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S1 : 9화
* * *
“이놈들이 방패에 심장과도 같은 놈들이죠.”
조소장이 손바닥만 한 케이스를 칠성의 방어구 옆구리 부근에 있던 접합부분에 탈그닥 소리가 나게 끼워 넣었다.
“이게 뭐죠?”
케이스를 젖혀보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반지였다. 그것도 열 개나.
“반지하나를 손에 끼워보세요.”
뜬금없이 반지라니...
반지라고 해도 반지치곤 상당히 큰 링이었다.
건틀릿덕에 두꺼워진 손가락 위로도 쑥 들어갔다.
“어라?”
반지를 손가락 부근으로 밀어 넣자 마치 반지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손가락 크기로 줄었다.
‘이제 뭐 이 정도는 크게 신기하지도 않군.’
“오우... 안 좋은걸 고르셨는데?”
조소장이 칠성이 약지에 끼운 붉은색 보석의 반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걸로 낄까요?”
“아뇨, 뭐 안 될 거 없죠. 그 반지 낀 손으로 방패를 쥐고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어 보세요.”
조소장이 시키는 대로 반지를 낀 손으로 방패의 손잡이를 잡고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자 신기한일이 일어났다.
방패 테두리부분에 새겨져 있던 태양 모양의 양각 부분이 서서히 빙글빙글 돌아가고, 테두리 양 끝 방향에 있던 둥그런 구슬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력을 넣을수록 빛과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방패 위에 붉은색 빛의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이다.
지이이이이-.
“옵니다~~”
내 옆에 조소장이 양쪽 귀를 막았다. 뭐지?
“아 설마?”
지우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양귀를 틀어막았다.
뭐지, 뭔데 저러는..
구우우우우-
끼에에에에에엑!!!
다음순간 엄청난 음압과 함께 방패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연구실의 전등이 껌뻑이고 멀리 있던 연구진들이 귀를 막고 소리 질렀다.
“헉!..허억.”
어우씨, 뭐야 이게!
칠성은 잽싸게 방패에서 손을 땠고, 떨어진 방패는 바닥을 구르며 서서히 가동을 멈췄다.
“이게 바로 우리 방패의 핵심 기술이자 탱커의 진정한 소양. 타운트기술 입니다.”
“아우..아악.”
아직 멍멍한 귀를 손으로 두드리는 칠성에게 조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수한 초음파와 마나 파장을 발생시켜 방패를 몬스터의 천적으로 둔갑, 몬스터의 공격성향을 탱커에게 집중시키는 방법이란다.
“야... 하긴 이따위 소리면 저라도 패고 싶긴 하네요.”
지우혁이 자기 귓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시며 거들었다.
“반지의 종류는 총 열 가지. 한 번에 네 가지 까지 조합하는 게 가능합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개에 끼우면 되죠.”
어우...머리야! 아직도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보통의 경우 초음파는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범위인데, 빨간색이 하필 사람에게도 들리는 대역의 주파수라는 것이다.
“몬스터에 따라 반응하는 초음파가 다르고요, 도감에 반응하는 초음파들이 정리되어 있으니 틈틈이 도감을 보시고 익혀야합니다.”
그러면서 준비해놨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준다.
군용 케이스에 담긴 스마트폰이다.
“뭐죠 이게?”
“헌터폰 입니다. 헌특부 직원들은 보안 때문에 이 전용 스마트 폰만 사용해야 해요.”
패드를 켜자 검은 화면에 황금색 치우천황이 뜨더니 이내 각종 몬스터 정보가 담긴 화면이 나온다.
장수풍뎅이 같이 생긴 괴수의 정보 밑쪽에 [타운트 컬러 : 빨강 +초록] 이라고 적혀있는 게 보인다.
‘이런 식이란 거구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세계에서 독특한 기합으로 몬스터의 주의를 끌던 원시부족이 생각난다.
아마 그들은 타운트 기술과 비슷한 걸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것일 것이다.
“적제 적소에 필요한 타운트를 걸어주는 게 진정한 탱커의 능력이죠.”
이해했다.
잘못된 타운트로 잘못된 탱킹을 하면 몬스터가 탱커를 무시하고 다른 포지션의 아군을 공격하게 될 수 있다.
‘까다롭구만...’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잠시 만요, 이런 식이면... 총 10개면... 4개까지 조합이 된다면....”
칠성이 손가락을 펴며 계산하자 조소장이 거든다.
“총 379가지 조합이 가능하죠. 다만 우리가 확인한건 40가지 조합입니다. 뭐, 나머지는 미지의 몬스터를 위한 거랄까요.”
조소장이 눈을 크게 뜨고 양쪽 손가락을 파닥거리며 흥미로운 일이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린다.
“어차피 문에는 종류가 있고, 어지간해선 해당하는 문에선 해당하는 몬스터만 나오니까요. 문에 진입하기 전에 문 종류를 보고 타운트 컬러를 외워 들어가면 뭐...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예, 뭐 그 정도야.”
“얌마 이거 잘못하면 클~~나.”
지우혁이 미심적다는 듯 목 긁는 소리를 냈다.
“걱정 마셔~.”
고등학교 때 칠성의 모습만 아는 지우혁 입장에서야 괜히 하는 걱정이 아니겠으나,
과거 지구에서의 고교생 김칠성과 달리 지금의 칠성에게 있어 암기는 오히려 초특기다.
이정도야 뭐.
“아. 조직검사 좀 해도 될까요?”
자리를 파하려는데 조소장이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 말했듯 10톤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칠성의 신체는 정말로 연구대상이란 소리다.
“예, 뭐....”
어차피 몸에서 떨어져나간 조직엔 흑마력은 남아있지 않을 것 이다.
흑마법사임을 들킬 걱정은 없다.
혹시 행여나 마족의 DNA를 분석해내면 어쩌나 싶긴 하지만.
마족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구이니 그저 특이한 능력자의 체형이라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칠성은 조직검사에 흔쾌히 응했고,
조소장을 따라 온 연구원이 기다란 창 같은 주사기로 칠성의 어깨를 찌르더니 살점을 떼 갔다.
“어우씨!”
“하하하하. 아프죠?”
조소장이 놀렸다.
“가자.”
거즈로 상처부위를 문지르는 칠성에게 지우혁이 말한다.
“그려.”
퇴근한 칠성은 지우혁과 포장마차에서 개불로 한잔 한 뒤 집에 돌아왔다.
‘마나를 좀 쌓아놔야겠는데.’
약간의 문제에 부딪혔다.
흑마법사와 원소마법사, 혹은 청마법사로 불리는 자들과의 결정적 차이는 마법의 방향성이다.
청마법사는 자연과의 호흡, 명상 등으로 체내에 마나를 축적하는 방향을 지향했고, 그 결과 도핑 기술은 흑마법사만큼 발달하지 못 했지만 명상과 호흡을 통한 마나 수급이 장기가 되었다.
반면 흑마법사의 조상들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는 마나가 잠재되어 있는데, 흑마법사의 조상들은 한세월 호흡으로 대자연으로부터 마나를 흡입하는 대신 훨씬 더 간편한 방법을 추구했다.
그냥 생명체를 죽여, 그 생명체의 마나를 갈취하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여기가 지구라는 거지.”
이세계에선 정 궁하면 일반적인 몬스터나, 길가다 근처의 고블린떼를 몰살하고 그들로부터 마석을 추출해내도 충분히 수지타산이 맞았다.
오히려 공익적인 활동이 아닌가?
다만 문제는 여기가 지구란 건데...
추출하는 마석은, 그러니까 생물체가 내제하고 있는 마나의 양은 생명체의 종류별로 달랐다.
길 가던 똥개는 집체만한 녀석을 죽여도 손톱만한 마석이 나오는 반면, 몸집이 거대한 드래곤은 그렇게나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죽이면 몸집의 수 십 배에 해당하는 마석을 얻을 수 있었다.
성기사들에게 추방당하기 직전에 모았던 그 마석의 산도, 그린드레곤 한 마리를 갈아 넣어서 생긴 산이었다.
그런 마나 친화적 생물체를 어디 구할 수도 없고...
일반적인 동물들을 죽여 봐야 마나를 얼마나 추출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고, 더군다나 설사 엔간한 양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아무데나 가서 동물들을 학살 하는 것도 좀 그랬다.
지구에서 그나마 마나 순수도가 높은 생물이라면 직접적으로 마나를 운용하는 인간 능력자들.
그러니까 헌터들이겠지만 칠성은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될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처먹는 걸로 때워볼까?”
식食마魔 일체.
연금술로 인해 절반이 마족화된 칠성은 마력을 먹어도 배가차고, 음식을 먹어도 마력이 찼다.
‘마석에 비해서야 미미하긴 하지만.’
음식이라도 잔뜩 먹으면 숨통이 트일 정도의 마나는 쌓을 수 있다.
늘 비상으로 가지고 다니는 비상 마석을 쓸 거 까진 없다.
어차피 마법 대전을 할 일도 없으니 그건 아껴두고 처먹는 걸로 버텨보자.
칠성이 그런 결론을 내고 있는데 칠성의 누나가 들어왔다.
“으왕! 칠성아아아아~!”
잔뜩 술 취한 누나가.
* * *
“칠성아아아~!”
“아!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칠성이 현관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걸어 들어오는 누나를 얼른 달려가서 받았다.
“에궁 우리 동생~~ 동새앵~~ 누내가 우리 칠성이 을매나 사랑하는데~~어??”
“알았어 알았어~~으쌰”
술주정에 대강대강 맞장구 쳐 주며 누나를 누나방 침대에 눕혔다.
‘웬 술을 이렇게 먹었데냐.’
이러던 누나가 아니었는데.
오히려 술 먹는 거 되게 싫어하지 않았던가.
누나는 이제 스물여덟.
이름만 대면 아는 4년제 대학을 나왔다.
인문계열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공부와 담을 절반쯤 쌓았던 칠성과는 달리 똑똑한 누나는 늘 수재였는데.
“끙...흑...칠성아...흑....”
새롱새롱 잠에 빠질 거 같던 누나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늘 누나는 면접을 보러 갔었더란다.
본격적인 구직활동도 벌써 몇 년 차.
다가온 것은 벌써 3차 면접.
이력서만으로 떨어진 수많은 곳과 면접에서 떨어진 십여 개 기업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정말, 정말 됐다고 생각했단다.
하아... 청년 실업이 몇 만이다 몇 만이다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칠선의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그보다, 3차 면접?
대체 뭐하는 회사 길래 면접이 3차까지 있고 거기다 사람을 떨어뜨리기 까지 한단 말인가?
도대체 신입사원을 3차까지 면접을 볼게 뭐가 있다고?
모아두고 장학퀴즈라도 하는 건가?
칠성은 본인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괜히 심사가 뒤틀렸다.
“누나....”
뭐라고 위로의 말을 던져야 할까?
나 이런 거 잘 못하는데.
“누나...누나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나도, 나도 잘될 줄 알았어!”
누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 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스펙도 더 쌓을게 없는데.”
충격이다.
칠성은 누나랑 10년 넘게 살았지만 누나가 우는 모습 자체를...
적어도 철 들 뒤에는 처음 본다.
대체 취직이 뭐 길래 누나가 이다지도 비참하게 울게 만든단 말인가.
“못생겨서 그런가? 성형을 할까? 나도 코에 뭐 좀 넣고 턱도 깎고 하면...”
“누나!”
칠성은 꼭 신들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누나를 보기가 너무 안쓰러워서 끌어안았다.
홧김에 하는 소리겠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다.
못생기다니.
“누나 이뻐! 이뻐 바보야. 그런 소리를 왜 해 대체?”
가슴이 철렁한다.
칠선이 비록 티비에 나오는 배우 같은 미녀는 아니지만, 학창시절에 칠성의 친구들도 어떻게 너랑 같은 핏줄이 저렇게 예쁘냐고도 했었다.
솔직히 사이가 안 좋았던 시기도 있고 칠성이 욕도 많이 했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욕먹을 얼굴은 절대로 아니다.
어디 강남에서 본 듯한 성형괴물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대체 얼마나 속상하면 저런 소리까지 할까.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아릿하다.
“미안해... 흐끅... 누나가 너무 못났다... 흐끅....”
“아니야, 아니야...”
“우리 칠성이만 있으면 되는데, 그지? 누나는...”
중얼거리면서 칠성의 뺨에 뽀뽀를 하는 칠선.
이전의 칠성 같으면 뭐하는 짓이냐고 버럭 성질을 냈겠지만 지금은...
누나는 진을 다 뺐는지 스르륵 침대위에 몸을 누이고 시체같이 잠에 빠져들었다.
“휴....”
이렇게도 약한 누나 모습은 처음 본다.
초등학생 때부터 반장, 회장, 뭐뭐...
칠성과는 다르게 늘,
간단하게 말해서 모든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이자,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친구.
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건들이면 깨질 것만 같은, 아니 이미 잔뜩 금이 간 것 같은 유리잔 같은 누나....
칠성은 차라리 자신에게 공부 좀 하라고 땍땍 대며 지랄하던 시절의 누나가 그립다.
누나의 백을 벽에 박아둔 못에 걸어두고,
겉옷을 대충 벗긴 뒤 이불을 덮어줬다.
“걱정마라 누나야.”
누나는 집의 기둥 같은 존재다.
뭐라도 해봐야겠다.
칠성은 누나 뺨에 뽀뽀를 돌려준 뒤에 누나 방을 나와 자신의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