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로 개과천선-143화 (143/151)

143화 교주의 정체

“교단에 정말 교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로들은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는 검까?”

장경이 책상에 놓인 귤을 까다가 문득 물었다.

필웅은 시연과 장경에게 자신의 결론을 말해 주었고, 둘은 정말 교주가 허상의 인물일지도 모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하지만 장경으로서는 의문이 모두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잖슴까. 아무튼 우리가 체포했던 원로들은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다고는 했는데, 교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아온 거죠?”

장경이 귤을 까서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필웅이 대답했다.

“하청업체인 거죠.”

“하청업체?”

시연이 인상을 찌푸리다가 아 하면서 손뼉을 탁 하고 쳤다.

“누군가가 교단을 하청업체처럼 쓰고 있다는 말이야?”

필웅은 말을 하면서 스스로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은 그래. 지금까지 찾아온 증거나 증인들에 비추어 봤을 때, 교단에는 정말 실질적인 의미의 리더인 교주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박 형사님 말대로 대체 누가 교단의 지도부를 이끄는지가 문제 되지.”

“그렇다면 검사님 말씀은….”

“누군가가 ‘교주’라는 대리 인격을 통해 교단을 지배해 온 겁니다. 사실 교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원로들로서는 관심 밖이겠죠. 어차피 원로들이야 교단의 위명을 이용해 신도들을 갈취하고 자기 사업을 불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김영지는 달랐습니다. 김영지는 처음에 실제로 교단의 교리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했죠. 그런데 애초에 교단은 교리를 따르는 조직도 아니었으니, 점점 김영지와는 맞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다면.”

장경이 귤을 다 먹고 껍질을 내려놓으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교주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다면, 누가 무엇을 위해 이런 조직을 만든 걸까요?”

필웅은 그 질문도 예상하고 있었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연과 장경의 시선이 필웅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짓을 벌일 수 있고, 벌일 만한 조직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 * *

‘결국은 돌고 돌아와서 삼영인가.’

잠시 쉬기 위해 여관방으로 돌아온 필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교주’라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교주처럼 행동을 해야 했을 것이다. 교주의 외부 활동이 필요할 때나, 교단 내에서의 의식을 행할 때 아예 교주의 임무를 대행할 인물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교주는 존재하지 않지만, 교주라는 역할을 수행할 인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필웅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런 대리인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삼영의 사람일 것이라는 것이 필웅의 예상이었다.

필웅은 서춘주와 만나던 강준수를 떠올렸다.

‘강준수가 교주인 걸까? 아니면….’

필웅은 잠시 생각하다가, 일전 일성회관에서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던 강준수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가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아니야, 강준수는 지나치게 충동적이고, 비록 형식적인 교주 역을 연기할 사람이라지만 너무 젊어. 게다가 얼마 전까지 감옥에 있었으니 강준수를 이용해서 세력을 불릴 수는 없었을 거야.’

필웅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강유라였다.

“어, 무슨 일이야?”

“이영규 당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

필웅은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만나게 해 줄 수 있어?”

“어쩌면.”

“장소와 시간은?”

“내일 밤 10시. 영산항 3번 부두로 와. 단, 혼자 와야 해.”

“왜 그런 곳에서…?”

“그럼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야겠냐? 기자들이 어디고 따라붙을 텐데?”

“좋아. 그런데 잠깐만. 할 얘기가 있어.”

“뭔데?”

필웅은 자신의 계획을 강유라에게 들려주었다. 강유라는 별다른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필웅은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이영규를 만나서, 만일 삼영의 계획의 진상이나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큰 수확이었다.

물론, 이영규가 그 사실들을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순순히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둘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필웅은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며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 * *

다음날 밤 10시.

필웅은 바닷소리를 들으며 영산항의 한 부두에 나와 있었다.

필웅은 강유라가 강조한 대로 혼자 나와 있었다.

‘이영규를 만나면 교주의 정체와 삼영의 계획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 필웅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도 미처 듣지 못하고 있다가, 뒤에서 들려온 헛기침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자네가 날 만나자고 했나?”

필웅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영규 당대표와 그의 경호원인 듯한 남자 둘이 눈에 들어왔다.

“예, 조필웅이라고 합니다.”

필웅이 손을 내밀자 이영규는 잠시 그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말없이 그 손을 건조하게 잡고 흔들었다.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는?”

이영규는 핵심적인 이야기 외에 불필요한 이야기는 선호하지 않는 타입인 듯했다. 필웅도 딱히 날씨 이야기나 나눌 생각은 아니었기에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삼영과 제8요일 교단이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영규가 인상을 찌푸렸다.

“삼영과 교단이 벌이고 있는 일?”

필웅은 잠시 그가 알아낸 것을 어디까지 공유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영규는 삼영과 교단이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해 별다른 이해가 없을 수도 있었다. 혹은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만일 후자라면 필웅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적에게 전략을 전부 노출하는 꼴이 될 터였다.

반대로 전자인 경우에도, 이영규가 삼영과 교단을 이용할 생각이라면 여전히 필웅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적었다. 즉, 만일 필웅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이야기할 경우, 이영규가 교단이 꾸미고 있는 짓에 반감을 느끼는 경우에만 필웅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필웅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삼영과 교단이 법망을 피해 무언가를 꾸미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증거와 증인을 다수 확보했습니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라.”

이영규는 잠시 말없이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얗게 세기 시작한 머리가 밤바람에 조금씩 휘날렸다.

“그러면서 정작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건가?”

필웅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전부 말씀드려도 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영규는 이놈 보게 하는 표정으로 슥 필웅을 돌아보더니 다시 밤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실, 일전 서춘주와 강준수를 만나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영규가 허허 하고 공허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렇군. 그래서 내가 한 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나를 보자고 했지?”

“당대표님께서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용을?”

이영규가 비로소 몸을 돌려 필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삼영과 교단이 진정한 목적을 감춘 채 대표님의 영향력만을 사용하고자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재력의 결합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게 되기도 하죠.”

이영규가 재미있다는 듯 필웅을 잠시 살펴보다가 끌끌하고 웃으며 천천히 부둣가를 따라 걸었다.

“좀 걷지.”

필웅은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먼저, 내 이야기를 좀 해도 되겠나?”

“예.”

이영규는 밤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손으로 슥슥 빗어 정돈하며 입을 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 집안의 자제는 아니었어. 젊었을 적엔 공사판이며 항구 같은 곳에서 노가다나 짐 나르는 일을 가리지 않고 했지.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날도 꽤 됐어.”

“기사를 통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처음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내가 생수를 배달하던 지역 의원 사무실의 보좌관이 날 좋게 봐줘서 그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을 때부터였지. 처음에는 경호원이자 짐 나르는 직원으로 시작했어.”

이영규가 옛날 생각을 하는 듯 걸으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척 열심히 일했지. 하루에 일한 시간으로만 따지면 노가다했을 때보다 더 오래 일하는 날도 많았어. 그때는 일하는 게 재미있었거든. 지역 사람들의 민원을 들어 주고, 어떨 때는 해결도 해 주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구제도 해 주고.”

필웅은 대답 없이 묵묵히 그의 회상을 들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던 중 의원님께서 하루는 물으시더군. 보좌관 해 볼 생각 없냐고. 처음엔 거절했어. 나같이 못 배워먹은 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지금 내가 가끔 할 수 있는 일들을, 보좌관이 된다면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짐이나 나르고 운전이나 하면서 아주 가끔 어려운 사람들 얘기를 들어주지만, 보좌관이 되면 의원님께 그런 일들을 더 많이 보고드릴 수 있겠지. 젊은 시절 나같이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이야.”

“그렇군요.”

“그래서 결국 보좌관이 되었지. 그 후로 연이 닿아 몇 번 선거도 나가게 됐고, 처음엔 많이도 떨어졌지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네.”

한참을 걷던 이영규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여기가 내가 일하던 부두였네.”

필웅은 그를 따라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영산항이 말입니까?”

“그래. 지금은 지역구에 자주 내려와 보지는 못하지만, 내려올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지.”

“생각이라고 하시면?”

이영규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필웅을 돌아보았다.

“개돼지 새끼들이란 도대체가 만족할 줄을 모른다는 것 말이야!”

“!!!!!!!!??????”

미소 후에 갑작스럽게 던져진 그의 거친 단어에 필웅은 당황하며 약간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바로 뒤에 경호원의 단단한 어깨가 느껴졌다.

“당신들?”

경호원은 아무 말 없이 필웅의 양팔을 잡았다.

“대표님! 무슨 짓입니까?!”

“시끄럽게 굴지 말게. 자네 같은 개돼지들이 마치 자기에게 무슨 권리가 있다는 듯 나만 보면 빽빽거리는 데 아주 신물이 나.”

이영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한차례 내저었다.

“어째서…! 당신을 뽑아 준 유권자들을 개돼지라고 하다니, 제정신입니까?”

“유권자?”

이영규가 피식 웃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국회의원 뽑으면서 정말 이 사람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거라고 기대하면서 투표를 하는 놈들이 있는가? 그냥 자기네 동네에 지하철 노선 하나, 신도시 하나 꽂아줄 거 기대하면서 표 던지는 거지. 애초에 내가 국가를 위해 수많은 정책을 제안했을 때는 아무도 내게 표를 던져 주지 않았어.

내가 처음으로 당선됐을 때 내건 공약이 뭐였는 줄 아나? 영산항의 현대화였어. 그러자 미친 듯이 표를 주더군. 물론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낡은 시설 몇 개 치운 게 다였지. 그때 깨달았지. 이 얼간이들에게는 이상 같은 건 사치라는 걸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겨우 그런 걸로…!”

“내가 말한 건 예시 중 하나일 뿐이야. 이 나라의 국민들은 좋은 정치인을 가질 자격이 없어.”

이영규는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것이 어떤 신호인 듯, 경호원들이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날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아, 가기 전에 만나 볼 사람이 있네.”

이영규가 말하자, 부두 뒤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조금 더 앞으로 다가오자, 달빛 아래 그들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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