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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개과천선-65화 (65/151)

65화 같이 하자고, 그거

필웅과 장경은 안에서 누가 나타날지 긴장하며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열린 문틈 사이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만 왔소?”

필웅이 대답했다.

“예, 저희 둘만 왔습니다.”

“들어오시죠.”

남자는 문을 좀 더 열어두고는 안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장경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안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야 뭐, 사람만 안 죽었지 상태가….”

필웅이 장경을 뒤에서 툭 치고는 씁, 하는 소리를 내며 장경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정작 집주인인 서덕현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소파 같은 건 없으니 바닥에 대충 앉으시죠.”

장경은 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먹을 것이며 신문, 온갖 쓰레기들이 쓰레기장처럼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장경은 발로 슬슬 쓰레기들을 밀어내며 간신히 마련한 자리에 앉았다. 필웅도 똑같이 했다.

서덕현은 쓰레기가 소파라도 되는 듯 신문지 더미 위에 무심하게 앉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오신 겁니까?”

서덕현이 피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삼영백화점이 붕괴하던 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필웅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서덕현은 고개를 힘없이 흔들었다.

“그 얘기는 경찰에서 이미 했다고….”

“서덕현 씨.”

“…?”

서덕현이 생기 없는 눈을 들어 필웅을 바라보았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서덕현 씨를 도와줄 수 있는 건 저희뿐입니다. 저희에게는 거짓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서덕현이 필웅의 말을 음미하듯 잠시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서덕현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덕현이 들려준 그 날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날 오전, 창고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점장이 기술 과장을 동반하고 창고로 가 보니, 창고의 바닥이 조금 내려앉아 있었다.

“창고에 적재된 짐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창고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점장은 깜짝 놀라 서둘러 삼영백화점의 사장과 삼영건설의 책임자에게 연락했다. 삼영백화점의 사장은 마침 해외 출장 중이었고, 삼영건설의 강무완 사장만 삼영백화점에 마련된 회의실에 도착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중에도 계속해서 민원이 들려왔다. 창고 밑층의 식당가에서 부스러기와 물 같은 것들이 계속 떨어진다는 신고였다. 점장은 일단 식당가의 운영을 중단시키기로 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겠소? 충분히 보수할 수 있는 하자인 것 같네만.”

강무완 사장이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장은 간신히 그를 달래 일단 식당가를 저녁까지만 운영 중단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삼영건설에서 온 기술자가 점검을 마치고 오더니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설명했다.

삼영백화점 건물에 붕괴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늦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늦출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점장은 직원들과 손님들을 당장 대피시켜야 한다고 했다.

“잠깐, 시간은 얼마나 남았소?”

강무완 사장이 기술자에게 물었다. 기술자는 빠르면 3시간, 늦으면 5시간 정도라고 했다.

“삼영백화점에 오늘 특별 세일이 시작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너무 섣불리 판단하면 매출에 나쁜 영향이 있지 않겠소?”

삼영건설의 사장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강무완은 삼영그룹의 수장이기도 했기에 삼영백화점의 사정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점장은 최선을 다해 항변했지만 강무완 사장은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회의 시간이 늘어졌다.

그때 그들이 있던 회의실에도 쿠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요?”

강무완 사장이 물었다. 기술자가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강무완 사장은 불쾌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백화점 출구로 걸어갔다.

- 건물 내 내부 시공 일정으로 점검을 진행 중입니다. 고객님들께서는 안심하고 쇼핑을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백화점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귀에 계속해서 같은 내용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설마 문제가 있는데 백화점에서 대피 방송도 안 하고 있겠어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점장은 불안한 표정으로 강무완 사장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대피는 어떻게 할까요?”

“대피?”

“손님과 직원들이 안에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건 내버려 두게.”

강무완 사장은 차가운 표정으로 차에 타며 그대로 떠나버렸다. 점장이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결심을 굳히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굉음이 들려오며,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덕현이 이야기를 끝내자, 필웅과 장경은 모두 침묵에 잠겼다.

그것은 충격 때문일 수도, 분노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요?”

마침내 말을 하는 법을 다시 배우기라도 한 듯, 긴 침묵 끝에 장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요…, 라뇨?”

“그래서 어떻게 됐냐는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대로 백화점은 붕괴했고….”

“아니, 그래서 그다음에 강무완이 뭐라고 지시를 내렸냐는 말입니다.”

서덕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화점이 무너진 직후, 강무완 사장이 바로 저를 찾아내서는 경찰에 가서 진술하더라도 당일 자신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진술했죠. 그리고는 뭔가 불안한 마음에 전산상 남아 있던 제 주소를 지워버렸습니다. 여기는 제집은 아니고 예전에 저희 어머님이 세를 놓던 집인데 마침 세입자가 없어서 잠시 거처를 옮겼습니다.”

“뭐가 불안했죠?”

“강무완 사장이 저를 찾아낸 이후로, 계속해서 감시를 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경찰서에 오고 갈 때도 누군가가 계속 따라붙는 느낌이었죠.

거처를 옮겨 봤지만, 그 후로도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있었죠.”

필웅이 말했다.

“우리가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요?”

“형사님, 이쪽에 보호 인원을 몇 명 붙일 수 있습니까?”

장경은 뭔가 골똘히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검사님, 잠시 저 좀 보시죠. 이 방 잠깐만 써도 됩니까?”

“그러시죠.”

장경이 잠시 필웅을 잡아끌고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방으로 그를 데려갔다.

“무슨 일입니까?”

“검사님, 저는 솔직히 저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예?”

“방금 얘기한 것만 들어 봐도 줏대 없고 아무 생각 없는 놈입니다. 사실상 강무완의 공범이나 마찬가지예요. 저런 놈을 보호해야 된다구요?”

필웅이 장경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형사님, 저도 저 인간이 예뻐서 보호해준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 인간을 어떻게든 끌어내야 강무완도 잡아넣을 수 있어요.

다른 단서가 모두 끊긴 상태에서, 서덕현의 증언은 강무완이 고의적으로 삼영백화점을 방치했다는 점을 증명해 줄 유일한 증거입니다. 어쨌든 진짜 수괴가 처벌을 받게는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장경은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 것처럼 입을 벌렸다.

그러나 잠시 후 장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벅벅 긁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슴다. 검사님 말이 맞겠죠.”

“좋아요. 여기로 경찰들 좀 부를 수 있겠습니까?”

“아직 강무완 사건이 진행 중이니까 그 사건 관련한 주요 증인이라고 하면 보호 절차 신청할 수 있을 겁니다.”

필웅과 장경은 방에서 나와 서덕현에게 말했다.

“잠시 보호 절차 관련해서 논의 좀 하느라 실례했습니다. 오늘 당장 보호 인원을 붙여 드리죠.”

서덕현이 퀭한 눈으로 필웅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그 대가로 저는 뭘 하면 되죠?”

필웅이 굳은 얼굴로 그를 마주 보며 대답했다.

“오늘 한 얘기를 그대로 법정에서 들려주시면 됩니다.”

* * *

필웅은 집에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일단 증인은 확보했지만, 앞으로는 어떡한다….’

사건은 이미 다른 검사에게 재배당되었을 것이었다. 현재로서는 그가 정직 중이니 다시 사건을 배당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었다. 물론, 요청을 한다고 해도 거부당할 것이 뻔했다.

바깥은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똑똑

비가 어찌나 거세게 내리는지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노크 소리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똑똑

다시 한번 빗소리가 들렸다. 필웅은 증인을 확보했는데도 앞으로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다른 검사한테 사건을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필웅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쉽게 잠들기 어렵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으려고 애썼다.

“야!! 조필웅!”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빗소리가 아니라 정말 노크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필웅은 올 사람이 없는데, 하고 의아해하며 옥탑방의 문을 열었다.

우산은 쓰고 있었지만, 비를 흠뻑 뒤집어쓴 강유라가 서 있었다.

“뭐야?”

필웅이 놀랄 틈도 없이 강유라는 우산을 집어 던지고는 필웅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강유라는 그대로 필웅의 방 한복판에서 자켓을 벗어 물을 털어냈다. 온 사방에 물방울이 튀었다.

필웅은 얼굴을 찌푸렸다.

한참 동안이나 옷과 머리를 부산스럽게 털던 강유라는 자켓을 필웅에게 집어 던졌다.

“이것 좀 어디 걸어줘.”

필웅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일단 옷걸이에 그녀의 옷을 걸었다. 강유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기가 막히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집이야?”

“벽과 지붕과 바닥이 있으면 당연히 집이지.”

“아니… 그래도 이건….”

강유라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계속해서 필웅의 방 이곳저곳을 힐끔거렸다.

필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민체험이라도 온 거야? 왜 왔어?”

강유라는 아무 대답도 없이 여전히 집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물었다.

“뭐야? 의자 없어?”

필웅은 넌덜머리를 내며 방석을 꺼내 그녀의 앞에 던졌다.

“내 방은 좌식이야.”

“에이씨….”

강유라는 짜증을 내며 그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짜증을 내고 싶은 건 내 쪽이거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체?”

“아, 목말라. 히비스커스 차 같은 거 없어? 와인도 괜찮고.”

필웅은 아무 말 없이 방 한 구석의 미니 냉장고에서 델몬트 주스병에 담긴 보리차를 아무렇게나 잔에 따라 그녀에게 내밀었다.

“뭐야 이게? 왜 주스병에서 주스가 안 나오고 이상한 게 나와?”

“안 마실 거면 내놔.”

필웅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잔을 뺏어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강유라는 재빨리 필웅의 손을 피하고는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셨다.

“햐아! 시원은 하네. 무슨 차야 이건?”

“보리차.”

“보리로도 차를 끓여?”

필웅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저기, 한밤중에 찾아와서 다도를 논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우리가?”

놀랍게도 강유라는 바로 지지 않고 쏘아붙이는 대신 말 없이 손에 든 잔을 묵묵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물론 그런다고 필웅의 짜증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다 마셨으면 그만 가 줄래? 나 너희 아버지 잡아넣어야 되거든?”

“그 일 때문에 왔어.”

“왜? 또 손 떼라고 협박하게?”

강유라가 왠지 모르게 차분한 표정으로 서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같이 하자고,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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