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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개과천선-140화 (140/151)

140화 교단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

오점순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필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발동했다.

오점순이 자신의 안에 있는 어둠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그때가 바로 그녀가 가장 연약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힘이라면, 어쩌면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최면으로부터도 그녀를 일시적으로나마 해방시켜 줄 수도 있었다.

필웅이 정신을 집중하자, 그동안 그녀가 저지른 죄악들의 기록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게 무슨…?”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던 오점순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 전체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하지만, 이건…!”

오점순은 눈앞의 필웅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을 계속하면서 고개를 휘저었다.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만둬… 제발….”

그녀의 이가 딱딱 부딪혔다. 조사실 안의 온도는 상온이었지만, 그녀의 몸 주위에만 한기가 맴돌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묻죠. 신약은 어디서 생산되고 있습니까?”

오점순은 입을 열지 않고 그저 머리를 감싸 쥔 채 벌벌 떨기만 했다.

“단순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만 해 준다면, 이 모든 걸 끝내 드리죠.”

오점순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끝내 준다고?”

“끝내 드리죠.”

“기도원.”

“예?”

“기도원에 있다고!”

오점순이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필웅은 침착하게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하지만 기도원은 전에도 가 봤는데요. 거기엔 감금시설밖에 없었습니다.”

“이 얼간아! 생산시설이 그렇게 눈에 띄는 곳에 있을 것 같아? 생산시설은 기도원 안의 예배당이…!”

순간, 마치 전원이 꺼지듯 오점순의 몸 전체가 경직되었다.

필웅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가 불가사의한 작용으로 인해 그녀까지 교단에 의해 살해당하기라도 한 것인지 우려돼서였다.

“오점순 씨?”

필웅이 일어서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자, 오점순은 갑자기 크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크리미널 아카이브의 효과가 다한 모양이었다.

오점순은 여전히 조금씩 떨고 있었지만, 눈에 서린 부자연스러운 핏발이나 경직은 사라진 후였다.

오점순은 자신이 여기서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필웅을 올려다보았다.

“뭐지? 뭔가… 뭔가가 머릿속을 때리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글쎄요.”

필웅은 대강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기도원 안의 생산시설에 대해 얘기해 보죠.”

그제서야 오점순은 자기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생산시설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그건….”

“이제 와서 발뺌해도 늦었습니다. 말했잖아요. 어차피 정보를 쥐고 있는 이상 당신은 위험해집니다.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럼 어차피 위험에 빠졌는데, 왜 내가 당신들에게 협조해야 하지?”

“당신에게 특별 보호 프로그램을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시 교도관 1명이 당신을 따라다니게 될 거고, 당분간은 원한다면 독방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주겠습니다.”

필웅은 서춘주가 독방에서 살해당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래도 누가 같이 생활할지도 모르는 다인실에 있는 것보단 독방에 있는 것이 감시나 보호 차원에서 더 나을 것이었다.

괜히 오점순의 불안감을 부채질해봤자 얻을 것이 없었다.

오점순은 뭐라고 말을 꺼내려다가 멈칫하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더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겠지. 그래, 생산시설은 예배당의 비밀 출입구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어.”

필웅은 등잔 밑이 어두웠다고 생각했다.

기도원은 이미 장경과 자신이 조사해 본 장소이니만큼 그곳에 다른 공간이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필웅은 자신의 꼼꼼하지 못함을 자책하면서 재차 물었다.

“그 비밀 출입구로는 어떻게 들어가는 겁니까?”

그때 갑자기 조사실의 문이 열렸다.

필웅은 짜증스러워하며 아직 신문이 끝나지 않았다고 항변하려고 했지만, 들어온 수사관의 말이 더 빨랐다.

“이송 결정입니다.”

“뭐라구요?”

“신변 보호를 위해 오점순 피고인을 다른 구치소로 이송하기로 했습니다.”

오점순은 필웅과 수사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날 속였구나!”

“아닙니다. 나도 모르는 일이에요.”

필웅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오점순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수사관들이 억지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이거 놔!”

“잠깐만요. 갑자기 어디로 이송을 하겠다는 겁니까?”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담당 검사인데 대체 왜 알려 줄 수 없다는 겁니까!”

필웅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수사관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사건이 재배당 되었습니다. 이제 담당 검사가 아니십니다.”

“뭐라구요?!”

“영산지청장님 지시여서. 그럼 이만.”

수사관은 그 후 별말 없이 반항하는 오점순을 끌고 조사실을 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필웅은 혼란에 빠졌다. 잠시 후, 필웅은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연아, 혹시 영산지청장님이랑 이규필 차장 관계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응, 잠깐만.”

인트라넷에서 몇 가지 정보를 검색한 시연은 금방 필웅에게 둘의 관계를 알려주었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영산지청장이 오점순 사건을 갑자기 다른 검사한테 재배당했어.”

“뭐? 그럼….”

“슬슬 여기에도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겠지.”

생각해 보면, 하필 영산지청으로 필웅을 발령 보낸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었다. 이규필로서는 자기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곳에 필웅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적극적으로 필웅을 방해해 오지 않았지만, 사건의 핵심에 필웅이 점점 다가서자 이제는 노골적으로 필웅을 방해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좋아, 이렇게 야비하게 나오겠다 이거지?’

필웅은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듣도 보도 못한 영산시로 좌천당했을 때도, 갑작스럽게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을 때도 군소리 없이 따랐던 그였지만 이런 식의 치졸한 방해는 도저히 참아주기 어려웠다.

‘어차피 얻을 정보는 다 얻었다, 이거야.’

필웅은 조사실을 나와 기도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면서 장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도원이라구요? 하지만 거긴….”

“어딘가 비밀 공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점순한테 알아낸 건데, 정확한 위치는 가서 좀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필웅의 설명에 장경도 곧 출발하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윽고 택시는 기도원에 필웅을 내려주었다.

필웅은 요새같이 늘어선 기도원의 벽을 잠시 상념에 젖어 바라보았다.

‘처음 이 일에 뛰어든 게 언젠지 벌써 까마득하군.’

실제로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다. 삼영의 사건을 수사하던 그가 좌천당하고, 사이비 종교집단에게 시연을 납치당하고,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기고… 그것이 모두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필웅은 잠시 기도원 벽에 기대서서 장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저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장경이 차에서 내려 반갑게 인사했다.

“허 참, 여기에 생산시설이 있다구요? 등잔 밑이 어두웠네요.”

장경은 필웅이 처음 느낀 것과 똑같은 감상을 들려주며 기도원의 높은 벽을 새삼스럽게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쳐들어갑니까?”

필웅은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전에는 험상궂은 덩치가 지키고 있던 곳이었지만, 기도원에는 전반적으로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교단의 지도층이 와해되면서 관리가 소홀해진 모양이었다. 필웅은 크리미널 아카이브도 발동해 보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일단 지키는 사람은 따로 없는 것 같으니 들어가 보죠.”

생산시설인데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건 뭔가 이상했지만, 필웅은 일단 밑져야 본전이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장경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들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죠.”

필웅이 그를 돌아보자 장경이 씩 웃으며 말했다.

기도원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예배당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필웅과 장경이 함정에 빠진 곳이었다.

필웅은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떠올리며 예배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왔다.

필웅은 인기척이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4원로와 서원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여?”

장경이 먼저 험악하게 외치며 총을 꺼내 겨누었다. 4원로는 어느새 손에 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자, 잠깐!”

서원주가 두 손을 내밀어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잠깐만요! 여기서 뭣들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거냐니, 그건 우리가 물을 말이지! 당신들이야말로 여긴 왜 온 거야!”

장경이 기세 좋게 소리치고는 있었지만, 필웅은 어느 정도 그들이 여기에 온 목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교단의 지도부가 사실상 와해된 지금, 교단의 실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교단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을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단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신도도 교단이 가진 돈도 아니었다.

‘바로 신약의 완성품이겠지.’

그리고 신약의 완성품이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신약의 생산시설일 것이다.

그런 결론 하에서라면 4원로와 서원주가 제 발로 이곳을 찾아 돌아온 이유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신약을 손에 넣는 자가 교단을 지배한다.

그리고 교단을 지배하는 자가 교단을 대표해서 삼영이나 수사기관과의 교섭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신약은 교단의 옥새나 다름없었다.

장경의 외침에 서원주와 4원로는 서로를 잠시 마주 보았다.

이내 평정을 되찾은 듯한 서원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희는 교단 소속 인원입니다. 여기는 교단 부지고요. 영장을 갖고 나오신 게 아니라면 저희야말로 물을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필웅과 장경이 서로 마주 보았다.

필웅은 시연을 통해 영장을 신청해 둔 상태였지만, 아직 영장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필웅이 이를 갈며 대꾸했다.

“이 부지에서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원주 씨 당신은 이미 교단에서 탈퇴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서원주는 잠시 움찔했지만, 곧 교활한 미소를 띠며 능숙하게 대답했다.

“사정이 있어서 잠시 교단의 운영을 위임받기로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교단의 지도층이 전부 운영에 손을 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요. 유일한 원로인 여기 4원로가 책임자입니다.”

4원로는 여전히 나이프를 든 채로 꼿꼿이 몸을 세우고 있었다. 동작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보였다. 여차하면 나이프를 던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공권력이랑 한번 해보자는 거여?”

장경이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총을 바로잡았다.

어쨌든 4원로가 아무리 민첩하다고 해도 장경이 쏠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서원주는 잠시 장경이 손에 쥐고 있는 권총을 밉살스럽게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정 그러시면, 저희와 함께 들어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필웅은 장경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어차피 비밀 출입구가 있다면, 장경과 필웅이 찾아 헤매느니 그들을 따라 들어가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었다.

“좋습니다. 먼저 들어가시죠.”

“총 여전히 들고 있으니까 허튼 생각덜 말어!”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서원주와 4원로가 눈치를 보며 몸을 돌려 예배당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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