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런 사건은 딱 질색인데
강력계 형사 장경은 앉은 자리에서 담배를 꺼내다 물었다.
그의 나이 서른 넷. 아직은 혈기왕성하게 일할 나이였다.
그는 슬쩍 자리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며 덜 깎인 수염자국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꽃미남 소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부리부리한 눈, 적당히 두터운 턱과 두꺼운 목 덕분에 소싯적에는 남자답게 생겼다라는 말은 자주 들어왔다.
비흡연자인 김도율 강력계장은 담배를 꺼내든 그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장경은 김 계장을 돌아보고 잠깐 고민하다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한창 금연을 시도 중이었지만 왠지 모를 무료함이 밀려올 때는 담배 한 모금이 절실했다.
김 계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문을 펼쳤다.
장경이 형사 일을 하게 된지도 어언 7년째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형사 일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경우 범죄자들과 피곤한 드잡이를 해야 했다. 발로 뛰는 순간보다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를 쓰는 시간이 더 긴 날도 있었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자 장경은 점점 일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뭔가 귀찮아 보이는 사건이 있으면 후배에게 미루기 일쑤였다. 보고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른 사람에게 미뤘다.
‘그냥 때려칠까.’
장경은 쓰레기통에 담배갑을 버려 버리고 이번에는 볼펜을 입에 물고 생각했다.
다른 형사들은 이미 어딘가로 출동해 있었다. 계장과 그만이 남아 있었다.
장경은 하품을 하다가 입구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범하게 생긴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소녀였다. 아담한 키의 소녀는 질끈 뒤로 묶은 머리에 분홍색 방울 모양 머리끈을 매고 있었다.
장경과 눈이 마주친 고소녀는 여전히 우물쭈물하며 입구에 서 있었다.
장경은 들어오라고 할까 하다가 귀차니즘이 발동해 못본 척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에게 계장이 슬리퍼를 집어 던졌다.
“야, 야! 눈 마주친 거 다 봤거든?”
“아따, 그냥 말로 하시지 무슨 쓰레빠를 던지고 그럽니까, 더럽게시리.”
“빨리 민원인 안내 안해? 확 그냥!”
계장이 남은 슬리퍼까지 벗어들고 일어서자 박장경은 마지못해 입구에 서 있는 여학생을 손짓해 불렀다.
“이리로 와 봐.”
소녀는 쭈뼛쭈뼛 그에게 다가왔다. 박장경은 옆의 의자를 끌어다가 그녀에게 밀어주었다. 소녀는 조심스레 의자를 당겨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소녀의 손등에 여러 생채기가 나 있었다. 장경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
소녀는 계속해서 장경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장경은 답답함을 느꼈다.
“아니, 왔으면 뭔 말을 해야 할 거 아니냐. 무슨 일 때문에 왔냐고?”
장경이 윽박지르듯 쏘아붙혔다. 소녀는 긴장하며 의자를 약간 뒤로 물렸다.
장경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쉬며 물었다.
“소매치기라도 당했어?”
소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경이 이어 물었다.
“그럼? 누가 때렸어?”
소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장경은 답답해하며 말했다.
“아니, 뭔 일인지 알아야 도와주든가 말든가 하지. 아저씨 바쁜 사람이야.”
뒤돌아보니 계장이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니가 뭐가 바쁜데?’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게…….”
“그래. 말을 해야 안다니까.”
“따돌림을, 당했어요.”
장경은 물끄러미 소녀를 바라보았다.
“따돌림? 친구들끼리 놀다 보면 서로 토라지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런 걸 뭘 경찰서까지 갖고 와서는.”
소녀는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따돌림이라고?’
장경은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계장을 돌아보았다. 계장은 ‘뭐 어쩌라고?’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이런 사건은 딱 질색인데.’
자신이 따돌림을 당했다며 찾아오는 학생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형사사건으로 다루기 어려운 또래간의 다툼에 불과하거나, 애초에 누군가를 골탕먹이려는 허위신고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장경은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부모님은 아시고?”
“부모님은, 몰라요.”
장경은 혀를 쯧쯧 찼다.
“부모님한테 잘 말해서 해결을 봐야지, 어째 꽁꽁 싸매고만 있었어?”
장경은 A4 종이를 한 장 그녀에게 내밀었다.
“여기다가 사건 내용 쓰고 연락처 남겨 놔. 나중에 연락할 테니까.”
“지금은, 따로 조사 안 하나요?”
장경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야. 네가 잘못한 걸 수도 있고, 애초에 사건이 아닐 수도 있는데 함부로 사람들 불러서 조사하고 그러면 못쓴다.”
그러자 소녀는 처음 내보이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 잘못한 거 없어요.”
장경은 답답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아니, 그러니까 그건 내가 보고 결정할 일이라니까. 빨리 사실관계나 써.”
소녀는 입을 꾹 닫고 마치 눈으로 글씨라도 쓸 듯 눈 앞의 흰 종이를 한참 노려보았다. 장경은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안 쓸 거여?”
소녀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펜을 집어 들었다. 몇 줄인가를 힘겹게 써내려 가던 소녀는 마지막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고는 펜을 내려놓았다.
장경은 종이를 휙 집어다가 연락처만 확인하고는 서랍에 종이를 집어넣었다.
“안 보세요?”
“지금은 당장 급하게 할 게 있어서.”
소녀는 그러고도 한참을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장경은 짜증스럽게 물었다.
“내가 다 읽어 보고 필요한 거 있음 연락할 거니까 이제 집에 들어가라.”
소녀는 힘없이 일어서서 조용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계장이 장경에게 다가왔다.
“뭐래?”
“아, 그냥 맨날 있는 애들 싸움이죠 뭐.”
장경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가?”
“퇴근시간이니까 집에 가야죠.”
“이런 미친놈이? 세상 어느 형사가 칼퇴근을 하냐!?”
“일 없음 집에 가야지 그럼 범죄를 만들어 옵니까?”
계장은 머리를 짚으며 손을 내저었다.
“가라, 가.”
장경은 히죽 웃으며 점퍼를 집어들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을 나섰다.
* * *
서울남부지검 근처의 식당.
시연은 저녁을 먹으며 싱글벙글하는 필웅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뭐 좋은 일 있어?”
“아, 부장님이랑 골프 치러 가기로 했거든.”
“골프? 너 골프 칠 줄 알아?”
“어? 어, 조금?”
“전혀 몰랐네. 이 바쁜 와중에 골프는 언제 배운 거래?”
필웅은 뜨끈한 밥을 한 숟갈 입에 물고 입에 밥이 있어 대답하지 못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시연은 그런 그를 수상하다는 표정을 쳐다보았다.
‘골프같은 거 배우러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골프 치러 나갈 정도면 꽤 친다는 거 아냐?’
시연은 점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너 요새 좀 이상해.”
필웅은 반찬을 집어들다가 되려 뭐가 이상하냐고 묻는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뭐가?”
“그냥,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좀 많이 이상해. 안 마시던 커피를 갑자기 벌컥벌컥 마시질 않나, 담배를 피우질 않나.”
필웅은 그때서야 시연의 말 뜻을 알 수 있었다.
원래 흡연자도 아니었던 필웅이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고, 평소 치지 않았던 골프를 치는 것이 분명 수상해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시연이 믿어줄 리 만무했다. 필웅을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 분명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저런 말에 괜히 신경쓰이네.’
필웅은 뭐라고 변명할지 잠시 궁리했다.
“아, 사실은!”
필웅은 말을 끊고 잠시 헛기침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큼! 그게, 내가 한 번 죽을 고비를 넘어왔잖아?”
“응, 그렇지?”
“그러다 보니 내가 평소 살면서 안 해봤던 일들이 쫙 떠올랐어! 이런 것들도 못해보고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거지.”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와서는 평소에 못해본 것들을 다 해보면서 살고 싶어진 거라고.”
필웅은 명쾌하게 말을 잘 지어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면서 마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뭐 좀 더 인생을 즐기세요 그럼~”
시연은 겉으로는 필웅의 답에 보조를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도 갑자기 변한 필웅의 모습에 걱정스런 마음을 접을 수는 없었다.
* * *
다음 날, 경찰서.
장경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 앞에 앉아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부르면 오라니까 왜 또 왔냐?”
“…안 부를 거잖아요.”
“부를 거였어.”
“언제요?”
“…나중에.”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상에 올려 놓았다.
“뭣이여 이게?”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그를 향해 밀었다.
“나 보라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제가, 일기장에서 뜯어 온 거예요. 어제는 제대로 말씀을 못드린거 같아서…….”
“뭘 써?”
“그, 제가 당한 일들이요.”
소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니, 어차피 증거가 없으면 처벌이 안 돼요. 참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이게 검사님들이 봐주기나 할지 모르겠다.”
“봐 주셔야 해요.”
“그게 너나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 말이야.”
장경은 한숨을 쉬며 소녀가 내민 봉투를 받아 책상에 집어넣었다.
“안, 보세요?”
“지금은 바뻐.”
장경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이내 그날 아침 잡아온 좀도둑에 관한 조서를 쓰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러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었다.
소녀는 장경에게 무엇을 원하는 듯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마침내 일어섰다.
“가냐?”
“…예.”
“그려. 다음에 연락할테니까 또 안 와도 된다.”
장경은 내심 앞에 앉아 있던 소녀가 불편했기에 반색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소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몇 번 고개를 끄덕이는 듯 마는 듯 움직이더니 이내 밖으로 사라졌다.
‘이제야 일 좀 할 수 있겠네. 애들 싸움에 어른이 함부로 끼면 안 되는 법이지.’
장경은 안심하며 마저 조서를 써 내려갔다.
그 다음 날.
이날도 장경은 하루 종일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불현듯 어제와 그제 연이어 찾아왔던 학생이 생각났다.
‘도대체 뭐라고 썼는지 보기는 해보자’
장경은 서랍을 열어 소녀가 놓고 간 봉투를 집어들었다.
‘뭘 이렇게 정성스럽게 쓴거야?’
봉투를 열어 보니 공책 같은 데서 뜯어진 종이가 여러 장 곱게 접혀 들어가 있었다.
‘일기장에서 뜯어 온 거라 했었지.’
장경은 종이들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사는 것이 싫어졌다.
사람들은 항상 뺨을 때린 사람에게는 뭐라 하지 않고, 뺨을 맞은 사람을 붙잡고 흔든다. 왜 맞았냐고, 왜 가만히 있었냐고.
가만히 있든 가만히 있지 않았든 뺨을 때린 사람이 나쁜 것 아닌가?
매일같이 아이들은 시도때도 없이 나를 불러낸다…
그 후로는 ‘아이들’이 어떻게 소녀를 괴롭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소녀’의 이름은, 김혜진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장경은 자신이 소녀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장경은 홀린 듯 혜진이의 일기를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 이제 지쳤다. 내 편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 문장에는 소녀의 고민이 담겨 있는 듯했다. 무언가를 썼다가 펜으로 긁적거려 지우고 다시 그 위에 겹쳐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한 흔적이 보였다.
‘어? 이거 왠지 느낌이 싸한데…….’
장경은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한 번 핥고 다시 한 번 혜진의 일기장을 훑어보았다.
화장실 감금, 구타, 그 외에 입 밖에 꺼내기도 어려운 흉측한 괴롭힘에 대한 기록들.
장경은 그 묘사를 보기만 해도 구토감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두 번 세 번 혜진의 일기를 읽던 장경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 계장이 어이없어 하면서 외쳤다.
“야,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니잖아? 또 퇴근하려고?”
“일하러 갑니다.”
장경은 나지막히 대답하고는 경찰서를 나섰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장경은 걸음을 재촉했다.
* * *
혜진의 집은 평범한 단독주택이었다. 장경은 몇 번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아까 다 설명했는데요.”
“네?”
장경은 초인종 너머의 답변에 다소 당황했다.
“저, 어머니~ 잘 못 들으신 거 같은데요. 저는 혜진 학생을 개인적으로 아는 형사인데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누군가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덜컥하고 열렸다.
“들어오세요.”
초췌한 얼굴을 한 혜진양의 어머니가 장경을 맞이했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장경이 미처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장경은 머쓱함을 느끼며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장경은 집 안 거실까지 따라왔다. 혜진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뭔가 마실 걸 준비하고 있었다.
“저, 어머니? 혜진 학생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장경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음료수를 들고 나오던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죽었어요, 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