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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개과천선-97화 (97/151)

97화 오랜만에 보는군요

필웅은 더 생각할 필요도, 시간도 없다고 판단했다. 필웅은 결연하게 송 조사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따르르르…

필웅은 신호음이 울리는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송 조사관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송 조사관님? 저 조필웅입니다.”

“아, 검사님. 어쩐 일이세요? 이 늦은 밤에.”

송 조사관이 하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미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루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미처 시간을 볼 여유도 없었던 것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아닙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까 친구 분 만난다고.”

“그것 때문에 말인데요…”

필웅은 잠시 장경을 흘긋 쳐다보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 친구가 납치를 당한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필웅은 퇴근하고 나서 시연이 납치된 사실을 파악하게 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후 필웅은 잠시 주저하다가, 시연을 납치한 자들이 일요교회로 시연을 데려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예!? 그 놈들이 교회엔 왜 갑니까?”

필웅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떻게 이를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놈들의 차량이 교회 부지에 들어가 있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교회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교회 안으로 제 친구를 끌고 들어간 건 분명해요.”

“이상하네…?”

송 조사관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이상하다는 등 그럴 리가 없다는 등의 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저도 납치범이 교회를 아지트로 삼고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증거가 명백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요. 심지어 납치범인 듯한 자들이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이야기한 것도 들었습니다.”

필웅은 마지막 말을 덧붙일까 말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더 이상 명백한 사실을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상부라구요?”

이미 놀라 있는 듯한 송 조사관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단단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니 상부라뇨? 그게 대체 누굽니까?”

“여러 번 말씀 드렸다시피, 저희는 교회에서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모릅니다. 혹시나 송 조사관님이 뭔가 아시는 게 있을까 해서 물어보는 거죠.

혹시 교회에서 뭔가 수상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아뇨. 그런 건 저도 잘… 저도 일요일만 교회를 가지만 평소에 교회 일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송 조사관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송 조사관님. 진정하고 잘 생각해 보세요. 혹시 교회 내에서 뭔가 수상한 얘기를 들은 적은 없습니까? 제 행적을 물어본다거나 한 적은 없나요?”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 전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정식이한테 검사님 얘기를 했었습니다.”

정식이라면 몇 번 필웅도 함께 만난 적이 있던 송 조사관의 친구였다.

“무슨 얘기 말입니까?”

“오늘 좀 일찍 퇴근하셔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친구 분 만나실 것 같다고…”

“정식 씨 지금 어딨습니까?”

“글쎄요...”

필웅은 잠시 장경에게 낮은 목소리로 지금까지 송 조사관과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거기서 정보가 새어 나온 게 맞는 것 같은데요.”

필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기를 다시 잡고 말했다.

“조사관님, 한 시가 급한 일입니다. 부탁드릴 게 있으니 제가 잠깐 집으로 찾아봬도 될까요?”

“그러시죠.”

필웅은 전화를 끊고 장경과 함께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필웅은 송 조사관에게 정식이 됐든 누가 됐든 교회의 신도를 잘 구슬려 정보를 빼내와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전화로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직접 찾아가 보다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야기해 두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차피 필웅와 도영의 집은 차를 타면 10분 정도 거리였다.

“정 검사님이 실종됐다는 걸 듣고 반응이 어떻던가요?”

장경이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상당히 놀란 것 같던데요.”

장경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하는 것 아닙니까?”

“전화상이라 잘 알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어쨌든 뭔가 도움을 줄 것 같으니 기대 볼 수밖에요.”

필웅은 다시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 필웅이 입술을 깨물 때면 시연은 어떻게 알고는 엄마처럼 나타나 잔소리를 하고는 했다. 그러니 입술이 성할 날이 없는 거라며, 바셀린을 가져다 주기도 했었다.

필웅은 그 문득 그 잔소리마저 그리워졌다.

* * *

“정식이한테 연락해 봤습니다.”

도영이 차를 내오며 조용히 말했다. 부인은 자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뭐라던가요?”

“뭐랄까.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조금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 그냥 검사님 친구분이 사라져서 여기저기 수소문 중이라고만 했는데,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더니 나중에는 교회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고 알려주더군요.”

도영은 말을 마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도대체 왜 교회가 검사님을 납치한단 말입니까?”

장경이 험상궂게 그를 바라보다가 끼어들었다.

“그건 잡아다가 물어보면 알겠죠. 어디랍니까?”

도영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필웅을 돌아보았다.

“이 분은?”

“아, 제 친구입니다. 형사시죠.”

“그렇군요. 아무튼, 정식이가 하도 말을 횡설수설해서 정확히는 못 들었는데, 교회랑 좀 떨어져 있는 기도원 건물에 있는 것 같답니다.”

“기도원이요?”

“여기요, 지도에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도영은 테이블에 굴러다니던 영산시의 관광지도를 하나 꺼내들고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여기 보이시죠? 이 쪽이 교회이고, 기도원은 샛길로 빠져서 쭉 가면 산 속에 있습니다.”

“거, 수상시럽게 산 속 엄청 좋아하네요.”

장경이 툴툴대며 대신 지도를 챙겼다. 도영이 기분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교회 사람들이 그랬지만 교회에 다니는 일반인들이 다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필웅이 그를 진정시켰다.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형사님, 일단 교회 사람들이 전부 한통속인 건 아니니 그렇게까지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예, 죄송하게 됐슴다.”

장경은 별로 죄송하지 않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사과했다. 도영은 불만스럽게 그를 잠시 쳐다보았지만, 이내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와 필웅에게 말했다.

“바로 가실 겁니까?”

“그래야죠. 만약 저희가 2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에 연락 좀 넣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몸 조심하시구요.”

필웅과 장경은 도영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차에 올라탔다.

“검사님, 준비되셨습니까?”

“준비됐습니다.”

장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얼굴을 쓰다듬다가, 대시보드에서 권총을 꺼냈다.

“유비무환이니까요.”

장경은 권총과 함께 권총지갑을 꺼내 허리춤에 차고는 권총을 집어 넣었다.

필웅은 비로소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실감하고 긴장했다.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사람의 이목이 많은 아파트에서 사람을 납치해 감금하는 집단이다. 만약 장경과 필웅이 잠입하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장경은 침묵한 채 차를 몰았다. 침묵 중에서도 그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필웅은 한숨을 쉬고는, 긴장 속에서 지도를 펴 들었다.

기도원은 교회보다도 더 깊은 산 속에 있었다.

들어가다 보니 차도도 끊겨 있었다. 장경은 하는 수 없이 차를 공터에 대기로 했다.

“아직 더 들어가야 되는 거죠?”

장경이 손전등을 키며 물었다. 필웅은 잘 안 보이는 지도를 보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관광지도라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이것보단 좀 더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저쪽이에요.”

필웅은 확신이 없는 손짓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작은 오솔길이 보였다.

오솔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다 보니, 낡은 표지판이 보였다.

<일요 기도원: 300m>

필웅과 장경은 그래도 방향은 맞게 들어온 모양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어느 정도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장경은 손전등을 껐다. 가뜩이나 인적도 없는 길인데 계속 손전등을 비추고 걸어가면 교회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위험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긴장한 채 걸어가던 필웅과 장경의 눈에, 저 멀리 어렴풋이 건물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기도원…?”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기도원 건물은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처럼 보였다.

그런 콘크리트 상자의 주위를 살벌해 보이는 높은 담장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기도원이라기보다는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이거 뭔가 점점 이상해지는디…”

장경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필웅도 조금 당황했다. 뭔가 정상적인 집단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일요교회를 조사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상식 밖이었다.

필웅과 장경은 조심스럽게 수도원의 담장을 끼고 한 바퀴를 돌았다. 정면에 거대한 철문이 하나 있었고, 뒤쪽에 작은 문이 있었지만 잠겨 있었다.

필웅은 막막하게 담장을 올려다 보았다. 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담장은 타고 오를 만한 높이는 아니었다.

그 때 장경이 무언가 낌새를 챘다.

“검사님, 숙이십쇼!”

장경이 목소리를 잔뜩 낮춰 말하며 동시에 필웅의 머리를 잡아 눌렀다. 끼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뒷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쓰레기 봉투인 듯한 것들을 잔뜩 들고 나왔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모양이었다.

“지금입니다!”

장경이 낮게 외치며 열려진 문을 향해 돌진했다. 필웅도 재빨리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필웅이 몸을 숙인 채로 장경을 쫓아가는 찰나, 쓰레기를 버리러 온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어…?”

남자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졌고, 남자는 소리를 지르기 위해 크게 입을 벌렸다.

“여기…!”

필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다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필웅은 가늘게 실눈을 떴다. 장경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느샌가 달려온 장경이 권총으로 남자의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킨 모양이었다.

“이럴 시간이 없슴다, 얼른 들어가시죠!”

필웅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담장 안쪽의 모습은 일요교회의 모습과 비슷했다.

다만 교회 부지처럼 여러 건물이 있지는 않았고, 밖에서도 보인 육중한 콘크리트 박스 같은 건물 하나만 중심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필웅과 장경은 일단 건물의 그림자 아래에 몸을 숨겼다.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두세명의 남자가 순찰 중인 듯 손전등을 들고 계속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시연이는 이 안에 있겠죠?”

필웅이 건물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장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건물이 많지는 않으니 이 건물만 들여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필웅과 장경은 흘끗 건물의 정면 부분을 살펴 보았다. 문은 열려 있었다.

장경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 보다가, 주위에 순찰을 도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필웅에게 손짓했다.

필웅과 장경은 살금살금 벽을 돌아 기도원의 정문으로 향했다.

필웅이 안을 슬쩍 보니, 기도원 안쪽은 불이 꺼져 캄캄했고 사람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필웅과 장경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기도원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안쪽은 바로 예배를 드리는 데 사용하는 듯한 홀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기도원에 불이 켜졌다.

필웅과 장경은 당혹감에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기도원의 문 쪽에서 무장한 남자들과 흰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허어 이거, 반갑습니다.”

“당신은…!?”

필웅은 흠칫 놀랐다. 지도자인 듯한 중년 남성은, 일전 일요교회에 예배를 왔을 때, 그와 악수했던 황대산 전도사였다.

황대산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검사님, 오랜만에 보는군요. 아니, 자주 뵌다고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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