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로 개과천선-13화 (13/151)

13화 이 부장의 흑역사잖아

시연은 새로운 사건을 배당받게 되었다. 과거 종결된 사건을 새로이 재판하는 재심 사건이었다.

재심 사건은 흔한 사건은 아니었기에, 시연은 흥미를 느끼며 기록을 차례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연은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에 들 정도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굉장한 불편함을 느꼈다. 필웅은 때로 결벽증이 너무 심하다며 투덜댔지만, 시연으로서는 도무지 어쩔 수가 없었다.

장장 몇 시간 동안 기록들을 시간 순서와 종류 별로 분류하고 정리한 시연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제서야 기록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강도살인 사건이네.’

40대의 택시기사를 살해한 15세 소년 심철우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형을 다 살고 나온 살인범은 출소 후에도 범죄 경력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재심을 청구했다.

10년 전 자신이 강압수사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다는 취지였다.

처음 저를 체포한 경찰관은 경찰서가 아니라 인근 모텔로 저를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전화번호부를 한 권 던져 주더니 거기서 진범을 지목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진범의 인적사항을 모르기 때문에 지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경찰들이 경찰봉으로 발바닥을 때리고 몇 시간 동안 엎드려뻗쳐를 시키면서 범행을 자백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변호사도 범행을 인정해야 형이 가벼워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맹세코 택시기사 아저씨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재심 청구한 내용에 따르면 당초 살인범으로 복역한 심철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었다.

"으음."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시연은 기록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만약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무고한 사람을 체포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기록에서 사건을 담당한 검사의 이름을 발견한 시연은 흠칫 놀랐다.

담당검사의 이름은 ‘이규필’이었다. 신상 정보를 보니 그녀가 아는 바로 그 이규필 부장이었다.

‘뭐지?’

시연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사건의 진행 경과를 다시 읽어내려갔다.

경찰도 경찰이지만, 검찰의 대응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경찰이 다른 진범을 지목했지만, 검찰은 증거가 없다며 기소를 하지 않았다.

경찰이 증거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긴급체포 시한이 지나 진범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고 대신 심철우를 잡아들인 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검찰의 대응은 모두 이규필 부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

‘부장님께 사건 경위라도 좀 여쭤봐야 되나?

재심 사건이면 결국 대부분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잘못 진행했거나 결론이 잘못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잖아? 괜히 건드리면 부장님의 치부를 건드리는 꼴이 될 수 있는데.’

시연은 괜히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왠지 의도치 않게 이 부장의 흑역사를 들여다보게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끝까지 잘못 수사한 적 없다고 빡빡 우길 수도 없고.’

시연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역시 이부장을 만나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쨌든 부장님을 만나는 봐야겠어. 방어를 하든 공격을 하든 부장님한테 들어 둬야 하는 조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시연은 이규필 부장을 만나기 위해 방을 나섰다.

* * *

남학생 둘, 여학생 하나.

혜진을 알고 있는 듯한 학생들을 마주보면서 장경은 갑자기 지난 날 혜진의 어머니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평소에, 혜진인 어떻던가요?”

일기장을 받아들며 장경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혜진의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내색도 안 하던 애였어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잘…….”

“따님과 얘기를 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혜진의 어머니는 힘없이 장경을 올려다보았다.

“집에 와서는 도통 얘기도 안 했어요. 제가 뭔가를 물어보려고 하면 그냥 신경질만 내서…….”

“어머니.”

“우리 혜진이가 그래도 맘이 착한 아이라 아이들과는 잘 지냈을 거예요. 남한테 나쁜 짓을 하는 아이는 아니라서…….”

장경은 순간 혜진과 혜진이 어머니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혜진이의 죽음을 저렇게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학생에게 장경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장경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 큰 남학생이 능글능글하게 대답했다.

“알죠. 저희 혜진이랑 엄청 친했어요.”

“너가 말하는 ‘친하다’라는 게 지금 저 친구한테 대하듯이 한다는 거냐?”

“뭐, 장난 좀 많이 쳤죠.”

말하며 남학생이 히죽히죽 웃었다. 박장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꽉 쥔 나머지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너희들, 혜진이 죽은 건 아냐?”

남학생과 패거리들이 짐짓 놀란척 하며 장경을 바라보았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자살을 했대요? 참나”

“안됐다~”

의도적인 비아냥이었다.

장경은 직감적으로 이들이 혜진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아이들임을 깨달았다.

“너희들, 몇 학년 몇 반이여. 이름 불러.”

“아니, 왜요?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인데요?”

장경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형사다. 왜?”

“형사? 영장 갖고 오셨어요? 영장 없으면 조사도 못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형사가 뭐 물어보면 변호사 없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던데.”

학생들이 입으로는 킬킬거리면서도 장경을 쏘아보며 말했다. 햄버거를 먹던 남학생은 여전히 어깻죽지를 잡힌 채 고개를 숙이고 떨고 있었다.

“김태현, 박우식, 이영혜.”

학생들이 깜짝 놀라 장경을 바라보았다.

“뭘 놀라? 양아치짓을 하려면 명찰들을 떼고 해야지. 어디서 본 건 많은가 본데 자기 샤쓰 앞섶은 안 보이는가 보구만.”

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뒤늦게 셔츠 앞쪽의 명찰들을 손으로 가렸다.

“연락처는 학교에 물어볼 거니까 집에 가서들 딱 기다리고 있어라. 그리고 애는 풀어주고. 계속 잡고 있으면 특수폭행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다 집어넣어 버릴랑게.”

박장경은 위협적으로 말하고는 돌아섰다.

움츠러든 학생의 어깻죽지를 잡고 있던 박우식과 이영혜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학생을 어깨를 잡은 손을 풀고 학생을 밀어냈다.

“아저씨, 우리 진짜 애들이랑 장난만 친 건데요? 이걸로 뭐 어쩌실 건데요?”

그 중에서 체구가 큰 학생인 김태현의 도발에 장경은 고개를 돌렸다.

“글쎄? 나도 장난이나 쳐 볼까?”

김태현은 적대감 어린 눈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장경은 능글맞게 말했다.

“뭘 그렇게 노려봐. 니들도 장난 좋아하잖아? 나도 한 장난하니까 같이 재밌게 놀아보자고.”

장경은 끌끌 혀를 차며 손을 흔들고는 유유히 교문을 나섰다.

김태현, 박우식, 이영혜만이 자리에 남아, 계속해서 장경이 사라져 간 교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이규필 부장은 심각하게 시연이 갖고 온 서류들을 들여다보았다.

과거 그가 수사했던 택시강도 살인사건의 재심 관련 서류들이었다.

시연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이 부장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시연이 갖고 온 서류들만 이리저리 들춰볼 뿐이었다.

한참을 서류들만 살펴보던 이 부장은 한숨을 쉬며 서류들을 내려놓았다.

시연이 물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응?”

이 부장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시연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처리하냐니?”

“그게, 저. 일단 부장님께서 처리하신 사건이니까요. 재심 결과에 따라 과거 수사 결과가 잘못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고…….”

이 부장은 껄껄 웃었다.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예?”

“자네, 설마 정말 이 피고인이 이야기하는 걸 그대로 믿는 건 아니지?”

시연은 약간 혼란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물론 100% 믿을 수는 없다는 거 압니다만…….”

“범죄자 새끼들이 언제 자기가 일 벌여놓고 자기가 했다고 자백하는 거 봤나?

이 놈도 똑같은 거야. 그냥 단지 잡혀갔을 당시에 했어야 할 변명을 멍청하니까 지금에서야 뒤늦게 하는 거지.”

시연이 이 부장의 말을 들어 보니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범죄자들이 자신이 했다고 자백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이 재심사건의 청구인은 사건 당시 중학생이었다.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조리 있게 항변을 할 만한 나이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억울함이 사실이라면?’

시연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커피를 한 입 마신 이 부장에게 물었다.

“저, 부장님. 그런데요.”

“응?”

“만에 하나, 정말 피고인이 무고하다면 어떡하죠?”

이 부장의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시연은 순간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확실히 순간 이 부장의 주름진 눈가를 스친 눈빛은 평소의 온화하고 호방하던 이 부장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법정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최 판사의 차가운 눈빛과 더 비슷했다.

“흠, 그러니까 정검은, 내가 당시 수사를 잘못했을 수도 있다 이건가?”

시연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다만, 정말 경찰 쪽에서 압박을 해서 거짓 자백을 받아 냈더라면 부장님께서도 혼동을 일으켰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 부장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 놓고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감았다.

이내 이 부장이 입을 열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이 부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범죄자들 말 너무 믿지 말라고. 범죄자들 잡아넣는 사람이 범죄자들 변명 하나하나에 그렇게 휘둘리면 어떡하나?”

“주의하겠습니다.”

이 부장은 커피를 한 입 더 마시고는 입맛을 쩍쩍 다셨다. 아직도 불쾌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설령 내가 뭔가를 놓쳤다고 하더라도 그건 자네 선에서 해결할 수 있겠지.”

시연은 아무 생각 없이 그의 말을 듣다가 놀라 되물었다.

“예?”

이 부장이 한 입에 커피를 털어놓고는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자네를 믿는데, 자네가 나를 실망시킬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이 말이야.”

이 부장은 일어나며 시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시연은 잠시 그 자리에 꿈쩍 않고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 * *

“그래서요?”

필웅은 물끄러미 책상 너머의 장경을 바라보았다.

“그래서요,라뇨? 딱 봐도 자살방조 아닙니까?”

“형사님. 자살방조가 무슨 죄인줄 알고 이러시는 겁니까?”

“자살에 도움을 줬으면 자살방조죠.”

“그래서 애들이 김혜진인가 하는 애를 괴롭혔다고 칩시다. 그게 어떻게 자살방조가 됩니까? 애들이 김혜진보고 자살하라고 등을 떠밀었어요? 칼을 줬어요?”

“아 자살에 원인을 제공한 놈이 자살을 도와준 게 아니면 당최 뭣이 자살방조입니까? 예? 그리고 칼을 진짜로 줬을 수도 있다니까요.”

“아니, 자살방조죄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필웅은 답답해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장경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다가 멈칫하고는 말했다.

“아니지, 가만. 박 형사님. 제가 왜 이런 걸 박 형사님한테 설명해 줘야 합니까? 여기가 노량진이에요? 예?”

필웅의 눈빛이 순간 반짝 빛나는 것을 장경은 놓치지 않았다.

‘드럽게 좀생이구먼.’

처음 둘이 만나던 날 장경이 필웅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장경은 필웅이 그걸 기억하는 것도 모자라 비꼬는 소재로까지 쓰다니 참 좀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자살방조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다시 한 번 꼼꼼하게 검토해 보시고, 증거 제대로 보완해 오세요.

뭐 제대로 된 증언도 증거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기소하라는 겁니까? 저보고 증거 찾아오라는 거에요?”

“증거 찾아서 사건 제대로 갖춰 드리면 기소해 주실 겁니까?”

“그건 봐야죠.”

“아니, 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데 왜 기소를 안합니까?”

“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는 제가 보고 판단할 거니까요. 이제 좀 나가세요. 저도 일 좀 하게.”

필웅은 저항하는 장경을 밀치며 간신히 사무실 밖으로 그를 밀어내고는 문을 쾅 닫았다.

‘김혜진? 김혜진이라.’

오늘 비로소 자살한 소녀의 이름을 들은 필웅은 왠지 이름이나 사건의 사실관계가 낯이 익다고 느꼈다.

아마도 이 또한 나영전이 뉴스나 판례로 접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형사사건이 되기 어려워 보이는데.’

조필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이컵에 담긴 커피에 물을 부었다.

* * *

시연은 심철우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일단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고 나면 뭔가 감이 잡히겠지.’

심철우는 낡은 임대 아파트에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시연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숨을 쉰 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헥헥대며 간신히 초인종을 누르자,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 저, 서울남부지검의 정시연 검사라고 합니다.”

잠시 초인종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현관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순박하게 보이는 청년이 고개를 내밀었다.

“들어오세요.”

청년은 문을 열어주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시연이 안으로 들어서니, 낡은 임대 아파트는 밖에서 보이는 것만큼이나 내부도 낡아 있었다.

아마도 심철우인 듯한 남자는 시연을 식탁에 앉히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심철우 씨,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심철우는 마실 것이 없다면서 유리잔에 냉수를 따라 시연에게 건네 주었다.

“감사합니다.”

시연은 마침 목이 말랐던 차라 꿀꺽꿀꺽 냉수를 들이켰다.

“검사님께서 이렇게 멀리 어쩐 일이십니까?”

심철우가 나지막히 물었다. 시연은 흉악한 살인 전과가 있었던 사람을 대면하게 되니 괜스레 긴장을 느꼈다.

“이번에 재심 청구하신 사건에 대해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변호사님이 이미 다 설명했다고 하던데요.”

“그렇긴 한데, 저도 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심철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뭘 확인하고 싶으신데요?”

“처음 체포되시고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구체적인 정황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

심철우는 때로 더듬거리면서도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심철우는 처음에는 사건의 목격자로 경찰에 소환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다녀오던 심철우는 길가에 택시가 세워져 있기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 때 그는 갑자기 누군가가 조수석에서 쏜살같이 뛰쳐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심철우는 처음에 그를 쫓으려다가 혹시나 해서 택시 운전석을 다시 살펴보고는 택시기사가 피를 흥건히 흘리면서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후 그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처음에 그를 목격자로서 대우해 줬다.

그런데 추후 잡힌 용의자가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고 별다른 증거도 확보하지 못하자 갑자기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며칠 간에 거친 고문과 강압 수사 끝에 그는 결국 자신이 택시기사를 죽였다고 자백하기에 이른다.

“그 때 변호사님도 그렇게 하는 게 유리하다고 했어요.”

심철우가 어눌하게 말을 덧붙였다. 시연이 보기에 심철우는 말주변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고 말을 조리 있게 잘 지어낼 수 있는 타입도 아닌 듯했다.

심철우의 이야기는 결국 경찰이 억지로 범인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니만큼 쉽게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시연으로서는 도저히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철우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시연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시연은 내심 심철우의 이야기 속에 그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점을 밝혀줄 만한 내용이 나오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심철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억울하게 처벌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있습니까?”

“그 때 당시에 경찰이셨던 분들 중에도 제가 진범인지 의심하던 분들이 계셨어요.

그 분들이 백방으로 뛰어서 새로운 목격자를 찾아냈다고 들었어요. 그 목격자도 제가 아니라 어떤 덩치 큰 남자가 택시의 조수석에서 뛰어내리는 걸 봤대요.”

“잘 알겠습니다. 또 연락 드리죠.”

시연은 착잡함을 느끼며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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