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로 개과천선-30화 (30/151)

30화 검찰 측도 신문 끝났습니다

진우현의 공판 기일.

시연과 필웅은 긴장 속에 재판정에 들어섰다.

‘아직 진우현은 김진범이 잡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 이 사실을 잘 이용해야 해.’

필웅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진우현과 윤진이 재판정에 들어왔다.

진우현은 확실히 구속적부심이 열린 날보다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진우현은 필웅과 시연을 보고 씩 웃으며 손인사까지 날렸다.

필웅은 그를 무시하고 그의 옆에 앉는 윤진을 바라보았다.

윤진 역시 필웅에게 눈인사를 했지만, 필웅은 그저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검찰 측, 공소사실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최창칠 판사는 아니었다.

시연은 내심 안심하면서 진우현의 사기 행각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증거로 피고인, 김진범 외 성명불상자의 녹취록과 피해자들의 진술서를 제출합니다.”

재판장은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이 제출한 서류들을 잠시 이리저리 살펴 보다가 물었다.

“녹취록의 경우 지난 구속적부심 당시에도 그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됐던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도 피고인 외에는 이 녹취록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검찰 측은 녹취록의 신빙성을 입증할 추가 자료를 제출할 수 있습니까?”

시연은 뒤에 앉은 필웅을 잠시 돌아보았다.

필웅도 그녀를 마주 보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추가로 제출할 자료는 없습니다.”

재판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신빙성이 훼손된 증거만을 그대로 갖고 왔다니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요? 그러면 이 녹취록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추가로 제출할 ‘자료’는 없습니다만.”

시연이 자신 있게 말했다.

“추가로 김진범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재판장이 흥미롭다는 듯 시연에게 물었다.

“이 녹취록의 대화자인 그 김진범을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좋습니다. 증인은 어디 있죠?”

“여기 있습니다.”

김진범이 어느새 재판정으로 걸어들어와 증인석에 섰다.

“증인 선서하세요.”

“저는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필웅은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진우현의 표정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재판장은 피고인 측에 먼저 증인을 신문하라고 지시했다.

앞으로 나서는 윤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예측하지 못한 증인의 등장에 상당히 긴장한 모양이었다.

윤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증인은 피고인과 무슨 관계입니까?”

“동업자입니다.”

“증인은 그 동안 어디에 있었지요?”

“잠시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김진범은 뻔뻔하게도 표정조차 바뀌지 않고 술술 대답했다.

윤진은 증인석에 좀더 다가가며 물었다.

“증인. 피고인과 대화를 기록한 녹취록에 의하면 증인은 실제로 사업을 주도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까?”

“우현이와 K씨가 주도적으로 하기는 했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피고인의 사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겠군요?”

필웅이 혀를 찼다.

윤진의 공격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윤진이 김진범은 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몰아가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렇게 해야 김진범이 사실은 진우현이 사기를 쳤다고 주장하더라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말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발 넘어가지 마라, 제발!’

필웅은 두 손을 꽉 부여잡고 입술을 깨물며 김진범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김진범은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필웅과 눈이 마주쳤다.

필웅은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함부로 사실을 인정하지 말라는 제스처였다.

“우현이와 K씨가 주도적으로 하기는 했지만, 저도 알 건 다 압니다.”

“그래요? 뭘 알고 있죠?”

“사실 우현이나 K씨가 투자자들한테 팔아 왔던 주식들은 전부 거품이었습니다. 저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회사들이 부도가 나기 시작한 후였죠.”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길게 탄식을 올렸다.

그 중에는 주 계장도 있었다.

윤진은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평정을 회복하고 다시 물었다.

“증인.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주장하는 내용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윤진은 그 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여유를 되찾은 김진범은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함정을 잘 피해 다녔다.

필웅은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윤진은 결국 신문을 종료하고 다시 변호인석으로 돌아갔다. 이제, 시연이 나섰다.

“증인.”

“예.”

“증인의 이야기는 결국 피고인이 거품임을 알고도 그 주식들을 피해자들한테 팔아치웠다는 말이지요?”

“맞습니다.”

“그 녹취록의 대화가 벌어진 정황을 좀 더 설명해 주세요.”

“그게, 아마 올림픽공원 근처의 커피숍인가 식당이었을 겁니다. 본격적으로 피해자들을 끌어들이기 전에 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인해 보자고 K가 제안했었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저희들은 모였고, 그런 대화를 나눈 겁니다.

녹취록의 대화가 끝난 다음에도 저를 뺀 둘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로 이런 수법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식한지를 비웃는 내용이었습니다.”

쾅!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사람들이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다름아닌 진우현이 자신이 앉은 자리의 책상을 손으로 내려친 소리였다.

김진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투자가 실패할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피해자들한테 주식을 팔았다는 얘기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증인.”

시연이 잠시 김진범의 앞을 서성이다가 말했다.

“증인은 피고인이 사기를 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었죠?”

김진범이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이 시연을 쳐다보았다.

시연은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그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범은 대답했다.

“예, 몰랐죠. 아까도 말씀 드렸었는데요.”

“그러면 대화를 녹취한 이유는 뭔가요?”

“예?”

“증인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대화를 녹음한 것 아닙니까?”

김진범은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호소하는 눈빛으로 재판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재판장은 계속하라는 듯 별 말 없이 손을 들어올릴 뿐이었다.

“아니,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나중에 계획을 더듬어 보려고…….”

“계획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피고인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녹음을 한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김진범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신에게 왜 이러냐고 묻는 눈빛을 끊임없이 시연에게 보냈다.

그 눈빛에도 시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 생각에는, 증인도 피고인과 K의 계획이 범죄이고 뭔가 수상하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 ‘사업계획’이 범죄가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다른 공범들을 협박하거나 다른 공범들로부터 제거당하지 않기 위해서 미리 보험을 들어 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화를 녹음한 이유를 다시 설명해 주세요. 고작 30초밖에 안 되는 대화를 까먹을까봐 그랬다는 아무도 안 믿을 이유 말구요.”

필웅은 미소를 지었다.

공판검사로서 시연의 능력은 확실히 재판에서 돋보였다.

물론 그도 가끔 직접 공판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시연이 재판정에서 피고인을 쥐락펴락하는 기술은 그의 능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유난히 공감능력이 뛰어난 시연은 피고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하며 허점을 잡아나는 데에도 능했다.

‘저런 애가 왜 커서 정시연 파트너 같은 사람이 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필웅은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다시 재판에 집중했다.

진우현에게 불리한 증언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시연과 필웅이 김진범을 회유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연과 필웅은 엄연히 공범으로 범죄에 가담한 김진범을 그냥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김진범이 이미 필요한 사실들을 전부 증언한 후에는 김진범 또한 공범임을 밝히기로 계획한 것이었다.

물론, 김진범은 이런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당신!”

김진범의 얼굴이 비로소 시뻘개지면서 시연을 잡으려는 듯 손을 앞으로 뻗었다.

시연은 그 손을 부드럽게 피한 뒤 재판장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검찰 측도 신문 끝났습니다.”

* * *

장경은 싱글벙글하면서 재판정에서 시연의 마지막 모습을 흉내내고 있었다.

“이렇게 착! 돌아서면서, ‘검찰 측도 신문 끝났습니다’. 캬아~ 제가 소름이 다 돋았습니다, 검사님!”

시연이 부끄럽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에에이, 뭘 그런 걸로 소름까지 돋는다고 그러세요.”

“아니, 진짜라니까요! 그러고 나서 진우현이랑 김진범이 서로 마주보면서 얼빠진 표정 짓는 거, 보셨습니까?

제가 법정이 아니었으면 진짜 박장대소를 했을 겁니다.”

셋은 재판이 끝나고 필웅의 사무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알고 보니 장경도 재판정 안에 들어와 그 날의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모양이었다.

장경은 흥분해서는 그 날의 재판을 다시 한 번 중계라도 할 듯이 인상깊은 장면들을 하나씩 읊기 시작했다.

시연과 필웅은 그의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때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특히 재판이 끝날 때쯤 진우현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재연했을 때는 필웅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하기도 했다.

필웅은 간신히 커피를 입 안에 담아두고 휴지로 입을 훔치고는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세요?”

“아, 말씀 드릴 게 있어서요.”

“뭔데요?”

“그게, 사실은 다혜 씨랑 저도 그 셋이 대화한 장소를 이미 알아냈었습니다.”

필웅이 놀라며 물었다.

“그랬어요? 아니, 근데 왜 저희한테는 얘기를 안 했어요?”

“장소만 알아낸 거지 뭔가 새로운 게 밝혀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뭘 좀 더 알아보고 새로운 게 있으면 알려 드리려고 했죠.”

“그렇다면 지금은 뭔가 알아내셨군요.”

시연이 다가와 앉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장경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날, 진우현과 김진범 말고 또 한 명이 더 있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잠깐, 설마!?”

시연과 필웅이 거의 펄쩍 뛸 듯이 놀라 외쳤다.

장경은 다시 한 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연과 필웅은 그의 다음 말만 기다리며 장경의 입만 바라보았다.

장경이 이내 입을 천천히 뗐다.

“K라는 놈, 그 날 대화가 이뤄진 커피숍에서 K를 목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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