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S1 : 3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밥 더!”
저녁, 칠성은 허겁지겁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좀 무리하신 듯한 갈비찜과 조기구이 등을 먹어치워 대고 있었다.
이세계에서 600년 중 칠성이 최약체였던 초반 백년,
그리고 성기사 길리엄의 공세가 너무나도 심했던 몇 십 년.
이거든 저거든 아무 상관없이 초탈해 돈이고 여자고 관심이 안 가던 후반 150년을 제외하면 정말 온갖 산해진미를 먹고 다녔었다.
그래서 ‘집밥이 그리워요’ 고 뭐고,
그야말로 온갖 진미를 다 먹고 다니니,
집 밥 그거 뭐 별거 있었냐?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산해진미 조까’
다 필요 없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안데르센 여우의 포도 질이었다.
엄마 밥이 최고다.
“자자, 여기 더 먹어. 많이 먹어.”
“근데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칠성이 엄마가 주는 밥공기를 입에 처박는데 누나의 질문 재촉이 이어진다.
“빠지선.”
칠성은 그렇게 툭 내뱉었다.
생각해 봤다.
칠성이 여태까지 경험했던 일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쭉 말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 이다.
아 그거? 내가 학교에서 야자를 마치고 오는데... 갑자기 이세계에 있던 어떤 멍청한 흑마법사가 날 ‘칠성의 대마왕’ 으로 착각해서 소환했더라고?
말도 안 되지? 하여간 초반 2년 정도 이 양반이 이걸 인정 안 하고 내 기억을 깨우겠다며 온갖 술법을 다 동원한 거야.
덕분에 마나 수용량이 엄청 늘어났지만 뭐.
나도 처음엔 매일같이 그 양반을 욕했지만 또 2년 정도같이 있다 보니 정도 들고.
하간 기왕 그렇게 된 것 나한테 퍼부은 귀한 술법들이 아까워서라도 날 제자로 삼았는데.
어느 날 성기사 무리 – 그러니까 여기로 치면 경찰 같은 애들이 들이 닥친 거야.
알고 보니 흑마법이란게 불법이드라고?
무슨 예언자가 대마왕이 소환되어 이세상이 망할 거라고 했다 그러데?
엿 된 거지 뭐.
그때 스승은 죽고.
난 그대로 도망치며 살다가 어찌어찌 강해져서 마신도 때려잡고 불로불사가 되가지고 -.
어지간한 판타지 소설에서도 안 쓸 무리수 급전계 투성이였다.
아무리 가족이라 고야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들려주긴 조금 그렇다.
그리고.
‘그냥 몰랐으면 싶기도 하고.’
이들에게는 그저 고교생 김칠성.
집 안에서 대마왕이 될 필요는 없다.
“빠지서언?!”
“세상에나!”
“...어.”
가족들이 경악했다.
칠성의 아버지도 입으로 가져가던 수저를 멈췄다.
“학교에서 집에 오다가 납치당했어.”
뭐 일부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하교하다가 납치당했으니 말이다.
이세계로 납치당한 것 이었지만.
“맞고... 억지로 일하고... 그러다가 기회 봐서 수영해서 탈출했어.”
“이놈의 새끼들을!”
“아니 미친놈들이 남에 집 귀한아들을!”
아버지가 격분하며 식탁을 치고 일어났다.
가족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합심해,
납치범들을 신고해서 감방에 보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아유 됐어요. 됐어. 무사히 왔으니까 됐지!”
칠성이 괜히 자신의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인생을 낭비할 가족들을 진정시키느라 애 썼다.
“그래도 그런 게 아니지!”
아버지는 여느 때보다도 흥분하며 팔을 걷어 붙였다.
당장 칠성을 납치했다는 조직폭력배라도 찾아내서 주먹질을 할 기세였다.
“못 잡아~ 그런 거 못 잡는데. 우리나라 경찰들 뻔하지.”
그런 말로 가족들을 말렸다.
그저 나오는 데로 둘러댄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찰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몇몇 허접스러운 사건들로 인해서 칠성의 이 말은 제법 설득력 있었다.
실제로 빠지선에 납치당해서 아직도 못 돌아온 고등학생들도 많을 것 이다.
솔직히 경찰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냐?
띵!
“1급 현역입영 대상자입니다.”
몇 주 뒤, 실종 상태일 땐 뒷짐 지고 있던 나라가 실종 해제가 되자마자 보내온 신체검사에 응해서 방문한 검사장 컴퓨터가 신체검사 결과 1급 이라는 결과를 내뱉었다.
‘개...씨..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다!
* * *
<지강탱의 위엄ㅋㅋㅋㅋㅋ>
현장에서 촬영된 듯한 유투브 동영상.
‘지강탱의 위엄’ 이란 제목으로 게시되있다.
영상 속에는 멍하니 허공을 보며 멍때리는 김칠성이 보인다.
이내 민달팽이 형태의 괴수, 괴산토우가 김칠성의 등 뒤로 달려들어 집게발로 내려쳤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절망적인 비명으로 가득한 동영상.
영상을 찍던 카메라도 크게 흔들린다.
그런데...
멀쩡하게 다시 카메라에 잡힌 김칠성.
김칠성이 자신을 때린 괴산토우를 돌아보자, 무언가 위협을 느낀 듯한 괴산토우가 움찔한다.
마치 그게 멍청한 캐릭터를 타박하는 개그콤비처럼 보인다.
짧은 영상이 끝나고 밑에 달려있는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들.
[헉ㅋㅋㅋㅋㅋ왘ㅋㅋㅋㅋ위엄보소]
[ㅁㅊ캬~~ 헌터뽕에 취한다 ㅋㅋㅋㅋ]
[헌터 아닌 거 아니야??]
[ㄴ헌터는 맞지. 공무원인지 아닌지가 문제지 ㅋㅋ]
[ ㄴ위엄 존나 쩌는 거보니 우리나라 공무원은 아닐 듯.ㅋ]
[몬스터 멍 때리는 거 존나 웃겨 ㅋㅋㅋㅋㅋ]
페이스북, 각종 유머 게시판.
사람이 들어갈 만한 사이트의 메인엔 모두 장식되어있다.
그리고 이런 화면의 스마트 폰을 엄지손가락으로 넘겨보던 남자.
대한민국 헌터부 장관 안희훈.
“한솜이 팀장. 우리한테 필요한 게 뭔 지 압니까?”
“예?”
장관의 직속 호출에 잔뜩 긴장해있던 한솜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나라 헌터 이미지가 안 좋아요. 알잖아요?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 탓 하는데 뭐 있어...”
대외적 이미지가 안 좋다. 이건 나쁘다.
연이은 몇 번의 던전 사고로 나라가 하는 게 뭐냐, 헌터부서 민영화해라 등의 여론의 지속적 압박이 있는 상황이었다.
“언론에 휘둘리는 멍청이들...”
“...”
장관이 혀를 차며 비웃었다.
“영상 봤죠?”
“네...”
그런 상황을 탈출할 길!
“‘지강탱’ ‘지구최강의탱커’ 라고 인기가 엄청나. 이거야.”
“예?”
“바로 이거라고. 이 나라는 사실이 어떤지는 중요하지가 않아! 중요한건 이미지지. 이놈 잡아다가 ‘지구최강의탱커’ 라고 홍보 때리라고. 그림 나오잖아?”
스타 영입으로 세탁이다. 이미지 세탁.
“하, 하지만 어떻게... 찾을 길도 없구요...”
눈을 깔고 대답하는 한솜이.
장관은 그런 한솜이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다가, 이내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는 말했다.
“한솜이씨가 이 친구랑 일면이 있는 모양이니까 직접 맡아줘. 어떻게는 무슨, 우리나라에. 안되는 게 어딨니?“
“예..옙..”
한솜이가 떨떠름하게, 하지만 밝은척하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 * *
어느 한 술집.
“군대 가야 된다고~!”
“미친 크크크큭”
챙!
잔과 잔이 부딪혔다.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정을 두지 않는다. 쓸데없이 지켜야 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이게 지난 200년간의 칠성의 원칙이었다.
수도 없는 적들에게 좇기고 있었으니까!
그쪽 세계에서 지켜야할 것은 곧 약점이었다.
어쨌건 간에 생각 좀 해봤는데, 에라 뭐 어떠랴.
여기는 지구인걸.
페이스 북을 통해서 과거에 알던 친구를 찾아냈다.
그래봐야 보고 싶은 건 한명 뿐 이었다.
“마 대한민국 남자면 다 갔다 와야 하는거여~.”
칠성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는 이는 지우혁.
간단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 시절 베프다.
면도한 깔끔한 얼굴 시원한 인상, 훤칠하게 큰 키에 동그란 안경, 왁스로 머리를 세웠다.
그리고는 무서운 기세로 안주를 처먹는다.
“야 작작 좀 처먹어~”
“어? 아~ 크크크크. 야 걱정 말고 먹어 오늘 형이 쏜다!”
“엥?”
고등학생때는 컵라면 하나에도 빈대를 붙던 놈 이다.
근데 몇 만원 짜리 안주를 척척 처먹고 쏘기까지 한다고?
“너 돈 버냐?”
모를 일이다.
칠성 정도 나이면 군대 갔다 오고 이제 대학 다니거나 졸업할 즘이지만,
빨리 직장 잡고 일을 할 수도?
“아~? 너 진짜 모르는구나? 형 헌터야 인마~”
그러면서 여유롭게 끌끌끌 웃는다.
호오라.
그러고 보니 지우혁 몸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성기사의 금색도, 마법사의 청색도 아닌 흰빛의 꼬장꼬장한 마나가 느껴졌다.
‘소드 익스퍼트 같은 느낌인가.’
이세계에서 기를 운용하는 무인들이 풍기는 느낌의 순수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제법인데.’
물론 칠성의 레벨에서 놀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약하지만, 나름 상당히 수행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거 같았다.
“그래? 그거 돈 많이 버냐?”
헌터.
지구 곳곳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문’.
이 ‘문’ 속의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 국가에서 운영하는 괴물 퇴치집단. 일종의 공무원이다.
무려 6급 공무원.
칠성과 그날 마주쳤던 한솜이 란 여자는 상당히 유명한, 한국 헌터계의 슈퍼스타 였다.
“크크크크. 장난 없게 벌지.”
“그래...? 얼마나 버는데?”
해봐야 공무원이라는데 얼마나...
“연봉 1억에 인센티브로 건당 500에서 몇 천 정도?”
“뭐?!”
뭐야, 10년간격이라 인건비가 열배로 오르기라도 했나?
‘1억이라...’
큰돈이다.
아쉽게도 이세계에서 비상금으로 안주머니에 챙겨두었던 보석은 지구에선 값어치가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금 금 하는 거겠지.’
모르는 보석인 것 같았다. 없는 보석인건가?
하여간 취급도 안 해 줬다.
‘아~ 연금술을 배웠어야 하는데.’
쓰잘데기 없는 흑마법 같으니라고.
연금술 배워왔으면 그게 다 돈인 게 아닌가.
하여간 그런 일은 없었고, 덕분에 지금 몇 주 째 하릴없이 부모님 쌀독만 비우는 중 이었다.
소주가 쓰다.
“군대도 면제야.”
“군대도 빼줘?”
헌터는 6개월 이상 근무하면 군 면제 란다.
“너도 함 테스트 받아보던가. 혹시 모르잖아?”
“그래......”
‘아마 흑마술을 쓰면 되겠지만...’
흑마법을 쓰면 어지간한 몬스터 퇴치야 간단하겠지만,
성기사들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상황.
거기다 기가막히게도 지구에서도 역시나 흑마법은 금기시 되는 분위기였다.
언젠가 대마왕이 지구를 향해 쳐들어 올 것 이란 내용의 예언이 지구의 그리스 출신 예언가에게도 내려진 것 이다.
마왕의 소환술 이야 대놓고 흑마법 계통의 악마 소환술과 연관되어 있는 사항.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어느 대단한 미치광이 흑마법사가 대마왕을 기어코 지구로 소환해낼 것 이란 소리였다.
한마디로 흑마법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세상.
조용히 살고 싶다면 흑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숨겨야 한다.
‘근데, 숨긴다 쳐도...?’
흑마법 안 써도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이 안 날 수 가 없는 것이다.
사천왕들과 떠돌던 시절.
칠성은 사천왕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흑마법을 제외하고도 이런 저런 기술들을 사천왕들로부터 전수받았다.
격투기고 검술이고, 저번에 본 한솜이란 헌터를 보니 마법을 안 쓴다손 쳐도 칠성이 딱히 밀릴 거 같지는 않았다.
“좋아.”
딱.
소주잔을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쳤다.
결심이 섰다.
“뭐가 말야?”
“헌터.”
“응?”
“나도 한다.”
“엥? 니가~?”
“그래 새꺄~”
좋다.
실업자가 죄는 아는 세상이라지만 27먹고 편의점 알바나 하는 삶은 나도 싫다.
까짓 거 헌터인지 뭔지 되가지고, 부모님 호강도 시켜 드리고. 어? 그. 사회에 플러스적으로다가 애국도 하고.
‘군면제도 받고’
크크크크.
해 보자 이거다.
* * *
주말, 집 거실 한 켠의 PC앞에 앉았다.
[다음의 신청서 양식을 ...]
“흐~~~음.”
화면에 뜬 온라인 신청서에 양식을 작성한다.
헌터면허증은 헌터가 될 수 있는 능력자라면 누구나 발급 받아야 하는 것 이었다.
제대로 된 능력자라면 전신이 살인 무기와도 같은 것 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지만.
‘걸릴 일 이나 있긴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 도 사실이었다.
갑자기 길거리를 지나다가 경찰이 마나 측정이라도 해 온단 말인가? 어찌 보면 있으나 마나 한 제도 같지만 그래도 의무시되 있었다.
그리고 칠성의 경우엔 뭐, 국가에서 운영하는 헌특부의 헌터가 되려고 하는 것 이니 당연히 거쳐 가는 절차였지만.
“뭐해 우리 백수 동생?”
등 뒤로 다가온 누나가 뒤에서 칠성의 목에 팔을 걸며 말했다.
자기도 백수면서 괜히 한번 긁는다.
“허허, 취업 준비하지 우리 백수누나야.”
칠성이 목에 두른 팔을 놓으라는 뜻으로 손으로 툭툭 치며 대답했다.
칠성이 이세계로 소환 당할 때 고등학생 이었던 누나는 이제 28살의 취준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도 상당한 모범생이었으니, 이상할 것 없이 명문대에 진학에 성공하고, 학점도 우수하게 땄다는 모양인데, 계속해서 심해진 취업난에는 그마저도 소용없는 모양이었다.
“아~ 근디 이쉬키가?”
“컥! 놔!”
누나가 어금니를 물며 칠성의 목에 두른 팔을 조였다.
아 진짜, 이 여자 왜 이러지?
흰 피부에 찰랑찰랑 한 검은 생머리.
밖에서는 나름 뭐 청순한(가증스러운) 이미지로 인기도 있는 것 같지만 칠성에게는 우악스럽기 그지없었다.
“헌터 면허증?”
그러던 누나가 컴퓨터 화면에 눈을 주더니 눈이 땡그래진다.
“너 뭐 하는 거야?”
양 손으로 칠성의 얼굴을 꾸깃 구기며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선 눈을 맞추고 묻는다.
“헌터 할라고~”
“엥?! 너 제정신이야?”
“아 왜 시비야.”
“헌~터~? 킥킥킥킥.”
그러고는 저 혼자서 배를 잡고 자지러진다.
“야, 그것도 뭐 능력이 있고 그래야 하는 거야 마.”
엄청나게 무시하는 말투다.
“킥킥킥킥... 아흑, 아흑 진짜. 요즘 우울했는데 동생이 웃겨주는구나.”
어찌나 웃었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하~ 누나. 누나 동생 능력자 맞거든?”
“능~력~자~? 킥킥킥킥. 슈퍼맨이세요? 런닝맨이야?”
아놔 진짜.
칠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째려보자 제 결에 웃음을 멈추지 못 하던 누나가 차츰 차츰 웃음을 멈춘다.
그러고는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구기며 입술을 쭉 내밀더니 묻는다.
“진짜??”
“진짜지 그럼.”
“에이~? 니가 막 손에서 장풍 쏘고 그런다고?”
...장풍? 뭐 그런 걸 쓰는 능력자도 있나?
“누나, 옛 말에 이런 격언이 있는데 말야.”
“뭐? 뭔데?”
이거 인증 타이밍인가?
칠성은 엄지와 검지로 만든 브이를 입가에 대고 씨익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궁금하면 500원.”
“자.”
칠성의 손바닥엔 누나가 올려놓은 500원이 살포시 누워 있었다.
“잘 봐.”
뭐 별거 할 것도 없었다.
칠성은 가볍게 500원이 올려져있는 손의 손가락을 움직여 500원을 검지와 중지로 집었다.
그리고.
끼드드드득.
가볍게 검지와 중지를 오므려 500원짜리 동전을 절반으로 접었다.
“에?”
누나가 의심스럽다는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려 보였다.
“자.”
꽈드드득.
칠성이 절반으로 접힌 동전을 한 번 더 절반으로 접어 누나 손바닥 위에 놓았다.
“...?!”
의심스럽다는 듯이 접힌 동전을 펴보려 안간힘을 쓴다.
“뭐야, 뭐야 이거, 마술 같은 거야?”
“마술? 마술은 무슨~”
“너! 너 누나 놀리면 못 써?”
“놀리기는~”
“이거. 이거 해봐.”
그러더니 새로운 동전을 하나 쑥 꺼내 자기 이빨로 씹고 손으로 구부려보고 하더니 칠성에게 다시 건네 준다.
칠성은 어깨를 으쓱 해 보이고 또다시 접고 접어 누나 손에 툭 놓는다.
“엥? 이게 뭐야! 이거 진짜... 그럼... 진짜로?”
끄덕.
“어떻게? 왜? 언제??”
어라.
어떻게... 그러니까 이세계에서 600년간 떠도는 바람에?
“아 음...그게 말이지... 내가 빠지선 에서 그물을 당기는데...어느 날 갑자기...”
대충 빠지선에서 그물을 당기다가 죽을 것 만 같은 어느 날, 신비로운 기운이 솟아올랐고 그 뒤로 몸이 엄청나게 튼튼해졌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러니까 그 바다 한 가운데서 수영을 해서 탈출을 했지.”
“아...!”
어쩐지 납득 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
칠성은 사회와 차단되어서 그 현상이 무엇인지 몰랐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다름 아닌 자신이 바로 각성한 헌터가 아니겠는가!
하는 기승전결까지 완벽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이야... 이거 빠지선 콘셉트 그냥 우연히 생각나는 대로 잡아 본 건데, 어떻게 말을 이어도 완벽 하네? 완전 만능 빠지선 이구만?’
“그래도... 헌터라니 위험하게.”
멍하니 중얼거리는 누나.
참 나, 또 걱정이 되긴 되나보다.
“에이, 어차피 내가 진짜 헌터가 맞다면 등록은 해야 하는 거잖아 누나.”
칠성이 PC쪽으로 의자를 훽 돌리며 말했다.
누나가 뒤에서 턱을 칠성의 정수리에 괴고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래도... 걱정 되니까 그렇지.”
“에이~ 내가 어? 돈 벌어서 부모님들도 챙기고. 누나 빽도 하나 사주고 그럴게~”
“칫... 백은 무슨. 구두도 없는데. 너나 잘해 바보야.”
참~ 나 크크크. 또 그 와중에 구두타령이야?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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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일 뒤.
<헌> <터> <면> <허> <시> <험> <장>
대한민국 헌터특별부 산하 헌터면허 시험장.
논산은 아니지만 논산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는 디자인.
삐죽빼쭉한 마름모꼴 형태의 판에 하나씩 이채롭게 붙어있는 글자들.
그리고 그 아치형 문패 아래 철문 너머로 펼쳐진 칙칙한 회색빛의 건물.
‘뭐 이래?’
어쩐지 익숙한 듯 안 익숙한 듯. 하지만 재질은 고급져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걸어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