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S1 : 10화
칠성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방을 치웠다.
“허이짜~”
아무리 잡동사니를 정리해도 공간이 모자라서 책상을 침대위로 올려버렸다.
“공간은 됐고...”
사실 뭘 할지는 마음속으로 이미 정해두었다.
어차피 칠성의 누나 칠선은 자력으로 면접장까지는 쭉쭉 올라간다.
예컨대 면접장에서 면접관들의 마음을 두말없이 사로잡을 수 있다면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 이다.
그리고 그러는 데엔 정말로 확실한 방책이 있다.
‘마력이 좀 간당간당 한데....’
부족할 것 같진 않지만 체내에 남아있는 마력에서 이걸 하고나면 남을게 거의 없을 거 같았다,
헌터로 활동하려면 어느 정도 마나는 있어야 하니 내일부터라도 바쁘게 수급을 해야겠다.
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명을 줄이고 방의 비워둔 바닥 가운데에 초 하나를 켰다.
“*보이드*”
칠성이 보이드에게 명령하는 순간 칠성의 의도를 마음속으로 읽은 보이드가 순식간에 초의 등잔 밑의 그림자를 여러 갈래로 뻗어 기하학적 문양의 그림자를 바닥에 아로새긴다.
소환진이다.
“*나와라. 서큐버스 코코*”
쥐이이잉-.
마법진이 칠성의 마나로 인해서 보랏빛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붉은빛의 안개가 법진으로 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으으윽-.
키 약 180cm 의, 작은 뿔과 날개, 날렵한 꼬리를 지닌 악마의 실루엣이 법진으로부터 솟아났다.
파-앗.
다음순간, 실루엣이 꽃잎같이 깨져 흩날리며 칠성이 소환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짜잔! 마계의 아이돌 코코★ 등~ 장!”
“야, 너는 여자애가 옷을”
“아앙! 주인니임!”
당장이라도 젖가슴이 튀어나올 것 만 같은 말도 안 되는 파격적 노출의 복장을 입은 코코가.
칠성이 채 제대로 타박하기도 이전에 아양을 피우며 칠성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소용없으니까 놔라, 어?”
50년 만인가? 그대로구만 그대로야.
코코는 문자 그대로 몽마다.
잠시라도 방심하게 만들어 마력을 홀랑 뺏어 가는 게 이 녀석의 주특기다.
칠성이 이런 뻔한 수작에 정신을 놓을 리 없다.
“아~잉. 코코는 서운하와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할머니. 서운하와요가 뭐야 서운하와요가. 요즘 대체 누가 그런 말투 써?”
젊디젊은 외모지만 코코의 나이는 대략 1800살.
칠성이 600살이 넘은걸 고려해도 너무나도 연상이다.
“참~나, 주인님두. 괜히 그러신다?”
“주인님 아니고 계약자. 계약자님. 어?”
외모는 그냥 길쭉길쭉한 백인이다.
키도 칠성보다 훌쩍 크다.
미녀라면 기가 막히게 미녀이다.
그야 물론 얘네 종족의 특성 자체가 이러니까.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왜 이런 수작을 부리는지 뻔히 아는 데야 뭐, 초반 수 십년은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말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았다.
“씽. 왜 불렀어?”
할거 다 하셨는지 팔짱을 턱 끼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물어온다.
“너 그거, 사랑의 묘약인가 미약인가 뭔가 있지 않냐?”
* * *
“아~열정의 미약 말씀이시구나?”
“열정...? 열정이었나?”
무슨 네이밍 센스가 그렇지?
에너지 드링크 같은 이름이군.
“네에, 제아무리 목석같은 남녀도 한 병만 있으면 아~주 열정적인....”
“아...아니 설명은 됐고!”
칠성이 묘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혀로 입술을 핥는 코코를 말렸다.
틈을 줄 수가 없고만?
“그건 왜요~?”
상체를 칠성 쪽으로 들이밀며 묻는다.
“쓸데가 있어.”
“쓸데라~? 여자 친구우~?”
굽이 높은 부츠를 또각 거리며 왼팔을 가슴 밑에 괴어 다른 팔을 잡고, 오른손으론 자기 옆머리를 매만지고 꼬며 칠성의 주변을 둥글게 돌며 걷다가 갑자기 확 얼굴을 들이밀며 묻는다.
“어떤 여자야?”
“됐고, 이거면 되지?”
칠성은 대답도 없이 품속에 숨겨둔 고 압축 마석 세 개 중 하나를 꺼냈다.
검보랏빛의 광체, 약 20cm 길이, 손가락 굵기 정도의 굵기, 겉에는 밑기둥은 칠성의 사인이 포함된 금장으로 장식되어있다.
이미 그 순도가 극히 높은 1등급 정제 마석을 다시 한 번 고도로 압축한 마석이다.
압축하는 과정에서 기존 마력의 약 80%가 증발되어버리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아이템이다.
‘아깝다 아까워.’
그럼에도 이 비효율적인 아이템을 가지고 다닐 수 밖에 없는 건 일종의 호신용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이세계에서의 칠성은 적이 셀 수 없을 지경으로 많았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대규모 마법대전을 대비해야만 했다.
“아... 이정도면.”
“씁!”
칠성은 거의 반사적으로 마석을 핥기 위해 혀를 드미는 코코를 코를 때려주려는 듯한 동작으로 저지하고, 마석을 손바닥에 대고 분질렀다.
또각.
“이정도면 되지?”
“에게~~?”
손톱만한 길이의 압축 마석을 받아든 코코가 인상을 찌푸린다.
“조금 더 쓰시지?”
“됐다. 됐어. 내가 호구냐? 필요 없으면 내놔.”
“아니, 아뇨~. 그런 게 아니구...”
칠성이 줬던 마석을 다시 뺏으려 하자 얼른 챙겨들더니 입에 쏙 넣는다.
오독, 오도독.
“하으으으으아아아앙......”
기묘한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부르르 떤다.
그와 동시에 붉은색 계통이던 코코의 머리와 눈썹이 뿌리부터 흰색빛깔로 물들어 백발로 변한다.
외관도 골격이 변하고 얼굴도 묘하게 인상이 변했다.
더 도도해지고 색기가 충전된 거 같은 느낌?
간만에 보는 마력 완충상태의 코코.
“음~ 마신님이라도 홀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
그러고는 만족했는지 허공에서 붉은빛 연기와 함께 미약이 담긴 병을 소환해 칠성에게 쿨하게 건네준다.
“즐거운 사랑하시길.”
샐쭉하게 윙크와 함께 손바닥 키스를 날리며 보이드가 만든 마법진 속으로 녹아들어가듯 사라진다.
“휴~”
이걸로 한건은 됐나?
향수병에 찰랑이는 분홍색 액체가 LED 불빛에 반짝인다.
순도 100%의 몽마가 만든 비약.
‘이정도면 뭐...’
성형이 대수냐, 면접관이건 같은 응시자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덤벼들 것 이다.
편법이기야 하지만 늘 정도로만 살아왔던 누나에게 이정도 보상은 괜찮다 싶거든.
한번쯤 ‘운’ 이 따라줘도 괜찮지 않을까?
동생이 만들어준 운이라도.
칠성은 누나 방의 화장대에 비약을 올려두고 꼭 면접 갈 때만 뿌리라는 메모도 남겼다.
“끄으으응....”
“음....”
잠든 누나가 신음한다.
저거 저거, 술도 못 하는데 얼마나 마신건지.
깨어나면 고생 좀 하겠는데....
“쯥.”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지우고 누나 방을 떠난다.
“잘 자.”
차캉- 차캉- 차캉-
“멋있게! 자신감 있게!”
다음날 서울의 한 스튜디오.
칠성은 헌특부 장관의 지시로 홍보에 쓸 사진을 촬영 중 이었다.
새하얀 스튜디오 배경으로 사진촬영 감독의 지시에 따라 각종 포즈를 취했다.
‘이게 대체...’
사진 모델은 팔자에 없는 줄 알았는데 진짜 별거 다 해본다. 오래살고 볼 일이다.
“스마일~ 스마일~”
사진사가 애 달래듯이 지시한다.
이상하게 평소엔 안 그런데 누가 시켜서 그런지 뭔가 어색해서 표정이 제대로 안 지어진다.
“아유~ 칠성씨 너무 좋다.”
사진사라는 종족(?)은 어디서 사람 조종하는 교육이라도 받는 걸까? 어르고 달래며 대체 몇 장을 찍는 건지 모르겠다. 이까지 거 대충 좀 하지.
“이번엔 솜이 씨랑 같이 포즈 취해볼까요?”
칠성이 양 팔을 보디빌더처럼 들어 올리고 한솜이가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는 등 컨셉 샷이 이어진다.
“이번엔 마지막으로 코믹하게 해 볼까요? 어? 이건 광고에 안 나갈 거니까 마음껏 망가져 봅시다!”
휴, 드디어 마지막이란다. 빨랑하고 끝내자.
“에브베~”
마지막이라니까 얼른 한 장 쥐어 보내자 라는 생각으로 코믹한 포즈를 취해 보인다.
찰칵!
휴~ 지친다.
그렇게 스케줄을 끝내고 헌특부로 돌아왔다.
“어? 올라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스마트 폰을 조작하던 한솜이가 말했다.
“이거 봐요.”
음? 촬영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광고가 떴나?
빠르기도 하네.
헌특부 언플 속도는 완전 LTE 구나 LTE?
...LTE 맞던가?
“음...”
한솜이가 보여주는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데...
대형포털 메인광고에 칠성의 사진을 포함한 광고가 올라와있다.
문구는 ‘여러분의 든든한 방패 헌특부’
심지어 칠성이 메인이다.
그런데...
“킥킥킥...”
한솜이가 입을 가린 채 숨을 죽이고 웃는다.
“아~ 진짜, 이 감독님이?!”
이런 덴장. 이게 뭐야?
마지막에 장난삼아 찍은 엉망으로 망가진 사진이 메인으로 들어가 있다.
“이거 전국에 깔리는 거죠?”
“어우~ 그럼요~~”
대답하는 한솜이는 싱글벙글 이다.
“칠성씨 인기 스타 되겠네~”
한솜이가 놀리듯이 그런다.
“에휴!”
이런저런 사이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특헌부 헌팅 팀은 지정 3교대로 운영된다.
근무시간엔 출동에 대기하며 출동이 없을 땐 체력 트레이닝, 포지션 트레이닝이나 도감 밑 보고서 작성을 한다.
칠성이 속한 3팀 경우엔 운이 좋게도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 이미 오후 3시니 대충 사무실에서 시간이나 때우다 가면 될듯하다.
“아이고~ 회사에 나오긴 나오시네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칠성을 곁눈질 한 김태홍이 비꼬는 말을 툭 던진다.
* * *
“뭐 문제 있나요 태홍씨?”
“아뇨? 그럴 리가요? 우리 부서 최고 스타랑 같이 근무하는 영광을 누리는데?”
칠성이 되묻자마자 철판을 깔고 대답하는 김태홍.
허~ 이놈 봐라?
대체 멀쩡하게 생긴 놈이 심사가 왜 이리 꼬였지?
어린놈이 어린마음에 지X하는구나 하고 귀엽게 봐주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없이 베베 꼬인 어린놈의 심사에 열이 훅 뻗친다.
심사가 꼬인 것도 꼬인 거지만 뭐 이리 매너 없게 되먹지 못한 놈이 있지?
대체 사회생활 하는 놈이 이렇게까지 대놓고 맥이는 건 날 완전 X밥으로 아는 거 아닌가?
“왜 그렇게 보십니까? 잘생기긴 했죠 제가?”
칠성이 노려보고 있자 넌지시 너스레를 떤다.
‘크~아! 극혐! 저 새끼를 대체 어떻게 조지지?’
흑마법사가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지 뇌리에 제대로 각인시켜줘야 할 텐데? 어?
탁.
“그 새끼 내가 날 잡아서 조진다.”
집에 도착한 칠성이 시켜먹은 짬뽕을 비우고 식탁에 빈 그릇을 탁 내려두는데 현관문을 열고 누나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헉. 이거 네가 다 먹은 거야?”
“쩝쩝쩝. 어.”
누나가 그릇들을 보고 기겁을 한다.
뭐 별로 시키지도 않았구먼, 먹는 걸로 타박은.
유산슬에 탕수육, 고추잡채랑 마파두부, 칠리새우에 쟁반 짜장, 볶음밥에 짬봉.
겨우 요정도 먹었을 뿐인데 뭐.
중식은 원래 이렇게 먹는 거 아닌가?
‘마나는 쥐꼬리만큼 차는군.’
어쨌든지 비효율의 극치인 고압축 마석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
그건 정말 비상용인 거니까.
최대한 먹는 걸로 때워보자.
“너 그러다 체한다?”
“안채해~ 신경 끄셔.”
“아 맞다. 칠성아 그거 뭐야? 내 화장대에 그거 네가 갖다 둔 거 맞지?”
“엉. 그거~ 면접 보러갈 때 뿌려봐.”
“그게 도대체 뭔데?”
“사랑의 묘약.”
“뭐?”
누나가 깔깔 거리며 웃는다.
흠 뭐, 난 사실대로 말해줬을 뿐인데 왜 웃지?
“다 먹었냐?”
거실 소파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칠성을 부른다.
“장기나 한판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