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정보를 가진 자의 위험
“누군가와 접촉하고 있다니, 누구랑 말입니까?”
필웅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식당에 들어가려던 시연도 덩달아 주춤거리며 필웅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슴다. 워낙 시커먼 옷을 입은 놈이라서… 일단 따라붙어 보겠슴다.”
“예, 부탁드립니다!”
필웅은 전화를 끊고 난감한 표정으로 시연을 돌아보았다.
“어쩌지? 서원주가 누군가와 접촉하고 있는 것 같아. 따라가 봐야겠는데.”
“그래? 그럼 같이 가자.”
“괜찮겠어?”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와서 나만 신나게 밥이나 먹고 있으라는 소리야?”
시연이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반문하자, 필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가 보자.”
* * *
몇 분 전.
서원주가 장경이 숨어 있는 차 옆쪽으로 막 돌아 들어오려던 참이었다.
“여기다.”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장경은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가 서원주가 반응했다. 서원주는 멈춰 서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장경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왔군요.”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지?”
“일단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시죠.”
서원주는 말하며 거침없이 제3의 인물 쪽으로 걸어갔다.
장경은 펄떡펄떡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재빨리 전화를 꺼내 들어 바로 필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웅과 대화를 마치고 장경은 몰래 고개를 들어 서원주가 걸어간 쪽을 살펴보았다.
서원주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밤이 어두워 형체는 잘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로 미루어 젊은 남자인 것 같기는 했으나, 장경은 처음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내 서원주와 사내는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장경은 들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몸을 낮추고 살금살금 그들의 뒤를 쫓았다.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서원주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그들은 10분 정도 걸어 아파트 옆의 공사 중인 공터로 향했다. 낮에는 아이들도 와서 뛰어노는 곳이었지만, 늦은 밤인지라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장경은 눈치를 살피다가 몸을 숨길만 한 곳을 찾았다. 공사 중인 폐자재를 쌓아 둔 곳이 눈에 띄었다. 장경은 숨소리도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폐자재 뒤로 몸을 숨겼다.
“자, 그래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지간히 성격이 급한 모양이었다.
“날 왜 부른 거지?”
“왜 부르다뇨. 당연한 것 아닙니까?”
남자가 툴툴댔다.
“뭐가 당연한지 모르겠다. 일단 난 당신을 잘 모른다.”
“섭섭한 소리를. 함께 일하던 동료 아닙니까?”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동료? 말은 똑바로 해라. 당신은 그냥 낙하산이었다.”
서원주는 말이 없었다. 남자가 다시 으르렁댔다.
“그러니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대체 왜 날 찾은 건지 말해라. 어떻게 찾았는지도.”
“교단에서 일하던 시절 당신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남자가 이제 끌끌 대며 노골적으로 비웃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어가 바뀐 것 아닌가?”
“아뇨. 정확히 말한 겁니다.”
순간 달빛 아래 무언가가 빛났다.
남자가 칼을 꺼내 든 것이었다.
남자는 제대로 볼 수도 없는 빠른 동작으로 칼을 서원주의 목에 가져다 댔다.
“난 지금 신경이 굉장히 날카롭다. 자꾸 나를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
“저는 지금 신경이 그다지 날카롭지는 않지만, 같은 말을 해드리고 싶군요.”
남자는 큭큭 하고 웃더니, 칼을 든 손 그대로 서원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
“크윽!”
불의의 일격을 맞은 서원주가 코를 감싸 쥐면서 비틀거리더니, 이윽고 주저앉았다.
“굴러들어 온 낙하산 주제에 협박이라니, 건방지다.”
남자는 주저앉은 서원주를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서원주는 강풍에 쓰레기봉투가 날려 가듯이 맥없이 땅바닥을 굴렀다.
“컥, 커헉. 일단 얘기나 좀 들어 보고….”
남자가 서원주의 머리채를 붙잡아 올렸다.
“한 번만 기회를 준다.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간 머리통에 숨 쉬는 구멍을 하나 더 만들어 주겠다. 네 계획을 설명해 봐라.”
남자는 잡고 있던 서원주의 머리채를 휙 팽개쳤다.
그에 따라 서원주의 얼굴도 휙 돌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서원주는 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내며 간신히 일어섰다.
장경은 서원주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남자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무척 잔혹하고 냉정한 인물 같았다.
‘가만, 저거 혹시 그 4원로 아녀?’
김영지가 예전에 언급했던 4원로는, 일종의 킬러같이 교단의 그림자에서 암약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지금 눈앞의 남자가 보인 냉혹한 손속이나, 대화 내용에 미루어 볼 때 남자가 4원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어둠 속에 얼핏 드러나는 4원로의 얼굴은 생각보다도 젊었다.
많아 봐야 20대 정도로만 보였다. 4원로는 나이프를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서원주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퉷, 퉷. 좋습니다. 이제야 좀 이야기할 기분이 드나 보군요. 본론만 말하죠. 지금 당신은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뭐?”
남자가 짜증스러워하며 다시 한번 서원주의 멱살을 잡았다.
“말을 똑바로 고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아니면 뭐요? 6원로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라도 있습니까? 내가 순순히 굴지 않으면 어떻게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죠? 그런데도 나를 함부로 해칠 수 있습니까?”
서원주는 멱살을 잡힌 채로도 굴하지 않고 4원로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놀랍게도 4원로의 두 눈이 약간 흔들렸다.
서원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없죠? 교단에서 지시하지 않은 임무를 마음대로 수행할 자신이 있습니까?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남자, 4원로는 자기도 모르게 서원주의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4원로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건 아니지만….”
“잘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지금 교단에는 당신과 저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전부 죽거나, 감옥에 갇혀 있죠. 교단의 의지를 수행할 수 있는 건 우리 둘밖에 없단 말입니다.”
‘어, 뭐야? 6원로 자리에서 물러 나온 게 아니었어?’
장경은 인상을 쓰며 좀 더 확실하게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필웅의 말에 의하면 서원주는 자신이 교단에서 탈퇴했다고 했지만, 아직도 교단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당신은 이제 원로도 아니다.”
남자가 믿기 어렵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장경은 자기도 궁금했던 것을 언급해 주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래서요? 교단의 6원로 자리는 지금도 공석이라고 하던데요. 어차피 공석인 판에야, 전(前) 원로가 대행하는 게 그래도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겠습니까?”
“대체 무슨 소릴….”
“잘 생각해 보세요. 저조차도 없다면 당신은 교단에 남은 유일한 원로입니다. 교주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한참 됐구요. 지금 상황에서 당신 혼자 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역시 저놈이 4원로가 맞나 보군.’
4원로는 서원주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닫았다.
잠시 후, 그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당신 계획은 뭐지?”
“일단은….”
서원주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장경은 좀 더 잘 듣기 위해서 몸을 그들 쪽으로 기울이다가, 쌓여 있던 폐목재 하나를 건드리고 말았다.
-투둑
작은 소리였지만, 적막한 공터에 울리기는 충분했다.
서원주와 4원로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냐!”
장경은 혀를 차며 슬금슬금 폐자재 뒤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아직 저 둘은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내 4원로는 공터에 몸을 숨길 만한 곳이라곤 폐자재가 쌓여 있는 자리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4원로는 험악한 표정으로 장경이 숨어 있던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장경은 하룻밤에 두 번이나 들키게 되다니 재수도 억세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피할 곳을 찾았다.
그때, 누군가가 장경의 목덜미를 잽싸게 끌어당겼다.
‘헉!?’
장경은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그의 입까지 틀어막았다.
장경이 놀라서 발버둥을 쳤지만, 그 누군가는 그를 질질 끌고 공터 밖으로 그를 들어 옮겼다.
공터 밖으로 한참 나와 4원로와 서원주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그 누군가는 장경을 풀어주었다.
아니, 누군가는 한 명이 아니었다.
필웅과 시연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검사님들?”
“후… 좀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구요. 다행히 우리가 밖에서 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언제 도착하셨슴까?”
장경이 반가워하며 묻자 시연이 대답했다.
“한 10분 됐어요. 그래서, 저 남자는 누구예요?”
장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마 교단의 4원로인 것 같슴다.”
“4원로라… 둘이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서원주가 자신이 6원로로 복귀할 테니 자기를 도와달라는 식의 얘기를 했슴다. 그 뒤의 구체적인 계획을 얘기하려는 찰나에 들키는 바람에….”
장경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뭐, 어쩔 수 없죠. 지금은 아마 경계하고 있을 것 같긴 한데, 조심해서 좀 멀찍이서 지켜봅시다.”
필웅과 장경, 시연은 공터 쪽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했지만, 그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요?”
낭패감을 느끼며 장경이 중얼거렸다.
“알 수 없죠. 하지만 누군가가 따라붙었다는 걸 눈치챘으니, 서원주는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어디서 이놈들의 다음 행적을 알아봐야 할까요?”
“글쎄요….”
필웅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시도해 볼 만한 곳이 있을 것 같기는 하군요.”
* * *
오점순은 삐딱하게 앉아 필웅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나한테 뭘 물어보시겠다고?”
필웅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신약. 신약이 제조되는 곳을 알려 주시죠.”
“하!”
오점순이 콧방귀를 뀌면서 씹어뱉듯이 말했다.
“머리 나빠? 대체 내가 왜 그걸 알려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서춘주가 죽었습니다.”
차가웠던 오점순의 표정에 일말의 동요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김영지도 죽었죠. 당신네 원로들은 거의 다 죽거나, 구속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단 걱정이라도 해 주는 거야?”
“교단 걱정이라기보단 당신 걱정이죠.”
오점순이 힐끗 필웅을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야?”
“서춘주를 누가 죽였다고 생각합니까?”
“뭐?”
“잘 생각해 보세요. 서춘주와 관련이 있는 조직은, 교단 아니면 서춘주를 조사 중인 국가기관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서춘주가 살해당했다면, 과연 그중 누가 서춘주를 죽인 걸까요? 국가기관이? 아니면 교.단.이?”
필웅은 ‘교단’이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어 또박또박 말했다.
“교단이 어째서 서춘주를…!”
“지금 중요한 건 어째서가 아니라 죽였는지 죽이지 않았는지 여부죠. 당신이 대답해 보시죠. 교단이라면, 필요에 따라서 서춘주를 죽일 수 있을까요?”
오점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었다. 필웅은 이를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교단이 왜 서춘주를 죽여야 했을까요? 이미 오래전에 구속된 황대산은 지금도 잘만 살아있는데 말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겠습니까?”
오점순이 마지못해 궁금한 눈빛을 필웅에게 보내왔다.
“바로 정보의 차이입니다. 황대산은 교단의 계획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자르고 버릴 수 있는 꼬리 같은 거죠. 하지만 서춘주는 어떻습니까? 만일 그가 입을 열게 된다면 교단의 모든 계획이 틀어질 겁니다. 이걸 수습할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교주가 그걸 두고 볼 수 있었을까요?”
오점순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지만,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오점순은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필웅은 슬쩍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당신은 어떤가요? 교단의 계획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죠?”
오점순의 다리가 조금 더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