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계속 교회를 다녔더라면
시연이 강유라로부터 전화를 받은 시각, 리조트 현장.
필웅은 장경과 함께 사망자 명단을 살펴 보는 중이었다.
“리조트 이름이 월흥 리조트군요?”
“월요부흥재단 거니까 월흥이라는 거겠죠. 창의성하고는…….”
장경이 혀를 쯧쯧 찼다.
필웅은 그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원필?”
낯이 익은 이름이었다.
“어? 이거 월요부흥재단 대표 아님까?”
바로 장경이 말해준 리조트 관리업체의 대표 이름이었다.
“이 사람도 죽었다구요?”
“방금 시신이 수습된 모양입니다.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는데요. 신원도 간신히 파악한 모양임다.”
“시신이 그렇게 훼손되었다면 신원은 어떻게 확인한 거죠?”
“뭐, 일단 리조트에 들어온 걸 본 사람도 있고. 손에서 평소 애지중지하던 반지가 발견됐답니다.”
필웅은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보통 관리업체 직원들은 리조트에 상주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리조트를 실제로 관리하는 건 다 아르바이트생들이고. 근데 대표가 여길 왜 들어와 있던 거죠?”
“보통은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목격자들 말로는 이원필 대표가 어제 사고 직전 리조트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제일 위층에 있는 기도실로 올라갔다는 거예요.”
“기도실이요?”
“예, 종교단체 비스무리한 재단이 운영하는 시설이다 보니 기도실이 있답니다. 수련회 온 학생들한테 기도를 시키지야 않겠지만요.”
필웅은 사망자 명단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월요부흥재단의 정직원들은 이 시설을 잘 이용하지도 않아. 게다가 종교도 다른 학생들을 강제로 기도실에 집어넣지도 않겠지. 그렇다면 이 건물에 왜 기도실 같은 게 있는 거지?’
생각할수록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아, 그리고.”
장경이 초동수사팀이 전달한 보고서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말했다.
“이원필이 올 때 그냥 빈손으로 온 게 아니었답니다.”
“그럼요?”
“뭔가 큰 가방 같은 걸 끌고 왔답니다. 여행가방 같은 거?”
“여기서 자려고 했나 보죠.”
“그런데 이상한 게, 평소 가끔 이원필이 시설에 방문할 때 쓰는 숙소는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저기죠.”
장경이 리조트의 정원 끝을 가리켰다.
주택 하나가 멀쩡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리조트 본 건물과 조금 떨어져서 피해를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원필은 큰 가방을 끌고 한밤중에 나타나서, 본인이 보통 묵는 전용 숙소가 아닌 기도실로 직행했다?”
“그렇슴다.”
생각할수록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순간 필웅의 머리 속에 번뜩 한 가지 생각에 스쳤다.
“혹시 폭발물 반응 검사했습니까?”
“예? 폭발물이요?”
“건물 잔해에서 폭발물 같은 게 나왔냐는 말입니다.”
“아직 한창 구조작업 진행 중이라 거기까지는 아직 조사가 안 된 것 같던디…….”
“구조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폭발물 반응 검사도 진행해 달라고 해 주세요.”
“알겠슴다.”
장경은 휘적휘적 소방대원들 쪽으로 사라졌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필웅은 이 사건이 단순히 부실 건물의 붕괴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시연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장부를 보다 말고 마루로 나왔다.
김영지가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당신, 어디 가는 거예요?”
“보면 몰라? 밖으로 나가는 거지.”
“미쳤어요? 교단 패거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그래서 안 들키려고 이렇게 변장까지 한 것 아닌가.”
시연은 그제서야 문득 김영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뻐드렁니가 두드러져 나와 있었고, 광대뼈도 평소보다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게다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안경을 끼니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뭐? 이게 어떻게…?”
“간단한 화장술이지. 그럼 다녀오지.”
“잠깐! 저도 같이 가요.”
김영지는 나가려다 말고 멈칫해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자네랑 같이?”
“그래요.”
“내가 어디 가는 줄 알고?”
“어딜 가든지 간에 그래도 둘이 가야 안전할 것 아니에요. 누가 잘못돼도 한 명은 도망쳐서 지원을 불러올 수도 있고.”
‘그리고 난 아직 당신을 완전히 믿지는 않으니까.’
시연은 마지막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날 놔두고 도망치겠다는 건가?”
“도망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러 가는 거라고 해 두죠.”
당당하게 시연이 대답하자 김영지는 끌끌거리며 웃었다.
“솔직해서 좋군. 좋아. 같이 가 보지.”
“어딜 가려는 거죠?”
김영지는 또박또박 힘을 실어 말했다.
“월흥 리조트.”
* * *
시연과 김영지가 월흥 리조트로 출발하고 약 한 시간 후.
사고 현장 한구석에서 월요부흥재단 그리고 리조트와 관련된 자료들을 훑어보던 필웅에게 장경이 다가왔다.
“검사님. 폭발물 반응 검사 결과가 나왔답니다.”
“어떻던가요?”
“그게….”
장경이 검사지를 내밀었다.
“폭발물이 사용된 흔적이 있는 것 같답니다.”
“최초 폭발한 장소는요?”
“아직 조사 중이긴 한데….”
장경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기도실인 것 같습니다.”
필웅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있던 자료를 꽉 쥐었다.
“기도실? 이라구요.”
“예”
필웅은 자료들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기도실에 이원필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간 적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기도실은 월요부흥재단 임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데, 사건 당일에는 이원필 대표 말고는 리조트에 출입한 사람이 없슴다.”
“이원필 대표가 기도실에 큰 가방을 갖고 올라갔고, 얼마 되지 않아 리조트가 무너졌다는 거군요. 폭발음 같은 걸 들었다는 사람은 없습니까?”
“건물이 무너질 때 워낙 소음이 커서, 설령 폭발음이 있었다고 해도 그걸 건물 무너지는 소리랑 구분할 수 있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쨌든 기도실에 이원필이 폭탄을 끌고 들어가서 폭탄을 터뜨렸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그렇죠.”
“왜 그랬을까요?”
“글쎄요.”
장경은 거칠게 뒷머리만 긁었다. 장경은 오랜만에 끊었던 담배가 다시 생각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뒤질 거면 저 혼자 뒤지지 왜 죄 없는 민간인들을 이렇게 많이 끌어들였을까요?”
“그게 그들의 교리니까.”
필웅과 장경이 동시에 말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괴상하게 생긴 한 남자가 시연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필웅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남자를 경계하며 시연에게 물었다.
“시연아? 이 남자분은 누구야?”
“김영지 씨야.”
“뭐!?”
“변장한 거야. 알고 보니 우리의 최고원로님께서는 잡기술로 최고원로 지위를 얻으신 것 같더라고.”
“능력이 많을수록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지.”
김영지는 별 당연한 소릴 다 듣겠다는 듯 대꾸하고는 간이의자에 앉았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김영지는 대답 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단 놈들은 없나?”
“일단 저희가 파악하기론, 없습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머리에 제8요일 교단 소속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놈은 없으니까. 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은 없나?”
“저쪽으로 가시죠.”
장경이 한구석에 놓인 자신의 차를 가리켰다.
“저 차에? 나란히 앉아서 얘길 하자고?”
“그럼 이 정신없는 현장에 우리끼리만 조용히 얘기할 곳이 어딨슴까?”
장경이 툴툴거렸다.
김영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장경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시연까지 모두 차에 타자, 모두가 앞을 본 기묘한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김영지가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사망자 명단에 혹시 권지평이라는 이름이 있나?”
장경이 명단을 뒤적여 보고는 대답했다.
“있는디요.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 아닐세.”
김영지가 무겁게 입을 닫았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다가, 김영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지?”
“폭탄 테러인 것 같습니다.”
“누가?”
“이원필이 직접 폭탄을 갖고 들어와 터뜨린 것 같습니다.”
“그렇군.”
“아까 그게 그들의 교리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원필이 왜 그랬는지 짐작가는 바가 있습니까?”
김영지는 말을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교단의 싸이코 놈들이 종말의 날에 오직 8백만 명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건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가 몇이지?”
“한 4천 5백만 되지 않겠슴까?”
“그렇지. 그렇다면 제8요일 교단의 신자가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설마 신자의 수가 8백만 명을 넘어가지 못 하게 하려고 그런다는 거예요?”
김영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놈들은 모순적이야. 자기들에게 필요한 인물에게는 전도를 하려고 하면서도, 신도가 8백만 명을 넘어서는 것은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지.
그래도 차마 이미 신도가 된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으니, 예비 신도들을 죽이고 다니는 거야. 한 번에 많이 죽일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
“하지만 그래도 왜 하필 어린 학생들을!”
조수석에 탄 필웅이 분개하자, 김영지가 뒷좌석에서 쓴 미소를 지며 말했다.
“모르겠나? 이놈들한테 남녀노소 같은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신자와 불신자만 있을 뿐이지.
그러니 어리고 허약한 불신자, 죽이기 쉬운 불신자라면 이들의 제1목표가 되는 거지. 하지만…….”
“하지만?”
김영지는 갑자기 무언가 곰곰이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나도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원로씩이나 되는 자가 직접 이런 대량학살을 주도했는지까지는 모르겠군. 뭔가 내가 모르는 계획이 진행 중인 것 같아.”
김영지의 말을 끝으로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필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김영지의 말대로라면 동기는 있어. 하지만 왜 갑자기 이런 대량 테러를 일으키기 시작하는 거지? 그것도 원로라는 자가 직접?’
“필웅아, 잠깐만.”
시연이 필웅을 불렀다. 시연은 필웅에게 오늘 아침 강유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다.
이원필이 이규필의 동생이라는 것과 삼일유통이 교단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 등이었다.
“말도 안 돼…….”
필웅이 황당해하자, 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왠지 이해가 돼. 너를 뜬금없이 영산지청으로 발령낸 거나, 발령이 나자마자 송도영 조사관이 접근해 온거나, 자연스럽게 너를 일요교회로 끌어들인 거나 모두 계획된 일 아닐까?”
“그런…”
“만약 네가 나나 강유라와 우연히 만나서 일요교회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그대로 넘어가 버리지 않았을까?”
시연의 물음에 필웅은 할 말을 잃었다.
‘만약 시연이가 우연히 제8요일 교단과 일요교회의 관계를 알아내지 못했고, 강유라가 일요교회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지 않았다면?’
필웅은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자신이 별생각 없이 계속 교회를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을 것이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어. 이 자들이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기 전에 막아야 해.”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들은, 교단이 다수의 사람들을 납치해서 감금했다는 증거와 삼영과의 관계가 의심되는 회계장부 정도인 것 같네.
그때 네가 발견했던 주사기 같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잠깐.”
“?”
필웅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있어. 실제 물증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