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로 개과천선-137화 (137/151)

137화 원로들의 비밀

‘서원주라고?’

분명 그가 장경으로부터 들은 서춘주의 동생 이름이었다.

‘서원주는 서춘주와 쌍둥이였던 건가? 그렇다면 방금 그 노파는 서춘주와 서원주의 어머니겠군.’

필웅은 생각하면서 동시에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내밀어 서원주의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예, 말씀은 익히 들었습니다. 조필웅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보내서 오셨다고…?”

서원주는 손을 천천히 놓으면서 궁금한 눈빛으로 필웅을 쳐다보았다.

필웅은 비로소 방금 문을 열게 하기 위해 자신이 둘러댄 거짓말을 떠올렸다.

“아, 예. 잠깐 들어가서 얘기 나눠도 될까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쫓겨날까 봐 필웅은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예, 그러시죠.”

서원주는 의심의 기색도 없이 흔쾌히 필웅을 안으로 안내했다.

겉으로 보는 것만큼 낡은 아파트였다. 장판은 언제 바꾼 것인지 여기저기 일어나 있었고, 구석에는 물이 샌 흔적들도 있었다.

방은 2개였고, 방문 하나는 닫혀 있었다. 아마 서원주가 어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방 안에 들여보낸 모양이었다.

서원주는 냉장고를 열더니 보리차를 따라 필웅에게 건넸다.

“혹시, 저번에 형님께 부탁드린 사항에 대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필웅이 보리차를 건네받자마자 서원주가 간곡한 목소리로 물었다.

필웅의 표정에 의문이 떠오르자, 서원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 죄송합니다. 마음이 너무 급해서… 천천히 얘기하시죠.”

“아뇨,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말씀드릴 게 있어서.”

필웅은 사실 자신이 검사고, 서춘주는 현재 살인 혐의로 구속 중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예? 살인이요?”

“놀라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아니… 사실은…”

서원주의 반응은 필웅의 예상과는 달랐다. 서원주는 살짝 놀라긴 했지만, 서춘주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이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필웅은 흥미를 느꼈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서원주는 입을 꾹 닫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서원주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필웅을 마주 보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저 역시… 교단의 원로였으니까요.”

필웅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필웅도 당연히 서원주가 서춘주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것이고 교단과도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경과 함께 만났던 사기 피해자는 그가 서춘주에게 박대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니 필웅은 서원주가 교단에서 중직을 맡을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단의 원로라고? 아니, 원로였다고?’

“그렇다면 당신이 6원로입니까?”

서원주가 갑자기 생각에 잠긴 듯 멍한 표정을 짓다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어, 음. 아, 맞다. 그랬던 것 같네요. 사실 무슨 지위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서.”

“무슨 말입니까? 그렇다면 왜 교단에 들어갔죠?”

“솔직히 말하면 딱히 교단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닙니다.”

서원주가 불쾌한 기색을 띠며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희 가족과 형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형은 어렸을 때부터 정도를 걷기보다는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희한한 사업들을 벌이는 데 몰두했죠. 계속 형이 실패했어도 어머니는 형을 공평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했지만, 형은 그런 어머니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형은 매일 밖에 나가 있었고, 항상 집에서 겉도는 존재였죠.”

필웅은 갑자기 웬 가족 얘긴가 했지만, 서원주가 말릴 사이도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기에 일단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서원주는 딱히 정보를 숨기는 타입은 아닌 듯하니, 중요한 정보가 흘러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은 집을 나갔습니다. 저 혼자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말하며 서원주는 자조적으로 자신의 한쪽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의 한쪽 다리는, 비록 긴 바지에 감춰져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근육이 하나도 없었다.

“선천적으로 저는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기저기 일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대부분 제가 할 수 없는 일이거나 어렵게 일을 구해도 잘리기 일쑤였습니다.

아무튼, 그러던 저에게 갑자기 형이 접근해 왔습니다. 교단에서의 자리를 제안하더군요.”

“그 전에도 이미 교단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서원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처음 들어봤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관심도 없었죠. 그런데 형이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더군요. 자신이 교단의 원로직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원로로 들어와서 앞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도와주기만 하면 상상도 못할 거액의 돈을 쥐여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필웅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손쉬운 거래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라니… 뭘 도와줘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고 말입니까?”

서원주는 손을 내저으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의심했습니다. 보통 이런 종류의 거래가 정상적인 내용일 리가 없잖아요? 그때는 당연히 교단이 뭔지도 잘 몰랐구요. 그렇지만 저 혼자 어머니와 저를 건사하기에는 너무 벅찼습니다. 이것저것 따질 틈이 없었죠.

그렇게 저는 교단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원로가 되었습니다.”

‘최고원로인 김영지조차 자신의 편을 만드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서춘주의 실질적인 권위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군. 아니, 김영지는 애초에 자기편을 만들 수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런 걸지도.’

필웅은 잠시 그가 기억하던 김영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물론 똑똑하고 여러 가지 잡기에 능한 기술자였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정치력의 측면에서 그와 서춘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필웅은 재차 서원주에게 물었다.

“서춘주가 서원주 씨가 원로가 되어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뭘 도와달라고 한 건가요?”

“처음엔 별 것 없었습니다. 그냥 소위 원로들의 회합이 있으면 거기서 형의 의견을 적당히 지지해서 형의 의견이 채택되도록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원로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알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은 기존 원로였던 자들에 맞서 자기편이 필요했던 것 같구요.”

“그랬군요.”

필웅은 어느 정도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금까지 겪어 온 교단의 원로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통제하려고 하는 집단이었다. 그런 집단에서 서춘주가 자신의 편을 하나라도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끌어들인 대상이라는 게 자기가 버려둔 동생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말이지.’

반대로 이는 서춘주가 그나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 오래전에 의절하다시피 한 동생뿐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 후로 교단은 언제 떠나게 된 겁니까? 지금은 원로가 아닌 것 같은데.”

필웅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가듯 물었다.

하지만 서원주가 언제 원로 직을 떠났느냐에 따라 신약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만에 하나 신약 개발이 개시된 후 그가 떠났다면, 교단이 그 신약으로 정확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가 교단을 떠난 건 3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필웅은 약간 실망했다. 교단이 신약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3년 전이라면 이 일련의 계획이 시작되기 전인 것 같았다.

그래도 필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교단의 신약 개발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서원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신약이요? 종교단체가 약은 왜 만든답니까?”

아무래도 서원주는 신약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필웅은 잠시 그의 표정을 살펴보다가,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발동시켰다.

<사칭…>

<주도권을 넘겨받아…도주…>

역시 서원주도 아무 범죄와도 연관이 없는 결백한 인물은 아닌 듯했다.

그의 범죄와 관련된 내용들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누군가를 사칭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의 어떤 지위를 사칭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필웅은 일단 다음 질문을 준비했다.

“그럼 교단에서는 왜 나온 겁니까?”

서원주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서원주는 두 손을 맞잡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뭐가 이상했죠?”

“처음 저는 교단이 그냥 웃기는 조직이고, 교단의 교리를 믿고 찾아온 사람들의 푼돈이나 갈취하는 그저 그런 사기 단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걸 알면서도 거기에 협조했으니 저 스스로도 떳떳하지는 않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교단은 그냥 그저 그런 사기꾼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교단은 뭔가 더 큰 걸 노리고 있었어요.”

“더 큰거라뇨?”

“그건 뭐랄까,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업이라는 걸 준비하면서 점점 이상한 짓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체불명의 유령회사들을 사들이고, 알 수 없는 물건들을 밀수하고, 나중에는 분명히 마약인 것 같은 이상한 약품들도 운반하는 걸 봤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여기에 연루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서원주가 말하는 시기는, 교단이 본격적으로 신약을 만들기 위해 몸집을 불리던 시기인 모양이었다.

서원주가 언급한 ‘새로운 사업’이란, 그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바로 신약 개발을 위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서원주가 신약 개발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약간 흥미를 잃었던 필웅은 다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그래서 교단을 나온 겁니까?”

“예. 처음엔 형이 엄청나게 뜯어말렸죠. 나중에는 협박 비슷한 것도 했구요. 하지만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해서라지만 이런 짓에까지 연루됐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약이라니, 장난이 아니잖아요?”

필웅은 속으로 종교단체를 빙자한 사기 단체나 마약 유통이나 똑같이 범죄가 아니냐고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렇… 지요.”

“그리고 나서는 형을 찾아가 그래도 그동안 형을 도와준 게 있으니 약속한 돈을 달라고 했었죠. 그랬더니 그 후로 저를 무시하고, 만나 주지도 않는 겁니다.

저번에는 강연회장까지 쫓아갔었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전 사기 피해자가 강연회장에서 목격한 것이 바로 이 장면인 모양이었다.

필웅이 몇 가지를 더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필웅의 핸드폰이 울렸다.

필웅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무시하기로 했다. 서원주의 이야기에서 뭔가 얻어낼 만한 정보가 더 있는 것 같았던 데다가 만일 서원주가 갑자기 마음이라도 바꾸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별생각 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였지만 갑자기 자신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필웅에게 들려주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라도 들면 큰일이었다.

“하던 얘기 계속하시죠. 교단은 당시에 정확히 뭘 계획하고 있었죠?”

그러나 잠시 후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필웅은 어쩔 수 없이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제가 지금 좀 바쁜데 나중에 다시….”

“검사님, 저 장경입니다! 큰일이에요!”

“무슨 일입니까? 저 지금 서원주 씨랑 얘기하고 있어요. 조금 있다 제가 전화할 테니….”

필웅이 장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단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장경이 황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아니, 그러면 더더욱 지금 들으셔야 할 것 같슴다. 서춘주가…”

“서춘주가 왜요?”

“서춘주가 죽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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