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의 일기-390화 (390/605)

390화. 보장

동방의 기사 더스틴 폴라 경은 강인한 전사이자 우수한 사냥꾼이었다. 그 활솜씨는 로드릭 시티 토너먼트에서 증명되었고, 그 집요함은 뱀파이어 군주가 보장하였다.

“그런데 못 찾는다고요?”

어린 집사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자존심 강한 폴라 경은 순간 욱했지만, 여우 뒤에 호랑이가 보여 한번 참았다.

“못 찾는 게 아니다. 위험한 거지.”

숲 속에서 야생 짐승을 쫓는 재주를 생각하면 평범한 농가의 아낙을 추적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장소가 안 좋았다.

“마을 쪽으로 도망갔다. 큰길로 나가면 용병들과 마주치겠지.”

그것도 십중팔구 강철성이 고용한 용병일 것이다. 로벨과 폴라 경에게 달갑지 않았다.

“그 여자 바보 아니에요? 마을로 가면 다시 붙잡힐 텐데?”

“아니야. 영리한 거야. 두 발로 도망가면 어차피 잡히잖아. 등잔 밑이 어두울 거란 생각도 했을 테고.”

“에이, 과대평가 같은데요? 그렇게 영리하면 애초에 자작하고 놀아나지 않았겠죠.”

로벨은 잡소리를 조금 하고 결정했다.

“쫓아가자.”

“괜찮을까요?”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잖아.”

로벨은 긴말 안 하고 모닝스타에 올랐다. 최종 결정권자가 결정하니 일행 모두가 따랐다. 말머리가 지나온 마을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데려가면 될 거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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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문의 불화를 가져온 ‘그 여자’가 영리한지 바보인지 금방 판명되었다.

농장의 샛길을 나와 가도를 달리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소한 문제는 혼자가 아니란 것이다.

“역시 바보라니까요. 저런 여자한테 백작과 자작이 어떻게 놀아났지? 백치미인가?”

세상이 평화로울 때도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은 권장하지 않았다. 하물며 터프함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패거리가 모인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저는, 저는 도트넘 자작님의... 꺄악!”

“어허,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네. 잠깐 쉬었다 가라니까.”

오래 관찰할 필요가 없었다. 어린 집사 말마따나 그렇고 그런 상황이었다.

“저런 놈들은 어디 가나 있지.”

로벨은 여자를 둘러싼 용병 패거리를 살폈다. 겨우(?) 셋이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해치운 용병 숫자를 생각하면 적지 않았다.

“볼탄 반도의 잡것들은 죄다 모이나 봐요.”

거리가 가까워 길게 떠들 시간이 없었다. 용병 중 하나가 로벨 일행을 발견하고 몸을 돌렸다. 더스틴 폴라 경은 말안장에서 숏보우를 꺼냈다. 동방의 기사들이 즐겨 쓰는 컴포짓 보우였다.

“와...”

동방출신이 다르긴 달랐다.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사(騎射)는 서방세계 기사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기예였다. 눈 깜짝할 사이 화살을 쏘아 가장 가까운 불한당의 가슴을 맞혔다. 퍽-! 얼마나 힘이 좋은지 해머에 맞은 것처럼 나자빠졌다.

아쉽게도 두 번 쏠 기회는 없었다.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졌다. 로벨은 랜스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아론다이트를 뽑았다.

“항복해!”

물론, 그럴 실력이 있다면 말이다. 불한당은 갑자기 나타나 폭력을 일삼는 로벨 일당에 혼비백산했다. 전우애고 나발이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러나 두 다리로 네 다리를 따돌릴 수 없었다.

로벨은 몇 걸음 떼지 못한 불한당을 스쳐 가며 목을 그었다. 깊지도 얕지도 않게 경동맥을 잘랐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흠. 언제 봐도 훌륭하군.”

더스틴 폴라 경은 활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검술 중 가장 어려운 검술이 마상검술이었다. 날 때부터 가지고 다닌 두 다리로 거리를 재기도 쉽지 않은데, 말 못하는 말을 통제하여 거리를 재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로벨처럼 깔끔한 솜씨를 보이는 기사는 동서막론하고 흔치 않았다.

순식간에 동료가 죽고 앞뒤로 포위된 불한당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악을 섰다.

“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제, 제기랄! 이러고도,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로벨은 칼끝만 살짝 젖은 아론다이트를 곧추 세웠다.

“네 잘못은 세 가지야. 병장기로 페닝을 벌려고 한 잘못, 길 가는 여인을 괴롭힌 잘못, 그리고 투구를 쓰지 않은 잘못.”

“머, 뭐?”

로벨은 아론다이트를 휘둘러 동의를 구했다. 특히 마지막 잘못을 뼈저리게 이해시켰다. 구체적으로 두개골이었다.

“꺄아아-!”

마침내 마주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울프 용병단의 뿔나팔만큼 우렁찼다. 어린 집사가 당나귀를 끌고 오며 투덜거렸다.

“뭐야,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꺅- 꺅-!”

그때, 어린 집사 뒤에서 마녀가 비명을 질렀다. 오해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저런 걸로 경쟁하지 마요!”

마녀가 엉뚱하긴 하지만, 비명소리를 경쟁할 만큼 이상하지 않았다.

새로운 무장 패거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뭣이여? 대낮부터 칼질이여?”

“대장, 저기 여자가 있는데?”

로벨은 피 묻은 아론다이트를 고쳐 쥐었다. 열대여섯 명의 용병무리가 어슬렁거리며 접근했다.

“...오해하기 딱 좋은데요?”

여자는 비명 지르고, 용병은 죽어 나자빠졌다. 제삼자가 보면 로벨 일행이 여자를 노리고 용병들을 기습한 상황이었다.

“아니... 그 상황이 맞긴 한데... 근데 아니야! 설명해 줄게!”

안타깝게도 새로 온 용병은 설명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여러 번 말하지만, 그놈이 그놈이었다.

“여자와 말은 빼앗고! 사내새끼들은 전부 죽여!”

“먼저 칼질했으니까 억울해하지 마라!”

세 번째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시국이라도 하루에 세 번 피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진득한 한탄이 터져 나왔다.

“이게 다 영주님 때문이야!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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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벨은 헝겊을 꺼내 칼날을 닦았다. 숫돌이 필요 없는 만큼 헝겊을 여러 장 가지고 다녔는데, 사흘 만에 뚝 떨어졌다.

“에휴...”

더스틴 폴라 경은 조심스럽게 화살을 수거했다. 세형촉(대못 모양의 관통용 화살)이 바닥나 미늘촉(작살 모양의 사냥용 화살)을 사용했다. 어쩔 수 없었지만 후회되었다. 화살이 뽑히지 않고 뚝 부러졌다.

“휴우...”

기사들의 한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반면 워 해머 한 자루로 쳐 죽이고 대충 풀잎에 닦은 아자르 경은 신이 났다.

“우리와 승리합니다! 무적무패! 영광! 기쁨! 행복입니다!”

그 우리에는 용병이 포함되지 않았다. 숫자를 믿고 용감하게 달려든 세 번째 용병 패거리는 절반이 죽자 바로 도주했다. 설마하니 상대가 기사들, 그것도 그랜드 챔피언 수준의 기사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솔직히 좀 지치는데...”

로벨은 깨끗해진 아론다이트를 칼집에 넣고 이번 일의 원흉을 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핏물이 빠진 옆 자리 시체와 비슷했다.

“나는... 음... 집사?”

자기 입으로 자기 소개하는 것은 모양 빠졌다. 어린 집사가 핏물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들고 다가왔다.

“이분은 우리 왕국의 대공이자 볼탄 반도의 주인인 로벨 로드릭 공작이에요.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변장했지만, 늑대성의 집사인 제가 공작님의 진정한 신분을 보장해요.”

어린 집사가 늑대성 집사란 것은 아무도 보장하지 않았다.

“부인을 해칠 생각은 없어요. 막돼먹은 백작에게 억류된 부인을 구하러 왔어요. 뭐, 나중에 증언 같은 걸 해줬으면 하고요.”

“증언...?”

“아,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의 안전은 로드릭 가문이 보장할 테니까요. 원한다면 로드릭 시티에 정착하게 도와주겠어요.”

어린 집사는 지극히 어린 집사답게 설득했다. 잘못된 설득이었다. 참다못한 마녀 키르케가 끼어들었다.

“강철성의 젊은 자작님을 구하고 싶으시죠?”

“셰, 셰인 자작님이요? 그분은, 그분은 무사하신가요? 호수성의 기사님들이 잡아갔는데...”

“아직은 무사해요. 하지만 자작님을 구하려면 아가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부인인지 아가씨인지 헷갈리는 여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을 죽이는 덩치 좋은 사내들과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 작은 청년보다 나이가 비슷한 마녀가 안심되었다.

“시키는 대로 할게요. 전부 다 할게요. 그러니 셰인 자작님을 구해주세요. 꼭이요. 꼭 부탁드려요.”

이제야 말이 통했다. 로벨은 칼자루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이름이 뭐야?”

“제 이름은 엘라에요. 사슴 바위 농장의 첫째 딸 엘라요.”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되었다. 로벨은 자상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 엘라. 이제 내가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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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강철성과 호수성의 대립이 심각해졌다.

세 차례 협상이 모두 결렬된 가운데, 성 아래에서 여러 번 전투가 벌어져 스무여 명의 용병이 죽었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용병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어떤 자는 강철성의 기사가 기습했다 말하고, 어떤 자는 호수성의 기사가 계집을 강탈했다 말했다.

“아니, 왜 싸우고 그런데?”

“...영주님이 죽인 용병들 이야기에요.”

실제로 늑대성의 공작을 보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상식인이라 자부하는 대다수 사람은 헛소리로 취급했다.

아무튼, 재채기만 크게 해도 칼부림이 날 상황이었다. 호수성의 영지민은 공포에 젖었고, 버팅거 시티의 시민들은 과거 후계자 전쟁을 떠올리며 피난을 준비했다. 바로 그때, 희망찬 소식이 북쪽에서 전해졌다. 볼탄 반도의 하나뿐인 공작이자 무적무패의 명예로운 기사 로벨 로드릭이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이었다.

사자 앞에서 힘자랑하는 개와 고양이는 없었다. 로벨의 이명은 사자가 아니라 늑대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두 백작 가문을 달래서 평화를 가져다주길 바랐다.

“저쪽의 반응은 어때?”

“호수성이야 뭐, 자기편 왔다고 좋아할 테죠. 누가 지네 편들어준다고 했나?”

“강철성은?”

“그쪽도 나쁘지 않습니다.”

펄프 대장이 새치를 긁으며 보고했다. 아니, 이제 새치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흰머리가 많았다. 젊은 시절의-첫 만남도 그리 젊지는 않았지만-적갈색 머리카락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영주님이 안 계실 때 전령이 찾아왔습니다. 중재를 부탁하더군요.”

“도반 도트넘 백작이?”

“성벽에 활을 쏘면 어린 자작이 제일 먼저 맞을 상황이지요.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인간과 인간의 일이라면 그러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잖아?’

로벨은 시선을 막사 구석으로 돌렸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후드를 눌러쓴 더스틴 폴라 경이 화살대를 다듬고 있었다.

“강철성의 백작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아시오?”

더스틴 폴라 경은 칼질을 멈추고 노크(Noke)를 살폈다. 마음에 드는 듯 살며시 웃었다.

“죽은 백작을 만나러 왔소.”

“몰드 헤르만 백작?”

“그렇소. 밀실에서 대화를 나눠 엿듣지는 못했소. 접근하기 쉬운 상대도 아니고.”

어린 집사가 팔짱을 끼고 턱을 만졌다.

“밀담은 좋은 징조가 아니죠. 두 사람 다 영주님의 친구는 아니고요.”

“그런데 둘이 적이 되었어.”

“어쩌면 셰인 자작에게 고마워해야겠군요.”

로벨은 어린 집사를 따라 턱을 만지려다 멈칫했다. 오랜만에 입은 필드 아머가 섬세한 동작을 방해했다. 생각을 바꿔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벨의 수행기사를 자처하는 아자르 경이 해머를 쥐고 따라 일어났다.

로벨은 그냥 있으라고 손짓하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신출내기들을 놀리던 허풍쟁이가 로벨을 보고 슬금슬금 도망갔다. 중대를 통솔하는 애꾸눈과 발가락이 징발한 물자를 나르고 있었다. 숫자에 밝은 겁쟁이가 함께 있으니 값을 제대로 치렀을 것이다. 총 500명의 울프 용병단이 북적북적 숨 쉬고 있었다.

“두 백작이 음모를 꾸며도, 이들이 있으면 괜찮아.”

어린 집사가 팔짱을 풀고 대꾸했다.

“늑대성의 재정은 안 괜찮아요.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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