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검찰 대 변호사
“변호인, 변론 시작하시죠.”
판사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강무완과 강중민을 변호하는 백산이 앞으로 나와 옷깃을 여미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저희는, 검찰 측의 무리수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무리수요?”
“검찰은 강무완 피고인과 강중민 피고인을 수많은 범죄의 공동정범으로 지목했습니다. 즉, 둘이 동등한 지위의 공범이라는 뜻이죠.”
“그게 왜 무리수입니까?”
판사의 질문에 백산은 극적으로 팔을 뻗어 필웅을 가리켜 보았다. 어지간히 쇼맨십이 있는 사람인 듯했다.
“검찰 측에 묻고 싶군요. 공동정범이란 뭡니까?”
“변호인 측은 법 공부를 소홀히 했나 보네요. 법정까지 나와서 기초적인 개념을 물어보다니.”
판사가 인상을 쓰며 주의를 줬다.
“검찰 측, 불필요하게 변호인의 신변을 모욕하는 것은 삼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필웅은 손을 들어 사과를 표한 뒤 대답했다.
“공동정범이란 결국 함께 범죄를 실행한 두 범인이죠.”
“바로 그렇습니다!”
백산이 손뼉을 짝 치며 동작이 큰 몸짓으로 판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필웅은 슬슬 이 사람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공동정범이란 함께 범죄를 실행한 범인이죠! 그런데 검찰 측의 주장에 따르면, 소위 ‘교단’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움직여서 무시무시한 범죄를 벌인 건 강중민 피고인 본인입니다. 물론 강중민 피고인도 결백하지만… 아무튼 백번 양보해서 강중민 피고인이 범죄를 직접 실행한 게 사실이라면, 강무완 피고인이 어떻게 공동정범이 될 수 있습니까? 교단의 교주가 된 것은 강중민 피고인이라면서요?”
“그렇습니다.”
“그거 보십시오. 강무완 피고인은 교단에서 아무런 지위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범죄들은 교단이 주체가 돼서 벌어진 일인데, 애초에 강무완 피고인은 교단과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백산이 말을 마치고는 책상을 탕 하고 두드렸다.
필웅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안 하셔도 잘 듣고 있습니다.”
“검찰 측에 대한 항의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저 새끼. 대체 뭐라는 거야.’
필웅은 속으로 생각하고는 판사를 돌아보았다. 판사는 발언하라는 뜻으로 턱짓했다.
“강무완 피고인, 강무완 피고인은 삼일유통의 대표이사지요?”
강무완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재판장님, 31페이지를 보시면 삼일유통이 불법 약품의 원료가 되는 약물들을 수입하고 있었다는 압수수색 결과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재판장은 산더미같이 쌓인 기록을 꺼내 페이지를 들춰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대표이사라고 해서….”
“대표이사라고 해서 회사가 돌아가는 걸 다 알 수는 없다는 얘기는 신물 나게 들었습니다.”
필웅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또 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백산을 제지했다.
“41면 이하는 제8요일 교단과 의미불명의 자금거래가 있었던 업체들입니다.
심신수련원, 버섯재배농장, 홍삼슈퍼마켓 등등… 이 업체들이 크고 적은 자금을 교단에 지급해 온 내역은 보이지만, 그 대가로 교단이 이 업체들에게 뭘 준 적은 없습니다. 즉, 아무런 이유 없이 업체에서 교단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고 있는 거죠.
이 업체들의 대표자는 언뜻 보면 삼영그룹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로 보입니다만.”
필웅이 크게 인쇄한 도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지분 구조도를 보시죠. 지배구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삼영그룹의 계열회사들이 조금씩이나마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개인 주주들의 신상을 살펴보니, 언뜻 보면 삼영과 관련이 없는 인물들로 보이지만 삼영 임직원의 친척인 경우가 많습니다.”
필웅이 피고인석을 의미심장하게 돌아보며 물었다.
“피고인들에게 묻고 싶군요. 삼영그룹과 교단이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시는데, 이 자료들에 의하면 삼영이 직간접적으로 교단의 거래처들을 전부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단의 주요 거래처들이 사실상 삼영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이게 어떻게 아무 상관이 없습니까?”
변호사인 백산이 앞으로 나서며 반박했다.
“그건 억측입니다. 단지 검찰 측에서 심신수련원 같은 업체들로부터 교단이 뭘 받았는지를 확인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필웅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변호사님이 말씀해 보실래요? 상식적으로 교단이 홍삼슈퍼마켓이나 버섯재배농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면서 돈을 줬으면 줬을지언정, 이 업체들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받을 일이 대체 뭐가 있습니까? 대신 버섯이라도 키워 주나요?”
“그건….”
필웅은 백산이 잠시 대답을 주저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삼일유통 하나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칩시다.”
필웅은 답변을 고심하는 백산을 내버려 두고 판사 쪽으로 몸을 돌리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업체들이 삼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사실을 기업의 총수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를 갈고 있던 백산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그냥 개별 임직원들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업체들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억측입니다!”
필웅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변호사님. 변호사님이야말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뭐가 억지라는 겁니까?”
“이 업체들과 연관된 임직원들의 신상을 보면, 삼영그룹 중 하나의 기업에 소속된 임직원들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기업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개별 기업이 아니라 전체를 통합하여 이끄는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아니면 설마 개별 기업에서 일하던 임직원들이 소유하거나 투자한 업체가 우연히 전부 교단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할 셈입니까?”
백산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도 업계에서 노련한 변호사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었다. 쉽게 수긍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좋아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강무완 피고인이 공동정범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판사가 백산에게 물었다.
“만약 검찰 측이 제출한 증거가 사실이라면, 실제로 삼영과 교단이 거래를 한 것은 맞지 않습니까?”
백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래를 했다는 것뿐이고, 설령 검찰 측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단지 강무완 피고인이 직간접적으로 교단과 거래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거래 자체가 범죄는 아니니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백산이 집게손가락을 세우고는 좌우로 까딱거렸다.
“들어 보세요. 교단에서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범죄 혐의는 모두 교단이 직접 벌인 일들이지요. 공동정범은 실행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범죄 자체를 업체들이나 강무완 피고인이 한 것이 아니잖아요?”
백산이 말을 마치고는 또다시 우아하게 팔을 펼쳐 보였다.
필웅은 이제 짜증을 낼 마음도 들지 않았다.
“변호사님.”
“예?”
“자, 변호사님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예? 정말입니까?”
“당연히 아니죠. 그렇다고 가정해 보라고요. 도둑이 들어서 귀중품이 다 털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백산이 팔짱을 끼고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요?”
“도둑놈들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도둑들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계획을 짜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용서할 겁니까?”
백산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결국 다 한 패인 거잖습니까.”
“그렇죠?”
“그렇죠.”
필웅이 물었다.
“하지만 그 범죄를 주도한 사람은 현장에 없었는데도요?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백산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필웅이 의기양양하게 집요하게 물었다.
“범죄 현장에 없었다고 해서 공범이 아닌 게 됩니까?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한 건 강무완 피고인이라는 건 명백한데, 단지 현장에 없었다고 공범이 아니라고요?”
백산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판사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검찰 측과 변호인 측 주장은 잘 알겠습니다. 일단 오늘 기일은 종료하고, 다음 기일까지 추가적인 증거나 서면 제출 부탁 바랍니다.”
* * *
“검사님.”
기일이 끝나고 자료를 추스르고 있던 필웅에게 백산이 다가왔다.
필웅은 삐딱하게 서서 그를 마주 보았다.
“뭡니까?”
백산이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경황이 없어서 인사가 늦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예, 뭐, 저도.”
필웅은 대강 그의 손을 잡고 몇 번 흔들고는 공판정을 나서기 위해 일어섰다.
“아, 잠깐만요.”
백산이 뒤돌아서서 나가려고 하는 필웅을 뒤에서 붙잡았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혹시 기분이 불편하셨다면 사과를 드리고 싶어서요.”
“사과요?”
백산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알지 않냐는 듯한 자조적인 표정을 지었다.
“재판정에서 제가 다소 시끄럽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의뢰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조금 격앙되는 면이 있다는 것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의뢰인의 입장이라….”
비로소 필웅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변호사님도 피고인들이 무죄라고 생각하십니까?”
백산이 허허 웃었다.
“그야 변호사라면 당연히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럼 만약 그들이 유죄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면요?”
백산에게 물으면서 필웅은 윤진을 떠올렸다.
변호사로서의 자신과 스스로의 도덕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녀.
필웅은 백산도 그런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백산이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런 증거가 있다면….”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없애버려야겠죠.”
필웅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그의 두 눈을 무심코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증거인멸을 시도하겠다는 선언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백산이 다시 평범한 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변호사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요. 가정을 해 보자고 하시길래 농담 한 번 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필웅은 직감적으로 결코 그가 실없는 농담 따위를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필웅이 아무 말이 없자 백산은 겸연쩍어하면서 쓸데없는 잡담을 몇 개 늘어놓더니, 여전히 필웅이 반응이 없자 허허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끼리끼리들 모이는군.’
필웅은 그 순간, 그가 강무완과 강중민을 더 혐오하는지, 아니면 그런 그들에게 붙어서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도와 주는 인간들을 더 혐오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앞으로도 만만치 않겠어.’
첫 번째 기일은 나름 순조롭게 흘러갔지만, 다음 기일들에서도 이렇게 필웅의 뜻대로 풀려갈지는 의문이었다.
실제로 증거가 완벽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고, 백산 역시 실력 있는 변호사로 보였다.
그리고 능구렁이 같은 강무완과 강중민이 지금의 위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무슨 짓을 벌일지도 알 수 없었다.
그들 스스로는 위기라고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