 이유도 있을 것 이다.
생명체가 목숨을 잃으면 체내의 마나가 빠르게 증발해 버린다.
현장에서 누군가가 마석으로 만들지 않으면 모두 날아가 버린다.
청마법사가 만든 마석은 순도와 품질이 별로고, 직접 섭취를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청색 마법석은 직접 씹어서 섭취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마나 엘릭서로 제조해 흡입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응? 이상하다. 이거 마나양이 너무 없네요.”
김태홍이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띵~!
‘무슨 소리야!’
아무리 청마법사라지만 저렇게 그득한 마나 단지에서 마석 하나를 못 꺼내겠다니.
대체 김태홍 저놈의 정제술은 얼마나 형편이 없단 소리인가.
김태홍은 이어서 쓰러져있는 두 마리의 다른 사마귀에게서도 고작 엄지손가락 한마디 크기 정도의 마석을 추출해 낼 뿐이었다.
‘아이고.’
그걸 지켜보느니 칠성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저렇게 좋은 재료로 저거밖에...
아무리 청마법사라지만 아까워 죽을 지경 이였다.
그 뒤엔 팀원들이 힘을 합쳐 가져온 시체 수급 장비에 몬스터의 시체를 잘라 넣었다.
팀원들이 짐 속에서 꺼낸 천 쪼가리는 바닥에 놓고 마력을 불어넣자 스스로 철제의 뼈대를 세우더니,
마치 방사능 물질이라도 넣어 다닐 수 있을 거 같은 듬직한 박스가 되었다.
길이 약 2미터의 박스에 잘 들어가도록 시체들을 잘라 우겨넣었다.
박스는 사방에 일종의 무중력 마법이 적용되어 있어 마력을 불어넣자 아무런 무게도 없는 양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우린 헬기에 연락을 취했고, 이내 우릴 데리러온 헬기에 몸을 실었다.
헬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어떻게 타운트 컬러를 알아맞혔냐는 한송이 팀장의 질문에 대강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전투의 피로에 릴렉스하며 잠시간 이어진 정적. 그 정적을 깬 것은 김태홍이었다.
-저기 그...
먼저 텔레파시를 보낸 김태홍은 무언가 말을 꺼내지 못 하고 망설였다.
칠성과 눈이 마주치자 김태홍은 벨트를 풀고 칠성의 귓가 쪽으로 자신의 입을 가져왔다.
“아니 뭐... 고맙다고요. 그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헬기의 소음사이로 김태홍의 모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속삭인 김태홍은 칠성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아 벨트를 맨다.
참나, 새끼.
그렇게 사람 무시하더니 이제 와서.
칠성의 귓가에 속삭이는 김태홍을 본 지우혁이 눈빛과 표정으로 뭐냐고 물었다.
슬쩍 보니 한솜이도 이쪽을 향해서 눈빛을 슬쩍 보내는 게 보인다.
-아 뭐, 그렇게까지 궁금해들 할 것 없습니다. 김태홍씨가 저한테 고맙다고 하네요.
-예에? 태홍씨가요?
-아하핫! 아니 그걸 그냥 말 하면 되지 뭘 속삭여요, 태홍씨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은근 귀여운 면이 있으시네?
-아, 아! 그런 거 아니거든요?
놀리는 듯한 지우혁과 한솜이의 텔레파시에 김태홍이 기겁을 한다.
하기사 김태홍이 경력상으로나 선배지 팀원 중 가장 어리다.
어린놈의 치기정도로 이해해줘도 괜찮겠지.
깔깔 거리는 소리가 헬기에 퍼진다.
* * *
비슷한 시각.
어느 콘테이너 건물 안의 사무실.
“야 명석아.”
썰렁 할 정도로 빈 회색 배경의 사무실엔 남루한 나무 책상과 의자가 하나, 그리고 구석엔 공사판에서 쓸 듯한 공구 같은 것들도 한구석에 널부러져 있곤 했다.
“예?”
바닥에 엎드려뻗친 정명석이 땀을 흘리며 반문했다.
키가 190에 가까운 덩치의 대머리가 채 180이 안 되는 안희운앞에서 작은 생쥐같이 얼어붙는다.
“아니 저기 물어나 보자, 왜... 그러는 거야?”
의자에 앉아있던 안희운이 슬며시 엉덩이를 들곤 정명석 앞에 눈높이를 맞춰 쭈그려 앉으며 물었다.
“노...놈이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그게...”
“내가 그 새끼 마법사라고 했어~ 안 했어?”
안희운이 근처 바닥의 몽키 스페너를 짚어들고 엎드린 정명석의 머리를 툭 툭 친다.
“하셨.하셨고요. 그래서 마나 번 아티펙트랑 챙겨서 애들....”
“셋 보냈어 명석아? 그랬어 명석아?”
안희운이 기가막히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함박 미소를 짓는다.
“나 이 새끼 진짜.”
만면에 미소를 띄우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쏘아보는 안희운에 기가 질린 정명석이 얼른 고개를 처박으며 시선을 피한다.
“그런 좆밥 새끼 였으믄 내가 애초에 너한테 맡겼겠냐고 명석아!! 헌특부 직원! 헌특부 직원인데.”
맞는 소리였다.
아무리 안희운 이라도 헌특부 직원을 함부로 건들이진 않는다.
김칠성 같은 눈엣가시를 제외하고는.
안희운이 두려운지 달달 떠는 정명석의 귓가에 안희운이 속삭인다.
“야, 누가 보면 내가 되게 나쁜 사람인 줄 알겠다? 명석아. 야.”
안희운이 벌레 씹은 표정이 되어 몸을 일으킨다.
퍽, 퍽, 퍽, 퍽
“나! 왜! 씨발! 나쁜 사람! 만드 냐고!”
안희운의 구둣발과 욕지기가 박자를 맞추어 정명석의 몸통에 꽂힌다.
“욱으...”
정명석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 하고 쓰러진다.
“하아... 하아...”
정명석에게 발길질을 하느라 숨이 가빠진 안희운이 넥타이를 풀어낸다.
정명석은 몸을 떨면서도 다시 엎드려뻗친 자세로 복구한다.
“제대로 해. 이제 살리나 죽이나 상관도 없어. 하여간 그 새끼 못 치우면 네가 수조 들어가는 거야. 알겠냐?”
안희운의 말에 사색이 된 정명석이 두려운 눈빛으로 안희운을 올려다본다.
“알겠어!?”
“예.옙!”
* * *
사마귀를 닮은 거대한 몬스터의 시체를 헬기에 싣고 회사로 날았다.
회사에 도착하니 이미 퇴근시간이 넘어 있었기에 퇴근을 했다.
‘캬, 역시 이 맛에 공무원 하는 거구만~’
몬스터의 시체는 다른 팀원들이 연구실에 넘겼고, 칠성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차려준다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간단하게 라면으로 때웠다.
오늘 저녁엔 메인 디시를 준비해놓았기 때문이다.
“캬~ 이게 얼마만이냐.”
칠성은 내방 책상에 아까 던전에서 훔치듯이 갈무리 해 놓았던 연보라 빛의 마석 두덩 이를 얹어놓았다.
먼저 한쪽 마석을 작은 구슬만큼 떼어서 먹어보았다.
으득 으드득.
입안에 달큰한 향이 퍼진다.
마석은 정제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결과물이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된다.
물론 마석 정제술의 수준이 높을수록 기본적으로 마나의 순도가 높아지고, 섭취가 용이해 지는 등의 공통된 특성이 있었다.
그 외에는 익힌 마법의 종류에 따라서 조금 달랐다.
마석 정제술은 일종의, 술사 자신의 몸을 필터삼아 대상의 마나를 하나의 물체(오브젝트)화 하는 기술이다.
즉 필터의 종류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청마법사가 추출한 마석은 청마법사 본인의 마력의 영향을 받아 정제된 마석도 청색을 띄게 된다.
예상 할 수 있다시피 성직자가 추출한 마석은 황금빛을.
흑마법사가 추출한 마석은 보랏빛 계열의 색을 띄게 된다.
이 외에 서로 달라지는 특징으론 ‘맛’ 이 있다.
‘음~ 맛나다.’
이건 시전자의 대상에 대한 ‘인식’ 이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
칠성이 만든 마석은 대게가 포도 사탕 맛 이었다.
혹은 포도 사탕이 아니더라도 대체적으로 포도계열 향이 났다.
이는 칠성이 마석을 보면서 ‘포도사탕 같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포도사탕 같이 생겼다’라고 마석을 인식하는 사람이 마석을 만들면 실제 결과물인 마석에서 포도사탕 맛이 나게 되는 것 이다.
이건 사실 우연히 얻어걸린 건데,
칠성의 경우엔 운이 엄청나게 좋은 편인 것 이다.
스승이 정제해서 내미는 마석을 보고 순간 ‘포도사탕 같다’ 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까지 고정된 이미지로 이어져 오게 되었다.
이 초기 인식의 차이에 따라 어떤 마법사의 마석은 돌멩이 맛이나 재수 없는 경우 염소똥 맛이 나기도 했다.
스승의 마석은 계피 맛이었다.
“뭐, 이정도만 먹어두면 당분간은 괜찮을 거 같은데.”
칠성은 마석 두 개 중 하나를 반쯤 떼어먹고, 나머지를 재 정제하기 시작했다.
재정제 해내려는 건 이것보다 상위의 마석인 압축형 마석이다.
고압축 마석의 경우와 비슷한 정제술 이지만 훨씬 더 자비로운 방식이다.
본래 마석이 가진 마나의 약 20%가 증발해버리지만 크기는 주먹보다 더 큰 것이 엄지손가락 만해진다.
고압축 방식은 이것보다 더 어마어마해서, 칠성이 가지고 다니는 20cm 길이에 손가락 두께정도 되는 고압축 마석이. 정말로 자동차 크기만 한 일반 마석에 해당하는 마력을 품고 있었다.
‘어쨌건 그건 아껴야하고.’
코코가 괜히 환장을 했던 게 아니다.
칠성이 누나의 눈물에 홧김에 써버리긴 했지만 정말로 아끼고 아껴둬야 할 물건이었다.
하여간, 초고압축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휴대하기 용이하다.
칠성은 눈앞의 자그마한 보석같이 빛을 내는 마석 세 개의 젤리같이 미끈해진 표면을 어루만졌다.
살짝 급한 일이 생기거나, 마나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도 이놈들만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 될 것 이다.
마석이야 말로 진정한 다다익선. 쌓아두면 무조건 좋은 현찰과 같은 재산인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