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쿠구쿵
필웅은 간신히 눈을 떴다.
눈을 떠 보니 아직 수련원의 운동장 안이었다. 굉음과 폭발의 충격에 쓰러진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폭발의 소음에 청각이 마비된 것 같았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의 남자 선생과 함께 모여 있던 여자 선생들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필웅은 흙먼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에 건물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그는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자 선생 중 하나가 파편에 맞았는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필웅은 비척비척 그쪽으로 걸어갔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필웅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으… 으음…….”
다행히 단순한 찰과상인 모양이었는지 그녀가 눈을 떴다.
“괜찮으세요?”
“예…? 여긴?”
“수련원입니다. 방금 폭발 사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뭐라구요?”
그녀도 폭발의 충격에 귀가 마비된 모양이었다. 필웅은 할 수 없이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방금 폭발사고가 있었다구요! 강당 외에 다른 곳에 학생들은 없습니까?”
“아… 예. 강당에 있는 학생들 외에는 체험학습 때문에 다들 뒷산으로 먼저 가 있어요.”
필웅은 고개를 들어 리조트 뒤의 산을 바라보았다. 리조트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폭발의 충격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강당은 어느 쪽입니까?”
“저쪽이요.”
“혼자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괜찮으니까 학생들을 먼저…….”
“알겠습니다. 그럼 저 대신 119에 신고 좀 부탁드립니다.”
여선생이 비틀거리며 일어서 옆의 동료들을 깨웠다. 필웅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민하다가, 강당 쪽으로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건물 입구에 이르고 보니, 2층 한쪽이 거의 날아가 있었다. 가스관이 폭발했는지 건물 전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제길…!’
필웅은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수돗가를 발견하고는 재킷을 벗어 물을 듬뿍 적셨다.
필웅은 재킷을 입에 댄 채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아까의 남자 선생이 제때 도착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학생들이 무질서하게 비명을 지르며 복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콜록 콜록!”
이미 실내도 불과 연기로 자욱했다. 그나마 출입구 쪽으로 달려 나오는 데 성공한 몇몇 학생들을 보고 필웅이 급하게 물었다.
“강당이 어느 쪽이니?”
“콜록! 저쪽이요!”
“혹시 김희주라는 학생 본 적 있는 사람?”
“몰라요!”
아이들은 급하게 외치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필웅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학생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학생들이 헤매고 있는 것을 발견한 필웅은 손을 흔들었다.
“이쪽이다! 얘들아, 이쪽이야!”
필웅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우왕좌왕하다가 연신 기침을 해대며 필웅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래! 여기서 꺾으면 바로 출입구니까 당장 나가!”
아이들은 필웅을 지나쳐 출입구로 달려 나갔다.
-쿠웅!
추가적인 붕괴가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필웅은 잠시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는 강당까지 가기 힘들지도 몰라. 빌어먹을!’
두리번거리던 필웅의 눈에 옥내소화전이 눈에 들어왔다.
필웅은 재빨리 소화전의 문을 열고 소방호스를 손에 든 후 밸브를 열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필웅은 당황해서 소화전의 사용법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이미 다 해진 사용법 스티커는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이런 미친놈들!”
필웅은 험한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말라가는 재킷을 입에 대고 강당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연기에 자욱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필웅은 잠시 고민하다가 정신을 집중했다.
‘좋아, 그때 해봤던 걸 다시 해보자.’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탐색용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김철수를 구하러 한 마을에 잠입했던 얼마 전의 일이었다.
희주에게도 크리미널 아카이브가 보였으니, 그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통해 희주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나와라, 크리미널 아카이브!’
크리미널 아카이브는 물리적인 시야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희주가 어딘가에 있다면, 분명 그곳에 크리미널 아카이브가 나타날 것이었다.
필웅은 순간 복도 끝 쪽에 이제는 익숙한 크리미널 아카이브 화면이 작게 떠오른 것을 발견했다.
필웅은 자욱한 연기 속에 연신 기침을 해대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한 여학생이 바닥에 쓰러진 채 힘없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희주였다.
“희주야!”
필웅은 반가움에 소리치며 희주 쪽으로 달려갔다.
“괜찮아? 다른 애들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제일 늦게 나온 것 같긴 한데…….”
“업혀!”
필웅은 그녀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며 간신히 그녀를 등에 업었다.
필웅은 크게 심호흡하고, 무겁게 한 발을 내디뎠다.
- 쿠구궁
다시 한번 지반이 내려앉는 듯한 불길한 소음이 들려왔다.
필웅은 계속해서 눈으로 들어가는 땀을 간신히 닦으며, 이제는 익숙한 복도를 지나 힘겹게 달리기 시작했다.
* * *
장경은 어수선한 사고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리조트 관계자들을 찾아 조사하려고 했지만, 이미 출장 중이라거나 병가 중이라는 등의 이유로 잠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몇몇 리조트의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리조트의 직원들은 대부분이 단기 아르바이트였고 리조트의 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게다가 리조트의 직원들도 사고 당시 학생들을 대피시키느라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장경은 쓴 입맛을 다셨다.
‘도대체가…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장경의 머릿속에 몇 년 전 삼영백화점 붕괴 당시의 뉴스와 사건현장의 사진들이 다시 떠올랐다.
장경은 생각들을 떨쳐 버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장경은 사건 당시의 경위를 먼저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검사님?”
여기저기 옷에 그을린 자국과 검댕이 묻은 필웅도 장경을 발견하고는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요.”
장경은 어이없다는 듯 필웅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저길 들어갔어요?”
“사고가 난 순간에 여기 있었거든요.”
“맙소사. 목숨이 10개라도 됩니까? 아무 장비도 없이 저런 데를 뭔 정신으로 들어가신 겁니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혀를 쯧쯧 차던 장경은 필웅의 뒤편에 앉아 있는 아이를 비로소 발견했다.
“아, 희주?”
장경이 걱정스럽게 희주에게 다가와 물었다.
“괜찮으냐? 어이구… 다친 덴 없고?”
“괜찮아요.”
희주가 콜록거리면서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필웅이 나서서 말했다.
“일단 사건 청취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 예. 알겠슴다.”
장경은 희주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피했다.
필웅은 걱정스럽게 이리저리 희주를 살펴보았다. 간신히 건물의 잔해들을 헤치고 리조트에서 빠져나오고는 경황이 없어 말도 못 걸어 본 참이었다.
“괜찮아? 다친 덴 없어?”
“없어요.”
“그래도 다행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필웅은 희주의 반문에 당황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희주는 턱 끝을 들어 무너진 리조트를 가리켰다.
“친구들이 너무 많이 다쳤단 말이에요.”
필웅은 그때서야 비로소 희주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비록 무사하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쳤는데, 뭐가 다행이라는 거냐’라는 물음이었다.
필웅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 구조작업 진행 중이니까 많이 구출할 수 있을 거야.”
희주는 별말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필웅은 억지로 희주를 위로하는 건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필웅은 위로를 건네는 건 포기하고, 그저 조용히 희주의 옆에 가 앉았다.
“실은, 나도 우리 엄마가 붕괴 사고에서 돌아가셨어.”
희주가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필웅은 그녀를 돌아보며 힘없이 웃었다.
“그래서 이게 어떤 기분인지 알지.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나 또는 나와 친한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다는 것 말이야.”
희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맞아요.”
희주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가 주르르 떨어졌다.
“진짜 엿 같은 건…….”
필웅은 잠자코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친구들이…….”
울먹이던 희주는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했어요. 리조트 시설 후지다고 욕하면서, 돌아가면 뒤풀이로 시내 놀러 나가기로 했었는데. 애들은…….”
희주는 말을 끊고 건물의 잔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볼 수 없어요. 너무 슬프지만, 지금 당장은 그냥 난 무사히 살아나왔다는 사실에 안도감만 들어요. 너무 이기적이죠 나.”
말을 마친 희주는 또다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필웅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으며 희주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자, 희주도 진정했는지 울음을 그쳤다.
필웅은 손수건을 꺼내 희주에게 건네주었다. 희주는 눈물을 닦고는 손수건을 다시 필웅에게 돌려주었다.
“고마워요.”
“고맙긴. 그것보다 너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여길 필요 없어. 나도 그랬으니까.”
“아저씨도요?”
“그래.”
필웅은 멋쩍게 뺨을 긁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다른 얘기지만, 나도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어. 아주 위험하고 중요한 사건에 휘말려서. 하지만 그때 나는 그 중요한 사건을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기만 했어.
이성적으로라면 중요한 사건 생각을 먼저 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기계처럼 작동하지 않아. 그러니까 사람인 거고. 네가 가장 걱정이 되고 마음이 쓰이는 일은 합리적으로 순서를 매겨서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필웅은 희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느 날 너무나 쉽게 목숨을 잃은 윤진 선배를 떠올렸다.
법정에서는 적으로 만났지만, 자신의 신념을 갖고 고민하며 살아가던 사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윤진 선배의 웃는 얼굴이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반면 희주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그러나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 희주는 똑똑하구나. 사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필웅이 멋쩍게 웃었다. 희주는 그를 따라서 씩 웃고는 물었다.
“근데 검사님이 여긴 웬일이에요? 여기 영산에서 되게 먼데.”
“아, 그게…….”
필웅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쩐다? 교단을 수사하는 건 비밀에 부쳐야 하고, 그렇다고 크리미널 아카이브 얘기를 할 수는 없고.’
필웅은 고민에 빠져 천진한 희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 그게… 네가 얼마 전 수학여행 간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걱정되더라고.”
“거짓말. 고작 한 번 본 내가 걱정돼서 그 먼 길을 왔다구요?”
필웅은 물론 희주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리조트와 제8요일 교단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 한시바삐 리조트에 온 것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희주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마침 오늘 휴가인데 뉴스 보고 걱정돼서 와 본 거야. 네가 그때 도와준 일도 있고, 나는 영산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부모님은?”
필웅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오시는 길이래요.”
“그렇구나. 내가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
희주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물어보세요.”
“그래. 혹시 이 리조트 관리하는 사람들 본 적 있니?”
“교관이요? 있죠.”
“교관 말고, 그냥 직원 같은 사람들이라거나…….”
희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어요. 왜요?”
“아니, 아니다. 혹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거나, 종교단체 소속인 것 같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니? 무심코 한 얘기라거나.”
“아, 그러고 보니까.”
희주가 말했다.
“일요교회 다니는 친구가 여기서 마주친 사람들 중 일요교회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어요.”
필웅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 그게 정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