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로 개과천선-115화 (115/151)

115화 이중작전

“3원로가 보내서 왔다.”

급하게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선 듯 의자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나타난 남자는 3원로가 데리고 있던, 필웅의 면전에서 강유라를 끌고 간 남자인 모양이었다.

시연은 방문 쪽으로 바짝 붙어 귀를 기울였다.

다소 화가 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예? 3원로님이 오늘 거래 지원 나간 인원들 빼고는 다 여기서 대기하라고…”

“무슨 멍청한 소리야?! 지금 영산항에 경찰들 들이닥쳐서 개판 된 거 몰라? 아직도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예…?! 하지만 오늘 영산항 습격한 건 웬 여자 검사 한 명뿐이라고…”

“눈속임이었어. 그 년을 쉽게 사로잡아서 안심한 사이에 다른 병력들이 들이닥쳤다고. 지금 당장 인원들 끌고 영산항으로 출동해.”

“그, 그럼 여기는?”

“여기는 내가 지킨다.”

“혼자서요?”

“못할 것 같나?”

남자가 으름장을 놓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시연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추이를 지켜보았다.

“아, 아닙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남자의 음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연락용 핸드폰 있나?”

“예.”

“그 핸드폰은 여기 놓고 가. 내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3원로님께 알려야 되니까. 내 것은 여기에 급하게 오다가 놓고 온 모양이군.”

“어… 예.”

“인원들 모아서 빨리 출발해.”

이윽고 원래 이곳을 지키던 남자가 다른 인원들을 불러모으는 듯 부산스러운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빨리 출발해!”

다시 3원로의 부하인 듯한 남자가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여러 사람이 예, 예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들이 모두 떠난 듯 건물이 조용해졌다.

누군가가 시연이 갇힌 방 앞으로 다가오는 듯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나와.”

시연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저거 뭐야?”

영산항에서 한창 바쁘게 짐을 나르던 교단의 일꾼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위의 다른 일꾼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 한 곳을 바라보았다.

여러 대의 차가 차례로 항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일꾼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 보다가 3원로를 바라보았다.

영산항은 작은 항구였기에 이 새벽에 그렇게 많은 차량이 갑자기 들어설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모두 화물을 나르는 용달차도 아니고 승용차였다.

“저거 우리 차 아냐?”

개중 눈이 좋은 일꾼 하나가 중얼거렸다.

차에서 무장한 남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일꾼들의 소란을 감지한 3원로도 그제야 그쪽을 돌아보았다.

“뭐야?”

3원로는 거침없이 차량에서 내리고 있는 남자들 쪽으로 걸어갔다.

“너희들? 창고는 어쩌고 우르르 몰려온 거야?”

3원로가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채고 다급하게 물었다.

통솔자인 듯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3원로님이 지금 영산항 작업인원들이 습격당했다고 하셔서…”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예. 왜 그 데리고 다니시는 경호원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오셔서는 저희도 다 지원 나가야 한다고 하셔서 급하게 애들이랑 연장 챙겨서 온 건데요. 아무 일도 없습니까?”

“일이 있긴 무슨 일이 있어!? 방금전에 여자 검사 잡아서 보냈잖아? 그리고 핸드폰은 뒀다 어디다 쓰려고?!”

“그게, 그분이 그 여자는 미끼였고 그 후에 경찰들이 대규모로 현장을 습격했다고 해서… 3원로님께 연락할 때 필요하다고 핸드폰도 달라고 하시던데요.”

“이런 멍청한 것들! 아까부터 무슨 경호원 타령이야? 그 새낀 여기 없어! 내 심부름으로 서울에 가 있다고!”

3원로가 길길이 날뛰며 외쳤다.

그제서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남자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자신이 끌고 온 부하들과 3원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럼 그 남자는 대체…?”

* * *

“멍청한 놈들이라 다행이군.”

김영지가 피곤한 목소리로 가발과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정말 이 정도로 속을 줄은 몰랐는데요? 미행하기 어렵지는 않았어요?”

“전혀. 미행이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더군. 그리고 말했잖나. 교단의 고위직들에 대해 잘 아는 평신도는 거의 없어. 주로 인원들을 통솔하는 3원로나 황대산 같은 놈들 아니면 그들의 생김새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

3원로가 수족처럼 부리는 경호원도 워낙 비밀스러운 인물이라 대강의 인상착의만 아는 놈들이 대부분이야. 조필웅이 그놈 생김새를 제대로 봐 둬서 다행이지.”

설명을 마친 김영지는 유심히 시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놈들이랑 꽤 격하게 싸운 모양이군.”

시연은 문득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쓰다듬었다.

“아, 이거요? 누구 씨가 너무 연기에 몰입해서.”

김영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렸다.

“이제 강유라가 어디 갇혔는지 살펴볼까? 영산항이 그다지 멀지 않으니 놈들이 돌아오기 전에 얼른 강유라를 데리고 빠져나가야겠어. 애초에 왜 그런 여자를 구해 주려고 이 고생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영지는 아직도 불만이 있는 듯 툴툴거렸다.

시연과 김영지는 복도로 나왔다.

창고인 듯 복도의 바로 밑층에는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들만 보였다. 방금 시연이 나온 방 외에도 복도 저편에 두세 개의 방이 더 보였다.

“강유라! 강유라! 어디야?”

시연이 크게 소리쳤다.

‘아까 남자들이 얘기하던 다른 여자는 분명 강유라일 거야. 여기 어딘가에 있을텐데…’

시연은 초조하게 첫 번째 방문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옆의 방에서 희미하게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은 황급히 옆 방으로 돌아서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강유라! 너야?”

“으…”

시연은 김영지를 돌아보았다.

“무슨 열쇠장이가 된 기분이군.”

김영지는 혀를 차더니 다가와서 잠시 문고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발로 강하게 문고리를 걷어찼다. 문고리가 떨어져 내렸다.

시연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구식 문은 그냥 부숴 버리는 게 더 빨라.”

시연은 문고리가 떨어진 문을 휙 잡아당겼다.

강유라가 방 안에 쓰러져 있었다.

시연은 그녀에게 다가가 안색을 먼저 살폈다.

강유라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도 약간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상태가 안 좋아요. 여기 와서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방치된 것 같아요.”

“빨리 데리고 나가자고.”

시연은 강유라를 부축해 일으켰다. 강유라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 뭐야…”

“조용히 해. 일단 빠져나가서 얘기하자고.”

시연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유라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두리번거리며 출구를 찾았다.

그때 갑자기 건물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빌어먹을! 벌써 돌아왔나 보군.”

김영지가 혀를 찼다.

시연은 복도 저편에 비상구로 통하는 문을 발견했다.

“김영지 씨, 저기!”

김영지도 비상구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밖에서 잠겼다. 비상구를 밖에서 잠가 놓다니 아무래도 소방교육들이 필요할 것 같군.”

“발로 차서 열어요!”

“이건 그런 문이 아니야.”

김영지는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주머니에서 꼬챙이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창고 1층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시연은 살아보면서 들어 본 가장 불길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김영지는 문 손잡이에 붙어서 꼬챙이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요!”

“조용히 좀 해 봐. 집중해야 해.”

김영지의 이마에서 송골송골 땀이 맺혀 흘러내렸다. 1층의 문에서 남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제길, 왜 이리 안 열려…!”

* * *

영산항.

짐은 거의 다 내려진 모양이었다. 3원로가 노발대발하면서 남자들을 다시 창고로 돌려보낸 이후 작업 속도가 더 빨라졌다. 뭔가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3원로가 일꾼들을 험악하게 독촉했기 때문이었다.

필웅은 초조하게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슬슬 도착해야 하는데….’

그때 갑자기 여러 대의 차 소리가 들렸다.

3원로는 짜증스럽게 그쪽을 돌아보았다.

“또 뭐야? 멍청한 놈들….”

3원로는 또 창고의 인원들이 돌아온 줄 알고 씩씩거리며 차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그러던 그녀는 잠시 우뚝 멈춰 섰다.

도착한 차들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교단의 신도들이 아니었다. 3원로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입을 꾹 다문 채 뒤로 물러섰다.

작업을 마친 일꾼들도 무슨 일인가 해서 하나둘 그녀의 뒤로 와서 섰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뒤편에서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꼭두새벽부터 뭘 이렇게 열심히 나르고 계십니까들?”

장경이었다.

필웅은 조심스럽게 3원로와 일꾼들로부터 거리를 벌리면서 장경과 장경이 데리고 온 경찰들 쪽으로 움직였다.

3원로가 뒤에 늘어선 일꾼들 중 하나에게 조용히 뭔가를 지시했다.

일꾼은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뒤편으로 사라졌다. 필웅은 뒤늦게 한 명이 사라진 걸 발견했지만, 이미 일꾼은 자취를 감춘 후였다.

사람들 중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오자, 3원로가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누구시죠?”

“누군 거 같습니까?”

“글쎄요?”

3원로가 억지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 물건들 좀 저희가 까봐도 되겠슴까?”

“별거 아닌데요.”

“별거 아니면 저희가 까봐도 되겠군요?”

“영장도 없이 개인 물품을 그렇게 함부로 열어 봐도 되는 건가요?”

3원로가 악을 쓰며 외쳤다.

“영장? 아니, 밀수 현행범인데 뭔 놈의 영장이 필요하답니까? 배에서 물건 내리는데 세관원도 안 보이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당연히 신고도 안 하셨죠?”

앞으로 나선 남자, 장경이 혀를 차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대답했다.

3원로가 이를 갈며 옆의 남자들에게 눈짓했다. 남자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저마다 어디선가 각목이며 쇠파이프 같은 연장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장경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한번 해 보자는 겁니까? 이 인원으로?”

“저희한테는 좀 중요한 물건이라서요.”

“허어, 아깐 별 것 아니라더니?”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것들이 누군가에겐 중요할 수도 있지요.”

장경의 말에 3원로는 일부러 따박따박 대꾸를 해 주고 있었다. 시간을 끌려는 모양이었다.

장경은 피식 웃고는 옆의 경찰들에게 손짓했다.

“요샌 왜 이렇게 겁대가리 없이 경찰한테 개기는 놈들이 많아? 전부 잡아 들여!”

경찰들이 경찰봉을 꺼내 들고 3원로와 일꾼들에게 돌격했다.

“좀만 버텨! 창고에서 지원 병력이 온다!”

3원로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옆의 일꾼들을 돌아보며 독려했다.

‘역시 그게 목적이었군.’

필웅은 싸움판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경찰들 쪽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했다.

* * *

한편, 3원로의 지시를 받은 일꾼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창고에 도착해 있었다.

“큰일 났습니다!”

창고에 다시 돌아와 눈에 불을 켜고 시연과 김영지를 찾고 있던 신도들은 누군가가 뛰어 들어오자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신도들이 막 시연과 김영지를 발견하기 직전 남자가 뛰어 들어왔기에 신도들의 시선은 다시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김영지는 자물쇠를 푸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찾던 김영지와 시연이 빠져나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채 신도들은 남자들에게 물었다.

“또 뭔 일이야?”

“영산항이… 영산항이 습격당했습니다!”

“뭐?”

신도들 사이에 술렁거림이 퍼져나갔다.

“진짜야?”

“아니, 무슨 똥개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확실해?”

“그렇다니까요!”

“잠깐만, 너 못 보던 얼굴인 것 같은데. 너도 그놈들이랑 한패 아냐?”

“예? 무슨 소리에요?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니까요!”

“잠깐만 있어 봐. 야, 윗층에 올라가 봐.”

신도들 중 우두머리인 듯한 남자가 다른 신도에게 지시했다.

위층에 올라간 신도가 잠시 후 헐레벌떡 내려와 그에게 말했다.

“없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전부 다 도망갔습니다!”

우두머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뭐?! 이 새끼, 너도 한패구나!”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에요? 경찰들이 지금 영산항 작업인원들을 덮쳤다구요!”

“거짓말을 하려면 최소한 내용은 바꿔야지, 우리가 바보로 보여!?”

“와, 진짜 미치겠네!”

시연과 김영지는 창고를 떠나면서 그들이 서로 다투는 소리를 듣고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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