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PC방 살인사건
“추가 증거라구요?”
최창칠 판사가 못마땅한 듯 물었다.
“예, 맞습니다.”
그는 조필웅과 변호인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갑자기요? 검사측,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된 증거 맞습니까? 단지 시간 끌기를 위해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라면 본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아울러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순간에 관한 증인들의 증언은 진술서면으로 대체하겠으니 또 제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창칠 판사가 두 손으로 깍지 낀 채 꼬장꼬장하게 말했다.
“재판장님, 목격자들의 진술서는 아니지만 이 사건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필웅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최창칠 판사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필웅은 서류 봉투에 들어가 있던 서류들을 꺼내어 최창칠 판사에게 전달했다.
최창칠 판사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필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피고인의 정신을 감정한 정신과 의사의 감정의견입니다.”
변호인은 당황한 듯 필웅과 피고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변호인은 잠시 후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윽박지르듯 피고인 심기원에게 말했다.
다만, 거리가 워낙 가까워 목소리를 낮췄음에도 필웅은 무슨 대화가 오고가는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뭡니까! 정신 감정 받았다는 얘기는 안 했잖아요!”
피고인 심기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안경을 고쳐 쓰고는 어눌하게 대답했다.
“그런 적 없는데…….”
변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최창칠 판사는 증거서류를 받아들고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필웅이 공판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형법의 조문은 바로 형법 제10조였다.
[ 제10조(심신장애인)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
정신 장애가 있는 자의 형을 경감하는 형법 제10조의 내용을 보자, 필웅에게 번뜩 나영전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래, 정신장애였어!’
나영전이 기억하는 PC방 살인사건의 쟁점은 결국 심신장애의 인정 여부였다.
당시 이 사건에서 심신장애를 인정하는 것이 옳은지 갑론을박이 벌어졌었다. 결국 피고인은 심신장애를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검사 측은 추가 조사를 통해 피고인이 정신 장애를 꾸며내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피고인은 계속해서 정신분열적인 발언을 거듭했다. 결국 피고인에 대한 추가 조사를 통해서는 그의 정신이 사실은 온전하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림도 없지.’
필웅은 먼저 피고인을 신문하겠다는 명목으로 심기원을 조사실로 불렀다.
필웅은 만일 정신과 의사가 자신과 함께 조사실에 들어간다면 심기원이 경계할 거라 생각했다.
이에 필웅은 일단 심기원의 정신 상태를 감정하기 위한 일련의 질의들을 정신과 의사로부터 미리 받아두었다.
그 후 그가 질문들을 던질 때 심기원의 반응, 답변 내용 등을 의사가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다.
정신과 의사는 조사실 너머 매직미러 뒤편에 앉아 있었다.
‘그때는 내가 혼자 심문하는 줄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이미 정신감정은 이뤄졌다고!’
필웅은 피고석에 앉은 심기원을 노려보았다.
최창칠 판사는 한참 꼼꼼하게 서류들을 읽고는 입을 열었다.
“피고인, 의사의 감정 소견에 따르면 의사는 피고인과 검사 간에 이뤄진 30분 이상의 대화를 직접 확인했다고 하는군요.
관찰 결과, 피고인이 범행 당시 정신이 온전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더 진술할 내용이 있습니까?”
“재판장님, 그 감정 의견은 이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의사의 사후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 범행 당시 의사가 그 광경을 직접 두 눈으로 본 것도 아닌데, 그 당시 피고인이 제정신이었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습니까?”
변호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필웅은 혀를 차며 일어서서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런 궤변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만일 범행을 목격한 의사의 소견만 신뢰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이뤄지는 일체의 감정은 모두 무의미하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런 주장은 범행 현장을 정신과 의사가 우연히 목격하고 그 의사가 진술을 해야지만 신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필웅은 속사포처럼 빠르게 그러나 정확하게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어느새 웅성이던 방청객들도 잠잠해졌다.
마치 모든 방청객이 그의 다음 말을 재촉하는 듯했다.
필웅은 일부러 잠시 뜸을 들이고는 연극을 하듯 팔을 벌리며 말을 이었다.
“분명! 지능이나 정신에 심각한 장애가 있어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온정을 베풀어줄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의 주장은 그런 법의 취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단지 법률을 악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더이상 법정에서 소위 심신상실이 사고를 친 범죄자들의 전가의 보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필웅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변호인은 다시 뭐라고 반박하려는 듯 움찔거렸으나 이번엔 최창칠 판사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양 측 주장은 충분히 들었고, 더 이상 무의미한 토론을 계속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 법정은 제출된 증거들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심신장애 상태였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다음 기일에 선고합니다.”
최창칠 판사는 누군가 더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말을 마치고 바로 재판의 종료를 선언했다.
비록 다음 기일에 선고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검사 측의 승리였다.
심신장애의 주장은 나름 심기원과 변호인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였겠지만, 그 카드마저 철저히 파괴된 이상 심기원이 유죄 판결을 피할 길은 없었다.
필웅은 넋이 반쯤 나간 심기원을 한번 비웃어주고 법정을 나왔다.
필웅은 청사 건물 옆에 마련된 흡연장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침 그가 첫 모금을 빨아들이려는 찰나, 지나가는 시연과 눈이 마주쳤다.
“어, 너?”
시연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필웅은 원래 담배를 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이거?”
그도 당황해서 얼떨결에 불 붙인 담배의 불을 끄고 그녀를 마주보았다.
“너, 담배 펴?”
“아니, 이건 그냥…….”
정시연은 다가오면서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너 폐 안 좋잖아? 담배는 언제부터 핀거야?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는 안 마시던 커피까지 마시고? 이러니까 몸이 안좋아지지!”
정시연은 목소리를 점점 높이더니 갑작스레 조필웅의 등짝을 쎄게 후려쳤다.
“아,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야. 사건은 어떻게 됐어?”
“무슨 사건?”
“PC방. 네가 공판 진행했다며.”
“끝났어. 다음 기일에 선고야.”
“당연히 유죄지?”
그 말을 듣자 필웅이 으스대며 말했다.
“당연하지. 네가 그 역전의 순간을 봤어야 되는 건데. 나니까 유죄 받아낸 거야. 나한테 고마워해라.”
“뭐래? 내가 증거 다 찾아 놓은 것만 싸들고 가서 이긴 주제에.”
시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받아쳤다. 필웅은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내가 추가로 확보한 증거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무죄 나올 사건이었거든?”
필웅은 쏘아붙이며 그대로 몸을 돌려 사무실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무슨 증거를 더 찾아온 건데!”
“판결 나오면 판결문 보내 줄 테니까 읽어 보든가~”
필웅은 뒤에서 부르는 시연의 목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청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돌아와 문을 열자 서다혜가 서 있었다.
“뭡니까? 사무실에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서다혜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앗! 죄송해요. 검사님 찾아왔다가 문이 열려 있어서 그냥 들어왔는데.”
그러고 보니 주 계장이 보이지 않았다.
점심마다 어딘가에 나가는 듯하더니 오늘은 아예 문을 열어 놓고 나간 모양이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시는 거야? 나중에 한 소리 해야겠군.’
필웅은 조금 언짢아 하다가 다혜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차라도 한 잔 하실래요?”
“네!”
“아, 생각해 보니 커피밖에 없네요.”
필웅은 미안하다는 듯 대답하고는 종이컵에 블랙커피를 몇 스푼 집어넣고 끓는 물을 부어 그녀에게 건넸다.
“커피도 좋아해요! 잘 마실게요.”
필웅도 커피에 물을 따르고는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커피를 홀짝이던 서다혜가 종이컵을 내려 놓고는 어울리지 않게 다소곳하게 자세를 바로했다.
“저, 사실은 오늘 공판 갔었어요.”
“아.”
필웅도 이미 알고 있었듯 서다혜는 피해자인 서다운의 누나였다.
“피해자가, 가족이죠?”
“네, 남동생.”
대답하는 서다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큰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용케 맺혀 떨어지지는 않았다.
눈 앞에서 여자가 우는 상황을 별로 겪은 적이 없이 살아왔던 필웅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랬군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제 일일 뿐입니다.”
“그 이상이었어요.”
“그렇게 받아들여 주신다면 고맙습니다.”
서다혜는 그제야 자신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검사님이 아니었으면, 그 인간은 다시 풀려나와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다녔을지도 몰라요. 정신병이라고 하면서요.”
“그럴 수도 있었겠죠.”
“물론 다운이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감사해요.”
필웅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 꿈틀 하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필웅, 아니 나영전으로서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정의라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기여했다는 데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필웅은 낯선 감정을 털어내기라도 할 듯 급하게 커피를 한 입에 비우고는 일어서서 어색하게 사무실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릅니다.”
“유죄, 나올 거잖아요.”
“그렇긴 하겠죠.”
“그럼 됐어요.”
서다혜는 밝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검사님, 고생하셨어요. 전 먼저 가볼게요”
필웅은 자리를 일어서 나가는 서다혜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필웅은 딱히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 또, 사회정의의 실현을 생각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심기원에게 분노를 느낀 것은 피해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재판이라는 게임에서 아무 때나 치트키를 쓰려고 하는 자에 대한 분노였다. 필웅은 그런 치트 플레이어에게 한 방을 날린 것에 대한 쾌감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서다혜를 만나기 전까지 철저히 개인적인 이유로 분노했고, 철처히 개인적인 이유의 쾌감만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론, 재판 전에도 서다혜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 남매에 대한 연민도 사실 크지 않았다. 자신이 감사받을 일이 아니라고 한 건 겸손이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거듭해서 감사를 표하며 떠나는 서다혜의 뒷모습은 그에게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겨주었다.
‘나쁘지 않네. 이런 감정도.’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는 것. 사실 법조인으로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문득 그는 변호사인 나영전이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 때는 치트키를 써댄 것이 내 쪽이었을지도 모르겠군.'
필웅은 만약 자신이 이번 재판에서 변호인석에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잠시 고민해 보았다.
'아주 높은 확률로 심기원의 변호인과 같은 변호를 시도했겠지.'
그러나 필웅은 반대의 입장이 되어 보니, 어떻게든 이기는 것이 능사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승리로부터는 왠지 모를 뿌듯함과 진심 어린 감사라는 보상도 얻을 수 있었다.
“정의로운 검사가 다 됐어.”
필웅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며 블랙커피를 조용히 한잔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