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파트너입니다, 파트너
“아니, 그러니까 관할서도 아닌데 그 자료를 왜 보려고 하시냐구요.”
“삼영건설 사건 조사하는 데 필요하다고 말씀 드렸잖슴까.”
장경이 언짢은 얼굴로 되받아쳤다.
관할서의 형사도 질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그러면 정식으로 협조 공문 받아오시던가요.”
“어느 세월에 협조 공문 받고 어느 세월에 자료 송부 요청합니까?”
“아니, 절차라는 게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달라고 하면 저희가 다 드려야 합니까?”
“진짜 돌겠네. 같은 식구끼리 이럴 겁니까?”
“제가 왜 형사님이랑 식굽니까?”
관할서의 형사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장경도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됐슴다. 주기 싫음 마십쇼!”
장경이 말하며 옆의 쓰레기통을 발로 쾅 하고 걷어찼다. 사무실에 있던 형사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당신 뭐야?”
“별 개나 소나 와서는 시비야? 엉?!”
형사들이 하나둘 자리로 모여들자 장경은 주위의 형사들을 노려보았다.
‘후… 일단은 참자. 어쨌든 자료를 받아야 하니 더 이상 자극해선 안 돼.’
장경은 형사들을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억지로 미소를 띠며 쓰레기통을 일으켜 세웠다.
“아, 아이구… 이게 왜 이런 데에 있어? 욕들 보십쇼.”
장경은 등짝에 따갑게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재빨리 관할서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놈의 공문 더럽게 좋아하네. 공문 써서 주면 될 것 아니야 주면?’
* * *
며칠 후, 장경은 자신이 안이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공문 보냈잖아요. 바라는 대로 공문 보내줬는데 대체 왜 자료를 못 보내준다는 겁니까!?”
“좀 기다려 보세요.”
“그깟 자료 보내는데 뭘 며칠이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아, 자료가 어디 도망이라도 갑니까? 기다려 보시라니까요?”
장경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장경은 관할서의 형사가 요구한 대로 공문을 준비해 자료의 송부를 요청했다. 그러나 관할서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꾸 공문을 다시 수정해 보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장경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그들의 요구대로 공문을 몇 번이고 수정해서 보냈지만, 공문을 받아 들고 나서도 자료를 보내줄 수 없다는 답변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무슨 일이세요~?”
음료수를 들고 사무실에 놀러 온 다혜가 전화기를 부술 듯 내려놓는 장경에게 물었다.
“아, 이 새끼… 아니, 관할서 친구들이 자료를 못 보내준다지 않습니까.”
“자료라면… 전에 그 점장의…?”
“예.”
“흠….”
김도율 강력계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장경은 시선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음흉하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력계장의 시선을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응? 안 쳐다봤는데?”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십쇼. 지금 여기 있는 거울에 다 보이거든요?”
“에헴, 크흠. 아니, 그 서 기자님은 이놈이랑 무슨 관계십니까?”
다혜가 당황해서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예? 무슨 관계냐니요?”
“그렇잖습니까. 일도 없는데 음료수 들고 놀러도 오시고… 허허”
김 계장은 빙글빙글 웃으며 다혜가 건네준 음료수를 맛있게 마셨다. 장경도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괜히 짜증을 냈다.
“거 좀,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십쇼.”
“내가 뭘 임마!”
둘의 언성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하자, 다혜는 말을 돌리기 위해 장경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근데 형사님. 그 관할서에서 자료를 어디다 보관하는지는 알고 계세요?”
“그놈들이 자료 보관하는 캐비닛이 있습니다. 사무실 안에 있을 거예요.”
“흠, 그래요?”
다혜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장경은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 다혜가 눈을 반짝일 때마다 뭔가 엉뚱한 아이디어를 꺼내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다혜가 장경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장경은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 * *
장경과 다혜는 서로를 마주 보고는 관할서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아, 왜 또 왔어요?”
담당 형사가 장경을 알아보고는 짜증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장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뜸 옆의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쾅!
안에 있던 휴지며 쓰레기들이 흩어져 난장판이 되었다. 자리에 있던 형사들이 모두 벌떡 일어섰다.
“당신 또 뭐야?”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거야?”
형사들이 사나운 눈빛으로 몰려들었다.
장경은 기죽지 않고 담당 형사의 멱살을 잡았다.
“야, 너 장난해? 내가 공문 보냈어, 안 보냈어? 엉!?”
“어쭈, 이거 안 놔?”
“안 놔. 아니, 못 놔!”
장경은 더욱 멱살을 추어올리며 악을 썼다. 형사들이 그를 뜯어말리기 위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이거 미친놈 아냐?”
“어이, 김형! 이 새끼 끌어내!”
“이거 놔, 놔라 이 자식들아!”
장경은 발버둥을 치며 고함을 버럭버럭 질렀다. 장경이 사력을 다해 멱살을 잡은 채 매달리자 건장한 형사들도 당황해서 그를 잡은 채 비틀거렸다.
장경은 미친 사람처럼 발광을 하다가 흘끗 캐비닛 쪽을 돌아보았다.
다혜가 제안한 것은 장경이 다혜를 구하러 왔을 때의 작전을 다시 한번 재현한 것이었다. 물론 스케일은 좀 더 작았다.
다혜가 몰래 캐비닛을 열고 자료들을 훑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장경에게 관심이 팔려 아무도 그녀가 뭘 하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눈치챘더라도 그녀가 너무나 당당하게 자료들을 꺼내 살펴보고 있어서 아마도 동료 형사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장경은 안심하고는 더욱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다 덤벼! 오늘 끝장을 보자!”
마침내 그들이 담당 형사로부터 장경을 떼어놓았다. 장경은 굴하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장경은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하게 뒤에 있던 형사의 콧잔등을 팔꿈치로 찍어버리고 말았다.
‘이크!’
장경은 그래도 동료인 경찰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서둘러 팔을 뺐지만 이미 얻어맞은 형사의 코에서 코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형사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조만간 장경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린치라도 가할 낌새였다.
‘기자님, 빨리 좀…!’
장경은 애타는 눈빛으로 몰래 다혜 쪽을 바라보았다. 다혜도 장경 쪽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더 빨리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다혜와 장경의 눈이 마주쳤다.
다혜가 손에 든 자료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장경도 씩 미소를 지었다.
“아, 그것 참! 진짜 도움들이 안 되네 도움들이! 일 똑바로들 하쇼! 엉!?”
갑자기 장경은 마구잡이로 휘젓던 팔을 멈추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호통을 쳤다. 그를 둘러싼 형사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혜는 어느새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거, 수고들 하쇼. 에이!”
장경은 괜시리 더 화를 내며 팔을 털고는 누가 쫓아올세라 냅다 사무실을 벗어나 달렸다.
“저 새끼 뭐야…?”
코피가 난 코를 어루만지던 형사의 어이없다는 목소리만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 * *
장경과 필웅은 관할서에서 협조받은(?)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참 자료를 들여다본 필웅이 장경에게 물었다.
“이건 어떻게 입수하셨어요? 관할서가 비협조적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장경은 뜨끔 해서 대강 둘러대기로 마음먹었다.
“아, 그 저기, 뭐 어떻게 잘 얘기하니까 주더라구요.”
“그래요?”
필웅은 그런가 보다 하고 점장이 심문을 받은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역시 별 내용이 없네요. 강무완이랑 같이 있었다는 진술도 없고.”
“뭐 어떻게 우연히 건물 외부에 있었다는 얘길 하는 걸로 봐서 조사받을 때 순 거짓말만 한 게 분명함다.”
장경이 흥분해서 말했다.
“뭐, 이럴 줄은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의 주소는 알 수 있겠군요.”
필웅이 자료에 적힌 서덕현 점장의 주소를 짚었다.
장경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직원 명단상에는 주소가 없었던 거죠?”
“모르죠. 이사를 했을 수도 있고, 직원 명단의 주소를 일부러 조작해 놓은 걸 수도 있고.”
“가 보시겠습니까?”
“당연하죠.”
필웅은 씩 웃으며 책상에 놓인 장경의 차 키를 집어 장경에게 건넸다.
“이거, 너무 저를 당연히 운전기사라고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운전기사라뇨? 파트너입니다, 파트너.”
“허헛, 참.”
장경은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싫지는 않다는 듯 차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 * *
필웅과 장경은 이내 서덕현이 조서에 써 놓은 주소에 도착했다.
서울 외곽의 한 평범한 빌라였다.
“가족은 같이 안 산다는 거죠?”
“뭐, 직원 기록상으로는 그렇슴다.”
“일단 들어가 볼까요?”
필웅과 장경은 계단을 올라 서덕현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둘은 서덕현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
장경이 먼저 문을 크게 두드렸다.
-탕탕탕
“계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필웅과 장경은 문득 강릉에서 강석훈을 찾으러 갔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불안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계십니까?”
장경이 다시 한번 소리높여 외쳤다. 여전히 문 안쪽은 잠잠했다.
참다 지친 장경이 다시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문 안쪽에서 아주 작고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소리를 지를 준비를 하던 장경은 미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필웅은 먼저 목소리를 알아채고는 막 소리를 치려던 장경을 만류했다.
“쉿! 잠시만요.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시냐구요?”
장경도 목소리를 듣고는 문에 가까이 붙어서 말했다.
“서덕현 씨 되십니까?”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누구시냐고 세 번째 물었잖소.”
“아, 죄송합니다. 저는 박장경 형사라고 합니다.”
“저는 이미 경찰서에서 다 얘기했습니다.”
“그거 다 거….”
‘그거 다 거짓말 아니냐’며 장경이 역정을 내려는 순간 필웅이 그의 입을 재빨리 막고 대신 말했다.
“서덕현 씨, 누군가 서덕현 씨를 위협하고 있습니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필웅이 재차 소리높여 말했다.
“서덕현 씨, 저는 서울남부지검의 조필웅 검사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직원 명부의 주소도 삭제하고, 오로지 경찰한테만 주소를 알려준 것 아닙니까?”
여전히 대답은 없었지만, 부스럭부스럭하고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장경이 숨죽여서 작은 목소리로 필웅에게 말했다.
“다 부질없슴다. 제가 가서 열쇠장이를 불러올 테니 문 따고 들어가죠.”
“잠시만요. 좀만 더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어차피 문만 열면 장땡 아님까?”
“자기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필요가 있어요. 증인으로 불러야 할 수도 있는데 형사님 같으면 자기 문 따고 들어온 형사를 위해 증언해 주겠습니까?”
장경은 쩝 하며 입을 다물었다.
‘정직 중만 아니었으면 압수수색 영장을 받거나 참고인 조사라도 했을 텐데…!’
필웅은 새삼 지금의 처지가 아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덕현 씨, 지금 서덕현 씨를 도울 수 있는 건 우리뿐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제가 바로 강무완 사장을 기소한 검사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도울 수 있다면 그건 강무완에 맞서 싸우는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이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은 저희밖에 없어요.”
필웅은 약간의 도박을 걸어 보기로 했다. 물론 그가 정말로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순간 강무완을 수행했기에 강무완에게 불리한 사실을 알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기도 했다.
필웅은 초조하게 문손잡이만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장경의 인내심이 바닥날 만한 시간이 흐른 순간이었다.
문이 끼익, 하고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