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S1 : 7화
* * *
대한민국 헌특부 장관 안희훈은 자신 앞의 당돌한 신입사원의 태도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허허허, 뭔가요?”
그냥 우연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몸 좀 튼튼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까 탐지마법으로 체크해봤더니 흑마법을 익힌 녀석 같았다.
어떤 멍청한 그리스 예언가가 마왕의 강림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 이란 예언을 한 뒤,
바티칸을 중심으로 흑마법사들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 대중에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쪽에선 상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희훈은 고의적으로 흑마법을 숨긴 듯한 김칠성을 넌지시 봐 줄 의향도 어느정도 갖고 있었다.
자신역시 과거 흑마법을 익힌 전력 때문에 꺼림칙한 상황들을 겪었던 만큼, 인간적으로 신입이 흑마술을 숨기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대를 요청한 김칠성이 마치 안희훈을 협박이라도 하려는 듯 살기를 끌어올리며 취조하듯 물어오는 게 아닌가.
“장관님...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드릴말씀은 다 드린 것 같은데요?”
‘웃긴 녀석일세,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몸에게...’
헌특부 초창기땐 직접 괴물들을 상대하기도 했던 안희훈이다.
이정도 살기에는 끄덕도 없다.
김칠성도 은연중에 그 사실을 눈치 챘다.
그래서 이정도로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
‘이, 이게 대체?’
다음순간, 안희훈은 어마어마한 살기 앞에 숨을 멈췄다.
고작 신입이라고, 혹은 인간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위압감이 덮쳐왔다.
스-윽.
그 사이, 김칠성의 지시를 받은 보이드가 김칠성의 뒤통수를 찍고 있던 CCTV를 그림자로 가려버린다.
“이...이게 무슨 짓인...”
안희훈은 반사적으로 이변을 눈치 채고 뒷걸음질 쳤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장관실의 벽에 등을 부딪쳤다.
“장관님 제가 흑마법사라는 거 보셨지 않습니까?”
이상하게 확신을 가진 김칠성의 말에 안희훈은 당황했다.
아무런 시동어도, 캐스팅도 없이 발동한 탐지마법이다.
제 아무리 A급의 마법사라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탐지마법에 노출되었다는 걸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칠성이 넘겨짚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안희훈은 말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김칠성은 김칠성대로 열이 받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뻔히 탐지마법인 오라아이를 시전 해 자신을 훑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장관이 무슨 속셈인지 알 길이 묘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00년간의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이런 찝찝한 걸 그냥 넘겼다가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왜 거짓말을 하시죠?”
김칠성은 안희훈의 대리석 테이블 끄트머리를 잡았다.
“전 거짓말 하는 사람을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콰드드득-.
김칠성이 조용히 나직하게 말하며 대리석 테이블의 끄트머리를 맨손으로 한 움큼씩 떼어냈다.
괴물 같은 악력, 안희훈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안희훈은 몰래 자신의 발치의 긴급 호출 버튼으로 발을 가져갔다.
“장관님.”
파지직!
“흐, 흐익!”
안희훈이 버튼으로 발을 가져가는 순간, 버튼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저절로 폭파 돼 버렸다.
거기다가 기겁하는 안희훈의 몸을 누군가가 앞으로 떠밀었다.
안희훈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보이드가 안희훈을 김칠성 방향으로 떠미는 것 이었다.
“이...이게무슨.”
“장관님아!”
김칠성에게 드밀어진 안희훈의 얼굴 앞에 김칠성의 얼굴이 들이닥쳤다.
“무슨 속셈이십니까? 지금 제 성격 테스트 하십니까?”
콰아아-.
안희훈은 정신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몸을 장난감처럼 쥐고 흔드는 것은 둘째 치고, 김칠성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어둠의 기운은 뭐란 말인가.
마치 지옥의 사신을 앞에 둔 듯 날카로운 낫같은 김칠성의 시선이 안희훈의 심장에 박혀들었다.
마치 거대한 A랭크의 괴수, 아니 그보다 더 거대하고 강대한 존재와 종잇장 거리에서 눈싸움을 하는 듯 온몸의 진이 빠져나갔다.
“그..그어...그런 것 없습니다... 그.. 그저 김칠성... 님을 이용해 헌특부의 이미지 마케팅을 하고자......”
안희훈은 다급한 몸짓으로 자신의 스마트 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김칠성에게 동영상을 보여준다.
“이...이것 보십시오.”
열차에 뛰어든 여성을 구해내는 김칠성의 모습이 담긴 화면, 김칠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취조를 이어갔다.
“흠... 그건 그렇고, 제가 단순한 탱커가 아니라 흑마법사인건 아셨죠? 왜 모른 채하십니까. 탐지마법까지 써놓고?”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김칠성이 과민반응 한다 싶겠지만, 실제로 마법사들끼리 대놓고 상대를 향해 탐지마법을 사용하는 건 크나큰 결례였다.
탐지 마법이란 한마디로 상대가 어느 정도 강한지 가늠하는 용도가 주 용도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전투력을 알아본다는 것은 싸울 때의 승산을 알아보겠다는 의미이니,
여차하면 순식간에 목숨을 건 마법대전으로 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김칠성 씨가... 흑마법사인걸 알아챘지만. 숨기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서...말이죠. 저도 흑마법사 인지라...”
안희훈은 더 이상 김칠성이 넘겨짚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김칠성이 무얼 하던 더 이상 이상할 게 없다고 느껴졌다.
‘괴물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생각 뿐 이었다.
안희훈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던 김칠성이 안희훈을 놓아주었고, 다리가 풀린 안희훈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커헉....허억....허억....”
김칠성이 살기를 물리자 안희훈이 그제야 막혀있던 숨을 헐떡였다.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지는 않군요...”
김칠성이 한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담배 있으십니까?”
김칠성이 한숨을 푹 내쉬고 넌지시 물었다.
숨을 헐떡이며 식은땀으로 축축한 셔츠를 넥타이를 늘여 식히던 안희훈이 다급하게 일어나 안주머니의 담배를 꺼내 김칠성에게 건네주었다.
“불은요?”
헌특부 장관이 신입 공무원에게 담뱃불을 갖다 바친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안희훈은 그럴 정신도 없었다.
담배가 타들어간다.
사실 안희훈에겐 지극히 치욕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김칠성은 내심 속으로 안희훈에게 감탄하는 중 이었다.
‘기백’ 흔히 전장의 군인들이 내뿜는 살기는 그런 단어로 불리곤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야 그저 추상적인 표현일 뿐이나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김칠성에겐 기백이란 그저 뜬 구름 잡는 표현이 아닌 또 하나의 능력이요 적의 마음을 베는 칼 이었다.
흔해빠진 병졸이라면 방금과 같이 완전히 개화한 김칠성의 기백에 혼절이라도 했을 것, 워낙에 안희운이 버텨냈기에 김칠성도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진심으로 기백을 내뿜고 있었던 것 이다.
안희운의 마나의 총 수용 량도 평균적인 마법사를 상회한다.
인맥과 정치질의 산물로 얻어낸 장관이겠지만, 허울뿐인 장관은 아니란 소리다.
안희훈이 준 불로 담배를 빨아 삼키던 김칠성이 길게 연기를 뱉는다.
“장관님... 탐지마법이 얼마나 실례인 행동인지는 아시죠? ...저 비폭력주의자입니다 장관님...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눈에 띄는 행동이나 신분에 맞지 않는 행동도 안 할거구요... 전 조용히 회사 다닐 테니, 장관님도 그래주시면 됩니다. 오늘일은 비밀로 하죠.”
“예, 예...물론이죠.”
방금 전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안희훈은 그 누구보다도 눈치게임에 뛰어난 남자다.
이런 꺼림칙한 녀석을 건들이고 싶진 않다.
“허허, 긴장하시긴. 요거 감사하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김칠성이 담배를 장관의 대리석 테이블에 비벼 끄며 말했고,
이내 살기도, 옷깃도 한 번에 털어내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어 나갔다.
“사, 살펴 가십시오....”
김칠성의 등 뒤에 90도로 인사를 하고 있던 안희훈은 고개를 들었다.
털퍼덕.
“후우....휴우...같지도 않은 새끼가.”
가죽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뉘이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실제로 김칠성의 협박에 안희운은 당황했다.
물론 자신의 힘을 전력 개방한다면 김칠성은 힘도 제대로 못 써 볼게 뻔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김칠성은 자신이 예상 범주에 계산해 둔 레벨의 헌터가 아니었다.
계산에는 철저한 안희운, 그가 계산 밖을 벗어나는 변수에 대해선 취할만한 입장은 단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론 취한다.
만약 포섭이 가능한 상대일 것 같으면 나의 전력으로 바꿔버린다. 최소한의 출혈로 최대한의 이득을 보는 방법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거나, 그저 통제 자체가 힘들 것 같은 상대라면...
“어디서 좀 굴러먹다 왔나본데... 썩을 놈에 새끼가.”
그렇게 중얼거린 안희운이 품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냈다.
스마트폰이 유행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굉장히 구형 3G 폰이다.
그 핸드폰에 번호를 눌러 넣은 안희운이 수화기에 입을 댄다.
[예 보스]
수화기 너머에서 느리고 쉰 듯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생 좀 해라 명석아.”
[말씀만 하십쇼.]
“그 김칠성이라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주 신선한 개새끼가 있거든? 네가 가져다 써라.”
[헌터를 말입니까?]
“그래, 마법사니까 뒤탈 없이 준비 잘 하고... 명석아!”
[예?]
“어머니 잘 계시지?”
[걱정해주신 덕 분에 잘 계십니다.]
“그래 내가 언제 한번 찾아 뵈야지. 한번 보자. 알았지?”
[옙.]
범죄모의를 하던 두 사람의 통화가 안부전화로 끝을 맺는다.
안희운이 씩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에 띄운다.
“노란 싹은 싹일 때 뽑아야지. 밭 다 망치거든.”
취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부순다. 그것도 즉시.
그것이 이 자리까지 안희운을 밀어 올려준 원동력이었다.
* * *
기기긱- 터-엉.
칠성이 장관실 밖으로 나오자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칠성을기다리고 있는 한솜이가 보였다.
“기다리셨군요?”
“그럼요. 칠성씨 길도 모르잖아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몸을 싣는다.
“무슨 얘기 했어요?”
한솜이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온다.
칠성은 한숨을 쉬며, 뭐라고 둘러댈까 하다가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냥 뭐, 점수 좀 땄죠.”
뭐 크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잘 봐주십사 하는 인사보다는 반(?)협박이긴 했지만.
“아 정말요? 칠성씨 그런 거 못하게 생겼는데, 사회생활 좀 하시나보네?”
셀쭉하게 웃으면서 넌지시 묻는다.
명백하게 놀리는 말투다.
“뭐, 장관님이 저 담뱃불까지 붙여주셨는데요?”
“이야~ 진짜?”
“그럼~”
‘은근슬쩍 말 놓네? 그럼 나도 놔야지.’
뭐 칠성이 아주 없는 소리 한 것도 아니다.
불을 붙여주는 장관님의 손이 좀 떨리긴 했지만말이다.
한솜이가 팀장으로 있는 곳은 3층의 레이드 3팀이었다.
“장비들 무게도 있고, 레이드 팀은 저층을 쓰는 편이예요.”
총 15층으로 이뤄진 헌터 특별부 사옥은 1층 로비, 2~6층이 실제 현장 레이드를 담당하는 레이드 팀.
7층부터 15층 장관실 사이엔 각종 마법기술 연구팀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마법기술 연구라니, 뭘 하는 거죠?”
“아, 정말 잘 모르시는구나? ‘문’ 안에서 발견된 각종 아티펙트나 마법 물품 등을 재해석 하는거예요, 기술 추출도하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현대기 술이랑 재 접목도 하고... 오히려 그쪽이 핵심부서죠.”
소위 ‘드랍’ 으로 표현되는 던 전내에서 획득가능한 마법물품.
마법물품의 획득은 굉장히 드문 편이기 때문에, 많은 헌터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가 없단다.
해서 해석 가능한 마법 물품은 현대기술로 재창조해 양산 형을 만들어내는 게 주 역할인 부서라고 했다.
띵!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3층에 다다랐다.
“걱정 마세요. 좋은 분들이니까.”
드드득-.
레이드 3팀의 사무실은 매우 단촐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격자형의 파티션에 각각 분리된 널찍한 공간의 사무용 책상들 여러 개가 보였다.
자리는 일반적인 자리 네 개와 팀장용의 분리된 자리 한 개.
그래봐야 사람이라고는 한명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함께 하게 된 탱커 김칠성 씨예요.”
한솜이가 사무실에서 무언가 문서를 작성하고 있던 남자에게 칠성을 소개시켜줬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 너 여기냐?”
“김칠성?”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지우혁이었다.
헌터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또 한 팀일 줄이야.
“이야~ 그럼 니가 그 지강탱이야?”
“두 분 아는 사이예요?”
“뭐, 그렇죠.”
“그렇긴 뭐가 그래 인마~~ 이새끼 내가 엎어 키웠어요. 팀장님.”
“아하하, 정말요?”
“지랄~~”
칠성과 우혁이 투닥거리자 한솜이가 배를 잡고 웃는다.
지우혁과 칠성은 사실 초등학교 후반부부터 친구였다.
처음엔 칠성보다 훨씬 작은 꼬꼬마였던 지우혁이 중학교 때부터 쑥쑥 크더니 고등학교땐 키 185에 건장한 체격이 된 것 이다.
남자끼리는 좀 그런 게 있다.
덩치가 작고 그러면 무시당한다.
초등학교 땐 칠성이 은연중에 지우혁을 보호하는 느낌으로 다녔다면, 고등학교 땐 키 170에 멸치인 칠성 옆에 지우혁이 든든한 친구였다.
“그럼 우혁씨가 칠성씨 챙겨주면 되겠네요.”
‘뭐 나야 좋지.’
일종의 사수개념인가? 어색한 사이보다 지우혁이랑 붙어 다니는 게 낫지.
회사라고 양복을 입고 있는 지우혁의 모습이 뭔가 낯설면서도 대견한 칠성.
세월이 부쩍 흐른 느낌이다.
“아요~ 회사에서까지 업어 키우게 생겼네.”
“씁~ 까불고 있네! 지강탱님한테 짜식이.”
한동안 그러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고 웬 남자가 들어온다.
뭔가요?
하는 듯한 뚱한 표정으로 입에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기울이는 남자에게 한솜이의 설명이 이어진다.
“오늘부터 함께하게 된 김칠성 씨예요. 여기는 김태홍씨.”
“아~ 그분이요? 난 또 누군 가했네.”
한솜이의 소개를 받은 칠성이 반사적으로 김태홍에게 악수하자는 손을 내미는데 김태홍이 본건지 못 본건지 휙 돌아 자기자리로 가서 앉는다.
뭐지...?
칠성은 괜히 민망해서 들었던 손으로 뒷목을 긁었다.
“아~유, 유명하신 분이랑 같이 근무하게 되서 영광입니다? 이거.”
칠성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자기 모니터 화면에 집중하며 그렇게 말하는 김태홍.
‘저거 비꼬는 거 맞지?’
황당하네~~
칠성은 김태홍의 청색의 마나 아우라를 살펴보며 청마법사가 되면 사람이 싸가지가 없어지는 건지,아니면 청마법사가 워낙에 자연친화적이라 싸가지도 자연의 싸가지로 태어나는 건지 잠시 고민했다.
“이건 뭐 팀이 아주 슈퍼스타 팀이네 슈퍼스타... 우혁씨! 우혁씨는 뭐 할 거 없어요? 티비에다가?”
김태홍의 비꼬는 말에 한솜이가 움찔하는 게 보인다.
한솜이는 묘하게 이런저런 사건들을 통해 민간인을 구했던 전력이 있다.
바티칸 출신의 한솜이는 레이드로 출전 할 때 마다 바티칸의 기사를 상징하는 붉은 짧은 망토를 두르곤 했었는데, 그게 묘하게, 슈퍼맨 같은 슈퍼히어로 코스튬처럼 보였던지라 언론에 슈퍼걸 로 소개되었던 것 이다.
물에 빠졌던 어린아이를 구해 안고 있는 사진에, 어떤 기자가 생각해 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슈퍼걸’ 이란 제목.
그 이후에 헌특부 이미지 마케팅에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활약했던 이력이 있다.
‘여러분과 함께하는 헌특부’ 등의 피켓에 모델로 사용되어 전국에 깔린 것 이다.
그리고 김태홍이라는 마법사는 그 부분에 뭔가 유감이 있는 것 같았다.
“하하하... 글쎄요 저는 그다지.”
억지웃음을 짓던 우혁이 어깨를 으쓱 해 보인다.
‘한솜이는 팀장인데. 저렇게 막 대해도 되나?’
괜히 어색한 공기에 본인이 안절부절 못하는 한솜이가 안쓰러워 보이는 칠성.
* * *
얼마 뒤.
“저 새끼는 뭐가 문제냐?”
칠성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묻자 지우혁이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그게 꼭 김태홍만의 문제는 아니긴 한데...”
이어지는 설명은 이러했다.
헌특부의 헌터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높은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 이다.
물론 생명의 위협을 담보로 하지만, 그만큼이나 파격적인 혜택과 높은 연봉을 제공하는 직장이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고, 그래서 헌터란 직업이 만들어 진 것 자체도 짧은 기간이지만 헌터가 되기 위한 문턱이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는 것 이다.
물론 이렇게 문턱이 높아진 건 올바른 일이었다.
몬스터가 헌터의 마나를 흡수하면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는 ‘레벨업 현상’.
몬스터를 일정시간 내에 막아내지 못 하면 벌어지는 참사인 ‘몬스터 실체화.’
어느 경우를 봐도 어설픈 자가 헌터랍시고 덤벼들면 본인 목숨은 물론 팀원들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직업적으로 포장해도 이 일은 매일 야수와 대결해야하는 일인 것 이다.
김태홍은 그야말로 헌터교육기관인 헌터스쿨의 엘리트였고, 능력과 여러 경험을 쌓으며 헌터가 된 탓에.
제대로 된 절차도 밟지 않고 헌터가 된 칠성에게 불만이 있는 거 같다는 소리였다.
“야, 나는 그렇다 치고. 한솜이는?”
“한솜이 팀장님...은 바티칸 출신의 기사지.”
그간 헌특부는 오로지 헌터스쿨 출신의 사람만 채용하는 것으로 방침을 굳혔으나, 인력난의 해결을 위해 바티칸 출신 성기사들을 헌특부에 특별채용 했다.
“갑자기 ‘문’ 이 나타나는 숫자가 늘어났거든. 그렇다고 해서 레이드 팀 선발 문턱을 낮출 수 도 없고 말 야.”
굴러온 돌 인 셈 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그렇게 어린나이와 짧은 경력에 팀장자리를 꿰찬 게 실력보다는 ‘슈퍼걸’ 언플의 결과가 아니겠느냐 하는 소문이 붙었다는 거다.
그리고 김태홍은 그 루머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 듯 보였다.
“거 새끼, 더럽게 꼬인 놈이네.”
* * *
퇴근길.
칠성이 집으로 돌아가려면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공원을 지나 집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직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넓은 공원은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을 제외하곤 한밤 중 이었다.
트레이닝복을 뒤집어 쓴 채 개를 산책시키던 여자도 총총히 사라지고 어두운 공원엔 그저 인적이 드물... 어야 할 텐데?
“적당히 하고 나와라.”
멈칫.
언제 붙었는지 아까부터 칠성의 뒤를 따라오던 세 명의 수상한 인기척이 멈칫 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수대 뒤에 하나, 나무 펜스 뒤에 하나, 아름드리나무 뒤에 하나?
분수대 뒤에서 숨어있던 녀석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펜스 뒤에 있던 녀석과 나무 뒤에 있던 놈도 내 뒤에서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놈들은 하나같이 한손에는 야구배트를, 다른 손에는...
‘저거...뭐야?’
지이이잉-.
놈들이 한손에 쳐들고 있는 것은 엄지손가락 크기정도 되는 검은색 마름모꼴의 크리스탈 같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세 놈이 하나씩 들고 있는 그 물건들에서 서로 뻗어 나와 얽힌 마나의 선이 만든 삼각형이 칠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파칭!
약속한 듯 놈들의 손에 있던 크리스탈 조각같은 아티펙트가 깨어지자 순식간에 깨진 마나의 삼각형이 허공으로 승천하며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인다. 아니. 칠성 주변에 있던 마나를 태워버린다.
“마나 번? 씨바롬들이.”
우욱.
간만에 정통으로 마법에 노출되자 속이 뒤집혀 헛구역질이 나왔다.
놈들은 칠성이 고개 숙인 틈을 타 둔기를 들고 셋 방향에서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둔기를 든 장정 셋. 정신 못 차리는 마법사 하나.
콰드득!
“커억!”
털썩.
하지만 다음순간 바닥에 진한 키스를 퍼부으며 고꾸라진 건 둔기를 들고 덤벼든 세 놈 이었다.
칠성에게 덤벼드는 놈들을 향해 뻗어진 보이드의 세 손가락이 놈들의 명치를 정확히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씨바 진짜 내가 졸로보이나.”
칠성은 헛구역질 한 입 주변을 소매로 슥슥 닦으며 품안에 챙겨두었던 고 정제 마석을 하나 꺼내 아이스크림 빨 듯 쪽쪽 빨았다.
바X스를 들이키듯 기력이 회복되는 기분.
“개같...!”
퍼각!
욕지기를 하며 다시 배트를 들고 일어나서 덤비는 놈의 배트에 맞 주먹을 날리자 배트가 수수깡처럼 부러져서 날아갔다.
칠성이 멍하니 배트 절반을 들고 선 놈의 싸대기를 내리 붙이자 녀석이 다시 바닥에 볼을 부비며 행복한 꿈에 빠진다.
땡그당!
“흐...흐이이익!”
칠성의 등 뒤에서 배트로 내 뒤통수를 노리던 놈은 보이드의 활약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로로 갈라져 반쪽이 된 배트를 보고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배트를 떨어뜨린다.
“자, 둘이 사이좋게!”
칠성이 한쪽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던 세 번째 놈의 머리를 부여잡아 빈손으로 떨고 있는 놈의 명치에 머리를 매다 꼽았다.
“니네 뭐냐?”
뻥!
“아그극!”
칠성이 슬금슬금 일어나려던 놈들 중 하나를 발로 차 버리며 묻는다.
후우.
한 밤 중에 야구배트를 들고 덤벼드는 아리랑 치기들이야 별 관심 없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아티펙트를 준비 해 왔다. 칠성이 마법사, 아니면 적어도 헌터라는 걸 염두 해두고 습격을 했다는 거다.
타닷!
저쪽 멀리서 처음 쓰러뜨렸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아 새끼, 그거 그냥 누워 있지 좀!”
누가 봐도 덜 개겨야 덜 쳐 맞을 분위기 인데,
꼭 저렇게 눈치 밥 말아 먹은 놈들이 있더라.
“하~새끼. 얌전히 누워있지.”
칠성이 조용히 놈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고 검지 손가락을 놈을 향해 뻗어 총모양을 만들며 중얼거렸다.
치즈즈즈즉-.
다크볼트의 마법진이 손끝에서 아른거리나 싶더니 이내 어둠의 기운이 모여들어 응축된다.
“빵야!”
그렇게 응축된 어둠의 기운이 칠성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순식간에 검지손가락 끝에서 자그마한 어둠의 총알이 되어 허공을 가르는 파열음과 함께 허둥대며 달아나는 놈에게로 날아간다.
팟!
“끄아악!”
발목을 명중당한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털퍽 쓰러졌다. 고개를 슬며시 들고 구경하던 녀석들이 그 모습에 기겁하며 다시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고 기절한 척을 한다.
“후~!”
칠성이 어둠의 총알을 뱉어내고 따끈따끈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검지손가락을 후 불어준다.
“꼭~꼭 일을 성가시게 만들어요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