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자연인 살인사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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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의 입국까지 남은 사흘 동안 미제사건수사과 제3팀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인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부족한 한가지가 바로 증거. 안지영과 안지훈이 현선우를 살해한 뒤, 확보했을 당첨금이었다.
"안지훈, 안지영은 현선우의 당첨금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돈은 그들의 범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일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우리가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현선우가 복권 1등에 당첨돼 받은 그 당첨금은 이번 사건이 벌어진 이유이자 그들의 범행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범죄를 통해 얻은 돈이었음은 물론, 금액이 상당했기에 그들이 쉽게 그 돈을 어떻게 했을 리는 만무했다. 아직 현찰인 상태 그대로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했다.
강민혁은 바로 그 점에 주목.
안지훈과 안지영이 보관하고 있을 그 돈을 찾아냄으로써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진호 씨와 영웅 씨는 안지훈의 행적을 주현 씨와 희재 씨는 백업을, 민재 씨는 저와 함께 이동하겠습니다."
작전을 시행하기 전, 강민혁은 팀원을 둘씩 모아 각자의 역할을 나눠주었다.
먼저 유진호와 김영웅은 안지훈의 감시 역할. 강민혁은 안지훈을 만났을 당시, 그의 기억을 읽은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통해 두 사람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당연히 돈의 행방을 알기 위한 시도 또한 없지 않았다.
'돈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안지영이 유일해'
하지만, 안지훈을 통해 돈의 행방에 관한 기억을 읽지는 못했다. 그 말은 즉, 그는 관련 사실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한다는 말이었고, 그것은 결국 안지영만이 돈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범인들끼리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라···.’
우스운 모양새였으나,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안지훈이 돈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으나, 보관장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안지영뿐. 더구나 그녀는 해외에 나가 있었으니 강민혁이 기억을 읽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강민혁은 의도적으로 현선우의 복권당첨 사실을 안지훈에게 흘렸고, 그는 자연스럽게 안지영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강민혁이 예상한 대로, 안지영은 급하게 여행 일정을 취소하며 국내로 들어오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불안함을 느낀 거겠지.’
자신들 외에 현선우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 그것도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이 그러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불안함을 느낀 그녀가 급하게 국내로 들어오는 결정을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였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강민혁의 예측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돈을 완벽히 세탁하거나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두었다면, 그녀가 이토록 급하게 국내로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자신들의 범행이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숨겨둔 돈을 찾아낼 수 없다는 확신이 없기에 내린 결정이 분명했다.
강민혁이 유진호와 김영웅에게 안지훈을 감시하게 시킨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는 돈의 행방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
안지영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최대한 빠르게 국내로 들어올 방법을 찾아냈지만, 사흘이라는 시간은 절대 적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녀가 취할 행동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돈을 더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싶어 하겠지.’
간단한 심리였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범죄행위가 들키지 않았고, 사건 또한 결국 해결되지 못한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 안심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새로운 수사가 시작되었고 지금껏 알아내지 못했던 사실을 강민혁이 알아냈다.
모든 것이 끝난 줄만 알고 유유자적 여행을 떠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범행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피어오른 것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자신들이 훔친 돈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를 그녀 또한 모르지는 않을 터. 더욱 안전하게 숨기고 싶어 할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해외에 있는 그녀가 돈을 숨길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하나뿐이었다.
‘안지훈을 통해 행동하겠지.’
서로의 범행 사실을 알고 있으며, 돈의 유무를 알고 있는 사람.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인물은 결국 안지훈 한 사람뿐이었다.
물론, 지금껏 안지훈에게 돈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은 그녀였기에 그러한 행동을 취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으나.
돈을 다른 장소로 숨기는 방법으로는 그 외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강민혁은 유진호와 김영웅에 안지훈을 감시하도록 명령한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이주현과 노희재였다. 두 사람의 업무는 백업. 현장에 나간 이들이 급하게 필요한 정보나 사실을 그때그때 확인하며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마지막으로 강민혁은 이민재와 함께 전체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 안지훈이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로 따라붙겠습니다.
강민혁의 지휘 아래,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한 지 이틀째. 안지훈의 집 앞에서 잠복 중이던 유진호와 김영웅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한동안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안지훈이 움직임을 보였다는 무전이었고, 강민혁은 곧바로 대답했다.
- 들키지 않도록 안전거리 유지하세요. 방향은 어느 쪽입니까.
- 팀장님 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 알겠습니다.
답해온 무전에 강민혁은 곧바로 자세를 고쳐앉으며 집중했다.
“팀장님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정말 안지영의 집에 돈이 있었던 걸까요?”
“...지켜보도록 하죠.”
무전을 종료하자, 곧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민재의 질문이 이어졌다.
강민혁과 이민재가 잠복 중인 장소는 안지영의 집 앞. 안지훈이 현재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유추되는 바로 그 장소였다.
강민혁은 안지영이 돈을 숨겼을 장소에 대해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은행에도 맡길 수 없으며, 다른 이에게는 더더욱 맡길 수 없는 그 돈. 일반 가정주부였던 그녀가 돈을 숨길 수 있는 장소에 대해 고민했으나.
결론은 한 군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집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
강민혁이 수사를 맡기 전까지만 해도 어떠한 의심도 받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하물며 현선우의 돈이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파악하고 있는 이들이 없었으니, 안지영의 처지에선 돈을 숨기는데 그리 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녀가 돈을 숨길 장소는 마땅치 않았고, 기껏해야 집 안, 금고 정도가 제일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강민혁의 예상일 뿐이었으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상황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민재는 신기한 듯 물었고, 강민혁은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며 말을 아꼈다.
“팀장님, 저기 보입니다.”
그때, 이민재가 눈짓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눕혔다. 이미 선팅이 짙은 차량에 타고 있었기에 보일 리는 없건만,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확인했습니다. 기다려 보죠.”
예상했던 대로 안지훈은 안지영의 집 앞에 차를 세웠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강민혁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았고 이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누이 집에 찾아온 안지훈의 모습이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 시기 때문이었다. 안지영은 현재 해외에 있었고, 그녀의 딸인 현경아는 회사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현재 그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소리였고, 그가 지금 이곳에 온 이유는 분명했다.
“신호 주면 바로 뛰쳐나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강민혁이 이민재에게 말을 건네기 무섭게 아파트 현관에서 안지훈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두 사람은 그의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동되는 시선.
“...들어갈 때는 없었던 가방을 들고 있습니다.”
이민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지영의 집에 들어갔다 나온 안지훈의 왼손에 허름한 가방이 들려있었다. 꽤 묵직해 보이는 그 가방은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었고, 무엇이 들어있는지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강민혁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차로 이동하는 순간.
“갑시다.”
명령이 떨어졌다.
잠복 중이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차에서 빠져나가 그에게 다가갔다.
안지훈이 자신의 차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이민재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
안면이 없는 낯선 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상황. 화를 낼 법도 하건만.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그는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 상황을 피하려 했다.
“오랜만입니다. 안지훈 씨.”
하지만 그 뒤에는 강민혁이 버젓이 서 있었다. 입은 반가운 듯 웃고 있지만, 눈만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무, 무슨 일로.”
안지훈은 단번에 강민혁을 알아본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왼손에 든 가방을 슬며시 뒤로 숨기기 시작했고, 강민혁은 그 모습을 놓이지 않았다.
“안지훈 씨를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저를요?”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말에 더욱이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그의 집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는 안지영의 집이었고, 이곳에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말은 결국.
“같이 가시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끝을 놓지 않은 듯, 순식간에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칫하는 순간.
“도망가실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저희 동료들이 이미 아파트 입구에서 대기 중입니다.”
강민혁의 말이 이어졌고, 안지훈의 표정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저 그를 겁주기 위해 한 말이 아닌, 실제로 아파트의 입구에 유진호와 김영웅이 대기 중이었다.
앞서 안지훈의 집에서부터 따라붙은 그들이었고, 강민혁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안지훈은 지금 여기서 도망친다 해도 빠져나갈 곳이 없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 강민혁은 좌절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안지훈 씨. 당신을 현선우 씨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의의 있습니까?”
“즈, 증거 있습니까?”
그는 말까지 더듬어가며 마지막 발악을 내뱉었고, 강민혁은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대답했다.
“증거는 당신이 들고 있지 않습니까.”
예상대로 강민혁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안지훈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강민혁은 곧바로 그를 체포, 돈 가방을 확보했다.
이후, 안지훈에 이어 다음날 공항에 들어온 안지영까지 검거. 그녀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려 했으나 이미 확보한 돈 가방과 안지훈의 자백으로 인해, 소용은 없었다.
‘자연인 살인사건’의 범인인 두 사람을 검거함으로써 미제사건수사과 제3팀의 첫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