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저도 제 정보원이 있습니다
장경은 사무실에 앉아 여전히 어제 호진의 집에 찾아간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가 실종된 것 치고는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장선영의 태도.
실종신고도 하지 않은 호진의 아버지.
아이가 사는 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이의 물건이 치워진 호진의 집.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결론으로 장경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아니여, 사람의 탈을 뒤집어 쓰고 설마 그럴 리야 없지.’
장경은 나쁜 생각을 쫓아버리려는 듯 휘휘 고개를 털어내듯 돌렸다.
그 때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뛰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형사님!”
헉헉대며 들이닥친 것은 필웅이었다.
“검사님? 아니,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형사님! 강화도, 강화도 쪽!”
“예?”
장경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강화도 마니산 인근 계곡에 2층짜리 펜션이 하나 있을 겁니다. 그 근처를 뒤져봐야 해요!”
장경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스스로가 웃겨 보이리라는 걸 알았지만 다시 한 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예?”
“아니, 왜 그! 아동학대 사건 있잖아요!”
“예? 아, 예. 그 얼마 전에 찾아가 상담 드렸던.”
“그 사건! 지금 애 어딨죠?”
“아, 실종신고가 들어왔었습니다. 아직 따로 말씀은 못 드렸는데.”
“이런 빌어먹을!”
필웅이 갑자기 발을 구르며 욕설을 내뱉었다.
장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제 때 말씀 못 드린 건 죄송한데 뭘 그렇게까지…….”
필웅은 숨을 고르고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닙니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당장 제가 말한 펜션 근처 CCTV 전부 다 수배하고 그 펜션 주인 찾아가세요! 아니, 저랑 같이 갑시다!”
“검사님,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주셔야…….”
“설명할 시간이 없다니까요! 가면서 얘기할 테니까 빨리 나와요!”
필웅이 말하며 장경에게 다가왔다.
장경이 어어 하며 그를 만류하기도 전에 장경은 이미 그의 옷깃을 잡아채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고, 검사님, 갈게요! 가요!”
“빨리 나와요!”
필웅은 뭐가 급한지 장경을 일으켜 세우고는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원래도 좀 특이한 검사님이긴 한데.’
장경은 속으로 생각하며 차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 * *
강화도로 가는 차 안.
필웅은 거의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일단 장경을 끄집어내 강화도로 달려가고는 있었지만 머리속에서는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장경이 다녀간 뒤, 필웅은 왠지 사건의 내용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도 혹시 2020년에 봤던 사건인가?’
필웅은 잠시 기존에 조사하던 삼영그룹 사건을 내려 놓고, 장경이 가져다 준 자료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가현동 삼영아파트, 아동학대.’
무엇인가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호진?’
필웅의 눈에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과 부모의 사진이 들어왔다.
그 때 필웅에게는 이제 익숙한, 크리미널 아카이브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필웅이 알아낸 크리미널 아카이브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필웅이 원래 미래에서 알고 있었던 유명한 사건이 아니라면 크리미널 아카이브는 나타나지 않았다. 크리미널 아카이브는 직접 인물을 봐도 발동하지만, 간혹 사진 등으로도 발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사진만으로 발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어떻게 해야 사진으로도 발동이 되는지는 필웅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진우현 사건 때는 부득이 본인을 만날 수박에 없었다.
‘호진이 사건?’
필웅은 정신없이 크리미널 아카이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때, 강화도에 있는 펜션에서 사건의 전환점이 될 단서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까지 찾아낸 필웅은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뛰쳐나가 장경의 사무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 ‘단서’가 무엇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한 시가 급하다는 느낌에 필웅은 조바심을 냈다.
생각에 빠져 있는 필웅을 장경이 돌아보며 슬쩍 말을 걸었다.
“저, 검사님. 근데 이제 거기에 왜 가는지 알려 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필웅은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기에 약간 당황하며 대답했다.
“예? 음. 거기 사건의 단서가 있어요.”
장경의 한 쪽 눈썹이 치켜올려졌다.
“호진이 사건의 단서 말입니까?”
“예, 호진이 사건! 그 사건의 단서가 거기 있어요.”
“그런데.”
장경이 잠시 말을 끊고 조심스럽게 필웅을 돌아보았다.
“검사님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필웅은 난감했다.
‘사실 내 영혼은 미래에서 왔고 필웅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호진이 사건은 미래에서 온 자신이 원래 알고 있는 사건이었고, 그래서 중요한 단서가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라는 내용을 어떻게 말이 되게 설명하지?’
필웅은 한참 고민에 빠져 있다가, 기다림에 지친 장경이 다시 되묻기 전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저도 제 정보원이 있습니다.”
“정보원이요?”
“예. 하지만 개인적인 정보원이라 밝힐 수가 없습니다.”
필웅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사실, 변명이라고 부르기에도 창피한 수준의 대답이었다.
장경은 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캐물어 봐야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을 알고 묵묵히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렇게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는지 모르는 채 두 남자는 도로를 달렸다.
* * *
장경과 필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강화도에 도착했다.
장경은 필웅에게 인근 경찰서를 들러야겠다고 말했다.
“출발하기 전에 CCTV 수배해 달라고 요청해 뒀으니 뭐가 나왔나 한 번 보고 가시죠.”
필웅과 장경은 경찰서에 들어섰다.
미리 연락을 해 둔 담당형사가 나타났다.
“아, 저 박장경 형사라고 합니다. 이 분은 조필웅 검사님.”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혹시 마니펜션 근처에 CCTV들 확보된 게 있을까요?”
“일단 저희가 확보 가능한 건 다 확보해 뒀는데, 워낙 시간이 촉박해서 추릴 시간은 없더라구요.”
“괜찮습니다. 저희가 보면서 찾으면 되니까요.”
형사는 필웅과 장경을 CCTV를 재생할 수 있는 자료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필웅과 장경은 의자에 앉아 CCTV를 하나씩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워낙에 양이 많다 보니 필웅과 장경은 눈도 점점 침침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장경은 처져가는 눈을 번쩍 뜨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한 번 더 볼까요?”
“좋습니다.”
장경과 필웅은 같은 비디오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더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였다.
“어, 잠깐.”
장경이 졸린 눈을 부비며 재생을 멈추었다.
뿌연 CCTV 화면 속에 누군가가 찍혀 있었다.
“누굽니까?”
“저거 호진이 엄마 아닙니까? 옆에는 아빠 같고.”
장경은 비디오를 앞뒤로 되감으며 다시 한 번 실루엣을 확인했다.
시간대가 밤인듯 어두워서 형체가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선영의 나이대로 보이는 여자가 하나 보였다.
그 옆에는 한 남자가 아이를 등에 업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호진이 정도의 체격이었다.
“이거 맞는 것 같은데.”
“어딥니까, 여기가?”
필웅이 다급하게 물었다.
“가만있어 보자. 이쪽 지리는 제가 잘 몰라서 담당형사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장경도 급하게 자료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필웅의 눈에 모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고작 일주일 조금 더 전의 생생한 모습이었다.
‘강화도에 놀러왔으면서, 왜 집에 있다가 사라졌다고 거짓말을 한 거지?’
필웅은 왠지 모르게 스멀스멀 찾아드는 불안감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 * *
필웅과 장경은 마니펜션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펜션은 마니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아직 제대로 주변도로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 산세가 험해서 놀러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든디.”
장경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마니펜션은 마니산 근처에 있는 유일한 2층 펜션이었기에 비교적 쉽게 특정할 수 있었다.
필웅과 장경은 펜션에 도착해 차를 대고 내렸다.
마당에 나와 있던 주인이 다가왔다.
“며칠 있으실 겁니까? 잉? 남자가 둘이네?”
“저희 묵으러 온 거 아니구요. 아까 전화 드린 박장경 형삽니다.”
“아아~ 그 서울에서 오셨다던 형사 분?”
“예. 지난 6월 13일 정도에 여기 묵은 가족 있었죠?”
“그 애 딸린?”
“예, 맞습니다.”
필웅이 눈을 빛내며 한 발 다가섰다.
“혹시 그 가족 관련해서 기억나는 거 없으십니까?”
“밤에 와서 거의 잠만 자고 가서 사실 거의 얼굴도 못 봤어요.”
필웅과 장경이 본 CCTV에 찍힌 것은 산장 근처 마니산으로 들어가는 산길 입구 쪽이었다.
장경은 근처를 둘러보며 물었다.
장경은 CCTV 화면을 출력해 온 사진자료를 주인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찍힌 여자분 기억 나십니까?”
CCTV의 화면도 흐릿하고 저녁 즈음에 찍힌 것이라 어두워서 주인은 한참이나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글쎄요, 그 날 오신 손님인 것 같기도 하고.”
장경은 조금 실망하며 사진을 다시 집어 넣었다.
“사진에 찍힌 장소 아시죠? 여기서 멉니까?”
“아마 마니산 산길 입구 쪽인 것 같은데, 펜션 뒷문으로 나가셔서 쭉 올라가시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나올 겁니다.”
장경은 필웅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필웅과 함께 펜션 뒷문으로 나왔다.
“가볼 생각입니까?”
“가 봐야죠.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필웅도 수긍하고는 앞장선 장경의 뒤를 따랐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져 가고 있었다.
필웅과 장경은 CCTV에 찍힌 장소를 지나쳐 그대로 길을 따라 들어갔다.
“길이 외길이고, 산세가 험하니까 길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슴다.”
장경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며 숨이 찬 채로 말했다.
“산에는 왜 올라갔을까요?”
“글쎄요. 놀러온 거 아닐까요?”
“그런데.”
필웅이 잠시 멈춰서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휴. CCTV를 보면 장선영이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럼 애가 잠들었다는 건데, 잠든 애를 굳이 끌고 올라온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놀러 나왔다가 애가 지쳐 잠든 걸 안고 들어가는 중이었다거나.”
“아니에요. 아까 오면서 보니 그 CCTV상 진행방향이면 펜션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산으로 더 들어간 거에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기에, 장경으로서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CCTV 속 장선영은 호진을 두 팔로 안아들고 있었다. 게다가 펜션으로 돌아가는 방향도 아니었다.
“잠깐, 혹시?”
장경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필웅도 순간 멈춰섰다.
둘 모두 같은 생각에 이른 듯했다.
“잠든 게, 아닐 수도?”
장경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장경은 닥치는 대로 숲길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만일 잠든 게 아니라면…….”
장경과 필웅은 미친 듯 숲길을 헤치며 쉴새없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애까지 들고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만약, 만약 호진이가 자고 있는 게 아니고, 장선영은 그런 호진이를 어떻게 하려고 했다면, 분명 이 외길 어딘가에 단서가 있다.’
필웅은 속으로 호진이가 어떻게 되었다를 생각하는 것조차 꺼려졌다.
그만큼 신경이 잔뜩 곤두선 상태였다.
그 때였다.
한창 풀숲을 헤치던 장경이 굳은 얼굴로 필웅을 돌아보고는 이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필웅이 숨을 죽이며 다가갔다.
장경이 풀숲 뒤에 가려진 공터 한쪽을 가리켰다.
필웅이 고개를 돌렸다.
공터 한쪽의 흙이, 누가 봐도 새로 덮은 것처럼 주위의 것과 색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