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독방 살인
필웅이 어안이 벙벙해져 장경에게 대체 서춘주가 어떻게 죽었냐고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어, 검사님. 혹시 형 얘기하고 계시는 건가요?”
‘서춘주’라는 이름을 들은 서원주가 눈을 빛내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필웅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예.”
“혹시 가능하면 제 돈은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좀 알 수 있을까요?”
필웅은 이 판국에 돈부터 찾는 서원주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죄송한데 지금 좀 급한 전화여서요. 말씀하신 건 한 번 좀 알아보겠습니다. 혹시 조용히 전화할 만한 데가 있을까요?”
“아, 여기 베란다 이용하시면 됩니다.”
서원주는 얼른 일어나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필웅은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하고는 베란다에서 통화를 계속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서춘주는 구치소에 있잖아요. 자살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자살은 아닌 것 같슴다. 검시관 얘기로는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에 경동맥을 잘린 것 같다고….”
“뭐라고요! 그럼 살해당했다고요? 구치소 안에서?”
“면목없슴다.”
장경이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 가고 싶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사님이 면목 없어 할 일은 아니죠. 그럼 범인은 잡았습니까?”
“그게 저녁에 잠들 때는 이상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같이 수감된 죄수들이 그런 거 아닙니까?”
“서춘주는 독방 수감 중이었다고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신변의 불안을 호소해 왔다고 하던디요. 독방으로 가지 않으면 자기는 죽을 거라면서….”
“왜죠? 구치소 내에서 협박이라도 당한 건가요?”
“그런 것 같진 않슴다. 뭔가 구체적인 협박이 있었거나 괴롭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계속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고는 하는데 아무 근거가 없으니 구치소에서도 처음엔 독방에 수감할 수 없다고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준 모양임다. 애초에 사실 독방도 사고친 놈들 징계하려고 보내는 곳인데 본인이 부득불 가겠다고 하니 막을 명분도 없고….”
“그렇다면, 서춘주는 독방 안에서 살해당했다는 말입니까?”
“예.”
필웅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비록 당장 뭔가 단서를 주지는 않겠지만, 서춘주는 중요한 참고인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감옥에서 의문사를 당한 것이다.
필웅은 베란다 문을 열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서원주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좀이 쑤셔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필웅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서춘주 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예!? 형이요? 하지만 형은 구치소에 있다고….”
“구치소 안에서 돌아가신 모양입니다. 자세한 건 구치소에서 따로 연락 주실 겁니다.”
“그럴 수가….”
서원주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필웅은 뭐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그의 곁으로 가서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잠시 후, 서원주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후,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형이 살인 혐의에다가, 이제는 본인이 사망했다니.”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서원주가 피식 웃었다.
“글쎄요. 지금 느끼는 기분이 상심인지 아니면 무서운 건지 잘 모르겠네요. 형을 죽인 건 누구죠?”
“아직 조사 중입니다.”
“왜 죽인 거죠?”
“그것도 아직…”
서원주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그 표정 그대로 필웅을 돌아보며 물었다.
“형이 죽었는데 왜, 누구에게 죽었는지도 모른다면 저도 위험한 것 아닙니까?”
필웅은 잠시 멈칫했지만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은 교단에서 손을 뗀 지 한참 되지 않았습니까? 교단의 일 때문에 서춘주가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같은 이유로 당신까지 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교단 일 때문에 습격당한 걸까요?”
필웅은 결국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로서도 서춘주가 왜,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왠지 교단 내부의 권력 투쟁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수수께끼의 교주나 4원로가 굳이 무리해서까지 구치소 안에 있는 서춘주를 살해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 주시죠. 갑자기 너무 많은 소식을 접하게 되니 혼란스럽네요. 어머니도 돌봐 드려야 하고.”
“알겠습니다.”
필웅은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원주에게 무언가를 더 캐묻더라도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대신 필웅은 장경에게 전화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필웅은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며 아파트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낡은 아파트가 어두워지는 노을빛을 받으며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장경은 서원주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어둡게 썬팅이 된 차에 앉아 장경은 서원주가 살고 있는 아파트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기는 교단에서 나왔다면서 교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뭔가 수상해요. 일단은 참고인으로서만 조사한 걸로 얘기해 뒀으니까, 저와 교대로 감시하시죠. 서춘주와 똑같이 생겼으니 못 알아볼 일은 없을 겁니다.”
필웅이 서원주와 대화한 내용을 장경에게 알려주면서 일러둔 말이었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제.’
장경은 처음부터 서원주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물론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처음부터 단순히 돈 때문에 허수아비 원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나 교단의 사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야기 모두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많다. 그러나 일반인이라면 설령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필웅이 전달해 준 뉘앙스에 비추어 보면, 서원주는 단지 어쩔 수 없었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 돈 때문에 조직범죄에 가담했다는 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장경이 속으로 서원주에게 욕설을 내뱉고 있을 때였다.
어둠에 감싸인 아파트 입구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저거 서원주 아녀?’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이미 서춘주를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장경으로서는 쉽게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 똑같이 생겼네.’
심지어 큰 체구까지도 비슷한 걸 보니, 서춘주 형제의 큰 몸집은 단순히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원래 체형인 모양이었다.
서원주는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장경은 썬팅이 된 차 안에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뭘 찾고 있는 거지?’
그러나 서원주는 한참을 두리번대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본 모양이었다.
장경은 조용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그가 서원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는 순간이었다.
-삐리리리
어둠 속에서 단조로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왔다.
‘이런, 염병할!’
얼마 전 장경이 새로 장만한 핸드폰이었다.
김 계장은 형사 박봉에 뭔 놈의 핸드폰이냐며 혀를 찼지만, 수사 목적상 필요하다는 장경의 주장에 별말 없이 월급을 가불해 주었다.
하지만 사용이 익숙치 않아 미처 소리를 꺼놓지 못한 것이었다.
전화를 허둥지둥 끄고 차 옆면에 몸을 숨긴 장경은 빼꼼히 차 위로 고개를 들어 서원주 쪽을 지켜보았다.
서원주가 매처럼 날카롭게 고개를 돌려 이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 있어 정확한 위치를 찾지는 못한 모양이었지만, 인기척은 들은 모양이었다.
서원주는 의심스럽게 한동안 장경이 숨어 있는 쪽을 기웃거리더니, 이내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니미럴, 어떡하지?’
장경은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 감시 중인 것을 들키면 끝장이었다.
지금 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서원주 뿐이었다. 그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면, 어떤 행동을 하려다가도 몸을 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를 통해 교단의 남은 수뇌부에게 접근할 계획은 모두 망쳐지고 말 것이었다.
서원주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서원주가 마침내 장경의 차 옆까지 다가와 슥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장경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장경의 차 옆에 세워진 차의 옆면으로 기다시피 하여 몸을 숨긴 참이었다. 하지만 서원주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으니, 여기서 더 움직이면 인기척을 들킬 위험이 있었다.
장경은 여차하면 서원주를 기절이라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단단히 준비를 했다.
서원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음 차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좋아… 셋에 움직이는 거다!’
장경은 숨을 죽인 채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 * *
“서춘주가 죽었다며?”
며칠 후 필웅이 시연의 사무실에 찾아가자, 인사를 미처 하기도 전에 시연이 대뜸 물었다.
“응.”
“어떻게 된 거야?”
“누군가에게 습격당한 것 같아.”
“누구한테?”
“그것 때문에 여기 온 거야.”
“?”
“서춘주를 누가 죽였는지 조사 좀 해줘.”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너는?”
필웅이 시연의 사무실에 놓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서원주를 좀 더 조사해 보려고.”
“서원주라면, 서춘주의 동생?”
“응. 교단의 원로였던 것 같아. 하지만 자기 말로는 교단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던데.”
“그게 말이 돼?”
“나도 뭔가 이상해서 조금 더 지켜보려고 하는 중이야. 일단 감시만 붙여 놨어.”
“그래. 밥은 먹었어?”
“이제 먹어야지.”
“잘됐네. 밥 먹으면서 좀 더 얘기해 보자.”
필웅과 시연은 필웅이 서울남부지검에 있을 때 자주 가던 백반집으로 향했다.
“여기는 그대로네.”
백반집으로 향하는 시장 골목을 걸으며 필웅이 상념에 잠겨 중얼거리자 시연이 피식 웃었다.
“뭘, 네가 간지 얼마나 됐다고.”
“워낙에 모든 게 빨리 바뀌니까. 얼마 전 내가 살던 집도 전부 무너지고 말이야.”
필웅의 말에 시연도 감상에 빠진 표정이 되었다.
“그러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네.”
필웅은 처음 과거로 돌아와 검사가 되었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가 해결한 사건들, 시연, 장경 그리고 다혜와 보냈던 순간들. 모두가 그가 일찍이 나영전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삶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은전차사는 필웅이 다시 미래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필웅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야.’
“뭐 해? 들어가자.”
시연이 필웅을 잡아끌었다.
필웅이 시연과 함께 백반집에 들어서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어, 형사님?”
서원주를 감시하고 있을 장경으로부터 전화가 오자, 필웅은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검사님! 서원주가 누군가와 접촉하고 있슴다!”
“예? 뭐라구요!?”
필웅의 인상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