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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일기-131화 (131/605)

131화. 난전

131화. 난전

난전(亂戰)이고 난전(難戰)이었다.

화살을 교환하고, 창을 교환하고, 지금은 칼과 방패를 섞었다. 적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아 칼침을 놓기 전에 얼굴부터 확인해야 했다.

펄프 대장은 곡괭이의 달인이 휘두르는 배틀 훅(Battle hook)을 숏소드로 쳐내고 바클러의 쇠테로 코를 뭉개주었다. 그리고 34년 차 베테랑 용병답지 않은 실수를 깨달았다.

“아차, 반대로 썼네?”

외팔이 더치는 에르나 왕국인치고 체구가 좋은 젊은 병사의 이마를 쪼개고 팔꿈치로 얼굴을 후려쳐서 뽑았다. 그리고 두 팔을 활짝 벌려 성난 불곰처럼 포효했다.

“난! 네놈들한테! 쌓인 게 많다! 다 덤벼!”

애꾸눈 볼포스는 아바레스트를 등에 걸고 헌팅 나이프를 뽑았다. 하지만 칼을 쓰는데 신중했다. 섣불리 덤비지 않고 기회를 엿보다가 과묵한 몬트의 뒤통수를 노리는 비열한 용병에게 미끄러지듯 다가가 옆구리를 찔렀다. 가죽 갑옷을 찢고 근육을 찢고 갈비뼈 사이에 걸렸다.

“이... 자식이...”

유언이 별 볼일 없었다.

애꾸눈 볼포스는 칼날을 비틀어 장기를 끊어놓고 과묵한 몬트에게 말했다.

“조심해.”

과묵한 몬트는 줄곧 상대하던 흉터투성이 용병을 때려눕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피아 대륙의 오만가지 욕이 흘러나오는 곳에서도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로벨은 지휘를 포기하고 전투에 몸을 던졌다. 전투마를 왼쪽으로 돌리고, 랜스를 오른쪽으로 뻗었다. 짧게 짧게 끊어서, 건성으로 찌르는데, 그때마다 에르나 왕국군이 비명을 질렀다.

로벨 로드릭 백작군은 분발했다. 로벨과 울프 용병단은 명성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기사와 징집병도 기대 이상으로 분전했다. 그러나 300대 2,000의 싸움은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쓰러지고 조금씩 밀려났다. 처음 접전이 시작된 바리케이트는 적에게 넘어가 보이지도 않았다.

“기사 나리! 머를 브릭 나리가 위험합니다!”

가장 취약한 아만다 군이 가장 먼저 괴멸되었다. 스무 명 남짓한 영지민 중 과반수가 죽거나 부상당했다.

“뒤로 빠져! 크로스보우 3소대가 지원해!”

로벨은 랜스를 8자로 휘저어 가까이 다가온 에르나 왕국군을 쳐냈다. 피에 젖은 깃발 탓에 무게가 상당했고, 타격력도 대단했다. 퍽-!

로벨 로드릭 백작군은 악착같이 버텼다. 6, 7배 많은 적을 상대로 정말 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희망을 보았다.

로벨은 창날이 부러진 랜스를 버리고 아론다이트를 뽑다가 먼 곳의 소란을 감지했다. 지평선 위로 낮게 깔리는 흙먼지, 의미 모를 욕설과 의도 없는 고함, 그리고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수백 개의 창날. 로벨은 아론다이트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휘저으며 소리쳤다.

“지윈군이야! 지원군이 왔다!”

그 외침은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짐승처럼 날뛰던 병사들이 서서히 동작을 멈췄다. 로벨은 아론다이트를 에르나 왕국군 뒤쪽을 가리키며 다시 외쳤다.

“포비아 왕국의 지원군이다! 적을 포위했다!”

로벨의 열의가 울프 용병단의 환희로, 그리고 로벨 로드릭 백작군 전체의 환성으로 바뀌었다.

“아군이다! 아군이 도착했다!”

“너희들 다 죽었어!”

에르나 왕국군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나 영웅심이 넘쳐서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염병하지 마! 우리가 더 많아! 도망가지 마!”

“여, 염병...?”

기사치고 곱게 자란 로벨은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전투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이름 그대로 전쟁을 위해 훈련된 말이라 아무렇지 않게 적군을 치고 밟으며 질주했다. 로벨은 상체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아론다이트로 반원을 그렸다. 슈컹-! 살을 가르고 뼈를 자르는 감각이 생생했다.

로벨은 아론다이트를 옆으로 뿌리고 차가운 금속가면으로 적을 내려다보았다. 피 묻은 칼이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이었다.

“우아아악! 여기 있으면 다 죽어! 도망가!”

“비켜! 내 앞에서 비켜!”

에르나 왕국군은 서로를 짓밟으며 뿔뿔이 흩어졌다.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시체에 걸려 나뒹굴어도 꿋꿋하게 도망쳤다. 로벨은 처참한 광경을 흐뭇하게 보았다. 하지만 무모한 고용주를 모시는 고용인은 속이 편치 않았다.

“기사 나리! 위험합니다!”

“왜 또 튀어 나가는 거야!”

로벨은 바이저를 올리고 울프 용병단을 보았다. 악다구니한 용병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로벨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다시 정면을 보았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병사 너머로 그렉 페렛 경의 깃발과 1천의 병사가 보았다. 로벨이 격퇴한 것은 전방부대뿐이었다.

로벨이 안 돌아오자 울프 용병단이 쫓아 나왔다. 허풍쟁이 제이콥은 시체를 밟을 때마다 “이크! 이크!” 소리 질렀다. 반면 펄프 대장은 태연하게 시체를 밟으며 다가왔다.

“왜 안 덤비죠?”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니야.”

로벨은 시선을 옮겨 서쪽에서 나타난 아군을 보았다. 포비아 왕국의 사자 깃발 아래로 작은 깃발이 몇 개 더 있었다.

“어느 동네 군대야?”

펄프 대장이 얼굴을 한번 훑고 말했다.

“익숙한 깃발이군요. 강철성입니다.”

“도반 도트넘 백작?”

로벨은 지원군의 정체에 당황했다.

‘그렉 페럿 경과 마도의 수호자가 싸운다?’

로벨은 손끝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천 명의 적과 싸울 때보다 긴장되고 흥분되었다.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펄프 대장에게 뒷일을 맡겼다.

“부상자를 옮기고 무기를 점검해.”

“옛! 설!”

펄프 대장은 시체를 뒤지는 울프 용병단을 쥐어박으며 빠르게 명령했다.

“애꾸눈! 크로스보우 소대 전사자와 부상자 집계하고 남을 놈들로 1소대 재편성해! 허풍쟁이! 부상자 챙겨라! 그래, 임마! 농민병은 아군 아니냐? 다 챙겨! 외팔이! 너도 소대... 아니다. 넌 그냥 쉬고 있어라. 어허, 그냥 쉬라니까.”

“왜 자꾸 무시하는 거요!”

로벨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뉘는 현장보다 괴물이 출몰한 전장에 집중했다. 그렉 페럿 경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깃발을 높이 든 기수가 앞장서고, 화려한 판금갑옷을 두른 기사들이 뒤따르고, 되는 대로 갖춰입은 용병이 꼬리처럼 이어졌다. 도반 도트넘 백작군도 보조를 맞춰 이동했다. 숫자가 반의반 밖에 되지 않는 것과 기수가 난쟁이처럼 작은 것이 차이였다.

로벨은 기수가 어린아이가 아닐까 의심하다가 곧 오해임을 알았다. 기수가 작은 것이 아니라 기수를 뒤따라가는 기사가 지나치게 컸다.

‘늑대의 왕!’

로벨 로드릭 백작군이 전열을 가다듬는 사이, 그렉 페럿 경과 도반 도트넘 백작이 불과 50야드 간격을 두고 마주 섰다. 로벨 같은 초보 활잡이도 운이 좋으면 맞힐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양쪽 모두 활이나 쇠뇌를 쏘지 않았다.

“울프 용병단 전사자 12명, 부상자 25명, 전투 가능한 인원은 66명입니다.”

“...다른 부대는 어때?”

“저희보다 안 좋습니다. 아만다 영지군은 멀쩡한 놈 찾는 게 더 힘들더군요.”

펄프 대장은 싸우지 말자는 뉘앙스로 말했다. 로벨도 적극 동의했다.

“에릭 공작과 제임스 공작이 올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도반 도트넘 백작군이, 늑대의 왕이 질 것 같지 않았다.

대치 상태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소수인 도반 도트넘 백작군이었다.

키가 커서 한눈에 들어오는 늑대의 왕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몸에 두른 털가죽은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짐승의 모피 같고, 성인 남자보다 커다란 츠바이핸더는 기형적으로 자란 짐승의 송곳니 같았다. 아니, 짐승이 맞았다. 늑대의 왕은 인간이 낼 수 없는 소리로 포효했다.

구오오오오오-!

늑대 수십 마리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그 하울링에 동조해 200여 명의 도반 도트넘 백작군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우아아아!”

그렉 페럿 경의 병사도 지지 않고 함성을 질렀다. 두 군사의 사기가 붉은 산과 벌거벗은 산에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처음에는 옆 전우와 발을 맞췄지만, 열 걸음이 지나자 제각각 튀어나오고, 스무 걸음이 지나자 서로 앞서기 위해 경쟁했다.

‘드디어 싸운다.’

마침내 네 자릿수의 무리가 충돌했다.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러진 무기가 솟구치고, 박살난 투구가 튀어 오르고, 머리, 팔, 손가락, 내장, 핏물 등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산이 산을 때리고, 바다가 바다를 덮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그릴 수 있는 참담한 풍경이었다.

로벨은 전장 한 곳을 유심히 보았다. 하나의 전쟁이 수백 개의 전투로 쪼개지는 와중에 유난히 눈에 잘 띄는 곳이 있었다. 창과 함께 사람까지 때려 부수는 츠바이핸더와 신체절단기로 유용성을 보이는 랑게스 메서였다. 두 괴물은 자성을 가진 것처럼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한 명은 진짜 괴물이잖아?’

로벨은 아론다이트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도울 수 없었다. 한 명은 인간이지만 적이고, 한 명은 괴물이지만 아군이었다.

그렉 페럿 경은 도반 도트넘 백작군의 목을 치고 전투마에 박차를 가해 시체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안장 위에서 겨우 눈을 마주할 수 있는 늑대의 왕에게 메서를 날렸다. 무어라 소리를 질렀는데 소란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늑대의 왕은 웃었다.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웃었다. 그리고 사나운 곰도 일격에 때려잡을 츠바이핸더를 마주 휘둘렀다.

쿵-!

로벨은 이명을 감지했다. 쇠와 쇠가 쉴 새 없이 부딪치는 혼잡한 전쟁터에서 쇠 이상의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쇠보다 크고 무겁고 사나운 소리였다.

그렉 페럿 경은 전투마의 체중으로 밀어붙였지만, 늑대의 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전투마를 압도했다. 왼손을 말아 쥐고 전투마의 미간을 후려쳤다.

“우왁! 야만스럽다!”

펄프 대장이 어린 집사를 흉내 내며 경악했다. 로벨은 부대정비를 다했냐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세기의 결투에 관심이 가는 것은 로벨만이 아니었다.

전투마는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그렉 페럿 경은 메서를 회수하며 뒤로 굴렀다. 늑대의 왕이 그렉 페럿 경을 뒤쫓아 한 걸음 내딛을 때, 그렉 페럿 경이 자세를 바꿔 앞으로 뛰어들었다. 멀미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격렬한 동작이었다.

쿠궁-!

역시 쇳소리가 아니었다. 산 위에서 큰 바위가 굴러 떨어진 듯한 소리였다.

대인병기와 대물병기 중간쯤에 위치한 거병들이 갈대처럼 가볍고 빠르게 충돌했다. 대장장이가 모루 위의 쇠토막을 두드리는 것처럼 불꽃이 번쩍였다. 빠르고, 무겁고, 날카롭고, 뜨거운 공방이었다. 로벨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저런 것들과 싸웠다고?”

제3자 입자에서 보니 박진감이 대단했다. 사실, 로벨이 싸우는 것을 보는 울프 용병단의 심정이 지금과 비슷했다.

시간이 지나자 천 명의 싸움이 두 괴물의 대결로 좁혀졌다. 에르나 왕국군도, 도반 도트넘 백작군도 싸움을 멈추고 결투 아닌 결투를 구경했다.

전장에 모인 모든 인간이 숨을 죽였고,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로벨은 배가 고픈지 칭얼거리는 전투마를 달래며 앞으로 조금 이동했다.

“영주님?”

펄프 대장이 로벨의 돌발행동을 알아챘다. 로벨은 남서쪽을 가리켰다. 에릭 공작과 페르젠 백작이 군사를 이끌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 싸움은 이겼어.”

“아, 예. 지원군이 왔군요.”

“그 전에 이길 거야.”

로벨의 두 눈은 여전히 그렉 페럿 경과 늑대의 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펄프 대장은 로벨의 말뜻을 알았다.

진짜 괴물이 이길 것이다.

“와아아아!”

“이겼다! 거인이 이겼다!”

“그랜드 챔피언이 쓰러졌다!”

그렉 페럿 경이 무릎을 꿇었다. 사납게 울부짖던 메서가 두 동강 나고, 양쪽 팔이 땅바닥에 축 처졌다. 갑옷 때문에 절단을 면했지만, 두 번 다시 칼을 잡지 못할 만큼 어깨뼈가 으깨졌다.

병사들의 함성에 묻혀서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예배 중인 성당만큼 조용해도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 않았겠지만, 로벨은 그랜드 챔피언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늑대의 왕이 츠바이핸더를 높이 올렸다.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기사이자 로벨의 몇 안 되는 친구의 목을 베었다. 하늘은 푸르고 핏물은 붉었다. 로벨의 하얀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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