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예고 살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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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강민혁의 왼손이 어깨를 강타하는 순간, 그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주춤한 그때를 강민혁은 놓치지 않았고, 순식간에 더욱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곧바로 낌새를 느낀 그였으나, 대처할 수는 없었다. 그의 오른팔이 꿈틀거리기 무섭게 다시 한번 강민혁의 주먹이 그의 어깨를 강타했다.
파악!
집요할 정도로 약점만을 노리는 공격이었고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툭.
그의 손아귀 힘이 풀리며 그대로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미 낮에 한차례 탈골된 적이 있던 그의 어깨였다. 자신에 의해 그리된 것이었기에, 강민혁이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는 없었고. 의도적으로 그의 오른 어깨만을 노린 이유였다.
“...제, 젠장.”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그는 완전히 당황한 듯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비겁한 놈···!”
그리고 강민혁을 향해 소리쳤으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다친 자신의 어깨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강민혁을 보며 비겁하다 느낀 모양이었으나.
“비겁 같은 소리, 칼을 든 놈이 할 소리냐?”
그는 흉기를 든 채 습격을 하였고, 강민혁은 맨 손이었다. 애초에 그가 비겁을 운운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칼을 놓친 것도 모자라, 오른팔을 사용하기 힘든 상대. 그는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쳐보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으나, 팔만 부들거릴 뿐, 움직이지 못했다.
‘끝났네.’
강민혁은 그러한 모습을 보며 승부가 난 것을 직감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그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그의 오른팔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그대로 그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으악!!”
넘어지는 충격보다는 오른팔에 가해지는 충격이 큰 듯 있는 힘껏 고통을 호소하는 그였으나, 강민혁은 자비 따위는 베풀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그의 팔을 뒤로 꺾은 뒤, 앞으로 엎어진 그를 몸으로 누르며 완전히 제압했다. 팔꿈치로 그의 뒤통수를 짓누름과 동시에 수갑 꺼내 그를 체포했다.
“너를 살인 미수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그가 이번 ‘예고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것은 확실했으나,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었다.
그러한 점은 수사본부로 이동해 천천히 확인하면 될 터. 무엇보다 강민혁을 살해하려던 명확한 범죄사실이 존재했으니,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한 것이었다.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강민혁은 이어 미란다의 원칙 또한 잊지 않고 읊조리며 그를 완전히 체포해 냈다.
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토해냈으나, 큰 반항은 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하였다.
“...”
그게 아니라면 이곳에서 체포를 당한다 한들 자신의 범죄사실, 그러니까 자신이 이번 ‘예고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행동일지도 몰랐다.
강민혁에 대한 살인 미수에 대한 범죄는 확실했으나, 그 외에 다른 정보는 파악하지 못했을 거로 생각했기에 순순히 체포에 응하는 것이겠지.
물론, 그의 생각은 일부분 옳았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따위 잔꾀가 강민혁에게 통할 리 없었다.
강민혁은 순순히 체포에 응하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수갑이 채워진 그의 손을 맞닿았다.
생각해낸 키워드는 역시나 ‘예고 살인’. 더불어 사건이 일어났던 세 곳의 장소를 함께 떠올렸다. 그가 진범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겠지만.
‘역시···.’
키워드를 생각해냄과 동시에 강민혁의 머릿속에 생생한 기억들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매우 익숙한 장소. 다름 아닌, 첫 번째 사건이 벌어진 현장. 강민혁과 외국인인 그가 지금 있는 바로 그 장소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기억이었고. 그곳에서 그가 행한 행동 또한 전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외국인인 그는 모습을 숨긴 채 누군가의 뒤를 쫓고 있었고, 대상이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행동을 시작했다. 강민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다가가 칼을 꺼내 들었고. 살인을 저질렀다.
그 대상 또한, 강민혁이 보고서를 통해 확인했던 얼굴이었다. 첫 번째 피해자인 강신호가 살해되는 순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이제 막 기억이 시작되었을 뿐이지만, 이것으로 확신하기에는 충분했다. 조금의 의심마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장면.
강민혁이 체포한 그는 분명히 피해자 강신호를 살해했다. 이번 ‘예고 살인 사건’의 범인은 세 명의 피해자를 살해하였고, 그것은 모두 한 인물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첫 번째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것은 결국, 이번 사건의 범인이, 지금 강민혁이 체포한 그라는 의미였다.
‘...’
더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으나, 강민혁은 천천히 떠오른 기억들을 모두 살펴보았다.
첫 번째 사건 현장부터 두 번째 사건 현장, 그리고 세 번째 사건 현장까지. 그는 예상했던 그대로의 행동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피해자들의 뒤를 은밀히 관찰했고, 이후 피해자가 혼자 있을 때. 그리고 안전한 장소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매우 은밀하고 신속하게, 그 어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모양새로 완벽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모든 행동을 마친 뒤에는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운 뒤, 현장에 검은 명함을 놓아두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범인이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어차피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 확신했던바. 그것보다 그의 행동 중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존재했다.
세 번 현장에서 그는 사건을 저지른 뒤, 명함을 내려놓고 이후 모두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어···.’
마치 누군가에게 보고하는듯한 모양새였다. 강민혁이 기억을 읽어봄으로써 확인한 그 문자는 한 단어뿐이었다.
‘finish’
끝내다, 마치다 등의 내용을 누군가에게 보내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설명 없이 오직 그 한 단어만을 누군가에 보냈으며, 답장 따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건을 저지른 뒤, 보고하고 있다고밖엔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며. 강민혁은 그 대상이 누구일지 예상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박동식···. 인가.’
강민혁은 애초에 이 사건에 박동식이 개입되어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경험한 미래에는 전혀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이었음은 물론. 그 대상 또한 자신이었다는 점. 박동식 그가 범죄 코디네이터의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고밖엔 설명되지 않았다.
한차례 그의 기억을 읽어낸 강민혁은 다시 한번 그의 손을 스쳤다. 박동식이 이 사건에 개입되어있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그의 기억을 읽어내면 그만이었다.
지금 체포한 이 외국인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점은 확실해 졌다. 하지만 여전히 확인해야 할 사항들은 남아있었기에 강민혁은 다시 한번 그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박동식.’
이번에도 역시 키워드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 외국인이 어떤 식으로든 박동식과 연관이 있다면, 그에 관한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 분명했다.
강민혁이 다시 한번 그의 손을 스치며 키워드를 생각해내는 순간, 또다시 기억이 떠올랐다.
“...재밌네.”
모든 기억을 읽어낸 강민혁은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제압당한 채 엎드려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야, 너 이름이 뭐냐?”
“...”
그리고 이름을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강민혁은 예상한 듯 개의치 않으며 피식 웃어 보였고.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 사람들 왜 죽였냐?”
“...”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엎드려 수갑에 포박당한 채, 눈을 감고 있을 뿐, 입을 꾹 다물며 어떠한 대답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배짱 어린 태도에 강민혁은 저도 모르게 비웃음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냐, 아니면 묵비권을 행사하는 거냐? 재밌네. 산토스.”
“...! 그, 그걸···!”
하지만 그의 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강민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순간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돌린 것이었다.
강민혁은 이미 몇 번의 기억을 읽어냄으로써 그의 개인정보부터 사건의 사실관계까지 모든 것을 파악한 이후였다.
그의 이름 따위야 간단하게 알 수 있었고, 그의 반응을 보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산토스는 매우 크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강민혁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를 제압하는 그 상태 그대로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네, 이민재 형사.”
몇 번의 신호음이 흐른 뒤, 곧바로 통화가 연결되었다.
“지금 제가 부르는 주소로 가서 찾아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통화에 산토스가 어찌할 줄 모르며 당황하고 있던 그때. 강민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그의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구···. 동···. 104호로 가시면 됩니다. 비밀번호는······. 입니다.”
강민혁이 이민재에게 설명하듯 읊조리는 그 주소는 산토스의 집이었다. 그의 고국이 아닌, 아무도 알 수 없는 그가 한국에 머무는 그 주소였다.
“...어, 어떻게···.”
더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유 있게 순순히 체포를 당하던 그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 온몸을 흔들어대며 발광하는 그였으나, 소용이 있을 리 없었다.
“예, 제가 방금 설명한 대로 하시면 수색영장은 금방 발급받을 수 있을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강민혁은 몸부림치는 그를 간단히 제압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이제는 식은땀까지 흘러가며 당황하고 있는 그를 보며 조용하게 물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나 보지? 청부업자. 산토스?”
“...”
이제는 어떻게 그러한 사실을 알아냈는지조차 묻지 못한 채, 완전히 사색이 되어 말문이 막힌 그였다.
강민혁이 그의 기억을 읽어냄으로써 알아낸 그의 정체는 역시나 평범하지 않았다.
국적은 필리핀으로 이름은 산토스. 그의 직업은 청부업자였다. 그것도 단순한 청부업자가 아닌, 청부살인업자. 의뢰자에게 돈을 받고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살해목적은 오직 돈일 뿐, 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예고 살인 역시 마찬가지.
그는 거액의 돈을 조건으로 이러한 광기 어린 사건을 저질렀던 것이었다.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 네 친구도 곧 함께하게 될 테니.”
이번 사건 역시 의뢰자가 존재했다.
이토록 엽기적인 방법으로 강민혁을 살해하고 자신이 우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 했던 인물.
그 의뢰자는 역시 박동식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