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대체 왜 교회 쪽으로 가고 있는 거지?
필웅은 어쩔 줄 몰라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장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사님? 저 조필웅입니다.”
“아, 검사님. 잘 지내십니까.”
“예, 그런데 다른 게 아니고, 오늘 시연이가 찾아오기로 했었는데 안 보여서요. 혹시 뭐 들으신 것 없나요?”
“정 검사님이요? 그러고 보니 오늘 검사님 만나러 영산 내려간다고 말씀은 들었는디… 그런데 검사님이 안 보인다뇨?”
“오늘 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경비 아저씨 말로는 시연이가 들어온 건 봤다는데 나간 걸 못 봤답니다.”
“예? 나간 흔적이 없다면 안에 계신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집 안에도 없고, 게다가 현관문 앞에 시연이가 차고 다니던 시계에 박힌 큐빅이 떨어져 있었어요. 뭔가 몸싸움이 벌어진 게 아니라면, 거기에 그런 게 떨어져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필웅은 마음이 조급해 자기도 모르게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장경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일단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예, 전 주위에서 좀더 찾아 보겠습니다.”
필웅은 전화를 끊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필웅은 그 후 필사적으로 시연을 찾아 헤맸다.
필웅은 아파트 안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노인들과 지나가는 아이들에게도 시연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혹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하나같이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필웅은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져 놀이터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필웅은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가 ‘지금’으로 돌아온 것은 시연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렇게 돌아오자마자 시연은 그의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가 미래에서 본 시연의 사망 추정일은 지금보다는 뒤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정인 만큼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애초에 필웅은 시연이 왜 언제 죽게 됐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그를, 바로 옆의 벤치에 앉아 과자를 집어먹고 있던 누군가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저씨.”
“?”
필웅은 옆에 사람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말소리가 들리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다.
희주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아, 김영수라는 사람 체포됐다고 들었어요.”
필웅도 스스로 너무 놀란 것 같아서 멋쩍게 대답했다.
“응, 네가 잘 도와줘서 쉽게 풀렸어.”
“다행이네요.”
어딘가 경황이 없어 보이는 필웅을 빤히 바라보다가 희주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필웅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잠시 난감했다.
“그게 오늘 오기로 한 친구가 있는데 안 보이네.”
“삐삐나 핸드폰 쳐봤어요?”
“그런 건 없어.”
“어디 근처에서 놀고 있는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어디에서 기다린다고 얘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아무 얘기도 없어.”
필웅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유괴된 거에요?”
“야! 무슨 소리야?”
“그냥 친구가 잠깐 없어졌다고 해서 이렇게 초조해 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저씨가 나쁜 조직이랑 싸우고 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쥔 친구? 동료? 뭐 그런 사람이 아저씨를 찾아 와서 정보를 전해 주려다가 납치를 당한 거죠.”
필웅은 놀랄 정도로 사실에 가까운 그녀의 추리에 다시 한 번 희주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맞나 의심했다.
희주는 점점 자기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친구는 검사님이 마음 깊이 짝사랑하던 소꿉친구였던 거에요. 그래서 검사님은 친구의 실종에 분노하고, 악의 조직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딛게 되는데…!”
“그만.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충 그렇다고 치자. 혹시 그 친구 본 적 있어? 키는 이 정도 되고, 눈가에 눈물점이 있고 예쁘… 음 예쁘게 생겼다고 치자.”
“짝사랑하는 거 맞구나?”
“됐고. 본 적 있어?”
“예, 본 적 있어요.”
필웅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희주의 양팔을 자기도 모르게 꽉 붙잡았다.
“어디서? 언제? 누구랑 있었어? 혼자였어?”
희주는 인상을 쓰며 필웅의 팔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아, 아파요…!”
필웅은 순간 정신을 되찾고는 희주의 팔을 놓았다.
“미, 미안하다. 마음이 급해서. 어디서, 언제 본 거야?”
희주는 볼멘 표정으로 팔을 문지르다가 말했다.
“아야야. 아까 한 7시 좀 넘어서?”
필웅은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7시 정도면 시연이 필웅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아마도 시연이 필웅의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아파트에 들어가고 있었어?”
“네.”
“나오는 건 못 봤니?”
희주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못 봤어요.”
“네가 딴 데로 가서 못 본 게 아니고?”
“아니에요. 저 거기 계속 서 있었거든요.”
“왜?”
“연예인같이 예쁜 언니가 이런 동네에 다 왔길래, 호기심에 나올 때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냥 기다려봤죠. 근데 계속 기다려도 안 나오길래 그냥 갔어요.”
“얼마나 기다렸어?”
“한 30분 정도?”
“다른 건 본 게 없었니?”
희주는 미간을 찡그리며 양 손의 집게손가락과 중지를 모아 양쪽 관자놀이에 댔다.
“뭐 하는 거야?”
“가만 있어봐요. 이렇게 해야 집중이 잘 된단 말이에요.”
희주는 그 후 으으음 하는 기합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그런 자세로 있던 희주는, 손을 내리며 말했다.
“중간에 나온 다른 사람이 있었어요.”
“누군데?”
“누군지야 저도 모르죠. 이삿짐 센터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어요. 두 사람이 큰 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었어요.”
“큰 상자?”
“한 벤치 크기 정도?”
희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이 앉아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체구가 작다면 족히 한 사람은 들어갈 듯한 크기였다.
“뭔가 이상한 건 못 느꼈어?”
“그 땐 못 느꼈죠. 이삿짐 센터에서 짐 옮기는 광경이니까. 근데 아저씨 말 듣고 보니, 그 사람들이 납치범인 거죠? 그 박스에다 사람을 넣은 거고.”
필웅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희주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그 남자들이 정말로 시연을 납치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어?”
“아파트 단지에 대 놓은 트럭으로 가더니 그 상자를 싣고는 그냥 가버렸어요.”
“차 번호는?”
필웅은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은 채 혹시나 해서 물었다. 희주가 다시 아까처럼 자세를 잡다가 입을 열었다.
“9984.”
“확실해?”
“기억 떠올리는 포즈 했잖아요.”
“차량 색깔은?”
“파란색. 차종은 포터.”
‘잠깐, 파란 포터라면?’
필웅의 머릿속에 얼마 전 파출소장을 치고 갔던 트럭이 떠올랐다.
“혹시 그 차에 뭔가 특이한 점은 없었어? 범퍼 쪽이 망가졌다든가”
“글쎄요? 그 쪽은 미처 안 보여서 못 봤어요.”
희주는 뭔가 의심하는 듯한 필웅의 눈초리를 느끼고는 도발적인 눈으로 필웅을 올려다 보았다.
“안 믿는 거예요?”
“솔직히 너무 자세하게 기억하니까 좀 이상한데.”
“아니, 그럴 거면 왜 물어봤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지.”
“믿기 싫으면 말아요. 참 나.”
희주는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았어. 나중에 얘기하자. 혹시 뭐 물어볼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전화하면 받아야 된다?”
“그럴게요. 그럼 일단 전 들어가 볼게요. 3일 있다 수련회 가야 되서 숙제 미리 해놔야 되요.”
희주는 과자봉투를 기울여 탈탈 털어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필웅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일단은 근처 경찰서에 전화해 차량번호를 전달하고 수배를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필웅이 전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경이 집에 도착했다. 장경은 심각한 얼굴로 필웅에게 다시 한 번 경위를 물었고, 필웅은 방금 전 희주가 해 준 이야기까지 포함해 사건의 경위를 들려 주었다.
장경은 표정을 찡그렸다.
“좋지 않은데요.”
“일단 해당 차량의 수배는 요청해 뒀습니다.”
“그래도 차량 번호라도 확인했다니 다행임다.”
“그러게요. 그래도 차량 번호와 차량 외관이 확인됐으니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웅이 한 말은 정말 확신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만약 이미 멀리 벗어나 버렸거나 차량을 버렸다면 흔적을 확인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필웅은 아직 범인들이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필웅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아, 예. 영산경찰서입니다. 조필웅 검사님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말씀하신 9984 포터 차량 확인했습니다. 진행방향을 보니 일요교회 부지 쪽으로 가고 있던 것 같은데요.”
“일요교회요!? 카메라에 찍힌지 얼마나 됐습니까?”
“한 30분쯤 전이니까 만약 행선지가 일요교회라면 지금쯤 도착했을 것 같습니다.”
필웅은 전화를 끊고 장경에게 외쳤다.
“형사님! 시연이를 데려간 놈들을 찾은 것 같습니다!”
장경이 고개를 결연하게 끄덕이고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필웅도 그의 뒤를 따랐다.
장경과 필웅은 장경의 차에 타고 바로 아파트 단지를 나섰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일요교회라는 곳이에요. 제가 한 번 가봤으니까 대충 길을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얘기하는 대로 가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경찰 지원이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필웅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곳이 목적지인지도 모르는 데다가, 만약 정말 그 놈들이 시연이를 납치했다면 경찰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일단은 저희들끼리 가죠.”
장경이 필웅의 말을 들으니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일단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길은 때로 울퉁불퉁하고 시골길이라 좁기도 했다. 필웅은 자신이 처음 도영과 이 길을 갈 때에도 이 길이 이렇게 험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 놈들은 왜 일요교회 방향으로 간 거지?’
장경에게는 그 곳이 목적지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일요교회가 워낙에 외진 곳에 있다보니 사실상 그 방향으로 진행하면 나올 만한 장소는 일요교회밖에 없었다.
결국 범인들이 숲속의 오두막 같은 곳으로 시연을 끌고 가지 않은 이상, 합리적으로 추측되는 목적지는 일요교회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 결론은 필웅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납치범 놈들이 대체 왜 교회 쪽으로 가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