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로 개과천선-125화 (125/151)

125화 김영지의 비밀

“뭐라구요?”

필웅이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최고원로? 김영지 씨 말입니까?”

“김영지? 그래…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군요. 우리끼리는 워낙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필웅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가 알기로 서춘주는 바로 제8요일 교단의 교주였다.

물론 김영지가 교단에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나서 교주를 암살하려고 한다는 것이 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은 제8요일 교단의 교주 아닙니까?”

필웅이 놀라움이 미처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묻자, 서춘주가 재미있다는 듯 눈으로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교주님이요? 허허, 당치도 않습니다. 저야 그저 교단에 견마지로를 다하고 있는 낮은 자일 뿐이지요.”

‘뭐라는 거야?’

필웅은 신경질을 내려다가 서춘주의 말뜻을 이해했다.

‘서춘주는 교주가 아니었어!’

적어도 서춘주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물론 그가 원로 이상의 직급에 있다는 것은 일전 황대산이나 오점순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봐도 알 수 있었지만, 그가 자기의 입으로 자신이 교주라고 한 적은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었군.’

필웅은 약간 실망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가 교주가 아닌 원로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전부 다 잡아넣을 놈들인데 밑바닥부터 차례대로 올라가는 것도 좋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방금 당신을 습격한 사람이 김영지라는 걸 아는 겁니까?”

서춘주가 긴장이 풀린 듯 차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 교단의 회동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워낙에 언동이 눈에 띄는 분이니까요.”

필웅은 나이답지 않은 김영지의 형형한 눈빛과 걸걸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에 남는 타입이긴 하지…’

서춘주는 대화를 나누면서 이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 다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서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서 더 이야기를 나누기도 좀 그러니, 자리를 옮기지 않겠습니까?”

필웅은 장경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신 저희 차로 가시죠. 어차피 기사분도 운전을 할 상태는 아닌 듯하니.”

필웅이 어느새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암살자의 습격을 당해 쓰러진 기사의 시체를 들것으로 옮기는 장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러시죠.”

서춘주는 예상외로 순순히 필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필웅은 그를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도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필웅은 서춘주가 흔쾌히 자신들과 동행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서춘주의 경우, 물론 필웅은 이미 그가 어떤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어차피 아직은 그의 사기 행각이 온 천하에 드러나기 전이고, 지난번 밀수 사건에 대해서는 황대산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오점순을 제물로 바쳐 꼬리를 자를 심산인 듯했다.

실제로 오점순을 체포했을 당시 이어진 심문에서 몇 차례나 오점순을 추궁했지만, 오점순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아니지… 생각해 보면 오점순의 태도도 이상했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점순이 입을 다물고 있는 태도는 다소 괴이했다.

가끔 그녀가 주저하듯이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가 있었다. 처음 시연이 그녀를 심문하다가, 필웅이 교대해서 그녀를 심문했을 때가 그랬다.

필웅은 그때 거의 그녀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단의 원로들 사이에서는 분명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있었다.

분명 그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조직이었지만, 황대산도, 서춘주도, 오점순도, 예상컨대 이원필도 결코 같은 꿈을 꾸고 있지는 않았다.

필웅은 그런 점을 노렸다. 오점순이 죄를 전부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가봤자 좋아할 사람은 다른 원로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말에 오점순은 틀림없이 동요했고, 그 사실에서 필웅은 자신의 예측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점순은 갑자기 광신도처럼 돌변했다.

‘마치 누군가 등 뒤에 달린 스위치를 누른 자동 인형같았지.’

필웅은 그때의 낯선 느낌을 떠올렸다.

그때 오점순의 반응은 단순한 거부 반응이 아니었다. 그 전까지의 오점순은 의중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기는 했지만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오점순이 경계를 누그러뜨리려고 하자마자, 그녀의 태도가 이상하게 뒤바뀐 것이다.

‘설마, 교단의 고위직에게도 이미 약을 시험해 본 건가?’

그럴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교단의 원로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김영지가 서춘주를 습격한 것도 그렇고, 마치 하인처럼 서춘주의 눈치를 보던 황대산의 모습을 봐도 그랬다.

그런 원로들을 통제하기 위해 교주 또는 비교적 고위 원로처럼 보이는 서춘주 원로가 실험 중인 신약을 몰래 그들에게 먹여왔을 수도 있었다.

특히나 황대산처럼 예기치 못하게 수사기관에 체포되어 정보를 누설하기라도 하면 큰일일 테니, 같은 편이고 뭐고 일단 단속을 시켜 놓을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서춘주가 예의 그 온화한 표정을 얼굴에 띄우며 필웅에게 은근히 말을 건넸다.

그의 얼굴은 마치 세속적인 이익에는 모두 해탈한 성자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이면의 추악한 속셈을 알고 있는 필웅으로서는 그저 그의 더러운 가면을 벗겨 내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검사님과 저는 나름 인연이 있군요.”

“인연이요?”

필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서춘주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작고한 이원필 원로와 아주 막역한 사이였지요.”

“이원필이라면 월흥 리조트에서 죽은 그…?”

서춘주가 어느새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이 상황에 맞게 순간순간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며, 필웅은 그가 타고난 배우 같다고 생각했다.

“맞습니다. 불행한 사고였지요. 구원은 그런 제물에 있지 않은 것을…”

“그 사고를 이원필 혼자 꾸몄다는 말입니까?”

“저희로서는 알 도리도, 알 방법도 없었습니다.”

서춘주는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힘겹게 저으며 눈물이라도 글썽일 것처럼 눈을 꾹 감았다.

필웅은 그의 위선적인 모습에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머리카락까지 전부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월흥 리조트 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가 말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교단은 언제 이원필의 계획을 알게 된 겁니까?”

“저희가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저희도 뉴스를 보고 알았지요. 어리석은 사람…”

“이원필은 왜 그런 일을 계획한 겁니까?”

운전을 하고 있는 장경도 흥미가 동하는 듯 듣지 않는 척하면서 유심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서춘주가 탄식하며 말했다.

“이 원로는 언제나 극단적으로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8백만 명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이 원로는 8백만 외의 사람들이 전부 없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지요. 이 원로는 그전에도 여러 차례 믿지 않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를 기획하다가 교단으로부터 제지를 받았고, 그 결과 몰래 교단의 승인 없이 그런 일을 벌인 겁니다.”

“교단도, 당신도 이 사실을 몰랐습니까?”

“몰랐습니다.”

서춘주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 김영지는 왜 당신을 습격했다고 생각합니까?”

서춘주는 손을 모아쥐고 상념에 빠진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천천히 그가 입을 열었다.

“검사님께서는 김영지 원로와 잠시나마 시간을 보낸 적이 있으시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김영지 원로의 성정이 어떤지 잘 아시겠군요.”

필웅은 자신이 기억하는 김영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와 대면했을 때 첫 모습은 그가 간수를 참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이었다.

다음은 강유라를 구하자고 할 때 그가 거세게 반대하던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협조하긴 했지만 그가 원해서는 아니었다.

그리고 변장, 자물쇠 따기 등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노련한 기술들을 선보인 적도 있었다. 모두가 범죄에 안성맞춤인 기술들이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듭니다.”

“그렇지요? 김영지 원로는 교단에 있을 때도 다른 원로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3원로, 4원로 하는 호칭만을 고수했지요. 최고원로임에도 그는 원로들을 통솔할 자질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필웅은 서춘주가 조용히 김영지를 비난하는 것을 듣고 뭔가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비록 그가 김영지와 친하다고 할 수는 없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생사의 경계를 함께 넘나든 김영지를 한낱 사기꾼에 불과한 서춘주가 비판하는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심사가 뒤틀렸던 것이다.

“김영지 씨 말로는 극단적인 원로들이 김영지 씨를 배척했다고 하던데요.”

서춘주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김영지 원로는 누구보다도 극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원필 원로와 친한 사이였다고 하지 않던가요?”

필웅은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는 원로들끼리는 서로의 직함을 부르지. 나도 이원필과 황대산을 제외한 다른 원로들은 2원로, 3원로 식으로 불렀을 뿐이야. 얼마 전 새로 취임한 4원로가 굉장한 싸움꾼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것뿐이지.”

그러고 보니 김영지는 다른 원로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이원필은 이름까지 알고 있었고 그의 성향까지 알고 있었다.

‘확실히 김영지는 다른 원로들은 잘 모르지만 이원필과는 오랜 시간 같이 일했었다고 했었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상한 점은 더 있었다.

기도원에서 탈출한 이후로는 집 안에서 꼼짝 않고 있던 그가 갑자기 이원필이 관리하던 월흥 리조트까지 찾아온 일이나, 이원필이 폭탄 테러를 기획한 의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술술 이야기한 일들.

게다가 필웅과 장경, 시연이 영산을 떠날 때 김영지는 갑자기 어딘가 갈 곳이 생겼다고 했었다. 마땅히 숨을 곳도 없어 계속해서 장경이 마련해 준 거처에 은신해 오던 그가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말이 믿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했음에도, 필웅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오늘 여기에 나타나 서춘주를 습격한 것이다.

물론 필웅으로서는 김영지가 자신을 습격했다는 서춘주의 말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지금으로서는 교단과 적대하는 세력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교단과 적대하는 세력이라고 하면 필웅과 시연, 장경이 있었지만, 당연히 그들이 서춘주를 습격하지는 않았으니 그 외에 누가 더 서춘주를 살해하려고 시도할 만한지 필웅으로서는 알기 어려웠다.

그 일련의 사실들을 떠올려 보니, 필웅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김영지를 너무 믿었던 건가?’

물론 필웅이 김영지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은 일은 부인할 수 없었다. 기도원에서 탈출했을 때도 그가 아니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고, 강유라를 구출할 때도 변장에 능한 그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필웅은 김영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김영지는 단순히 자신을 교단으로부터 숨겨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어.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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