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의 일기-577화 (577/605)

577화. 낚시

푸른고래 호의 돛이 한 칸 올라갔다.

전통적인 갤리어스라 포어, 메인, 미즌 마스트의 삼단 돛이 모두 사각이었다. 바람을 받는 면적이 넓어 순풍일 때는 아주 빠르지만, 선회 반경이 넓고 활대를 조절하기가 힘들어 역풍과 측풍일 때는 매우 느렸다.

“난 바람을 거슬러가는 게 신기해.”

“엄밀히 말하면 비켜가는 거죠. 지그재그로 가는 거니까요.”

바람과 싸우기 싫으면 다른 방법도 있었다. 인간이 물을 건너기 위해 최초로 고안했을 방법, 노 젓기였다.

계절풍보다 해륙풍의 영향이 강한 근해 항구였다. 크고 무거운 범선은 견인선을 이용해야 하지만, 푸른고래 호에는 자체적인 26개의 노가 있었다.

“이제 출발이야.”

로벨은 선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울프 용병단과 무언가를 닦고 조이고 옮기는 선원들을 한 번씩 보고 친구들을 향해 섰다.

“펄프 대장, 페리 행정관, 어린 집사를 잘 도와줘.”

펄프 대장이 얼굴을 쓸어 만지며 한숨 쉬었다.

“후우... 제가 10년만 젊었어도 폐하를 모시는데...”

“손 치워봐. 입 가리지 말고.”

늑대성 식구의 약점은 하나같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어린 집사도 마찬가지였다.

“저희는 걱정하지 마세요. 솔직히 공왕 폐하가 걱정이죠. 바닷길이 좀 위험한가요? 게다가 저런 것이 따라가니...”

‘저런 것’이 고양이 입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긴 항해에는 선의(船醫)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쫓아온 마녀 키르케였다.

“이안 선장은 유능하니까 괜찮아.”

“지금 키르케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농담을 좀 더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었다. 4척의 함선과 400명의 인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집사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음... 키르케를 잘 보살펴주세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사춘기 시절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로벨은 척추를 곧게 펴고 칼자루에 손을 걸친 채 말했다.

“출발해.”

“닻을 올려라! 출항한다!”

“출항이다! 출항!”

로벨의 명령이 소리와 깃발을 통해 배에서 배로 전해졌다. 푸른고래 호보다 큰 백상아리 호와 청동인어 호, 푸른고래 호보다 작은 청새치 호가 차례로 캡스턴(Capstan)을 감고 노를 밀어 물속에 담갔다. 한 척만 움직여도 장관인데, 여러 척이 동시에 움직이니 장엄하고 웅장했다. 성(城)이 헤엄치는 것 같았다.

“빨리 다녀오세요!”

어린 집사가 손나팔로 소리쳤다. 로벨과 마녀 키르케는 작은 친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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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신의 가호일까, 로벨이 모르는 로벨의 마법일까,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은 쾌적하며 사건·사고 또한 하나 없었다.

“걸렸다! 걸렸어!”

“으라차찻-! 빨리 당겨!”

로벨의 장담이 맞은 건지, 이안 선장의 짐작이 옳은 건지 모르지만, 선원과 용병의 관계도 괜찮았다. 새끼 오리가 어미 거위 따르듯이 살갑진 않으나 소가 닭 보듯 개가 말 보듯 무심하게 잘 지냈다. 그러다 보니 싸움개 패거리가 뱃전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시시덕거려도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

“이야, 물 반 고기 반이네.”

“나 이쪽이 천직인가 봐... 용병 때려치우고 물질이나 할까?”

‘땅개’들의 성과에 질린 탓도 있었다. 처음에는 개울에서 물장구나 쳐봤을 놈들이 얼마나 잡겠냐 싶어 무시했는데, 정어리, 전갱이, 쏨뱅이, 숭어, 고등어 등등 온갖 종류의 물고기 분 단위로 낚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맘때가 고기잡이하기 좋은 시기요. 험험! 항상 이런 줄 알면 곤란하오.”

“허어? 우리가 대단한 게 아니었소?”

“다, 당연하지! 우리가 잡았으면 세 배쯤 더 잡았을걸?”

싸움개 닥스 패거리는 ‘그런가?’하고 넘어갔다. 혹여나 ‘그럼 한번 잡아봐라!’할까봐 마음 졸인 선원들은 내심 안도했다.

‘저것들 뭔데 낚시를 저리 잘합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야! 쳐다보지 마! 감탄하지 말라고!’

어쩌면 이것도 로벨의 마법일지 모른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것들이니까. 살이 통통한 몇 마리만 남기고 버려.”

싸움개 명령에 용병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졌다. 푸른고래 호는 어선이 아니었다. 모나카 왕국에 도착할 때쯤이면 대부분 상할 것이다. 육지였으면 불에 굽든 소금에 절이든 했을 텐데, 선상에서는 불도 소금도 귀했다. 왕의 식탁에 올릴 몇 마리만 남기고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꼬르륵- 가라앉는 놈들이 많아 동화 같은 은혜 갚기는 기대하지 않았다.

꼭 먹으려고 시작한 낚시가 아니라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용병들 심심풀이에 곤욕을 치르는 사람은 배식 담당자였다. 사실 ‘조리장’이란 직책이 있지만 조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비스킷과 맥주를 나눠주는 게 주 업무였다.

“생선 요리를 하라굽쇼?”

“그래.”

“제가요?”

“그럼 내가 할까?”

성깔 더러운 갑판장이 으르렁거리니 찍소리 못하고 물고기를 받아갔다. 어린 시절 불알친구들과 생선을 구워먹긴 했는데, 그걸 요리라 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꼬치에 꽂아서 구우면 되나? 근데 꼬치가 없는데?’

위대한 선장님보다 위대한 선주님 식탁에 올라갈 생선이었다. 화롯불 하나 피우기 힘든 열악한 선실에서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싸움개가 새로운 취미를 찾고, 조리장이 머리털을 뭉텅이로 뽑을 무렵, 로벨은 선장실에서 고상함을 즐기고 있었다.

“내 방보다 와인이 많잖아?”

선장실 바닥 진열장에 와인병이 쉰 개 이상 꽂혀있었다. 넘어지지 말라고 바닥에 꽂아둔 듯한데, 장식장이 유라피아 대륙 모양이라 원산지를 알아맞히기 쉬웠다.

“교역선장의 작은 행복이지요. 각 나라에서 싸게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한테는 한 병도 안 줬어?”

“...지금 드리겠습니다.”

“농담이야. 난 맥주가 좋아.”

그렇다고 와인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이안 선장은 큰마음 먹고 에르나 왕국산 적포도주를 한 병 땄다.

“저 남쪽 나라는 아직도 항아리를 사용하여 향이 부족합니다. 제가 에르나 왕국 출신이라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에르나 왕국산 와인이 맛과 향 모두 최고입니다.”

“어린 집사는 델 포니 지방의 와인이 최고라던데?”

“가격은 그렇지요.”

“가격이 좋으면 맛도 좋은 거 아니야?”

“상인은 그리 말하지요.”

“너도 상인이잖아!”

이안 선장도 나이를 먹었는지 능글맞아졌다. 로벨이 한 잔 받고, 마녀 키르케가 한 잔 받고, 가벼운 건배 후 입술을 젖혔다.

“지금 속도로 가면 엿새 후 도착합니다. 바람이 바뀌면 하루 정도 늦어질 수 있으나 큰 오차는 없을 겁니다.”

로벨은 해도를 살피는 시늉 하며 물었다.

“팔레모 항구라고 했지?”

이안 선장은 ‘거기 알베니아 왕국 해안입니다’라고 무안 주는 대신 슬쩍 모나카 왕국 해도를 꺼냈다.

“모나카 왕국에서 최북단 항구입니다. 수도 라베노까지 거리가 꽤 있습니다만...”

“에르나 왕국과 잉그비아 왕국 해군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지.”

역시 군사적으로는 이해가 빨랐다.

“조루아 랭스터 경도 그곳에 상륙했습니다. 중대 하나를 남겨두었다고 하니 그들과 합류하면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후방을 지키는 부대구나. 조단 랭스터 경이 자식교육을 잘 했어.”

칭찬받을 사람은 가까이에도 있었다. 조리장이 마침내 숭어 요리를 완성했다. 똑똑-

“저, 선장님?”

“들어와”

잠시 잊었는데, 이 자리는 이안 선장의 점심 식사 초대 자리였다.

로벨은 소금기를 최대한 뺀 양고기와 앞뒤로 한 번만 구운 비스킷을 기대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식수를 아낀다고 바닷물에 고기를 씻고 수분을 없앤다고 3, 4번씩 바짝 구운 쉽-비스킷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킁? 킁킁!”

마녀 키르케가 코를 벌렁거렸다. 단어 그대로 무미건조한 선상 식사에 생선구이 냄새가 강렬했다.

“선주님의, 아니, 공왕 폐하의 병사들이 물고기를 잡았습니다요. 그래서 제가 요리를, 어흠, 요리를 좀 했습니다.”

이안 선장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숭어 요리를 살폈다. 조리장에게 조리장 직을 맡긴 것은 요리를 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셈을 할 줄 알아서였다. 선원 숫자에 맞춰 배식량을 통제하려면 기본적인 산수는 할 줄 알아야 했다. 요리 솜씨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우와! 맛있겠다!”

마녀 키르케가 두 손을 모으고 감탄했다. 이안 선장의 의심과 달리 그럴싸했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두 쪽으로 갈라 소금 쳐서 구웠다. 그냥 불 속에 넣었다가 꺼내기만 해도 요리라 부르는 시절이니 이만하면 썩 훌륭했다. 로벨은 즐거워하는 마녀 키르케를 위해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식기 전에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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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만족스러운 오찬이었다. 불을 쬐고 나온 숭어도 훌륭하고, 비스킷과 염장고기도 선원이 먹는 것보다 부드러웠다. 벽돌보다 부드럽다는 소리와 비슷했다.

“맛있게 먹긴 했는데, 뭔가 빠진 거 같아.”

로벨이 가시 중 가장 큰 것을 골라 이빨을 쑤셨다. 마녀 키르케가 눈을 반짝이고 더 큰 가시를 찾아 생선 잔해를 뒤적였다. 이안 선장이 그릇을 치우며 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글쎄... 중요한 것 같은데...”

“에이, 잊어버리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마녀 키르케가 생선 가시를 찾아 의기양양하게 치켜들었다. 그때, 잊어버린 것이 찾아왔다.

“공왕 폐하, 혹시 이곳에 계십니까?”

마녀가 틀렸다. 때로는 중요한 것도 잊어버렸다.

“호, 호른 경?”

“선주님은 여기 계십니다. 들어오시지요.”

이안 선장이 눈치 없이 허락했다. 선장실 문이 벌컥- 열리고 충성스러운 기사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공왕 폐하...”

충성스러울 뿐만 아니라 유능했다. 전장을 한눈에 읽고 빠르게 판단하여 대응할 줄 아는 기사였다. 바다 생물의 끔찍한 잔해와 고온이 빚어낸 대자연의 부스러기 속에서도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저만 빼고... 식사를 마치신 겁니까?”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로벨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비로소 분위기를 눈치 챈 이안 선장이 눈알을 굴렸다. 마녀 키르케는 슬그머니 벽으로 물러나 게걸음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 와중에 술병 하나 챙긴 것이 ‘괴도’ 키르케다웠다.

“아, 아직 안 끝났소. 이제 막 시작했소. 어서 앉으시오. 우리 한 끼 더 먹읍시다.”

이안 선장이 무슨 짐승 소리냐는 듯 쳐다보았다. 허나, 로벨은 혼자 죽을 생각 없었다.

“키르케도 빨리 앉아. 점심 먹어야지.”

“...방금 먹은 건 아침이었나요?”

“점심은 원래 두 번 먹는 거야!”

물고기가 쉴 새 없이 잡히고 조리장이 기적 같은 솜씨를 발휘한 것이 모두 마법이었다. 로벨의 마법이 확실했다. 이 상황을 예견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다. 지금 싸움개가 팔뚝만한 고등어를 낚고 조리장이 후추와 마늘을 찾은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런 힘을 이렇게 쓰지 말라고요!’

마녀 키르케 속으로 소리쳤다. 세상에 완벽한 힘은 없었다. 날씨를 바꾸고 바람을 부르는 힘이 있지만 한 끼 더 먹을 힘은 없었다. 삐진 연인을 달랠 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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