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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개과천선-141화 (141/151)

141화 비밀 통로

예배당은 어두웠다. 필웅은 예배당에 들어서며 전원을 올렸다.

전구가 여러 개 나간 듯 불이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안내하시죠.”

필웅이 서원주에게 넌지시 말했다.

서원주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앞으로 걸어갔다.

4원로는 여전히 방심하지 않은 채로 필웅과 장경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다.

4원로와 장경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틈에 서원주는 어느새 예배당 앞에 놓인 강단에 도착했다.

“너무 저희를 의심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서원주가 툴툴거리자 장경이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뭔 개소리여? 이제까지 수상한 짓은 전부 다 벌여 놓고는 의심을 하지 말라고?”

“저희는 그저 교단의 유산을 찾으러 온 것뿐입니다.”

“그 유산이 뭔지는 알고?”

“저나 4원로는 교단의 실세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교단이 무슨 사업을 벌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해요.”

“하, 뭔지도 모르는 걸 찾으러 여기까지 오셨다?”

“뭔지 알아보러 온 거라고 해두죠.”

“말은 잘하네….”

강단을 짚고 장경과 대화를 나누던 서원주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뭔가 이상한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면서 주의를 흩트리려고 하고 있잖아.’

필웅이 서원주가 쓸데없는 소리를 끝없이 늘어놓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가려던 순간이었다.

서원주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교단의 비밀을 외부인과 공유할 마음은 들지 않는군요.”

장경과 필웅이 뭐라 대꾸할 말을 찾으려는 순간, 강단 뒤의 바닥이 소리도 없이 스르륵 열렸다.

서원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밑으로 뛰어 내렸고, 말 없이 장경과 필웅이 다가오는 것을 견제하던 4원로는 장경이 당황한 틈을 타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집어 던지고 자신도 몸을 바닥 밑으로 던졌다.

-쉭!

던지는 순간 움직여서인지, 허공을 가른 나이프는 필웅의 바로 옆에 선 기둥에 박혔다. 필웅은 섬뜩함을 느꼈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서원주와 4원로가 몸을 던진 강단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강단의 바닥은 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이미 소리 없이 닫혀 있었다.

장경이 뒤늦게 달려와 낑낑거리며 바닥의 틈새를 찾아 닫힌 바닥을 열어 보려고 했지만, 바닥은 이미 열린 적도 없다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

“이런 염병!”

장경이 욕설을 내뱉으며 홧김에 바닥에 발을 쾅쾅 굴렀다. 물론 그런다고 바닥이 다시 열리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어쩐지 말이 너무 많더라니.”

필웅도 묵묵히 바닥과 서원주가 서 있던 강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서원주는… 이 강단에 서서 이야기를 했었죠?”

성질을 내던 장경이 필웅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랬던 것 같슴다.”

필웅이 강단 쪽으로 다가갔다.

설교를 하기 위해 세워진 강단이었다.

강단 밑에는 책 같은 것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힘으로 열 수 있는 비밀 문이 아니라면 어딘가에 장치가 있을 것 같은데.”

필웅은 이리저리 강단을 살펴보았다.

강단 밑의 빈 공간 한쪽에 자그마한 틈새가 보였다.

필웅은 틈새로 손가락을 넣어 움직여 보았다.

이음새가 단순해 보였던 상판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장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판을 열자, 일곱 개의 스위치가 달린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쓴 거로군요!”

“그렇겠죠.”

필웅은 이리저리 스위치를 딸깍딸깍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경이 옆에서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이 중에 비밀 문을 여는 장치가 있을 텐데. 어떤 걸까요?”

필웅은 대답 없이 묵묵히 스위치가 달린 계기판을 살펴보았다.

“스위치가 일곱 개밖에 없군요.”

“일곱 개 밖에 라뇨? 어이구, 이것도 이미 많은 것 아닙니까?”

필웅은 여전히 계기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제8요일 교단은 숫자 8에 집착하는 조직입니다. 그런 조직이 스위치를 굳이 일곱 개만 만들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장경은 뚫어지게 계기판에 달린 스위치들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세 봐도 스위치는 일곱 개뿐이었다.

“그냥 까먹은 거 아닐까요?”

필웅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스위치를 일곱 개나 만들었다는 건, 물론 허가받지 못한 사람이 접근했을 때 헷갈리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분명히 자기들의 교리에 맞추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즉, 여덟 번째 스위치가 정답인 거예요.”

“여덟 번째 스위치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스위치는 일곱 개밖에 없는디요.”

필웅은 계기판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필웅은 말을 마치고 계기판 전체를 힘있게 눌렀다.

그러자 그들의 뒤에서 바닥에 달린 비밀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헛!?”

“이 계기판 자체가 하나의 스위치였던 겁니다. 여덟 번째 요일, 모든 것이 완성되는 8이라는 숫자. 완전한 숫자인 8은 나머지 7을 포함한다는 거죠.”

말을 마친 필웅은 재빨리 비밀 문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장경도 뒤늦을세라 얼른 바닥에 열린 비밀 문으로 뛰어내렸다.

둘은 차례로 바닥 아래의 비밀 공간에 착지했다.

비밀 공간의 입구 부분은 1미터 정도의 높이여서 착지가 어렵지 않았지만 천장이 다소 낮았다. 그러나 조금 길을 따라가다 보니 천장은 점점 높아졌다. 허리를 숙이고 불편하게 걷던 필웅과 장경은 비로소 허리를 펴고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네요.”

“교단의 지도부가 와해되어 지지자들도 뿔뿔이 흩어진 모양입니다. 차라리 잘 됐군요.”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와중에도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필웅도 수시로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발동해 숨어 있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지만, 시설은 정말 버려진 것 같았다.

“다행히 길이 여러 개로 갈리지는 않는 모양이군요.”

그러나 필웅이 입을 열자마자 5분도 안 되어 갈림길이 나타났다.

장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죠? 갈라서야 하겠는데요.”

“제가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장경과 헤어져 길을 걷던 필웅은 복도에서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을 하나 찾았다.

지하 시설의 복도에 불은 들어와 있었지만, 비상전력으로 유지 중인 것인지 희미하고 어두웠다.

필웅은 손전등을 켜 보았다. 아직 전지가 남아 있는 듯 손전등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필웅은 손전등을 비추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조금 지나자 한 방이 나왔다.

필웅은 손전등을 끄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필웅은 다시 손전등을 켜서 방을 구석구석 비추어 보았다.

일종의 실험실이었다.

냉장 탱크와 빈 상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기계 설비들도 보였다.

필웅은 다가가 선반 위를 훑어보았다.

컴퓨터 하나가 보였다. 그 옆에는 프린터가 하나 보였고, 휴지통이 놓여 있었다.

필웅은 휴지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잡동사니들과 함께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필웅은 조각들을 꺼내어 맞춰 보기 시작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 필웅은 결국 조각들을 완성했다. 일종의 지령문이었다.

발신: 지도자

수신: 실험실장

H Proto Type은 본사로 이송할 것.

‘지도자? 교주를 말하는 건가? 본사는 어디지? H 프로토타입이라면 신약의 이름인가?’

교단이라면 본사보다는 본부라는 말을 썼을 것이기에, 필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웅은 종이조각에 대충 테이프를 붙여 합쳐진 종이를 주머니에 넣은 후 복도로 나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여기에 없다면, 다른 길이 있거나 다른 방이 있는 모양이군.’

필웅의 예상은 적중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아까보다 더 큰 문이 보였다.

필웅은 꿀꺽 침을 삼키고 천천히 철문을 열었다.

다음 순간, 격렬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형사님!?”

총을 쏠 사람이라고는 장경 밖에 없었기에, 필웅은 놀라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경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서원주와 4원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공포탄이었는지 빗맞은 것인지 일단 서원주와 4원로에게 부상은 없어 보였다.

“형사님, 무슨 일입니까?”

필웅이 급하게 장경에게 다가갔다. 장경이 속삭였다.

“일단 겁먹게 해서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십쇼.”

장경의 말에 필웅은 불현듯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 시설은 창고인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상자들과 컨테이너가 가득했지만, 대부분의 상자가 비어 있었다.

“설마 이게 다…?”

“맞는 것 같슴다. 다만 잠깐 숨어서 살펴봤는데, 대부분 비어 있어요.”

필웅은 아까의 쪽지를 떠올렸다.

‘어딘가로 이미 완성품들을 빼돌렸구나!’

“잘도 우릴 따돌릴 생각을 했군.”

필웅이 씹어뱉듯 말하자 당황한 표정의 서원주가 다시 비열한 미소를 지으면서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아니, 잠깐만요.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저희도 도둑맞은 거라구요.”

“거짓말 하지 마시지!”

필웅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손가락으로 서원주를 가리켰다.

“이미 완성품은 다른 데로 빼돌렸다는 증거가 있어! 누군가에게 약탈당한 게 아니란 말이지. 자, 여기에 온 목적을 다시 한번 말해 주실까?”

서원주가 낭패라는 표정으로 뒤의 4원로를 돌아보았다.

4원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서원주의 뒤로 다가가 들고 있던 또다른 나이프로 서원주의 목을 그어 버렸다.

“컥…?”

4원로는 짜증스럽게 나이프에 묻은 피를 서원주의 옷깃으로 닦아냈다.

워낙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벌어진 눈앞의 일들에 필웅과 장경은 그를 제지할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가 서원주의 뒤로 돌아와 칼로 목을 긋는 일련의 동작이 너무나 평온해서, 필웅은 거의 그가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산책을 하는 모습이라도 본 기분이었다.

그만큼 충격은 뒤늦게 찾아왔다.

“다, 당신…! 무슨 짓을?”

4원로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짜증 난다.”

“뭐?”

“여기 교단 유산 있다 생각했다. 이 자가 말했다. 하지만 없다. 짜증 난다.”

4원로는 짜증 나 못 참겠다는 듯 서원주의 시체를 툭 발로 걷어찼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장경이 총구를 그에게 겨누며 외쳤다.

“그 자리에서 꼼짝 마! 칼 버려!”

“당신,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칼 버려. 여기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왜 안 되지?”

4원로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

“너는 비무장. 형사만 제압하면 도망 가능하다. 왜 안된다는 거지?”

‘정신 나간 놈인가?’

필웅은 속으로 생각하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방금 서원주를 죽였을 때 알 수 있듯이 이 자는 살인의 프로였다.

만약 마음먹고 몸싸움을 벌인다면, 비무장인 필웅쯤은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장경조차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필웅은 조심스럽게 그로부터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발동했다.

4원로가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4원로는 뭔가 눈에 먼지라도 들어갔다는 것처럼 눈을 잠시 부비더니, 똑같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지?’

그가 억지로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끌어내려고 할 때마다 범죄자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기 일쑤였다. 그 악질인 서춘주도 그랬고, 오점순도 그랬다.

그러나 눈앞의 4원로는, 분명 자신의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마주했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죄책감이 없는 것처럼.’

필웅은 크리미널 아카이브는 단순히 상대방을 행동불능에 빠트리는 능력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렸다.

‘내면의 어둠을 목도하게 하는 것’

은전차사는 그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직시하게 된 범죄자들이 죄책감과 두려움에 빠져드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였다.

‘이 인간….’

필웅은 새삼 경계의 눈빛으로 4원로를 쏘아보았다.

‘죄책감이라는 게 없는 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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