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S1 : 2화
* * *
“씨바아아알!!”
“뭐야?”
“헉 저기 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
뭐지?
성기사들의 추방마법에 당했다고 생각한 직후, 칠성은 굉장히 이질적인 풍경 속에 낯선 사람들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었다.
‘뭐지? 벌써 끝난 건가?’
나름 차원을 뛰어넘는 추방마법 이니 중간에 엄청난 과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눈 깜짝할 새.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여기가 다른 차원인건가...”
약 500여 미터 밖에선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서 칠성 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가?
그런 걸 둘째 치고, 칠성은 이 이상하고 낯선 풍경의 공간이 어쩐지 익숙하단 느낌이 들었다.
“어...?”
쫙쫙 뻗어 올라간 건물들.
외벽에 형형색색의 광고판들.
그리고 익숙한 느낌의 사람들.
“우...씨바.”
이게 대체 무슨 경우지?!
칠성은 서울 한 복판에 서있었다!
“크...크크큭...큭....!”
꼬시다 꼬셔!
칠성은 입이 찢어져라 올라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제 어느 천 년에 고향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이건 오히려 성기사 놈들이 지구로 돌아오도록 도와준 꼴이 아닌가!
‘역시~ 인생 될 놈 될 이야!’
그리고 칠성은 될 놈이고 말이다.
“캬캬캬캬캬!”
기분 째진다. 카타르시스가 밀려온다.
칠성은 그렇게 한참이나 웃어젖혔다.
그리고...
‘먼 소용이냐...’
한 템포 늦게.
밀려오는 애상감.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그저 본능적인 회귀본능에 가까운 것 이었다.
하지만 칠성이 지구에서 떠난 지 600년이나 지난 지금시점에,
고향으로 돌아와 봐야 다 무슨 소용이란 말 인가.
‘부모님도 돌아가셨겠지.’
당연하다.
진하게 현자타임 온다. 그런데...
“아들?! 거기 왜 있어!”
“아줌마 안 돼요!”
“아이고! 우리애가 저기 있어요!”
칠성의 앞쪽 500M 밖쯤에 쳐져있는 폴리스라인 같은 것 사이로 어떤 아줌마가 허우적대며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게 보였다.
주변의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폴리스라인을 뛰어넘으려는 아주머니를 뜯어 말리고 있었다.
‘엥? 우리엄마는 아닌데.’
너무 젊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제야 칠성의 옆에 웬 서넛 살 즈음 되보이는 남자애가 보였다.
“규아~ 아디띠~?”
포크레인 장난감을 들고 웃으며 두발로 아장아장 칠성 쪽으로 걸어온다.
그리곤 칠성의 정강이에 포크레인을 던진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그보다 위험이라니,
내가 위험하단건가?
설마 내 악명이 지구에까지-
라고 생각한 순간에 등 뒤에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쉬아앙!
그리고
쿠웅!
“꺄아아아악!!”
뒤돌아보자 나를 향해 달려온 무언가가 칠성의 머리를 내리쳤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칠성의 머리를 내려친 것.
그건... 거대한 민달팽이였다!
말 그대로 민달팽이, 라고 말하는 게 제일 적합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강철이빨이 달린 거대한 민달팽이가 등 뒤에 있던 쇼핑몰에서부터 달려 나와 거대한 집게발로 칠성을 내려친 것 이다.
‘뭐하냐...’
차가운 눈빛.
칠성이 멀건 눈으로 혀를 차며 타박하는 눈빛을 보내자 민달팽이가 민망한 듯 주춤했다.
사실 녀석이 재수가 없는 것 이다.
칠성 입장에서야 지구에 이런 생물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지만,
시내버스 정도는 되는 덩치에 경차 모닝 크기의 집게발.
어지간한 상대라면 일격에 거품을 물고 죽었어야 맞다.
‘내가 어지간한 상대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이 녀석을 구워먹을까 삶아먹을까, 여기서 흑마법을 써도 되는 부분인가 칠성이 고민하는 사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저기 괜찮으세요?”
여자의 목소리에 돌아보는데
‘헉... 조아누나?’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은빛 경 갑옷을 입은 백금빛 단발로 염색한 여자였다.
그런데 정말로 언 듯 5초간 착각할 정도로 아이돌 걸그룹 AEA의 멤버 조아와 너무나도 닮았다.
“어브버브버..예?”
“괜찮으세요?? 머리?”
“예? 아......”
그러고 보니 여자뿐만 아니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이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무언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는 듯한 시선?
“아이고! 아이고 아파라!”
거대한 몬스터에게 맞고도 멀쩡히 서 있다니.
생각해보니 버스에 치인 사람이 아파하긴 커녕 멀쩡하게 서서 버스에게 타박하는 눈총을 보내고 있는 꼴이 아닌가.
칠성은 다급하게 머리를 감싸 쥐며 아픈 척 엄살을 떨었다.
먹히나?
그런 칠성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던 조아 닮은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칼을 고쳐 쥐었다.
“히야앗!”
그리곤 이내 기합과 함께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민달팽이에게 달려들었고,
괴기한 소리를 내며 저항하는 민달팽이의 이마에 자신의 검을 박아 넣었다.
‘제법인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거기다 마나를 운용해 높인 각력으로 단번에 점프, 찔러 넣는 검에는 샤프니스 주문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칠성이 기억하는 과거의 지구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관경이다.
600년간 뭐가 많이도 변한 것 같았다.
“키이유웨에에엑!!”
민달팽이가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야!한솜이다!”
“한솜이 님이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름이 솜이 인가 보군...’
솜이라고 불린 붉은 망토의 조아 닮은 여기사는 인기가 굉장했다.
아까 그 포크레인 꼬맹이를 한솜이가 꼬맹이 엄마에게 데려가 주었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플래시를 터뜨렸다.
꼭 슈퍼히어로라도 되는 거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를 데려다 준 한솜이는 급한 일 이라도 있는 듯 곧장 칠성에게로 달려왔다.
“죄송해요. 아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사과와 함께 대략의 상황설명이 이어진다.
이 솜이라는 여자와 동료들이 쇼핑몰에 나타난 ‘문’을 격파하고 ‘문’을 닫았는데, 신규 종이기에 수집한 몬스터의 사체가 갑자기 부활해 도망을 친 것으로,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했다.
몬스터가 칠성과 어린아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어린아이를 구했다며 미안하다고, 또 그 와중에 하필 칠성이 탱커라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헌터시죠?!”
“예? 그게 뭐죠...”
칠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보다도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아까 민달팽이를 공격할 때도 검 끝에 금빛이 아른거리는 것 같더니,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하다.
여자의 몸에서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역겨운 성문 마나 냄새... 성기사다!
‘아니 미친, 지구에 성기사가 왜 있어.’
칠성은 급하게 혹시라도 보일지도 모르는 마기를 갈무리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성기사다.
엮여서 좋을 게 없다.
그런 칠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리 빠져나가려는데 한솜이는 자꾸 이거저거 캐묻는다.
“네? 탱커 아니세요?”
탱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아 예예, 뭔지 모르겠고 저 가도 되죠?”
칠성이 대충 대답하고 가려는데 자꾸 붙잡는다.
“아니아니, 들어 보세요 저희가요 탱커가 없거든요~”
그러면서 칠성의 팔을 팔짱끼듯 안아버린다.
‘헉’
팔꿈치로 느껴지는 감촉.
정면으로만 향해있는 갑옷의 철판 옆쪽으로 파고든 팔... 느껴지는 보...보드라운 이 느낌!
이 환상적인 감촉! 200년 만 인가?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 차려라 김칠성!
짝!
칠성은 잡히지 않은 왼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리곤 팔을 빼냈다.
“저 그런 거 아니거든요? 관심 없거든요? 안사거든요?”
“아이 그러지 말구우~~”
끄덕 지게 달려드는 여자. 그런데 그때.
“팀장님!”
쇼핑몰 건물에서 뛰쳐나온 멀대 같이 키 큰 갈색 롱헤어의 여자가 한솜이를 부른다.
한솜이가 잠시 칠성에게서 손을 떼고 동료로 보이는 갈색 롱헤어에게 눈을 돌린사이.
칠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솜이가 눈을 떼자마자 전력질주로 내달렸다.
“앗! 저기!”
한솜이가 그런 칠성의 뒤에서 손을 뻗으며 불렀다.
“팀장님! 급해요!”
“으...음.”
하지만 재촉하는 동료의 성화에 칠성을 그저 눈으로만 쫓다가, 동료를 따라 되돌아간다.
어쩐지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저 멀리 다급하게 도망쳐 사라지는 칠성의 뒤를 슬쩍 바라보는 한솜이였다.
“휴~!”
칠성이 그 현장을 벗어나서 한숨 돌리자 정말 일상적인 서울의 길거리였다.
‘어디지... 명동 쪽인가?’
그러면서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명동 근처가 확실한 것 이다.
그러니까······.
‘이럴 리가 있나?’
600년 상간의 시간이 지났다.
원래 있던 건물도 있을 턱이 없고, 그 이전에 대한민국이 남아있을 확률도 희박하다.
아니, 나라가 사라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칠성의 눈앞에 펼쳐진 건 명동 근처의 번화가 인 것이다.
그것도 칠성이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변화가 크지 않은.
“이거 혹시......”
칠성은 급하게 눈에 보이는 인도 위 슈퍼마켓에서 신문을 집어 들었다.
날짜를 확인한다.
“2025년...?”
고등학생 김칠성이 사라진 뒤로,
고작 10년이 지나있었다.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상황이란 말 인가?
아득한 600년의 세월을 살아, 돌고 돌아왔는데.
여기선 고작 10년이라니?
‘그러면...’
말이 되던 안 되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뭐가 달라지는가?
600년의 부제가 아닌 10년의 부제면 ...
칠성은 말없이 마나코팅으로 영구 보존해둔 지갑을 꺼내서
카드와 현금을 꺼내 슈퍼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다른 건 모르겠다.
하지만 600년이 아니라 10년이라면...?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시기다.’
“티머니 만원이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칠성이? 진짜 칠성이니?!”
몇 시간 뒤, 칠성은 과도하다 싶은 환대를 받으며 고등학생 김칠성이 살던 그 집에 서 있었다.
엄마와 누나가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긴, 10년간이나 집 나갔던 고등학생 아들이 돌아왔으니...’
일견 이해는 한다.
아마 이게 당연한 반응일 것 이다.
하지만 그리움의 시간도 완전히 지나버리고, 수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600년간이나 살아오며.
신과 악마를 농락하고 지난 몇 백 년을 ‘칠성의 대마왕’ 으로 악명을 떨친 칠성에게 있어서 희로애락의 감정이란 건 완전히 메말라 버렸다.
그야말로 칠성은 인간을 넘어선 초인간적인 존재.
가족이라는 이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상당히 쿨 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지 인사는 해야지.
“다녀..크...왔..습..니크으읍.....다흐흐흑”
“으아이고 우리아들 헝헝”
“칠성아아아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다녀왔습니다.’ 쿨한 인사를 날려주려고 했는데 말을 체 이어가지 못하고 칠성은 펑펑 울고 있었다.
‘씨...바, 가오 빠지네.’
600년간의 아득한 기억의 안개 속을 불쑥, 뚫고 엄마와 누나의 체온이 느껴지자 심장은 이성과는 상관없이 울렁였다.
정말 미친 듯이 울었다.
이렇게까지 울어본 건 200년 만에 처음이었다.
얼굴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집을 찾아올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었더랜다.
현자의 돌이 팔팔하게 유지시켜주는 신체와 뇌 속에서도,
기억은 마치 스틸 컷과 같은 것이라 600년간 서서히 현실감이 없는 것이 되어갔다.
기우였다. 멍청한 기우였다.
폭포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감정, 그리고 눈물에 정신없이 부등켜안고 울고 있던 세 사람.
띠띠띡-.
그때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눌리고 칠성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주말이라 회색 추리닝에 뿔테안경,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의 팔목엔 담배등 잡동사니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아버지는 칠성을 보더니 잠시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와 칠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고생했다.”
슬쩍 안으시며 귓가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이었다.
그리고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뒤도 안 보고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고작 그것 뿐 이었지만 칠성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셨는지,
잔뜩 억누르고 계셨지만.
포옹을 풀고 방으로 향하시는 찰나의 순간,
울고 있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효도할게요!”
칠성이 안방 쪽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굳이 청력강화 마법을 쓰지 않아도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집이다. 존나... 집이다.’
칠성은 침대에 누워 그런 아련하고 따뜻한 감상에 빠진 체,
그 어떤 경계 마법도. 구울의 보초도. 없이.
마력적 감각을 키워두지도 않고.
기억도 나지 않는, 몇백 년만에.
낮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