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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개과천선-38화 (38/151)

38화 주제넘게 까불면 다 찢어버릴거야

“저 가볼게요~ 장경 씨, 술 작작 드시고!”

“예에, 조심히 들어가십쇼!”

‘얼씨구.’

장경은 절친이라도 배웅하듯 얼큰하게 취해서 맥주 캔을 들어올리며 인사했다.

그 광경을 보며 필웅은 장경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필웅, 배웅해줘.”

“내가 왜.”

필웅이 툴툴댔다. 강유라는 필웅의 귀를 번개같이 잡아챘다.

“시끄러워. 나를 이 달동네까지 행차하게 했으면 배웅은 해 줘야 될 거 아냐.”

“아야야! 이거 안놔?”

“갑자기 왜 또 반말이야?”

“너도 하잖아?”

필웅이 반항적으로 외쳤다. 그리고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유치해 보이는지 깨닫고는 얼굴이 벌게졌다.

강유라가 재밌다는 듯 킬킬대며 필웅의 귀를 잡아끌었다.

“뭐, 좋아. 그건 네 맘대로 하고. 일단 따라나와.”

필웅은 강유라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옆에 선 보디가드가 필웅의 손을 잡아챘다.

필웅의 손을 잡은 보디가드는 무겁게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필웅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장경과 다혜는 취해서 헛소리를 늘어 놓는 중이었고 시연은 또 잠들어 있었다.

강유라는 필웅을 잡아끌고는 필웅의 집을 나왔다.

“아, 어디까지 끌고 가려는 거야!”

필웅이 마침내 강유라의 손을 쳐냈다.

보디가드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지만, 강유라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됐어. 조필웅, 잘 들어.”

강유라가 가까이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봤지?

네가 사는 집, 네 동료들, 동료들의 직장. 전부 다 알아낼 수 있고, 전부 다 기억해 뒀어.

저번엔 귀여워서 봐줬지만 다음은 없어. 다시 한 번 주제넘게 까불면 전부 다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납치같이 얌전한 방식은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야.

내가 진심으로 나설 때가 되면 그냥 사람이 며칠 사라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아. 난 확실한 걸 좋아하거든.”

강유라는 음산한 목소리로 필웅의 귀에 대고 말했다.

필웅은 한 발 물러서며 적개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강유라는 그의 눈빛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대사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아, 혹시나 오해할까봐 말해 두는데,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아니야.”

강유라는 서늘한 표정으로 섬찟한 말들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참, 아이스박스는 너 가져.”

강유라는 필웅이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손을 흔들며 보디가드가 어느새 몰고 나타난 외제차의 뒷좌석으로 사라졌다.

조필웅은 사라져가는 차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 * *

강유라가 필웅의 집에 나타나고 며칠 후.

장경은 검찰청 근처의 국밥집에서 필웅과 밥을 먹고 있었다.

그간 필웅은 강준수의 사건 때문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장경은 K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필웅이 물었다.

“뭔가 새로 알아낸 게 있습니까?”

장경은 고추에 쌈장을 찍어 맛있게 한 입 아삭 베어물고는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더 나오는 게 없슴다.

근처 도로 CCTV 확인하면서 그 놈이 탔을 것 같은 차는 몇 대 추려내긴 했습니다. 외제차라서 소유자가 얼마 없긴 한데, 그래도 몇백 명은 되는 것 같네요.”

“소유자 중에서 인상착의와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뭐 중년 남성이라는 걸로는 특정이 안 되고, 구별할 만한 게 손에 있다는 흰 점 정돈데 회사 명의 차량도 있고 진짜 회장님 차 같은 건 아예 소유자랑 실제 타는 사람이랑 다른 경우도 꽤 많아서요.

손에 흰 점이 있는 남자가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 남자가 차량의 실제 소유자인지는 알 수 없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차량의 소유자지 실제로 차량을 사용 중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니까요.

그 왜, 재벌집 회장님들 같은 사람들은 차량을 자기 명의로 해놓지 않고 회사 명의로 해 두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K라는 놈도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놈이니 차를 지 명의로 안 해놨을 수도 있는 거죠.”

필웅은 그나마 조금 기대했던 단서가 다시 한 번 벽에 막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이거 잡을 수나 있을까요.”

“뭐, 다른 루트로 좀 더 알아 봐야죠. 이모! 여기 밥 한그릇 더요!”

장경은 기세 좋게 외치고는 남은 밥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필웅은 언제든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장경이 조금 부러워졌다.

‘이거 괜한 말 해서 다시 2020년으로 못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필웅은 최근 은전차사와 한 거래를 은근히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은전차사에게 석고대죄하고 그냥 자신을 돌려보내 달라고 비는 방법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필웅은 은전차사가 얼마나 얄밉게 굴지를 상상하며 자신을 다잡았다.

게다가 여기까지 와서 K를 잡아 재판정 앞에 세우지 못하면 검사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이 자꾸 그를 괴롭혔다.

‘다른 길은 없다. K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어.’

필웅의 안에 있는 영전은, 생각을 마치고 나니 왠지 자신이 점점 어렸을 적 되고 싶었던 진짜 검사가 되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필웅은 넘어가지 않는 국밥을 한 숟가락 퍼서 넘겼다.

* * *

가현동의 삼영아파트 단지.

다혜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다혜는 제보를 받고 막 단지에 도착한 참이었다.

제보자는 익명을 요구한 삼영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였다.

전화를 통해 제보자가 들려 준 이야기는 이랬다.

제보자의 옆집에 4살 정도 되는 아이와 함께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아이가 귀여워서 가끔 마주치면 제보자가 과자도 주고는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나오던 아이 엄마를 마주친 제보자는 조금 놀랐다.

아이가 입을 벌리자 언뜻 입 안을 보게 됐는데, 분명 원래 거의 다 났던 이가 많이 빠져 있더라는 것이다.

제보자는 놀라 아이 엄마에게 물었다.

“저, 애기 이가 많이 빠졌네요?”

아이 엄마가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요새 한창 이 빠질 때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넘어져서 이가 좀 깨졌거든요.”

제보자는 처음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수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보자는 어느 날 아이가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어린 아이가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이 보기 가여워서 그네도 밀어주고 미끄럼틀도 태워 주다가 우연히 아이의 상의가 말려 올라간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옷을 바로잡아 주려다가 그녀가 보게 된 아이의 등짝은 무수한 상처로 가득했다.

아주머니는 놀라 아이를 아이 엄마에게 데려다 주면서 물었다.

“애가 상처가 왜이리 많아요?”

아이 엄마는 잠시 시선을 회피하다가 이내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애가 모기에 물릴 때 너무 심하게 긁어서요. 저도 걱정이에요.”

아이 엄마는 그러면서 모기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으로 뭐가 좋냐고까지 물어봤다.

제보자는 일단은 몇 가지 약을 추천해 주기는 했지만,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고 한다.

긴 통화를 끝낸 제보자는 다혜에게 말했다.

“원래는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이웃인데 괜히 넘겨짚었다가 얼굴 붉힐 일 만들 것 같아서요.”

다혜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좀더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문제의 제보자와 아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오게 된 것이었다.

‘자, 그런데 어쩐다~’

다혜는 내심 난감했다.

평소에는 4차원이라거나 엉뚱하다는 소리를 듣고는 하는 다혜였지만, 사건만 보면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 달려 드는 다혜를 보며 선배 기자들은 혀를 내두르고는 했다.

“쟤는 아마 뇌세포를 취재욕에다가 다 써버려서 딴 데 쓸 데가 없는 걸거야.”

한 선배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혜에게 그런 평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혜는 자신이 원하는 사건을 취재할 수만 있다면 남이 뭐라든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물론 그녀의 그런 열정이 가끔 주위 사람들 또는 스스로를 곤란하게 할 때도 있기는 했다.

‘취재는 좋지만~ 나는 형사가 아닌데. 어디서부터 정보를 모아야 할까~’

다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가 살고 있다고 들은 아파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놀이터에 가끔 나와서 논다고 했으니 한번 놀이터에 좀 있어 볼까~’

제보자는 아이의 인상착의를 가능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가 많이 빠져 있고,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귀가 크고 얼굴이 동글동글하다고 했다.

‘그 정도면 알아볼 수 있으려나?’

다혜는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마땅히 다른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놀이터에 앉아서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놀이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멍하니 구경하던 다혜는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새 주위는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뛰어놀던 아이들은 모두 집에 들어가 버렸다.

‘에에~ 역시 이런 식으로는 안 되나~’

다혜는 살짝 실망하면서 다른 날에 와보거나 좀더 다른 정보를 모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혜가 가방을 추스르면서 벤치에서 막 일어난 그때였다.

한 아이가 쪼르르 놀이터로 달려들어왔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한 눈에 보기에도 유난히 귀가 크고 얼굴이 동그란 아이였다.

‘저 애구나!’

다혜는 마음 속으로 직감했다.

아이는 그네에 올라타려고 했지만, 그네가 조금 높아서 자꾸 엉덩이를 걸치지 못하고 있었다.

다혜는 재빨리 뛰어나가 아이를 그네에 앉혀 주었다.

“감샤합니다.”

이 새는 발음으로 아이가 꾸벅 인사를 했다.

다혜는 방긋 웃고는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내밀었다.

“사탕 먹을래?”

아이는 반색하며 얼른 사탕을 받아들었다.

다혜는 아이의 뒤에 서서 천천히 그네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신난 표정으로 사탕을 빨며 더 높이 올라가려고 발을 굴렀다.

한동안 말없이 흐뭇한 표정으로 그네만 밀어주던 다혜가 입을 열었다.

“애기야, 이름이 뭐야?”

“한호진이요.”

“호진이? 멋있는 이름이네~ 호진이는 어디 살아?”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손을 들어 한 동을 가리켰다.

제보자가 살고 있다던 그 동이었다.

“그렇구나. 엄마 아빠는 어디가셨어?”

“일하러요.”

“일? 그럼 호진이는 만날 이렇게 혼자 있어?”

“네.”

호진이는 사탕을 깨물어 먹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근데 혼자 있어도 좋아요.”

“왜?”

“혼자 있으면 엄마가 화 안내거든요.”

다혜는 긴장하며 거의 반사적으로 수첩을 꺼내들었다.

“엄마가? 엄마가 왜 화를 내실까?”

호진이가 그네를 멈추고는 빤히 다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호진이가 말 안들어서 그래요. 엄마는 호진이 보면 만날 화가 난대요.”

다혜는 말똥말똥 큰 눈을 빛내며 말하는 호진을 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진아, 엄마가 화나면 어떻게 하셔?”

호진이는 아무 말 없이 그네에서 내려와 손톱을 세우고는 이리저리 할퀴는 흉내를 냈다.

“할퀴어?”

호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진아, 잠깐만 등 좀 봐도 될까?”

호진이가 별 말 없이 뒤로 돌아섰다.

다혜는 손을 덜덜 떨며 호진이의 상의를 살짝 들추었다.

한 눈에 봐도 무언가로 할퀸 듯한 자국들이 가득했다.

많은 상처들은 곪아서 피고름까지 흐르고 있었다.

어떤 상처에는 대충 반창고가 붙여져 있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너무 오래되어서 붙이나 마나인 듯했다.

다혜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것 같은 입을 막았다.

그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호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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