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긴급체포
장경의 사촌동생의 집으로 가는 내내 필웅은 고민을 거듭했다.
‘그 교단이 이렇게까지 우리를 잡아두려고 하는 이유가 뭐지?’
필웅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그와 교단은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시연 역시 우연히 인터넷에서 필웅이 다닌다던 교회에 관한 정보를 찾고 경고를 해주려고 한 것뿐이었다.
즉, 둘 다 딱히 본격적으로 교단을 조사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품거나 연결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필웅과 시연은 이 일련의 사태로 인해 비로소 교단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 것에 가까웠다.
‘교단 입장에서는 긁어 부스럼 격인데. 이걸 의도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장경이 몇 번 골목을 헤매더니 드디어 차를 세웠다.
전형적인 시골의 단독주택이었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외딴집까지는 아니었다. 필웅은 오히려 그편이 덜 눈에 띌 거라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여깁니까?”
“예, 제가 기억하기로는.”
필웅은 곤히 잠들어 있던 시연을 깨워 내리게 한 후 장경에게 부탁했다.
“형사님, 잠깐 저희 집에 좀 들렀다 와도 될까요?”
“뭐 가져올 게 있으십니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자료만 몇 개 가져오면 됩니다.”
“그러시죠. 아, 일단 문부터 열고.”
장경은 현관문에 매달린 우유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더니 열쇠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안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고, 파란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안채가 있었다. 사람이 한동안 살지 않았을 것 같은 집이었다.
“아무도 없는 겁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저희 이모님 집인데, 이모님은 얼마 전 돌아가셨고 사촌 동생은 외지에 나가 있거든요.”
장경이 말하며 여기저기 방을 기웃거렸다.
“좀만 청소하면 지내실 만할 겁니다.”
“좋은 집이네요.”
김영지가 마당으로 들어서며 매서운 눈빛으로 집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뭐, 나쁘지는 않구만.”
김영지는 중얼거리더니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 방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난 여기를 쓰지. 그럼 이만.”
김영지는 멋대로 방을 정하더니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잠깐, 정 검사님만 저놈이랑 놔두고 가도 됩니까?”
장경이 아직도 의혹을 채 거두지 못한 듯 방 안으로 들어간 김영지를 여전히 눈으로 좇으며 물었다.
“전 괜찮아요. 오면서 자서 체력도 많이 회복됐구요.”
“그래도…….”
“제가 정상인 상태에서 저 아저씨 한 명을 못 이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장경은 문득 예전 시연이 강도를 위장해 그녀를 습격하러 온 괴한들을 혼자 물리친 것을 기억해 냈다.
“아뇨… 어쩌면 저보다 낫겠군요.”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사람이 우릴 해코지하려고 했다면 거기서 탈출하는 걸 도와주지도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우릴 건드려서 우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면 교단의 추격을 혼자 따돌려야 할 텐데,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사람 같지도 않구요.”
시연은 일부러 김영지가 들으라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장경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필웅에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자기 손해 볼 짓은 안 할 놈 같긴 함다. 그럼 잽싸게 갔다 오시죠.”
“예. 금방 갔다 올게, 시연아.”
“응. 올 때 바나나 좀 사다 줘. 달달한 게 먹고 싶다.”
“어… 응.”
필웅은 시연의 부탁에 떨떠름하게 대답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뭔가 전에 하던 사건들 중에 연결점이 있을 수도 있겠어.’
필웅이 영산에 와서 새로 착수한 사건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만일 교단이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필웅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어쩌면 과거의 사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필웅은 그 자료들을 가지러 가는 길이었다.
장경과 필웅은 차로 필웅의 집으로 향했다.
필웅은 일단 장경에게 차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얘기한 후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그의 집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필웅은 깜짝 놀라 일단 계단의 벽 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 누군가는 계속해서 뭐라고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필웅은 조심스럽게 벽에서 나왔다.
그를 뒤늦게 발견한 여자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깜짝이야! 뭐야? 왜 자기 집을 그렇게 몰래 들어오는 거야?”
강유라였다.
필웅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 기다렸지.”
“왜?”
“아니, 일단 문이나 좀 열어주고 얘기하면 안 되냐? 계속 여기서 기다렸다고. 전화도 안 받고. 대체 아침 댓바람부터 어딜 갔다 오는 거야?”
강유라가 투덜대며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하고 찼다.
필웅은 어차피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문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비켜봐, 문 열게. 뭔 일인데 이렇게 난리야?”
“중요한 일이야. 들으면 깜짝 놀랄걸?”
강유라는 왠지 묘하게 흥분된 상태였다. 필웅은 대체 뭐 때문에 자기 멋대로인 강유라가 아침부터 집 앞까지 와 기다리고 있었는지 조금씩 궁금해졌다.
필웅은 문을 열고 들어와 일단 방 한구석에 몰래 감춰 둔 자료들을 찾았다. 다행히 누가 왔다가지는 않은 모양인지 자료들은 그대로였다.
“뭐야, 그건?”
“알 거 없어. 넌 무슨 일인데?”
강유라는 입술을 비죽이며 대답했다.
“쳇. 중요한 거 알려 주려고 왔는데 엄청 박대하네.”
“그래봤자 너한테 이익이 되는 게 아니면 나한테 알려 주지도 않았을 거잖아?”
강유라는 정곡을 찔렸는지 잠시 딴청을 피우다가 대답했다.
“뭐…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얼마 전에 네가 말한 교회 있지?”
필웅이 순간 긴장해서 물었다.
“그 교회가 왜?”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했잖아. 알고 보니 그 교단, 삼영이랑 연관이 있더라고.”
필웅은 소스라치게 놀라 손에 들고 있는 자료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예전 필웅이 조사한 삼영그룹 관련 자료들이었다.
필웅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8요일 교단이 그들을 쫓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고민 끝에 어쩌면 누군가가 제8요일 교단을 사주했거나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이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이런 짓을 할 정도의 세력과 의도를 가진 것은 삼영그룹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어떤 연관이 있지?”
강유라가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네가 일요교회 얘기를 꺼내고 나서 뭔가 마음에 걸려서 집에 돌아가 그 얘길 어디서 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
알고 보니 삼영이 제8요일 교단과 함께 하는 사업이 꽤 있더라고.”
“무슨 사업을 같이 한다는 거지?”
“의약품 판매 같은 거.”
“의약품이라고?”
“정확하게는 의료기기 같은 걸 판매하는 것 같았어.”
필웅은 일요교회에서 봤던 주사기들을 떠올렸다.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들여오고 있는 건지는 몰라? 삼영그룹의 계열회사 중 어떤 회사와 손을 잡은 거야?”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내가 삼영에서 그걸 알아보려고 하다가 쫓겨난 거야.”
“다른 사업은 없어?”
“기억이 잘 안 나. 의료기기 사업을 한다는 것도 내가 그 방면에 관심이 있어서 좀 찾아본 거라서.”
필웅은 오늘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말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삼영에서도 쫓겨나온 신세고, 필요한 정보도 줬으니 조금쯤은 정보를 공유해 줘도 되겠지?’
“아까 내가 오늘 어디 갔었냐고 물었지?”
강유라가 흥미를 느낀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응. 뭐야 아침부터? 그렇다고 출근을 한 것 같지도 않고.”
“사실은…”
필웅은 어제 시연이 납치당한 것을 알아챈 것부터 일요기도원에서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설명해 주었다.
“뭐? 그게 다 사실이야?”
“내가 굳이 그런 걸 꾸며낼 이유가 없잖아?”
강유라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신도 삼영패션에서 일할 때 입막음을 비롯해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지만, 멀쩡한 외관을 내걸고 이토록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는 처음 본 탓이었다.
“그거 진짜 충격적인데. 그래서 지금은 어디로 가는 거야?”
“말해줄 수 없어.”
“뭐!? 왜?”
“아직 우리는 너를 100% 신뢰하지 않아. 만약 우리의 소재가 들키면 모두가 위험해져. 당분간은 연락하지 않는 게 좋겠어.”
필웅은 분명 강유라가 바락바락 화를 낼 것을 예상하고 마지막 말을 황급히 덧붙였다.
“이건 너를 위해 하는 말이기도 해.”
필웅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우리와 같이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 게 강유라 입장에서도 좋을 리는 없으니까.’
역시나 강유라는 필웅의 첫 마디를 듣고 대뜸 화를 내려다가, 마지막 말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현재 삼영그룹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만큼, 삼영그룹과 손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교단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 좋아. 그렇다고 치지. 지금 내 커넥션을 이용해서 관련 정보를 좀 더 알아보는 중이야. 뭔가 더 알게 되면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월요일 오전 10시, 저번에 만났던 호숫가에서 보자.”
“저번에 너랑 정시연이 데이트한 곳 말이지?”
“데이트 아니라고.”
“뻔뻔하긴. 그렇게 어물쩍거리면서 간 보는 남자는 여자들이 싫어해.”
필웅은 다시 한번 짜증을 내려다가 강유라와 입씨름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그만두었다.
“됐고, 그럼 난 갈 테니까 주위에 미행 같은 거 없는지 조심해서 살펴보고 돌아가.”
“이거 봐. 외간 여자나 걱정해 주고.”
“그냥 가다가 납치나 되라.”
필웅은 쏘아붙이고는 자료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장경이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셨슴다?”
“아, 강유라를 만났어요.”
“강유라를요? 그 여자가 여긴 왜 왔답니까?”
“일단 가서 얘기하죠. 시연이도 들어야 할 것 같으니까.”
장경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늘 알게 된 수많은 정보들이 계속해서 필웅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삼영과 교단의 의료기기 사업이라…”
시연과 김영지가 쉬고 있던 집에 돌아와 필웅은 강유라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교단이라면 그럴 법한 얘기군.”
김영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교단의 신도와 세력은 상당히 크지. 하지만 내가 조사한 마약 밀수 같은 거액의 사업을 혼자 다룰 만한 규모는 아니야. 난 항상 그 자금이 어디서 흘러 들어온 건지 의문이었지.”
“삼영이 자금을 대 주고, 그 이익을 공유했겠군요.”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겠지.”
시연은 김영지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듣고 난 후 말했다.
“당장 압수수색에 들어가야겠어.”
필웅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생각해 봐. 만약 그렇게 대규모로 수상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자기들의 본거지에 우리를 잡아 놨다가 놓친 거잖아. 아마 지금쯤 혼란을 수습하고 자료들을 빼돌릴 궁리들을 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압수수색을 하지? 우리가 감금된 사실로 영장을 신청해도 그렇게 빨리 영장을 받아 내긴 힘들 거야. 내가 여기서 조금 일해 보니 영장이 나오는 속도가 서울과는 달라.”
“누가 영장을 들고 간대?”
시연의 말에 필웅과 장경, 김영지가 모두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장경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심까? 영장 없이 되는 대로 압수수색해서 증거를 얻더라도 그런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 못 하는 거 아닙니까?”
“되는 대로 압수수색이라뇨? 법대로 압수수색할 건데요?”
필웅과 시연의 눈에 마주쳤다.
필웅은 순간 어떤 사실을 깨닫고 아 하고 탄성을 올렸다.
필웅과 시연이 동시에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216조!”
장경과 김영지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시연이 음산한 목소리로 필웅에게 물었다.
“그런데 바나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