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예고 살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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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저희의 수사를 도와주실 강민혁 경정님 그리고 이주현 경감이십니다.”
이재석의 소개와 동시에 두 사람이 꾸벅 인사를 건넸고, 주위에서 박수가 이어졌다.
형식적인 소개긴 하였으나,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맡은 수사에 새로운 인력이 투입되는 상황이 다들 썩 마음에 드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강민혁 경정님에 대해서는 모두 아실 것 같고. 이쪽 이주현 경감은 미제사건수사과 소속의 프로파일러입니다. 이번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러? 오오···.”
이재석은 한 마디 덧붙이자, 이번에는 감탄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쉽게 볼 수 있는 편이었기에 나온 반응으로 보였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각종 방송 프로그램이나 뉴스 등에 심심치 않게 프로파일러가 등장하겠지만. 지금은 아직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같은 경찰에서조차 들어보기만 했을 뿐, 가뜩이나 숫자도 적은 프로파일러를 만나볼 기회가 없었기에 이주현의 직업을 듣고 나자 나온 반응이었다.
“소개는 이쯤 하면 된 거 같고. 바로 사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소개하는 자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자 강민혁이 한 발 앞으로 나오며 이재석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곳 수사본부는 ‘예고 살인사건’을 위해 마련된 장소였다. 당연하게도 사건 해결을 위해 모인 장소였고, 책임자는 이재석 그였다.
강민혁과 이주현은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해 함께할 이들에게 소개를 마쳤을 뿐, 사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구체적인 사항을 듣고 싶은 것이었다.
“알겠네. 바로 설명 주도록 하지. 따라오게.”
이재석 역시 그러한 마음을 모르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강민혁과 이주현은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나섰고, 그는 커다란 보드판이 놓여있는 조그만 방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앞에 앉게. 바로 설명 들어가겠네.”
사건 현장으로 보이는 일대의 지도와 각종 사건 관련 사진들이 부착된 보드판 앞에선 그가 설명을 바로 시작하려는 듯 손짓했다.
보드판 앞에 놓인 테이블에 강민혁과 이주현이 자리했고, 그는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처음부터 전부 설명하겠네.”
“예, 알겠습니다.”
강민혁의 대답이 돌아오자, 그는 동그라미가 쳐진 지도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가, 첫 번째 사건이 벌어진 장소이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며, 당일 새벽 3시 18분 신고 전화를 받고 인근 경찰서에서 출동, 사건 접수되었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이재석이 설명한 그대로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피해자의 이름은 강신호. 나이는 29세. 직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네···. 사망원인은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 부검결과 복부에만 7~8차례의 깊은 자상이 남아있었네.”
이어 이재석은 첫 번째 피해자의 신원부터 시작해 그를 조사했던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특별히 원한을 맺은 인물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네. 당일에는 집주변의 피시방에 머물고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네.”
강민혁과 이주현은 그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며 듣고 있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흉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피해자의 인간관계가 그리 넓은 편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수사를 맡은 이들은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방향을 잡으며 수사를 이어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범인 색출에 실패. 이재석은 설명을 이어갔다.
“인근 CCTV나 목격자를 수색해봤지만, 전혀 확인할 수 없었네. 범인에 대한 흔적이나 증거 역시 마찬가지였네.”
이재석은 설명과 동시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고, 이내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니네. 쓰러져있던 피해자 주변에서 이 카드를 발견되었네.”
“...카드?”
이재석이 꺼낸 사진에 찍혀있는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카드였다. 아무래도 다음 피해자의 힌트가 되었다던 그 물건으로 보였고, 강민혁은 그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 그 사진 확인 좀 할 수 있습니까?”
“어? 어, 당연하지. 여기 확인해 보게···.”
강민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재석이 당황한 듯 사진을 건넸고, 그는 거칠게 그 사진을 받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에 찍혀있는 그 카드는 강민혁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형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검은 명함···.”
말 그대로 그 카드는 검은 명함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강민혁은 한두 번 확인했던 물건이 아니었다.
“왜, 왜 그러는가? 무, 뭔가 아는 거라도 있는 건가?”
“...아닙니다. 설명 끊어서 죄송합니다. 마저 이어서 부탁드립니다.”
한동안 사진을 뚫어지라 보고 있던 그는 이내 들려온 이재석의 목소리에 흥분을 가라앉히며 자리에 앉았다.
강민혁이 확인한 그 카드는 분명, 검은 명함. 범죄 코디네이터 박동식이 사용하던 그 명함과 같았다.
다만, 아직 어떠한 확증도 없었기에 자신만 인식할 뿐. 조심스럽게 한 발짝 물러선 것이었다.
“흠흠, 알겠네. 자네가 말했다시피 검은 명함처럼도 보이는 이 카드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검은 명함을 수상하게 여겨 지문을 조회를 해보았네.”
“뭔가 발견되었습니까?”
이재석은 여전히 강민혁의 행동이 의식되는 듯 그를 보며 설명을 이어갔고, 이내 이어진 이주현의 질문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음···. 지문이 발견되었네.”
“지문이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내뱉은 그는 이내 다른 인물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맞네. 현장에서 발견된 그 카드에서 지문이 발견되었네. 그사이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고, 우리는 그 지문의 주인을 찾아냈네.”
“...”
첫 번째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만에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사건 현장과 불과 1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는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이번에도 역시 살인사건이었다.
“지문의 주인은 김민수. 37세 남성으로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인물이었네.”
“이번 사건의 용의자입니까?”
“...아닐세. 그는 두 번째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네.”
이주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기 무섭게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첫 번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 유력한 용의자가 되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으나. 그 지문은 두 번째 사건 피해자의 지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에서도 역시 같은 카드가 발견되었네.”
“검은 명함 말이군요.”
이재석은 다시 한번 표정을 구기며 설명을 이어갔고, 강민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이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검은 명함 때문이었다.
두 번째 사건 현장에서도 역시 첫 번째 사건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검은 명함이 발견된 것이었다.
“그럼 그 카드에도 지문이···?”
“아니. 두 번째 현장에서 발견된 카드에서는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네.”
설명을 듣고 있던 이주현이 불쑥 물어왔고, 이재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카드가 사건과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과수대에 의뢰해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네.”
“무언가 발견된 거군요.”
“맞네. 카드에는 맨눈으로는 확인을 못 하지만, 빛을 비춰야 확인할 수 있도록 무언가 쓰여 있었네.”
“...”
두 번째 사건에서도 역시 발견된 범인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수사관들은 현장에서 발견된 카드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 그에 집중했다.
그로 인해 그 카드에 무언가 적혀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었다.
“이게 카드에 적혀있던 내용이네.”
이재석은 다시 한번 새로운 사진을 꺼내 확인시켜주었다.
카드에 빛을 비춰 찍어낸 사진이었고, 그에 적힌 내용은 누군가의 주소였다.
“그 주소는···.”
“맞네. 세 번째 피해자의 주소였어···.”
강민혁의 질문에 이재석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그 반응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예상하기에는 충분했다.
“조금만 더 빨리 그 사실을 알아냈더라면···. 사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지···.”
당시 수사관들이 과학수사대에 카드를 감식 맡긴 그동안 세 번째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 역시 두 번째 사건이 벌어진 지 약 이틀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고, 이는 곧 범인이 약 6일의 기간 동안 세 명이나 되는 피해자를 만들어냈다는 소리였다.
“세 번째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름은 장수혁. 67세 남성으로 은퇴 후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던 어르신이었네.”
“이번에도 카드가···?”
강민혁의 물음에 이재석은 대답 대신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고, 이번에는 사진이 아닌 투명 파우치에 보관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금껏 사진 속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양의 검은 명함이었고, 이재석은 그것을 확인해 보라는 듯 강민혁에게 건넸다.
“여기에도 무언가 있었습니까?”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검은 명함일 뿐이었기에 이재석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과학수사대에 감식을 의뢰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네.”
“...”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첫 번째 사건에서 지문이 발견되고, 두 번째 사건에서 피해자의 집 주소가 적혀있던 상황과는 달리 세 번째 사건에서는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피해자 간의 공통점은 없었나요?”
그때 이주현이 물었고, 이재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 명의 피해자 모두 남성이라는 점 외에 공통점이라고 할만한 점은 존재하지 않았네. 그들 모두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고, 접점이 될만한 부분은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했네.”
피해자들의 공통점이라고 할만한 사항은 발견하지 못한 상태. 과연 이재석이 말했던 대로 골머리를 썩이게 하는 사건임은 분명했다.
“범인이 범행을 그만뒀을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세 번째 피해자가 나온 이후, 아직 다음 사건은 벌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범인이 이대로 범죄를 멈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강민혁은 이재석을 향해 물었으나, 대답이 돌아온 것은 이주현에게서였다.
“글쎄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범인이 현장에 남겨놓은 이 카드들. 이 카드들은 분명 다음 피해자를 암시하고 있었어요. 세 번째 사건에서 범죄를 멈출 생각이었다면 이 카드를 현장에 남겨놓을 이유가 없다고 봐요.”
“음···.”
그녀의 대답에 강민혁과 이재석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감식결과 세 번째 사건에서 발견된 카드에는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다.
힌트라고 할만한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에 관해 묻듯 이주현을 쳐다보자 그녀가 대답했다.
“무언가, 무언가 있을 거예요.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