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예고 살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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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팀장님 그 팔은···?”
이주현의 문자를 확인한 강민혁은 병원에 들른 후, 곧바로 수사본부로 복귀했다.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붕대를 감고 있는 팔을 확인한 이주현은 놀란 듯 물었으나 강민혁은 별거 아니라며 화제를 돌렸다.
‘으윽···.’
그러나 조금씩 마취가 풀리는 듯 팔은 욱신거려왔고, 강민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에게 베인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해 상처를 꿰매놓은 상태였다.
의사는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유했으나.
“그보다 일단 설명부터 듣고 싶은데요. 범인의 다음 타겟이 저라고요?”
강민혁에게 그럴 시간은 없었다.
대낮에 누군가에 피습을 당하고, 이주현이 무언가 알아낸 상황. 강민혁은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사본부로 복귀한 것이었다.
“아, 예. 여기 이것 좀 보세요.”
이주현은 강민혁의 팔에 감겨있는 붕대가 여전히 신경 쓰이는 듯 힐끔거렸으나, 그의 질문에 곧바로 집중하며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자료들을 펼쳐 보였다.
“...”
강민혁 역시 그녀를 따라 시선을 이동했고, 그녀가 가리키는 자료들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오래 걸렸던 만큼, 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본 모양이었다. 그녀가 사용했던 책상은 지저분하다 못해 더러울 지경이었고. 수많은 자료가 복잡하게 섞여 있어 무엇을 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카드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겁니까?”
강민혁은 스스로 찾기를 포기하며 그녀에게 직접 물었고, 이주현은 고개를 내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도 처음에는 카드를 집중적으로 분석했으나, 결과적으로 카드에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
그들이 말하는 카드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검은 명함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세 번째 사건에서 발견된 그 검은 명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강민혁은 당연히 검은 명함에서 새로운 힌트가 발견되었을 거라 생각하였다. 앞선 두 사건에서 발견되었던 다음 피해자에 대한 지문이나 주소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으나, 이주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의외였다.
“세 번째 사건의 카드에서는 아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요?”
“예, 맞아요.”
다시 한번 이어진 질문에 이주현의 완전히 확신에 가득 찬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질 피해자의 힌트는 발견했다···. 그게 저라는 말이고요.”
“...예.”
또한, 이어지는 질문에 이주현은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세 번째 사건에서 발견된 카드에서는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분석을 통해 다음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힌트를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토록 눈치는 보는 이유는 그 대상이 강민혁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설명해 드릴게요. 이걸 한번 확인해 보세요.”
이주현은 이제 자신이 알아낸 힌트에 관해 설명해주려는 듯, 어지럽게 놓여있는 자료 중 하나를 꺼내 펼쳐 보였다.
그 종이에 적혀있는 것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 범인에게 살해당한 세 명의 남성들이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이군요.”
“네, 맞아요. 순서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피해자예요.”
강민혁이 종이에 적힌 이름들을 확인하며 입을 열자, 이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종이에는 사건의 순서대로 피해당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 강신호. 29세.
두 번째 사건의 피해자 김민수. 37세.
세 번째 사건의 피해자 장수혁. 67세.
피해자들의 이름 옆에는 그들의 사진 역시 붙어 있었으나, 강민혁은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앞서 수사관들을 통해, 피해자들 사이의 연관 관계는 없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된 이후였다.
그들이 남성이라는 점만 제외하고는 생활환경이며, 직장, 나이까지 무엇도 일치하는 부분이 없는 이들이었다.
강민혁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주현을 쳐다보았고,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피해자들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름···. 이요?”
이내 그녀가 집중한 것은 그들의 이름이었다.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냐는 질문에 강민혁이 다시 한번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
하지만 여전히 그 무엇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강민혁이 아무런 말 없이 한참을 쳐다보고 있자, 이번에는 이주현이 펜을 들어 피해자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이러면 어때요?”
첫 번째 피해자 이름의 첫 번째 글자. 강신호의. 강.
두 번째 피해자 이름의 두 번째 글자. 김민수의. 민.
세 번째 피해자 이름의 세 번째 글자. 장수혁의. 혁.
그녀가 모든 동그라미를 치고 나자 새로운 이름이 나타났다.
강민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이름이었고, 이게 바로 범인이 숨겨둔 다음 사건의 피해자였다.
“...”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다음 피해자의 힌트를 남겨두는 범인의 성향을 보면 가능성은 충분해요.”
강민혁은 생각이 많아진 듯 한동안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뚫어지라 쳐다보았고, 이주현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범인이 이번에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요?”
“음···. 아마 수사에 혼동을 주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선 두 번의 사건에서 카드를 사용해 수사관이 카드에 집중하고 있을 때, 완전히 다른 방법을 이용해 힌트를 숨겨둔 거죠.”
“음···.”
범인은 앞선 두 번의 사건에서 검은 명함이라는 카드를 이용해 힌트를 던졌으나,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사용한 이유가 있을까 하여 물어본 질문에 이주현은 제 생각을 대답했다.
“그리고···.”
“...?”
“세 명의 피해자로 팀장님을 지목한 점. 그리고 더는 카드가 아닌,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 점을 보면, 진짜 목적은 앞선 세 명이 아닌, 팀장님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돼요.”
이어 이주현은 머뭇거리며 말을 이을까 말까 고민하는 듯 보였고, 강민혁이 곧바로 눈치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한번 제 생각을 내뱉었다.
“그렇군요.”
이주현의 모든 대답을 들은 강민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뿐이었다.
자신이 노려지는 상황이라는 설명에도 그의 표정에는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에 이주현이 순간 번뜩이며 그의 붕대 감긴 팔을 쳐다보았다.
“티, 팀장님. 설마. 이 붕대···.”
“예, 여기 오기 전. 한 남성에게 피습을 당했습니다. 칼을 들고 저를 죽이려 하더군요.”
이주현은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붕대가 감긴 팔을 가리키며 물었고, 강민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이주현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으나.
“역시, 저를 노리고 있었던 거군요. 알아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큰 역할을 해냈어요.”
강민혁은 그녀의 활약에 대한 칭찬을 건넬 뿐. 그것이 전부였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팀장님. 지금이라도 당장 보호 요청을···.”
“아뇨.”
이주현은 제가 더 흥분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기 시작했다. 분석을 통해 범인이 강민혁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에 근거한 것이었다.
단순히 우연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순 없었기에, 완전히 확신하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강민혁이 당할뻔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자신의 분석이 들어맞았다는 기쁨보다는 그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함께 경찰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던 경험과 그동안의 그의 활약으로 인해, 그에 대해 대단함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번 사건의 범인은 벌써 세 명이라는 숫자를 살해한 살인범이었다.
그의 신변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고, 당장이라도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할 때쯤.
강민혁이 그런 그녀를 멈춰 세웠다.
“저는 괜찮습니다. 진정하세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수사팀에는 이 소식을 전했습니까?”
“네? 아뇨. 다들 수사 중인지, 아직 복귀하지 않으셔서···.”
이주현의 대답에 강민혁이 밖을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현이 자료를 분석하고 강민혁이 사건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기존의 수사관들이라고 하여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나름의 수사를 통해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고, 아직 수사본부로 복귀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돌아오시면, 바로···.”
“아뇨. 이에 대한 보고는 조금 미루도록 하죠.”
이주현이 입을 열기 무섭게, 강민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수사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발견되었으나, 그것을 보고하지 말하는 의미였다.
“네? 어째서···.”
이주현은 당연하게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물어온 질문에 강민혁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지금 제가 다음 피해자로 지목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수사관들이 함께 다니거나, 수사본부에서 수사를 진행···.”
“네, 맞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혼자 수사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겠죠.”
강민혁의 대답에 이주현은 또다시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쳤다.
“네? 티, 팀장님. 설마 계속 혼자 수사를 진행할 생각이에요? 이미 습격도 당했다면서요! 다른 분들이랑 함께 편이 훨씬 안전···.”
“아뇨. 안전은 하겠지만. 그러면 사건을 해결하기는 힘들어질 겁니다.”
이주현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 강민혁이 그녀의 말을 막아서며 대답했다.
강민혁이 혼자 수사를 진행하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가 기존의 수사팀을 못 믿는다거나 그들을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주현의 말처럼 다른 이들과 함께 다닌다면 더 안전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된다면 다시 범인을 마주치기는 힘들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강민혁이 범인을 마주했을 당시에는 그가 혼자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기 시작한다면, 범인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주 잠깐일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수사에 진척이 없으면, 바로 보고해도 좋습니다.”
“...”
이주현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했으나, 강민혁은 완고했다. 타이르듯 강민혁이 설득하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노리고 있다라.’
강민혁이 마주했던 그 외국인. 단순히 보기에는 그가 범인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강민혁은 오히려 그 뒤의 인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범죄 코디네이터 박동주.
여기까지 온 이상, 그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있을 가능성은 확실해 졌다.
“한번 해보지 뭐.”
강민혁은 피식 웃으며 수사본부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