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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일기-358화 (358/605)

358화. 인질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성 안에서 파티를 벌였지만, 셋째 날은 술 냄새만으로 오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늘어난 탓에 성 밖으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로드릭 가문의 천재, 늑대성의 귀재, 볼탄 반도의 보배라 불리는 어린 집사는 그에 따른 대비책도 세워두었으니, 북쪽 숲에 사냥감을 대량으로 풀었다.

“사냥은 기사와 신사의 고상한 취미생활이죠. 활과 쇠뇌를 준비했으니까 마음에 드는 거로 고르세요.”

가난한 사냥꾼이 즐겨 사용하는 셀프 보우, 짐승 가죽과 힘줄로 보강한 랩트 보우, 전쟁터에서 인마 살상용으로 사용하는 롱보우, 염소발로 장전하는 크로스보우, 윈드라스로 시위를 감는 아바레스트 등등이 종류별로 나왔다.

조반니 의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절단 대부분이 상인과 학자라 무기를 다룰 줄 몰랐다. 하지만 어린 집사는 그것도 가정하고 있었다.

“사냥 경험이 없는 분은 이쪽의 크로스보우가 다루기 쉬울 거예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울프 용병단의 우수한 사수들이 보조할 테니까요. 여러분은 편하게 즐기시면 돼요.”

과장도, 빈말도 아니었다. 애꾸눈이 고르고 골라 실전으로 단련시킨 제1중대 1소대 사수들은 최정예였다. 사절단원이 머뭇거리며 크로스보우를 고르자 숙달된 솜씨로 시위를 당기고 쿼럴을 얹어 주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생을 숲에서 보낸 전문 사냥꾼도 사냥을 공칠 때가 많은데, 책상 앞에서 잉크로 얼룩진 삶을 보내온 학자들이 사냥감을 잡을 리 만무했다.

어린 집사는 외팔이의 풋맨 중대를 숲 안쪽으로 보내 몰이를 시켰다. 어렵지 않았다. 숲에 풀어놓은 짐승은 먼 곳에서 온 짐승이라 북쪽 숲 지리에 어두웠다. 게다가 며칠을 굶겨 체력도 형편없었다. 오늘 처음 활을 잡은 초보 사냥꾼도 두 번 중 한 번은 사냥감을 맞힐 만큼 만만했다.

로벨은 사냥답지 않은 사냥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써 참았다.

‘진짜 사냥이 아니라 사냥 기분 내는 유흥이니까...’

사절단이 할 일은 지친 사냥감이 어기적어기적 나타나면 장전된 쇠뇌로 쏘는 일뿐이었다. 심지어 북치고 나팔 불며 사냥감의 출몰을 미리 알려주기까지 했으니, 잡는 쪽이야 재미날 수밖에 없었다.

“오오오! 온다! 온다!”

“어서 쏘시오! 어서!”

어린 집사의 철저한 배려가 빛을 발했다. 처음에는 겸연쩍어 하던 자유도시연맹 학자도 쇠뇌를 몇 번 쏘아보고 맛을 들였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까마득한 조상의 유전자가 깨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사슴 하나를 맞히자 기뻐서 괴성을 질렀다. 고향에 있는 아내와 자식, 혹은 점잖은 스승으로 알고 있을 제자들이 보면 눈을 휘둥그레 뜰 것이다.

요령이 생기자 하나둘 사냥감을 잡기 시작했다. 사슴, 노루, 토끼, 산양 등등. 일부는 자신에게 뛰어난 사냥꾼의 자질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자유도시에서 태어나 기회가 없었을 뿐, 야만스러운 볼탄 반도나 스카이 반도에 태어났으면 사냥으로 일가를 이뤘을 거라 자신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착각이었다.

외팔이 일당이 숲 속의 사냥감을 죄다 몰아주고, 애꾸눈 수하들이 언제든지 쇠뇌를 쏠 수 있게 준비해주지 않았으면, 지치고 굶주린 짐승이라 해도 책상물림이 쏘는 화살에 잡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서 사냥 솜씨 보이겠다고 나대다 망신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

“우리가 거기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지.”

접대로만 보자면 성공적이었다. 새로우면서 재미있는 경험은 흔치 않은데, 그것을 충족시켰다. 이제 적당할 때 마무리 짓고, 서로의 솜씨를 칭찬하며 갓 잡은 고기로 이른 만찬을 즐기면 성공적인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집사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아니,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병장기가 수십 개나 나온 만큼 주의했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이 잡은 사슴을 굽어보던 조반니 의원 옆구리에 넓적한 쇠촉이 달린 화살이 꽂혔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뜬금이 없는지라 가까이 있던 용병조차 반응하지 못했다.

“상원의원!”

로벨이 가장 먼저 손에 든 토끼를 집어 던지고 뛰어갔다. 야외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은 로벨의 외침에 비로소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 뭐여? 뭣이여?”

“사절단장이 화살에 맞았다!”

로벨은 짚단처럼 허물어진 조반니 의원을 끌어안고 주위를 살폈다. 자유도시연맹의 사절단 31명, 몸종 10명, 울프 용병단 35명, 고기 손질을 위해 불러온 찰드 형제 외 마을 청년 3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냥이 끝나지 않아 쇠뇌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전부 용의자였다.

“허풍쟁이! 마법사 키르케와 닥터 줄리안을 데려와! 나머지는 지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마!”

허풍쟁이가 깜짝 놀라 로드릭 시티 방향으로 뛰어갔다. 병원이 멀지 않아 다행이다.

“고, 공작... 이런 추태를... 죄송합니다...”

조반니 의원이 자세를 바로 하려고 꿈틀거렸다.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로벨은 허리춤에서 대거를 뽑아 화살 주위의 옷을 찢었다. 누가 부르주아 아니랄까봐 비단옷을 겹겹이도 입었다.

‘그 덕분에 상처가 깊지 않지만...’

비단은 의외로 질기고 튼튼해서 화살을 막는데 좋았다. 쇠촉의 길이를 볼 때 고작 세 마디쯤 파고들었다. 치명상은 아니었다.

“상처가 깊지 않소. 편히 누우시오. 곧 의사가 올 것이니...”

로벨은 조반니 의원을 안심시키다가 몸을 떨었다. 쇠촉 사이로 흘러나오는 핏물이 이상했다. 외부에 노출된 지 몇 시간이 지난 것처럼 검고 진득진득했다. 정상이 아니었다.

‘독?’

상황이 달라졌다. 사고가 아니라 암살이다. 조반니 의원의 입술이 파랗게 변했다. 독이 혈액순환을 막고 있었다. 의심이 현실이 되었다.

로벨은 의식을 잃은 조반니 의원을 반듯이 눕히고 아론다이트를 뽑았다. 이미 많은 병장기가 나와 있지만, 늑대 공작이 직접 빼 든 3피트 길이의 칼날은 존재감이 달랐다.

“모두 무기를 내려놔!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벤다!”

고참병으로 구성된 울프 용병단 1중대는 즉시 가진 쇠뇌를 땅에 놓았다. 사냥꾼 형제는 집에서 가져온 푸주칼이 무기가 되는지 고민하다가 로벨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화들짝 놀라 팽개쳤다. 다행히 로벨은 그쪽을 의심하지 않았다. 저들은 조반니 의원이 누군지도 모르거니와 상원의원을 해쳐서 이득 볼 것이 없었다.

‘상원의원에게 원한이 있는 자. 아니면...’

볼탄 반도와 자유도시연맹의 전쟁을 바라는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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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줄리안이 피 묻은 손을 냄비에 닦으며 말했다.

“모나카 방울뱀의 독입니다.”

“모나카? 모나카 왕국?”

“예. 그쪽 지방에서 흔한 독사입니다. 인어해 북쪽에서는 쉬이 볼 수 없지요.”

로벨은 새까만 얼굴로 죽은 조반니 의원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마녀도, 닥터도 손쓰지 못하고 절명했다.

“남쪽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독이고, 영주님이 아니라 상원의원을 노렸으면, 답은 나와 있네요.”

어린 집사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바로 원한이죠. 사절단 사람들을 조사하면 금방 범인이 나올 거예요.”

로벨은 ‘그런가?’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상원의원을 죽일 거면 기회가 많았을 거야. 바다 위에서 죽일 수도 있고, 돌아가는 길에 죽일 수도 있어. 굳이 내 땅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저격할 필요가 있을까?”

“그 말씀은... 설마 영주님께 누명을...?”

로벨은 시트를 올려 조반니 의원의 얼굴을 덮었다. 자유도시연맹의 장례절차가 어떤지 모르니 가능한 시체를 그대로 보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침울한 마녀와 닥터 줄리안에게 명령했다.

“독을 빼낼 수 있어? 아니면 독을 증명할 피나 상처모형 같은 거?”

“무, 물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증거를 모아줘.”

‘증거’란 단어가 많은 것을 암시했다.

“전쟁이 나면 이득을 보는 것은 가난한 기사만이 아니야. 전쟁물자를 취급하는 상인과 몸값이 오르는 용병도 마찬가지야.”

“울프 용병단이 그럴 리 없어요!”

어린 집사가 용병들을 비호했다. 재정악화의 주원인이라고 타박하는 평소와 달랐다.

“나도 내 용병을 의심하지 않아.”

하지만 맹신하지도 않았다. 페닝은 귀신도 부리는데, 용병을 매수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의혹이 없게 모두 조사해야지.”

로벨의 의지는 확고했다. 하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날 저녁, 사절단장 대행 안토니오 바바라란 자가 귀국할 의사를 밝혔다.

“말도 안 돼! 범인을 잡지 못했는데 돌아간다고요?”

어린 집사가 과장 좀 보태 길길이 날뛰었다. 정치감각이 부족한 집사지만 이대로 돌려보내면 안 된다는 것은 직감했다. 그러나 안토니오 대행은 완강했다.

“상원의원이 살해당한 곳에서 어찌 지내겠소. 게다가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다지? 어허, 우리는 그만 돌아가겠소! 공작님의 융숭한 대접을 오랫동안 기억하리다!”

선을 살짝 넘었다. 펄프 대장이 허리에 찬 숏소드를 잡았다. 나잇값 못한다고 탓할 수 없었다. 외팔이, 허풍쟁이, 겁쟁이, 싸움개 등도 일제히 무기를 쥐었기 때문이다. 식후 운동으로 오크 모가지 정도는 가볍게 따올 것 같은 용병들이 적의를 보이자 순하디순한 학자들은 찔끔했다.

“지, 지금 우리를 겁박하려는...”

“손 떼.”

로벨이 2층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이목이 단숨에 집중되었다.

“아직 손님이야.”

펄프 대장이 머뭇거리다가 칼자루를 놓았다. 대장이 행동하니 모두가 따라했다.

로벨은 안토니오 대행을 쳐다보았다.

“귀국한다고?”

위치 탓일까, 아니면 지은 죄 때문일까, 평이한 목소리인데 위압감이 대단했다. 사절단은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과분한 대접으로 잠시 감을 잃은 게 분명했다. 상대는 기분 따라 국왕도 갈아 치우는(!) 늑대 공작이었다.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일정을 치르기가 곤란하니, 일단 귀국해서 다음을...”

“그대들은 나를 감시하기 위해 온 것으로 아는데, 그 임무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은 결심이 섰다는 뜻이오?”

“그, 그것이 아니라, 진짜 아닙니다! 믿어주시지요!”

로벨은 계단을 두 칸 남겨두고 멈췄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엇나간 마음을 돌릴 수도 없었다. 억지로 붙잡으면 인질이라 생각할 테니 자유도시연맹의 의심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보낼 수 없소.”

“우, 우리를 억류하겠다는 뜻입니까?”

로벨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기사에 대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잘 참았다. 무례하고 의심스러워도 지금은 참아야 했다.

“그대들이 나를 의심하는 것만큼 나도 의심할 수밖에 없소. 그러니 그쪽 도시를 방문한 내 사람들이 무사히 올 때까지 풀어줄 수 없소.”

어린 집사가 이마를 짚었다. 자유도시연맹과 친해지기 프로젝트는 실패였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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