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예고 살인 (1)>
#
“오랜만입니다. 갑작스러운 전화였을 텐데, 감사합니다. 한창 바쁜 시기일 텐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는 무슨. 먼저 전화해 줘서 고맙네. 바쁘기는 하다만 자네한테 도움받은 것도 있는데 당연히 나와야지.”
강민혁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한 남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늦었지만, 승진 축하하네. 그럴 줄이야 알았지만, 금방 내 계급을 지나쳐버렸구먼. 이거 뭐라 불러야 할지···.”
그리고 이내 강민혁이 자신보다 계급이 높다는 것을 인지한 듯,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편하게 불러주셔도 괜찮습니다. 갑자기 존재하시고 그러면 저도 불편합니다. 이재석 경감님.”
강민혁 역시 그가 곤란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눈앞의 이재석은 과거 이신아 사건을 맡았던 그로 당시에는 경감으로서 같은 계급으로서 만났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강민혁은 승진했고 이재석 그보다 높은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계급이 높아짐에 따라 그가 높임말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근무하는 관서도 다르고 나이도 배는 많은 그에게 굳이 존칭을 바라지는 않았다.
강민혁이 괜찮다는 듯 웃자, 이재석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하하, 알겠네. 그보다, 무슨 부탁이 있다고?”
강민혁이 이재석을 찾아온 이유.
그것은 역시나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 파일을 살펴보며 박동식이 관여했으리라 짐작되는 사건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관서에서 배정받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었다.
수사가 끝난 것도 아니고, 이미 진행 중인 사건. 더구나 다른 관서에서 맡은 사건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었기에 머리를 굴리던 와중.
사건 담당 형사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가 바로 이재석 경감 그였다.
이재석 경감과는 과거 인연이 있었는데, 그 사건이 바로 ‘이신아 사건’이었다.
그들이 범인 검거에 실패했던 이신아 사건을 강민혁이 해결해냈고, 이재석은 당시 매우 고마워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한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빈말일 수는 있었으나, 꽤 그럴듯한 핑곗거리였기에 강민혁은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의 만남이 이어진 것이었다.
“예. 무리한 부탁일 수 있지만. 이재석 형사님이 맡은 그 사건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재석의 물음에 강민혁은 뜸 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말 그대로 그가 맡은 사건에 참여하고 싶다는 부탁. 소속도 부서도 다른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부탁이었으나, 이재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그리고 무언가 고민하더니 이내 강민혁을 보며 물어왔다.
“꼭 해결하고 싶은 사건입니다.”
“음···.”
“그리고···. 제가 쫓고 있는 범죄자와 연관되어 있을지 모르는···.”
“...!”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는 없으나,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혔다. 이재석의 눈이 순간 번뜩이며 강민혁을 쳐다보았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그래도 직접 확인해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느껴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강민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흠···. 잠깐 고민할 시간 좀 주겠나? 물론, 자네가 도움을 주겠다면 너무나 고맙지만,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일세.”
“예, 그럼요. 당연하죠.”
고민이 길어지면 이재석은 강민혁에게 양해를 구하며 잠시 일어섰다. 자신의 팀원들 그리고 상관에게 상의하기 위해 통화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가 이 사건의 책임자라고 한들, 그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했기에, 강민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이재석이 돌아왔고. 곧바로 결과를 알려주었다.
“좋네. 다른 팀원들 역시 괜찮다고 하고, 위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구먼. 나 역시 자네가 이번 사건을 도와준다고 말한 게 감사할 뿐이네.”
“아닙니다. 무리한 부탁인데,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다행히 반응이 썩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재석은 밝은 표정으로 결과를 알려주었고, 강민혁 역시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사실, 이번 사건에 꽤 애를 먹는 중이었네. 사건도 사건이고.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 사회적 혼란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거든.”
“그렇군요. 대충은 살펴봐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빠르겠구먼. 최대한 언론에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막고는 있네만. 더는 무리일세. 아마 조만간 소식이 전해지겠지. 어떻게든 이른 시일 내에 범인을 검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건이네.”
이재석의 말에 강민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맡은 사건은 연쇄 살인 사건. 더구나 예고 살인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었다.
“피해자를 예고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확실히 빨리 검거하지 않으면 사회적 파장이 크겠네요.”
이번 사건의 피해자만 벌써 세 명째. 그들의 특징은 모두 지목당한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사건의 범인은 단순히 살인을 저지르는 그것을 넘어 살인현장에 다음 피해자를 유추할 수 있는 힌트를 남겨두었다.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었으나, 경찰은 막아내지 못했다.
이러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을 경우, 사회적 혼란과 공포가 퍼질 것은 당연지사.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무능하다는 평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컸다.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었으나, 경찰은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더구나 수사에 진척도 없는 상황에 강민혁이 나타난 것이었다.
사건을 담당 중인 이재석의 처지에서 강민혁의 등장은 그야말로 구세주와 같았고, 이미 소문뿐이 아닌 자신이 실패했던 사건을 해결한 경험까지 있는 그였기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이었다.
“염치없지만, 저희 팀원 중의 한 명과 같이 수사에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당연하네. 사건만 해결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네. 자네 원하는 대로 하게.”
강민혁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고, 시원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바로 뵙겠습니다.”
“아닐세. 내가 더 고맙지. 그럼 내일 보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강민혁이 인사를 건넸고,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에 이재석과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
“...이렇게 된 관계로. 다음 사건은 노희재 경위와 유진호 경위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잘 따라주시고, 두 분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저에게 언제든 연락 주시면 됩니다.”
다음날 미제사건수사과 제3팀 사무실. 강민혁은 지난밤 있었던 일들을 팀원들에게 모두 설명해주었다.
그는 다른 사건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팀 전체가 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재석의 사건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팀을 언제까지 대기시켜놓을 수만은 없었기에, 강민혁은 유진호와 노희재에게 팀장의 역할을 부여해 다음 사건을 진행 시켰다.
그들에게 사건을 맡긴 건, 단순히 그 두 사람의 계급이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진호와 노희재 모두 미제사건수사과의 원년 멤버로서 수많은 미제사건을 경험해봤음은 물론, 과거 경제팀으로 이동하기 전에도 그들끼리 수사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기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그럴듯하게 그들을 세워둔 것이 아닌, 사건 해결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들에게 맡긴 것이었다.
“저는 그럼···.”
그때 호명되지 않은 그녀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강민혁은 한동안 자신 없이 수사를 진행해야 할 팀원들을 한 명 한 명 불러주며 역할을 정해주었는데, 오직 한 사람. 이주현 그녀만이 어떠한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것이었다.
“예. 이주현 씨는 저와 함께할 겁니다.”
강민혁은 실수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에게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함께 다른 사건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재석에게 팀원과 함께 수사에 참여해도 되겠다는 부탁을 할 때, 그가 생각했던 인물이 바로 이주현 그녀였다.
“그···. 예고 살인사건을 말하는 거죠?”
“예, 맞습니다.”
강민혁의 말에 이주현은 곧바로 해당 사건을 떠올렸다. ‘예고 살인사건’, 정식 명칭은 아니었으나 사건의 특색에 맡게 암묵적으로 부르고 있는 사건명이었고, 그녀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직접 조사하셨으니,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계시겠죠?”
“예···. 자세히는 아니지만···.”
“좋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강민혁이 최근 일어난 사건을 조사해달라 부탁한 사람이 바로 이주현 그녀였다. ‘예고 살인사건’ 역시 그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건이었으니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왜 저를···.”
이주현은 어째서 다른 팀원이 아닌, 자신과 함께하려는 것인지 궁금한 듯 물어왔다.
이번에 신생 된 팀이긴 하나, 노희재를 비롯해 유진호, 이민재의 경우 과거 강민혁과 한팀에서 함께했던 경험이 있었다.
더구나 이민재의 경우 파트너 관계였기에, 손발이 맞는 사람을 고르라면 바로 그들을 골랐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그랬기에 이주현은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팀에 적응조차 덜되 미숙한 자신을 선택한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음···. 사건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범인이 살해 후 남기는 힌트 때문입니다.”
강민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그녀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주현을 데려가려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이번 사건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손발이 맞는 이들이라면 다른 팀원들이 더욱 적합했을 것이 분명했다. 사건이야 설명해주면 그만이었지만, 강민혁이 주목한 것은 범인의 행동 때문이었다.
“다음 피해자를 지목하는 그 힌트 말하는 거 군요···.”
“예, 맞습니다.”
이번 ‘예고 살인사건’ 범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음 피해자를 특정할 힌트를 현장에 남겨둔다는 점이었다.
어째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찌 됐든 그 힌트를 풀어내기만 한다면 다음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일어날 사건을 막을 수 있음은 물론. 범인 또한 검거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커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수사를 담당하는 이들은 사건을 막지 못했고, 범인을 검거해내지 못했다.
“힌트가 꽤 난해하다고 하더군요.”
힌트를 풀어내지 못했다는 소리였고, 실제로 강민혁이 이재석에게 들은 결과,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나 그 힌트가 피해자를 지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제 역할은···. 그 힌트를 풀어내는 거겠군요.”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강민혁이 이주현과 함께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고. 그녀 또한 그제야 그의 의도를 파악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최대한 노력해볼게요.”
“좋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이주현의 대답에 강민혁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곧바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